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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꽃들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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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꽃들의 희망

김민웅의 세상읽기 <4>

“나비” 이야기 하나로 전 세계에 깊은 감동과 성찰의 기회를 마련한 한 여인이 있습니다. 트리나 파울러스. 그녀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이면서도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 한권으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Hope for the Flowers)”이라는 이 책을 통해 트리나 파울러스는 우리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은 이 책은 마치 동화와도 같은 쉬운 서술과 간결한 그림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현실을 되짚어 보게 하는 마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은 보지 못한 채, 나비가 되기 전의 벌레들이 하늘을 향해 서로를 밑으로 깔면서 탑을 쌓듯이 올라가는 모습을 우리는 그녀의 책으로 만나보게 됩니다. 그렇게 위로, 위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줄무늬 벌레가 배우게 되는 원칙은 상대의 눈을 보지 않고 그냥 밀치고 올라가는 일에 막무가내로 집중하는 것입니다.

눈을 보는 순간, 상대의 깊은 마음을 보게 되고 그것이 위로 올라가는 작업을 방해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줄무늬 벌레는 그렇게 탑을 오르지 않아도, 스스로 고치가 되어 기다린 끝에 아름다운 나비가 된 노랑색 벌레의 깨우침으로 그 탑을 내려오게 되지요. 줄무늬 벌레의 생애에 중대한 전환점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것은 탑을 오르는 것으로 성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 안에 있는 나비를 태어나게 해야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지요. 결국 우리 자신은 우리 스스로를 태어나게 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는 법입니다. 이것은 마치 선문답 같은 화두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의 정작의 부모는 결론적으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해서 그 탑이 된 벌레들의 무리 사이를 내려오는 중에 그 줄무늬 벌레가 새로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동안 자신이 가는 길에 걸치적 거린다고 여기고 미워하거나 또는 아무런 느낌도 갖지 못한 채 스쳐지나가던 벌레들의 여러 가지 아름다운 모습을 눈여겨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실로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이자 즐거운 각성이기도 했습니다. 이건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깨달음이 됩니다. 매일처럼 만나고 보고 이야기하고 있어도 정작 우리는 상대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도 의도치 않게 적이 되거나 또는 무관심한 관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 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가 미약하고 진실한 대화의 능력이 부족한 까닭은 다른 곳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무언가 무작정 높은 곳에 올라가는 일, 많이 가지는 일, 크게 누리는 일에 몰두하다가 결국은 가장 소중한 인간적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인간이 사는 사회가 아니라, 욕망만이 주도하는 사회로 전락해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서 모두가 들떠 있을 때에 이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의 남모르게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잔치가 벌어지는 자리 뒷켠에서 홀로 남겨져 아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치에 따스한 눈길이 있었으면 합니다. 나비의 아름다움을 그 안에 가지고 있는 무수한 존재들이 그 날개를 펴기 전에 그만 지고 마는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는 정치의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추석 지내면서, 특히 이 나라의 지도자들, 그냥 휴식만 취하려 하지 말고 트리나 파울러스와 한번 만나보기를 진심으로 권하는 바입니다. 그로써 이 땅의 꽃들이 생각지도 않게 놀라운 희망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김민웅의 세상읽기였습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4시-6시)에서 하는 3분 칼럼의 프레시안과의 동시 연재입니다. www.e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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