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력일간지인 뉴욕타임스는 최근 시리즈로 계속된 여러 편의 사설을 통해서 하나의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오는 11월에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입될 예정인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한 부재자 투표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의 출발은 미주리(Missouri)주와 노스다코타(North Dakota)주가 해외에 나가있는 미국 병사들이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메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발표였다. 부재자 투표를 실시하기 위한 컴퓨터 시스템의 구축은 미국 국방부가 지정한 오메가 테크놀로지스(Omega Technologies)라는 회사에서 담당한다고 하는데, 뉴욕타임스는 그 회사의 정치적인 성향과 폐쇄성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미국에 사는 필자는 가끔 한국에 있는 가형(家兄)에게 한국의 은행 계좌와 관련된 잔일을 부탁하곤 했다. 용건은 주로 이메일을 통해서 주고받았는데, 한번은 가형이 이메일 안에 온라인 뱅킹(online banking)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비밀번호까지 빠짐없이 적어서 보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메일을 곧바로 삭제하고 연락을 해서 비밀번호를 다른 것으로 바꾸도록 부탁했다. 사람들은 대개 이메일 안에 담긴 내용은 메일을 주고받는 당사자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원자의 세계’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 이해는 틀리지 않다. 하지만 ‘비트의 세계’에서 그런 생각은 위험하기조차 한 착각에 해당한다.
우리가 아웃룩 익스프레스나 네스케이프 같은 이메일 클라이언트(client) 프로그램을 통해서 새로운 이메일을 작성하면, 그 이메일은 우선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이 연결되어 있는 서버(server)에게 전송된다. 서버에는 이메일을 전담해서 처리하는 서버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은 새로 전달된 이메일에 적힌 수신자 주소를 확인한 다음 그 주소를 담당하고 있는 또 다른 서버를 향해서 이메일을 전송한다. 이때 예를 들어서 앞의 서버는 뉴욕에 있고, 뒤의 서버는 서울에 있다면 두 개의 서버 사이엔 여러 개의 다른 서버들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전달 과정은 마치 동네에 있는 우편함에 담긴 편지가 동네 우체국에 전달되고, 그것이 다시 상급 우체국으로 전달되고, 해외로 나가는 편지는 비행기나 배를 타고 목적지의 상급 우체국에 전달되고, 그곳에서 다시 현지에 있는 동네 우체국으로 전달되는 ‘원자 세계’의 과정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두 과정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원자 세계’에서는 일단 목적지에 전달된 편지의 내용이 어느 우체국에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비트 세계’에서는 이메일의 내용이 중간에 들른 서버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수 있다.
오고 가는 이메일의 내용을 모두 기록해 두는 일은 서버의 일반적인 처리 속도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큰 용량의 저장 장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서버를 지나가는 이메일의 내용을 저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유’가 있는 경우는 다르다. 필요하다면 중간 서버나 인터넷 같은 네트워크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지나가는 이메일을 가로채서 내용을 들여다보고, 심지어 안에 담긴 내용을 변경하는 것도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원자 세계’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이메일은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누구라도 내용을 고칠 수 있도록 연필로 쓴 엽서와 같은 존재이다. 그런 엽서에 은행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꼼꼼하게 적어서 보냈다면, 놀라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와 같은 이메일 자체의 ‘취약한’ 보안성과 투표 시스템을 관장하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신뢰성’에 놓여있다. 미주리와 노스다코타를 비롯한 여러 주가 펜타곤(Pentagon)의 계획에 동참한다면, 오메가 테크놀로지스라는 회사는 ‘마음만 먹으면’ 해외의 병사들이 보낸 투표의 내용을 자유자재로 고칠 수 있는 치명적인 권능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회사가 사용할 소프트웨어의 내부와 운용방침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뉴욕타임스의 요구는 지극히 정당할 뿐만이 아니라, 절박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오메가 테크놀로지스와 펜타곤은 이러한 요구를 '보안‘을 이유로 들어 일축하고 있다. 그리하여 뉴욕타임스는 이메일을 통해서 실시된 투표에 대해서 종이에 기록된 ’영수증‘을 남기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컴퓨터로 처리된 투표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종이 영수증을 샘플링해서 컴퓨터 집계의 정확성과 신뢰도를 검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종이 영수증을 남겨 놓는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영수증을 재검표해서 집계의 정확성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서 이메일 투표의 내용이 ’위조될‘ 가능성을 봉쇄한다면 왜곡된 데이터가 엉뚱한 사람을 대통령에 앉히는 불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펜타곤이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는 뉴욕타임스의 사설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의 붕괴를 보는 것 같아서 입맛이 씁쓸했다. 공정한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에 속하는 일이지만 한때 민주주의 사회의 ‘모범’이었다는 미국은 오늘, 도대체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질문이 심각하게 제기되는 ‘한심한’ 수준의 사회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렇지만 4년 전에 일어났던 ‘야단법석’을 생각해보면 질문 자체는 너무나 정당하다.
컴퓨터라는 존재는 종종 대중에게 ‘환상’을 유포하기 위한 무기가 된다. “컴퓨터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라는 식의 뻔뻔스러운 모토는 환상이지만 대중은 설득된다. 컴퓨터는 지능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실수 앞에서 속수무책일 뿐만 아니라, 의도적인 데이터 조작을 방어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사람의 실수와 의도적인 개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다른 사람일 뿐이다. 그와 같은 방어 기제가 병존하지 않는 컴퓨터 시스템은 위험천만한 실리콘 덩어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런 장치를 마련하자는 시민 사회의 의견을 묵살하면서까지 베일에 싸인 컴퓨터 시스템을 선거에 도입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이다. 미국 사회는 오늘, 민주주의로 갈 것인가 아닌가의 절박한 기로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월간지 [빛과소금] 10월호에 실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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