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거머쥔 그 손을 쥐려 하면 할 수록 지난 날의 공(功)마저 깍아내리기만 하던 장쩌민. 그 노욕으로 인해‘권력의 화신’이라 불리우며 스스로 민심이반을 재촉하던 그가 드디어 사임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사임을 바라보는 중국 내부의 시각은?
장쩌민의 사임이 알려진 다음날인 9월 20일, 이곳 중국에서 만난 중국인들의 표정은 한마디로 예상치 못한 경품 당첨 소식에 믿기지 않아 얼얼한 느낌 그대로인 것 같다.
먼저 상하이의 한 대학에서 갖게 된, 중국 각지에서 몰려 온 대학교수들의 만남. 물론 그 자리는 장쩌민의 사임과 이에 따른 향후의 중국정국을 논하기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화제는 자연히 장의 사임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양자(楊子)대학 법정학부 교수)
아마 장의‘돌발적’사임을 점칠 수 있었던 중국인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 참가한 15명의 교수들은 모두 이구동성이 된다.
“장 주석이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를 괴롭게 하는군요…. 실로 우리나라의 일대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안휘성의 한 대학 교수)
그의 너스레에 모두들 중국인 특유의 왁자지껄로 한마디씩 거들고 나서지만 입가에 띤 미소는 그들의 심리상태를 잘 나타낸다. 이렇듯 아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지만 장쩌민의 사임을 평가하며 환영하는 모습은 역력하게 감지된다.
물론 이러한 반응이 전부는 아니다. 예측을 불허하는 권력투쟁의 역사 속에서 온갖 고통을 겪어 온 중국인들이니만큼 그의 사임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 또한 느껴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식승계가 공식 인정되기는 하였다지만 장쩌민이 누구인데…. 그의 측근들도 아직 많이 포진되어 있잖습니까”(절강성 정협위원)
“여하튼 조금 더 추이를 지켜 봐야 하지 않을까요….”(남경의 한 대학 교수)
하지만 이러한 우려도 당장은 장쩌민의‘용단’으로 인한 들뜬 마음을 차마 재울 수 없는 것 같다. 이는 다음과 같은 평가로도 잘 알 수 있다.
“중국의 정치발전과정에 혁명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중국의 정치시스템이 더 한층 성숙하게 되었다.” 1년에 6개월 이상을 각종 국제 심포지엄이나 세미나, 국제회의 등으로 전세계를 누비고 다녀 “flying man”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중국 사회과학 분야의 권위인 화동사범대학 국제관계 대학원 학장의 말이다. 그에 의하면 이번 장의 사임은 피로 얼룩진 중국의 수천년 권력교체사상 “최초의”평화로운 권력이양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임은 중국 정치 민주주의의 커다란 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이제 중국의 대외정책은 명실상부한 다변외교가 강화될 것입니다. 기존의 대외정책에 신선한 바람이 적지 않게 불어올 것입니다.”
필자를 의식, 필자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구세대에 의한 중국외교의 공식종언이라는 평가도 덧붙이는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듯한 교수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경제가 드디어 정치논리를 떠나 경제논리에 따르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외국기업의 중국투자를 돕고 있는 한 중국인 변호사의 평가이다. 그는 그의 업무상 외국기업인들과 접할 기회가 많은데 그 고객가운데는 장쩌민과 후진타오 간의 권력암투로 인한 정치 불안정 때문에 중국진출을 주저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의 ‘성숙한’정치민주화를 알릴 수 있게 되었으니 중국경제에도 또다른 순풍으로 작용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럽계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또 다른 변호사는 20일 출근하자마자 외국인 상사로부터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요하는 본국으로부터의 지시가 있었다며 이번 사임이 부작용 없이 지나가게 되면 본사로부터 더욱 활발한 투자가 있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렇듯 장쩌민의 사임 발표는 중국 경제계에도 신속하게 민감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편 지난 20일 하루에 필자는 사정상 택시를 4번 이용하게 되었는데 택시를 탈 때마다 택시 기사들에게 이번 사임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들의 반응 속에는 “측근들을 통한 장쩌민의 반격”을 우려하거나 “장쩌민과 같은 위대한 영도자의 뒤안길”을 안타까워 하는 기색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앞서 밝힌 교수들이나 변호사들의 반응과 대동소이한 환영일색이었다. 아울러 머리를 손질하러 들른 이발소에서도 장의 사임이 단연 화제가 되고 있었으니 누런 런닝셔츠나 잠옷 바람에 주섬주섬 모여 주고 받는 중국인민들의 반응 역시 대체적으로 위에 언급한 것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와 같이 상하이 주재 중국 각계각층의 반응을 통해 필자는 (물론 아직 속단은 금물이지만) 대다수 중국인들은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더 늦기 전에 적절히 잘 수용한 것이 이번의 사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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