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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vs 분배? 그리고 세계화의 효과

이강국의 '세계화의 정치경제학' <14> 세계화 소득분배 그리고 경제성장

***오해 혹은 무지, 소득분배 vs 경제성장**

높은 성장과 균등한 분배, 이 둘은 경제학자나 정책결정자들이 언제나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일 것이다. 물론 어떤 것이 상대적으로 더욱 중요한가 하는 것은 가치판단에 달려 있고 각국이 처한 역사와 제도 그리고 정치적 역관계에 따라 상이할 것이다. 성장과 분배 간의 상호관계도 무척이나 복잡하다. 최근에는 유럽의 사민주의가 분배가 더 나쁜 미국보다 성장률이 높은 것 같지는 않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성장과 분배가 모두 나쁜 반면 동아시아는 둘 모두에서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론적 그리고 실증적으로도 소득분배와 경제성장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은 이제 막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1955년 쿠즈네츠는, 이제는 고전이 된 논문에서 여러 나라의 경험을 살펴본 후 경제성장의 초기에는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노동력 이동 등으로 분배가 악화되다가 선진국이 되면 분배가 더욱 개선된다는 이른바 ‘역 U-자 가설’을 제시했다. 그러나 후일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은 경험적으로 그 증거가 그리 뚜렷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80년대 이후 성장에도 불구하고 분배가 상당히 악화되어 이런 주장을 무색하게 하였고 전세계를 보아도 방글라데시와 같은 남아시아 개도국들이 상당히 균등한 분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쿠즈네츠의 주장이 전반적으로 확인이 되기도 하지만, 각국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복잡한 관계를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Barro, 2000)

90년대 이후의 관심은 성장에서 분배가 아니라 분배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으로 급속히 옮겨왔다. 특히 세계은행의 빈곤퇴치 정책의 발전과 학계에서는 경제성장에 관한 계량연구와 신성장이론 등의 발전을 배경으로 최근에는 분배->성장 에 관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세계은행은 빈곤에 관한 여러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고 이러한 노력에 기초하여 각국의 지니계수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고 그 홈페이지에도 분배와 빈곤 문제에 관한, 이론과 실증연구 그리고 정책적 제언 등을 포괄하는 여러 연구들을 모아 놓고 있어서 주목할 만 하다.(http://www1.worldbank.org/prem/poverty/inequal/index.htm)

***균등한 분배에서 고성장으로**

최근 한국에서도 성장 대 분배 간의 갈등이 두드러지고 있다. 얼마 전 한국경제학회 회장의 발언에서도 보이듯 압도적인 다수의 경제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은 분배를 강조하면 성장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지금은 성장에 집중할 때라 목소리를 높인다. 먼저 파이를 키우고 나중에 나누자는 주장은 몇십 년 동안 들어왔던 이야기니까 별반 새롭지조차 않지만, 과연 이들의 우려대로 지금의 정부가 노동자 편이고 좌파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지는 극히 의심스럽다. 어찌보면 이는 확실히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공세인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점은 이런 주장들이 최근의 이론의 발전과 현실에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파에게는 곤혹스럽게도 대부분의 경제학 연구들은 균등한 분배는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실증연구들도 이를 확인해주고 있다. 불평등한 소득 혹은 부의 분배가 성장을 악화시키는 가능성은 직관적으로도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으며, 최근의 신성장이론은 보다 엄밀한 수학 모델들을 제시하고 있다.(Aghion et al., 1999)

우선 단기적으로 거시경제를 생각해보면 역시 균등한 소득분배는 총수요와 구매력을 높여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계층의 한계소비성향이 더욱 높을 것이므로 케인즈도 주장했듯 소득분배가 평등해지면 사회전체의 소비가 늘어나고 이는 경기를 진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빈곤층으로의 재분배를 통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은 교과서에도 나와 있으며 실은 그다지 좌파적인 것도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골프채나 수입가구 등 부유층의 지갑을 열기 위한 최근의 특별소비세인하나 그 혜택이 상류층에만 돌아가는 감세는 오히려 이런 이론과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소비를 더욱 강조하고 저축과 투자가 따로 결정되며 저축이 자동적으로 투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저축이 장기적으로 투자와 성장에 중요하다면 오히려 소득분배의 악화가 부유층의 상대적인 저축을 늘여서 성장을 촉진할 가능성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것도 하나의 이론적인 가능성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한국은 부유층의 부동자금이 투자로 전혀 이어지지 않으며 빈곤층의 소비위축이 훨씬 심각한 상황인 듯하다.

***경제학 연구의 발전**

최근의 발전된 논의들은 총수요의 관점보다는, 보다 미시적이며 정치경제학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먼저 알레시나 등 초기의 정치경제학적 입장은, 분배의 악화는 재분배를 위한 요구를 심화시키며 소위 중위투표이론에 따른다면 이러한 요구가 세금을 높이는 재분배정책으로 이어져, 이는 결국 경제의 왜곡과 비효율성을 높여서 성장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Alesina and Rodrik, 1994) 경제에 나쁘다고 맨날 얻어맞는 포퓰리즘이 정작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에서 등장하기 쉽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그럴 듯한 이론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분배가 나쁜 나라라고 해서 꼭 재분배 요구와 세금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실증적인 난점에 곧 부딪쳤다.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제시된 보다 세련된 주장은 역시 분배가 악화된 나라의 경우 재분배에 대한 요구와 불만의 심화로 사회적 갈등이 높고 정치적 불안이 심각해져 투자가 저하되고 성장이 낮아진다는 것이다.(Alesina and Perotti, 1996) 실제로 많은 실증연구들이 쿠데타나 암살 등 정치적인 불안이 성장에 뚜렷한 마이너스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 바 있으며 이는 흔히 소득분배의 악화와 연관이 있다. 아무튼 분배가 너무 악화된 사회에서는 경제도 제대로 굴러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 세련된 연구들은 심각한 정보문제로 인해 시장실패가 만연하기 때문에 나쁜 분배가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논리를 제시한다. 이러한 시장실패는 자본시장에서 가장 심각하다. 보통 현실에서 은행들은 돈을 빌리는 주체의 정보를 잘 모르며 이 경우 시장이자율보다 낮은 금리에서 대출금을 배분하는 신용할당이나 대출과정에서 담보를 요구하는 행태 등이 흔히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난한 가계나 중소기업의 경우 담보부족으로 인해 신용을 이용하기가 힘들어지게 된다.

결국 좋은 투자계획을 지니고 있어도 중소기업의 투자는 현실에서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보다 중요하게 가난한 이들이 돈을 빌릴 수 없어서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 즉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면,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성장이 낮아진다는 것이다.(Aghion et al., 1999) 언제나 자금난으로 고생하는 중소기업이나 과도한 교육비로 허리가 휘는 가정들을 보면 한국에서도 이해할 만하다. 나아가, 분배의 악화는 거시적인 불안정을 심화시켜 투자와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도 제시된다.

결국 최근의 연구들은 소득이나 부가 더욱 공평하게 분배된 나라들의 성장률이 높을 것이라 예측한다. 이는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성장과 분배가 상충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 경로들은 단지 가능성일 뿐이다. 보수파가 목소리를 높이듯 너무 심한 재분배의 요구는 기업가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리고 과다한 복지정책은 노동의욕조차 떨어뜨려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결국 언제나 그렇듯 다시 공은 실증연구에게로 넘어갔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실증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실증연구를 둘러싼 논란들**

경제성장에 관한 계량분석의 발전과 함께 많은 연구들은 분배의 성장효과를 크로스컨트리 계량모델을 통해 검증해 오고 있다. 즉 90년대 이후 많은 학자들은 각국의 성장을 검증하는 계량모델에 분배를 나타내는 지표인 5분위 비율이나 소득이나 토지의 지니계수 등을 추가하여 그 영향을 분석했는데, 재미있게도 각국을 비교한 초기의 연구들은 다른 변수들을 통제한 이후 소득분배가 더욱 공평한 나라가 성장률이 더 높다고 보고했다. 이는 위의 이론들을 뒷받침 하는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다시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1990년대 초반 알레시나와 로드릭 등은 표준적인 계량연구를 통해 분배의 성장효과가 뚜렷함을 보고했지만(Alessina and Rodrik, 1994) 다이닝거와 스콰이어는 세계은행의 새로운 자료에 기초하여 그 결과가 그리 튼튼하지 않다고 반박했다.(Deininger and Squire 1996) 하지만 다시 페로티 등 최근의 여러 연구들은 발전된 데이터에 기초해서도 분배의 성장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며 특히 사회복지 등 재분배정책도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보고하여 장기적으로 성장과 분배의 양립가능성을 확인해주었다.(Perotti, 1996)

그렇다면 정말 환영할 만한 일 아닌가, 분배와 성장이 사이좋게 함께 갈 수 있다면. 그러나 현실은 역시 만만치만은 않아서, 패널 기법을 사용한 더욱 최근의 연구들은 종래의 관찰과 반대되는 결과를 보고하기도 한다. 즉, 각국간의 장기적 성장률을 서로 비교한 연구들과는 달리, 각국 내의 시간상의 변화를 함께 고려한 연구들은 분배가 오히려 성장에 나쁘다고다고 보고하여 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Forbes, 2000)

이렇게 실증연구들의 결과가 기법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은 자본자유화 등 다른 정책의 성장효과에서도 확인되지만 역시 해석은 만만치 않다. 포브스에 따르면 각 나라가 서로 상이하다고 가정하여, 관찰되지 않는 이른바 ‘고정효과(fixed effects)’를 고려하고 한 나라의 변화까지 고려하면, 균등한 분배가 오히려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재미있게도 고정효과를 주지 않거나 시간의 변화를 5년 평균이 아니라 더 장기적으로 살펴보면 그 악영향은 사라지고 만다. 흔히 이런 결과는 단기적으로는 분배가 성장에 나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석된다.

한편 다른 이들은 이런 기법을 사용해서 분석하면 분배가 성장에 미치는 효과가 소득수준에 따라 다르다고 보고하기도 한다. 즉 가난한 나라에서는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소득분배의 악화가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중진국 이상에서는 그렇지 않아서, 분배의 성장효과는 단선적이지 않다(non-linear)는 것이다.(Barro, 2000) 아무튼 최근의 연구들은 온갖 발전된 계량경제학의 기법들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해석과 발전가능성은 열려 있는 듯하다.

이 논란에서 중요한 점은 역시, 성장 자체가 분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어떤 변수가 성장과 분배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므로 계량연구 자체가 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위 내생적 효과들을 모두 고려하면 보다 복잡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며, 각국의 역사적 사례연구가 함께 보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Pardo-Beltran, 2002)

또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주로 소득의 분배를 지표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성장에 더욱 중요한 것은 소득보다는 토지 등 부의 분배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몇몇 연구들은 실제로 부의 분배의 불균등이 성장에 미치는 악영향은 무척 뚜렷하다고 보고한다. 토지분배의 지니계수를 사용하면 패널데이터를 써도 분배의 성장효과가 여전히 뚜렷하다고 보고되며(Deininger and Olinto, 2000), 소득과 부의 분배를 함께 모델에 도입하면 소득분배의 중요성은 사라지는 반면 여전히 부의 분배는 중요하다고 보고된다. 결국 월급 차이보다도 땅의 분배나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부의 격차 확대가 경제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렇듯 실증연구들을 둘러싸고는 기법과 데이터를 둘러싸고 열띤 논란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소득이나 특히 부의 불균등한 분배는 적어도 장기적인 경제성장에는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투자, 이윤율 그리고 소득분배**

분배와 성장 간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연구의 발전을 더 기다리도록 하자. 우리에게 더욱 흥미로운 점은 과연 세계화가 이 둘 간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엄밀한 실증연구를 기다리고 있지만, 몇몇 흥미로운 이론적 연구들이 이미 제시된 바 있다. 잠시 이들의 아이디어를 살펴보자.

흔히 비주류로 불리는, 구조주의 혹은 포스트케인지언 거시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의 경제성장의 동력을 투자에서 찾는다. 투자의 변동이 실로 경기변동의 핵심 아니던가, 그렇다면 투자는 무엇이 결정할까. 이들은 맑스 등의 전통을 따라 투자를 이윤율의 함수로 생각하고, 이윤율을 결정하는 요인들을 다시 분해하여 소득분배를 포함한 경제의 변화가 어떻게 투자의 변화로 이어지는지 분석한다.(Marglin and Bhaduri, 1990)

쉽게 말해서, 이윤율은 이윤/자본 이다. 즉 들인 자본에 비해 이윤이 높으면 자본가는 당연히 투자를 늘인다는 것이다. 투자행위는 물론 미래에 관한 것이므로 엄밀하게는 미래의 예상이윤율이 중요하지만 보통은 현재의 이윤율이 미래의 투자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가정된다. 하긴 요즘의 한국처럼 이윤율이 무지 높은데도 기업들이 투자를 안하고 주저앉아 있는 것은, 기업가정신의 부재든 눈치보기든 개기기든, 불확실성이든 구조적 변화든 아니면 이 모든 것이든 뭔가 다른 설명이 필요하긴 하다.

어쨌든 이윤율은 다시=이윤/소득 * 완전고용 소득/자본 * 현실의 소득/완전고용 소득 으로 분해되는데, 여기서 소득에서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인 이윤몫은 양날의 칼의 역할을 한다. 즉 이윤몫이 올라가면 이윤율이 높아져 투자를 증대시킬 수 있는 반면, 이것이 너무 높아지면 임금몫이 떨어져 케인즈가 말했듯 총수요가 줄어들고 따라서 가동률(소득/완전고용소득)이 하락하여 오히려 이윤율이 하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즉 여기서 총수요 하락 효과가 더욱 압도적이라면 아이러니칼하게도 자본가가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이 투자와 성장의 정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시, 임금은 기업에게는 비용이지만 사회전체로는 구매력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그리고 세계화**

아무튼 이들은 자본주의 황금기는 가동률이 높아지고 이윤몫도 하락하지 않아서 이윤율이 높았고 고도성장을 이룩한 반면, 70년대 이후에는 생산성이 정체하고 이윤몫이 하락하자 이윤율이 떨어져 경제위기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모델에 따르면 경제성장은 그 조건에 따라 이윤몫의 증가가 저축상승으로 총수요의 증가로 이어지는 ‘활발한 체제(exhilaration regime)’과 임금몫 증가가 총수요를 증가시키는 ‘정체된 체제(stagnationist Regime)’가 가능하며, 임금몫과 이윤율, 투자가 동시에 늘어나는 임금주도적 성장(wage-led growth)도 가능하다. 이렇게 투자와 임금이 함께 늘어난다면 꽤나 이상적이다. 분배와 성장의 동시적인 개선, 소위 평등주의적 발전(egalitarian growth)이 현실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의 전복을 포기한 현대의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최선은 이런 정도 아닐까, 이들이 이 가능성에 목을 매다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조건이 사회적 역관계와 제도의 변화와 관련이 크고, 특히 자본이동 등 세계화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만약 FDI 등으로 해외로의 자본투자가 더욱 활발해지고 수출시장이 훨씬 중요해지면 어떻게 될까. 자국의 노동자의 임금이 높아지면 물론 국내의 총수요가 늘어날 수도 있지만, 해외로 진출할 수 있고 특히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자본들은 이를 비용의 증가로만 생각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체된 체제(stagnationist regime)나 임금주도적 성장의 가능성은 약화될 것이다.

결국 세계화의 진전과 발없는 자본의 이동이 심해지면 한 나라 안에서 사이좋게 먹고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일까. 이런 모델은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평등주의적 발전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으로 이른다. 슬프긴 하지만 총수요문제와 역관계의 변화를 고려하면, 개방이 심화될수록 평등한 소득분배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모델은 세계화와 성장과 분배가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의 한 측면을 보여줄 뿐이다. 이윤율의 결정에서 기술적 효율성을 반영하는 자본생산성 등의 핵심적 역할도 고려되어야 하며, 특히 생산성 자체도 노자간의 역관계 등을 반영할 것이므로 분석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어떻든 수출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이 언제나 국제경쟁력 운운하면서 임금비용을 죽어라 낮추려고 하는 것은, 세계화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런 목소리는 자주 이데올로기 공세인 경우가 많고, 제조업 총비용에서 노동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10%이며 임금상승과 협조적 노사관계를 통해 생산성이 향상되는 하이로드(high road)의 길이 가능하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제가 개방될수록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한 정부의 완전고용정책도 한계에 직면하고 재정지출도 억제될 것이라 우려되며, 세계화는 분배와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정부의 적극적 정책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된다. 물론 이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지출 등은 국내적인 역관계나 제도에 더욱 영향을 받으며(Bowles, 2002) 지속되고 있고 로드릭 등이 역설했듯 세계화 자체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므로 정부의 재정지출은 오히려 늘어난다는 보고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가 국내적인 역관계와 경제정책에 미치는 영향들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평등주의적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동아시아와 평등주의적 발전**

세계화가 그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곤 하지만 성장과 분배의 동시적인 개선은 여전히 경제학자들이 잡고 싶은 두 마리 토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상적인 사례를 역사적으로 발견할 수 있을까? 학자들은 다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찬사를 던진다.

세계은행의 ‘기적’ 보고서를 비롯한 많은 연구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토지의 균등한 분배와 성장과 함께 나타난 임금상승과 소득의 확산에 힘입은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학자들은 도약기의 균등한 분배가 사회적 불안정을 완화시켜 경제성장에 효과적인 정치경제적 환경을 만들어내고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원칙(shared growth principle)에 기초한 경제발전이 경제주체들의 참여를 더욱 높였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주목받는 것은 다른 개도국과는 달리 상당히 급진적으로 진행된 토지개혁이다. 토지개혁은 부의 분배를 평등하게 만들고 지주 등의 강력한 이해집단을 약화시켜 정치적인 안정과 함께 정부가 이해집단들에게 발목을 잡히지 않고 자율적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를 배경으로 경제 전체의 성장을 추구하는 효과적인 발전국가체제가 확립되고 국가의 경제개입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토지개혁이 충분히 혁명적이지 않았다는 진보적인 비판이 머쓱할 정도이다.

아무튼 성공적인 토지개혁에는 해방 이후 상당했던 좌익의 힘과 혁명의 길로 들어섰던 북한의 영향이 컸다. 이렇게 보면, 역설적이지만 외부적 위협과 내부적 개혁의 열망 등의 역사적 조건이 효과적인 제도의 형성에 도움을 주었으며 이는 핀란드 등 북구의 발전국가의 성공적 경험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이와 함께 무척 중요한 정책은 정부의 적극적인 교육정책이었다. 한국의 교육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은 것은 물론 조선시대부터 이어오던 배움에 대한 강조와 출세의 중요한 수단이 됐던 교육을 향한 향학열이 높은 것도 중요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다른 개도국들에 비해서 많은 이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공교육에 노력을 기울인 것은 성장의 촉진과 함께 분배가 동시에 개선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런 근사한 성과로 인해 동아시아는 서구의 진보적인 학자들에게조차 평등주의적 발전의 대안적인 사례로 대접받기도 한다. 혹자는 한발 더 나아가, 앞서 말한 구조주의적 거시모델에 기초해서 한국의 경우 고도성장과정에서 임금몫의 증가가 총수요를 증대시켜 이윤율을 높이고 투자도 증가시켰다는 실증연구를 제시하기도 했다.(Seguino, 2000) 그러나 이는 너무 멀리 나간 주장인 듯하다. 이미 다른 연구는 한국의 투자도 다른 선진국들처럼 이윤몫의 함수임을 보고했고 (Jang, 1998) 필자의 측정에 따르면 이윤율은 역시 투자에 핵심적이지만 특히 급속히 변화한 자본생산성까지 고려하면 임금몫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독재정부의 재벌 밀어주기 식의 경제발전전략 하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끔찍한 억압이 존재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작 국내의 진보주의자들은 경제발전이 종속적이었으며 민중을 수탈한 재벌중심적인 과정이었다고 소리높이며 박정희식 경제개발전략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지 않았던가. 이 또한 너무 편향된 주장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국경제의 성공을 너무 신비화하거나 너무 비판만 하는 것은 좋은 자세는 아닌 듯하다.

***한국의 기적, 그리고 파산**

동아시아나 한국의 기적적인 경험을 다시 들여다보자. 우선 이들 나라의 높은 성장은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투자 덕분이었고 그 이면에는 역시 높은 이윤율이 자리잡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각국을 비교해보면 이는 정확하게 이윤몫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즉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이윤에 비해서 임금이 상당히 억압되었고 이것이 높은 투자와 성장을 낳았으므로. 적어도 국가들을 비교해보면 임금이 높아져서 성장이 촉진된 것 같지는 않다.(You, 1998)

이렇게 투자는 촉진되면서도 노동자간의 임금격차와 부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아서 다른 나라에 비해 소득분배가 더 균등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역시 초기의 균등한 토지분배가 소득분배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이를 배경으로 나타난 발전국가의 효과적인 정책들이 핵심적이었다. 이를테면, 정부가 금융부문의 통제와 산업정책 등을 통해 높은 저축과 높은 투자를 동시에 촉진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분석하며, UN의 아큐즈 등은 국가에 의해 적극적으로 관리되는 고이윤-고투자의 연관(high profit-high investment nexus)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여 고도성장을 낳았다고 주장한다.(Akyuz and Gore, 1996)

물론 이윤율은 자본설비의 확대와 노동자의 세력강화와 함께 하락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경우 특히 80년대 후반 이후에는 민주화의 열풍과 함께, 임금몫이 급속히 상승하였고 이는 이윤몫을 압박하여 이윤율 저하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서 우파들은 이러한 기업수익성의 하락이 97년 경제위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업이 파산한 것도 경제가 위기를 맞은 것도 결국은 노동자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수익성이 하락한 것은 현실이지만 그것이 위기로 폭발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90년대에는 전반적으로 노동생산성 상승은 실질임금 상승을 상회하는 경우가 많아서 임금상승으로 인한 이윤압박은 그리 뚜렷하지 않으며, 오히려 급속한 자본투자의 확대로 인한 자본생산성의 하락이 수익성의 하락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경제위기의 배경으로 지적되는, 90년대 한국 기업의 투자확대와 이윤율 하락에 관해서는 한국에 관한 장에서 분석하기로 하자.

아무튼 경제위기 이후에는 구조조정과 함께 전체 GDP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노동소득 분배율이 계속 하락하고 동시에 투자와 성장도 함께 정체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칭송받아왔던 이전 동아시아 모델의 성과와 정반대의 모습이라 심각하게 우려할 만하다. 물론 불황시에는 분배가 일시적으로 악화되지만 걱정되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장기적인 경향으로 굳어버리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경제위기와 IMF의 구조조정이 기업의 경영이나 금융시스템 그리고 특히 노자관계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가. 개방되고 주주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노동시장이 마구 유연화된 미국식 자본주의로의 구조조정이 분배의 악화를 심화시키고 앞서 말한 여러 경로를 통해 장기적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최근 KDI에서도 경고하듯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은 단기적으로는 기업에게 좋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민경제의 몰락과 국내수요의 심각한 침체로 이어져 오히력 경제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 즉, 이윤몫이 증가하는 효과에 비해 수요침체의 효과가 더 클 수도 있으며 이는 수익성이 여전히 나쁜 대기업 이하의 기업들에게 특히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경제난으로 자살률까지 세계최고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는 지금 부자들이 지갑을 열게 하는 정책이 정말로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미국이나 영국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분배의 악화는 어쩌면 신자유주의의 필연적인 특징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성장이라도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한국은 이전의 역사적 경험과는 반대로 분배와 성장이 동시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구조조정은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내다버리는 오류를 범했던 것인지도 모르며 우리가 바로 세계화가 위기와 구조조정, 그리고 개방을 통해 분배에 미치는 악영향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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