일본은 현재 세계 각국을 상대로 자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지지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의 한 예가 가와구치 전 일본 외상이 아세안 각국의 외무부 장관들을 상대로 펼친 뉴욕에서의 전방위 로비외교.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일본의 노력은 큰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아세안 각국들이 아직은 일본의 손을 시원스레 들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중국은 흘러나오는 입가의 미소를 감추질 못하고….
이로써도 알 수 있듯 현재 일본과 중국은 아세안 지역에서 주도권 쟁취를 위한 치열한 샅바싸움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2회에 걸쳐 알아본다.
일본의 가와구치 전 외상이 뉴욕에서 전개한 아세안 외무장관들과의 회동에서 그녀의 카운터파트들은 유엔 개혁방안이 나올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이를 둘러싸고 각자 전형적인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고 있다.
먼저 일본. 일본에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일본은 이번에 나온 아세안 각국의‘예기치 못한’유보적 반응은 태국의 외무장관 말처럼 단지 유엔 개혁방안이 나올 때까지만 기다리는 것일 뿐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아세안은 국제사회에서의 절차적 형식을 존중하고 있을 뿐이지 이것이 곧 일본에 대한 지지유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측은 그동안 일본이 아세안 지역 발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공헌”했는가를 되돌아 보면 아세안 각국의 일본 지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이와 같은 일본의 태도는 한 신문사와 가진 싱가폴 주재 일본 대사 마키타씨의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마키타씨는 무역·투자·경제원조 등 각 분야에서 지난 10년간 일본의 대아세안 원조를 잘 살펴보라며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도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가장 많이 지원한 국가가 바로 일본이었음을 역설하고 있다. 아울러 역내에서의 향후 일본의 역할에 대해“일본의 힘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며 “동남아에서 중국이 팽창해도 일본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단호함에서는 오히려 역내에서 도전받고 있는 일본의 다급한 위상이 투영돼 나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는 중국의 반응. 중국은 아세안 외무장관들의 “판단 유보”에 대해 일본이 자의적 해석으로 자위하고 있다고 빈정대고 있는 것 같다. 즉 그동안 아세안 지역의 경제발전에 기여했고 또 이를 주지하고 있는 아세안이 지지해 줄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일본의 순진무구함(양쯔대학 정치경제학부의 한 중국인 교수)이 가엾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에는 중국 나름대로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중국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 다져오고 있는 대아세안 전방위 외교의 결실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아세안을 향한 중국의 외교행보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이다. 중국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 이른바‘일본의 앞 뜰’이라 불리는 아세안의 선진국가들에서조차 일본을 급속도로 밀어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중국과 아세안 10개 회원국의 2003년 교역규모는 2002년보다 무려 42%나 증가한 782억 달러나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국의 기질이 나타난다. 중국은 아세안과의 교역에서 현재 164억 달러라는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일단은’이를 개의치 않는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 결과 아세안 제국은 2004년 1분기만해도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싱가폴 7.5%, 말레이시아 7.6%, 태국ㆍ베트남도 7% 대였고 상대적으로 경제가 약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도 각각 6.4%와 4.5%라는 좋은 성장지표를 그려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전략은“조금씩 감질나게 던져주는 일본과는 달리 중국은 대범한 자세로 아세안과 훌륭한 파트너가 되고 있다”(태국인 변호사 요(Yo)), “안 좋은 상황하에서도 아세안의 경제가 선전하고 있는 것은 중국에 대한 수출 급증 덕분”(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이라는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아세안 지역에서의 중ㆍ일 양국의 샅바싸움에 대해 당사국인 아세안 각국은 주판알 튕기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태국의 또 다른 지인 린다(Linda)에 의하면 “그 동안 역내에서의 일본의 경제적 위상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국의‘강력한 출현’으로 인해 아세안 회원국들은 양국사이에서 골치를 앓고 있다. 견원지간인 양국관계에 휘말려들까 우려된다”고 털어놓는다. 중국과 일본의 자존심 걸린 한바탕 자웅겨루기는 이처럼 아세안 지역에서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형국으로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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