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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그들은 세계사를 다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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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중국, 그들은 세계사를 다시 쓰고 있다”

[기고]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한 필연적 이유

지난 90년 6월 24일 베이징 대학 강당.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이 학교측에서 ‘특별히’ 준비한 ‘정치특강’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강사로 초빙된 사람은 중국사회과학원의 젊은 학자 허신(何新)이었다.

당시 베이징 대학을 비롯해 대부분의 중국 대학가 분위기는 잿빛 하늘처럼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학생들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일종의 허무주의 내지는 극도의 정치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중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대학생들도 상당했다. 89년‘6.4 천안문 사건’이 남긴 상흔이었다. 때문에 당시 중국정부와 대학측은 젊은 학생들의 돌아선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이전보다 더 강도 높은 사상교육을 했다. 이날 허신의 베이징대학 특강도 사상교육의 일환이었다.

***‘허신 선풍’, 다시 등장한 중화주의**

허신이 베이징대학 강당 안으로 들어오자 학생들은 보란 듯이 책상을 두드리며 야유를 보냈다. 뻔한 얘기들은 이제 듣기도 지겹다는 의미였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에 앉아서 여러분들을 보는 내 마음이 몹시도 무겁다.” 학생들의 계속되는 야유와 소란 속에 허신이 말문을 열었다. “학교에서는 나를 학생들에게 사상교육을 하라고 청했지만, 나는 그저 여러분들과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싶고, 여러분들과 생각을 교류하고 싶다.”

그날 허신의 베이징대 특강은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말한 대로 그는 학생들과 마음속 이야기들을 교류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는 시종일관 특유의 달변으로 중국이 처한 대내외적 여건과 국내, 국제 정치 환경을 설명하면서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중국, 중화민족에 대한 ‘애국주의’를 호소했다.

“세계는 항상 강자가 살아남는 세계다. 천년동안 그래왔고 천년 뒤에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다. 생존하고 싶으면 분발해서 강해져야 하고, 강해지려면 자신을 의지하는 방법밖에 없다. 외부인은 우리를 도울 수 없고, 또 우리를 도와줄 의무도 없다. 중국인, 중화민족은 정말로 부강해지고 싶은가, 아니면 어느 날 열강의 발밑에 짓밟히는 얼간이가 되고 싶은가. 내 결론은 이렇다. 만일 중국인이 자살하고 싶지 않다면, 정말로 엄준한 국제경쟁에서 도태되고 싶지 않다면 중국인은 반드시 사회주의와 애국주의 깃발아래 단결해야 하고 뭉쳐야 한다.”

허신의 강의가 끝났을 때 강당 안의 베이징대 졸업반 학생들은 아주 오랫동안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더 이상 야유와 웅성거림은 없었다. 허신의 이날 강연 내용의 핵심은 중국이 처해있는 국내, 국제 정치경제 정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애국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그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결국 젊은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뒤 중국 언론매체에는 ‘허신 선풍’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허신 선풍’은 ‘천안문 사건’ 이후 중국에서 90년대를 새롭게 개념화시킨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이다. ‘허신 선풍’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90년대는 바로 애국주의, 민족주의 시대의 개막이었다.

***‘애국주의’ 물결, 중국을 통일하다**

‘6.4 천안문 사건’ 이후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초·중·고·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각 방면에 걸쳐 정치사상교육을 강화해 나갔다. 정치사상교육의 핵심은 ‘애국주의’이다(명색이 사회주의여서 ‘민족주의’라는 용어에 대해 체질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민족주의’ 대신 ‘애국주의’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90년 초·중반 중국 사회 특히 지식인 사회를 풍미한 ‘허신 선풍’의 골자도 바로 이 ‘애국주의’의 부활이다. 90년대 이후 중국 대학가를 비롯해 공공기관, 장소 등에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구호가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는 모습은 아주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악몽 같은 천안문 사건을 겪은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개혁개방 이후 청년학생들 사이에 유행한 민족 허무주의 사상과 서방문화에 대한 무분별한 선호의식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이 천안문 사건을 유발시킨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사회에 팽배해 있던 분위기는 문화대혁명이 휩쓸고 간 정신·사상적 공백과 함께 중국사회주의 내부 모순에 대한 반성이었다.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반성적인 사유는 중국사회의 제모순과 문제점들의 원인을 자체 내 문명이 가지고 있는 낙후의 결과로 결론을 내리고 그 대안을 서구사회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른바 ‘서학’(西學)열풍이 중국을 휩쓸던 시대였다. 게다가 89년 천안문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중국은 걷잡을 수 없는 ‘신앙의 위기’에 빠지게 됐고, 개혁개방 이후 최대의 체제 불안정기를 경험하게 됐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당과 정부내부에서는 그동안 애국주의(민족주의)교육을 소홀히 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나왔고, 이에 따라 90년대 이후부터 청년학생들을 대상으로 애국주의 사상교육을 강화해 나갔다. 특히 역사교육에서 애국주의 교육은 중요한 핵심이 됐다.

***애국주의 고취, 달라진 초·중등 역사교육**

애국주의 교육은 먼저 ‘중화민족 전통미덕 교육’으로 나타났다. 중국 교육부는 90년부터 이를 실시하면서 교육부 중점 연구과제로 선정해서 전문적인 연구까지 시작했다.

중국 교육부 연구소조가 지난 2000년도에 발표한 ‘중화민족 전통미덕 교육 실험연구 10년보고서’는 이러한 교육이 제기된 배경에 대해 “당시 중국사회에 존재했던 반전통을 유행으로 하는 민족역사 허무주의 사조와 청소년들의 사상도덕 타락 현상을 겨냥한 것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중화민족 전통미덕 지식을 알게 하고 도덕에 대한 선악판단 능력을 높이며 민족자존과 자신감 증강 그리고 민족 긍지감 및 단결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교육의 핵심내용은 ‘중화의 뿌리’와 ‘중화혼’ 교육이자, ‘혈통’과 ‘전통’의 일치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중화민족 전통미덕 교육’의 실시와 더불어 이듬해인 91년에는 당시 국가주석이던 장쩌민(현 군사위 주석)이 역사교육에 대한 소위 ‘양사일정’(兩史一淸)정책을 지시하면서 각급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애국주의 역사교육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장쩌민의 ‘양사일정’ 발언은 그 해 3월 9일 발표된 것으로, 그는 중국내 유명 학자에게 보낸 서신문 형식을 통해 각급 학교 학생들에게 중국근대사와 현대사(兩史), 국정(一淸)교육을 세심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장쩌민이 말한 ‘양사일정’ 교육의 핵심은 “봉건통치자들의 부패로 인해 1840년 아편전쟁 이후 100년 동안 중국인은 열강의 업신여김을 당했으며,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에서부터 대학생들까지 깊이 각인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약하면 얻어맞는다’는 교훈을 중국의 실제 역사적 사실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고, 이를 통해 ‘중화민족 부흥’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주입’시켜야 한다는 논지였다.

장쩌민은 또, 서신문에서 ‘양사일정’ 교육의 목적으로 “중국인민 특히, 청소년들의 민족자존심과 자신감을 높이고 외국 것을 숭배하는 사상의 태두를 막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국정교육을 할 때 사회의 안정과 단결이 없으면 안정된 정치 환경이 없고 경제도 발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반드시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뒤에 장쩌민은 99년 4월 25일 이와 유사한 내용의 서신문을 통해 다시 한번 애국주의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장쩌민은 중국내 한 유명 역사학자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당과 사회 전체는 중국역사학습을 중시해야 하고 특히 청소년들에게 중국역사의 기본지식을 보급해야 한다. 중화민족의 유수한 전통을 학습케 해 애국주의 정신과 올바른 인생관 및 가치관을 수립토록 하며, 그들에게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봉헌하도록 고무 격려해야 한다”고 했다.

‘중화민족 전통미덕 교육’과 장쩌민의 ‘양사일정’정책의 발표이후 역사교육에서 애국주의 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근대사와 국정교육이 강화됐고, 94년에는 이 내용을 총괄한 ‘애국주의교육 실시 강요’라는 것이 발표됐다.

***애국주의 교육, 동북아 역사 전체를 흔들어 놓다**

8월 23일 발표된 ‘애국주의 교육실시 강요’(이하 강요)는 각급 학교에서 어떤 내용으로 애국주의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방침과 내용을 담고 있다. ‘강요’는 애국주의 교육의 중점으로 청소년들의 역사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각종 현대화된 매체를 이용해 애국주의 교육을 실시해 전사회적으로 애국주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만 18세 성인식 때 오성홍기(중국국기) 앞에서 성인됨을 선서하는 의식 등을 권장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94년 ‘강요’의 발표 이후 중국 역사교육 일반에 대한 총괄적인 교육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역사교과서 대강’(이하 대강)도 나왔다. ‘대강’은 ‘강요’의 지침에 따라 근대사와 현대사, 국정교육을 대폭 강화한 수정판인 셈이었다. 일례로 96년 5월 발행된 ‘전일제 보통고급 중학역사교학 대강’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사상교육의 총제적인 목표를 강렬한 민족긍지감과 자존감, 자신감을 배양하고 견고한 애국주의 사상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강’은 특히 중국 근대사 교육에 있어서 특별히 강조해야 할 사상교육은 애국주의 사상으로, 근대 중국의 약한 모습과 외세침략 사실을 통해 학생들에게 ‘낙후는 곧 얻어맞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교육시키라고 하달하고 있다.

또한 고대사 교육은 중국 통일적 다민족국가의 형성과 발전역사를 중심으로 중국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공헌을 확고히 인식케 하고, 근대사와 마찬가지로 고대사 교육을 진행하는데 있어 요구되는 것은 먼저 애국주의 사상으로 학생들에게 중화진흥의 역사적 책임감을 배양하도록 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2002년 출판된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대강’ 역시 이러한 ‘애국주의’ 우선 사상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안팎에서 ‘민족영웅’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이 ‘대강’은 <역사과목 애국주의 교육 진행에 있어 몇가지 해야 할 일>에서 △중국 공산당을 열렬히 사랑하도록 하는 교육을 할 것이며 △‘가난하면 무시당하고 약하면 맞는다’는 것을 역사 경험 속에서 교육시킬 것 △민족영웅·혁명열사 등에 대한 교육 △‘단결은 곧 힘이다’이라는 집체주의 교육을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강’은 “새로 나온 교과서는 94년 8월 23일 중공중앙이 인쇄출판한 ‘애국주의 교육실시 강요’를 편집한 것이며, 그 목적은 ‘애국주의 교육’과 ‘민족단결, 조국통일교육’에 있다”고 써 놓고 있다.

이 2002년도 ‘대강’은 나오자마자 중국 안팎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새롭게 정의한 ‘민족영웅’ 개념 때문이었다. ‘대강’은 중국 남송시대에 금나라에 대항해 싸운 위에페이(岳飛)와 원나라에 대항한 원톈샹(文天祥)을 ‘민족영웅’에서 제외시켰던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유물주의관점에 의거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상 민족전쟁은 국내 민족간의 전쟁이며, 형제들간의 싸움이며, 가정내 싸움이다. 이러한 관점에 기초해 외래침략세력에 대항해 싸운 걸출한 인물들을 민족영웅이라고 칭한다. 위에페이와 원톈샹과 같은 걸출한 인물들은 비록 그들이 민족이 수탈당하고 압박받는 과정에서 치지했던 지위와 작용을 긍정하지만 민족영웅이라고는 부르지 않는다”라며 ‘민족영웅’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81년 <인민일보>는 ‘애국주의와 민족영웅에 관한 약론’이라는 장문의 문장을 통해 비록 민족내부의 전쟁이기는 해도 그것이 정의의 편에 선 전쟁이었다면 누구든지 간에 중화민족의 영웅으로 칭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기도 하다. 하지만 2002년도에 개정된 역사교과서 ‘대강’은 이를 완전히 부정하고 새로운 개념을 내놓은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중국역사학계는 대체로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수민족의 분열주의 움직임을 막고 전체 중화민족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다수의 중국인들과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수긍할 수 없다는 의견들이 봇물을 이루었다. 특히 개정되기 전 교과서를 통해 위에페이나 원텐샹 등을 줄곧 중화민족이 낳은 걸출한 영웅이라고 배워온 세대들은 그 ‘분노’가 더욱 컸다. 당시 논쟁 과정 속에서 한 네티즌은 “(교육부가) 역사를 밀가루반죽으로 만들었다. 역사를 맘대로 문지르고 반죽한다”라고 비판하며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민족이 자신을 존중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했다.

중국의 한 역사학자는 2002년도에 불거진 이 민족영웅 논쟁을 “90년대 이후 중국역사학계를 지배한 국가주의 사관이 빚은 모순된 결과”라고 말하며 “중국에서 역사는 현실정치를 위해 복무하고 있다는 국가주의 사관의 전형을 보여준 사례”라고 비판했다.

***극단적 민족주의로 치닫는 중국 젊은이들**

올해 3월 중국 공산당중앙과 국무원은 ‘미성년자들의 사상도덕 건설을 더욱 더 강화하기 위한 의견문’을 발표했다. 중국언론은 이것을 당중앙이 미성년자들을 위해 내놓은 첫 번째 문건이라고 보도했다. 그 후 4월, 당중앙은 미성년자들의 사상도덕 건설 강화와 개선을 위해 전국공작회의를 개최했고, 이 자리에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정치국 상무위원 리창춘 등이 참석해 중요 연설을 했다. 이 소식을 보도한 중국 격주간 시사잡지 <남풍창>은 9월 1일자에서 “(미성년자들의 사상도덕 건설 강화를 위한 의견은) 전략적인 높이에서 중화민족의 미래를 고려해 내놓은 중대한 전략조치”라고 평가했다.

당중앙과 국무원이 내놓은 ‘의견’의 주요내용은 미성년자들에게 민족정신 발양과 배양 교육을 심도 있게 진행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애국주의 교육을 핵심으로 하고, 중화전통 민족교육과 혁명전통 교육을 중점으로 해서 중국혁명과 사회주의 건설, 그리고 개혁개방의 역사와 국정교육 활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의 취지에 따라 중앙선전부와 교육부는 올 9월에 ‘제1회 민족정신 발양과 교육의 달’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며, 이 행사는 매년 9월마다 각급 학교에서 열리게 된다. 교육부장 져우지(周濟)는 이와 관련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곧 미성년 세대의 손에서 실현된다. 반드시 아이들에게 이러한 역사적 책임을 각인케 하고 숭고한 이상과 신념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0년대에 이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당과 정부가 이전과 별반 다름없는 내용으로 다시 한번 ‘애국주의’ 사상을 강조한 것은 세대 변화와 그에 따른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갈수록 애국주의 사상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반영이라는 지적도 있다.

중국의 한 언론인은 이에 대해 “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세대들은 아무래도 그 이전세대들보다 역사의식이나 애국주의 사상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대체로 한국과 일본문화에 열광하는 세대들이라 서구문화를 동경했던 60, 70년대 출생자들과는 또다른 문화적 이질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이 ‘소황제’ 세대들이라 그 정신적 나약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들 세대들에게 애국주의나 혁명사상 등은 광고전단지 내용과 다를 바 없다”라고 평가 했다. 그는 “따라서 당중앙과 정부가 제안한 ‘의견’은 중국 미성년 청소년들의 사상의식에 대한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90년대 이후부터 강화되어온 애국주의 교육은 중국 젊은 세대들을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 8월 중국과 일본의 아시안컵 결승전에서도 나타났듯이 최근 들어 중국 젊은 세대들이 보이고 있는 공격적인 반일감정이나 인터넷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화주의’ 등의 제창은 중국 젊은 세대들이 열린 민족주의 보다는 중화주의에 매몰된 닫힌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2000년 중국 인터넷상에서는 ‘지안’(吉安)이라는 네티즌이 “중국인은 마땅히 중국주의를 실행해야 한다”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그가 주장하는 ‘중국주의’의 주요 내용은 한마디로 ‘중화민족의 부흥’이었다. 그 뒤 중국 인터넷상에는 종종 애국주의나 민족주의라는 용어대신 ‘중국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고 있고, ‘중국주의 논단’이라는 홈페이지도 생겨나는가 하면 ‘중국주의’를 제목으로 한 개인 블로그까지 등장했다.

자신을 모 신문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며 점진적 우익이라고 밝힌 리리(李理)라는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 ‘중국주의’에서 “중국주의란 중국, 중국인, 중국문명이 삼위일체된 것이며, 그것의 부흥은 역사적 필연이며, 우리 세대가 행동으로 써내려가야 할 새로운 뉴스”라고 밝히고 있다.

2004년 한·중 두 나라는 고구려사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어쩌면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역사적 필연을 위해 ‘역사는 변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학술논법’까지 제시하며 21세기 중국의 새로운 역사를 ‘행동’으로 써내려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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