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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쌀재협상, 정부가 지나치게 협상국 눈치 봐"

[인터뷰]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식량은 인권문제"

전농 등 농민단체들이 '우리쌀 지키기 주간'을 선포한 지 5일째인 10일. 농민들은 지난해 칸쿤에서 자결한 고 이경해씨의 1주기를 맞아 추모행사를 겸한 대대적인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9월 중순으로 알려진 중국·미국과의 4차 재협상에 농민들의 모든 눈과 귀가 쏠린 가운데, 8일 농민 출신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을 만났다. 그는 1시간동안 이뤄진 인터뷰에서 자주 언성을 높였고, 속을 가라앉히려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허공을 응시하기도 했다.

<사진 1>

***"DDA협상도 연기에 연기를 거듭...쌀 재협상도 연기해야"**

강기갑 의원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국·미국과의 협상에 대해 정부의 '관세화 유예가 원칙이나 협상국의 최소접근물량 확대등 요구가 과도할 경우, 관세화도 고려한다'는 입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강 의원은 "2002년부터 전세계가 식량부족 시대로 접어든 데다가, 지난 번 DDA 기본골격 합의가 2005년 12월로 연기되는 데서 제 3세계국가들의 힘이 예전같지 않음을 알 수 있듯이, 상황은 10년전과 판이하게 다르다"며 "DDA협상이 남아있어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성급한 결정은 위험하다. 최대한 협상을 연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한국 제1의 식량 수입국인 중국에 대해서도 "물류비 차원에서도 중국에 대한 한국의 식량의존은 동북아 시대와 더불어 심화될 수 밖에 없다"며 "현재 중국은 가격경쟁력이 있는 쌀에 대한 강력한 관세화 요구와 함께 검역완화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식품안전 차원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2>

***"정부가 지나치게 협상국 눈치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급증하고 있는 농산물의 식품화·외식산업에 대한 농민들의 자생대책에 대해서는 "지금 제일 시급한 것은 수입개방을 막는 일"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비교우위가 식량수출국들과 비교도 안되는 상황에서 개방이 되면 자력갱생이고 뭐고 다 농촌을 떠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협상은 협상이기 때문에 충분히 미룰 수 있다"며 "정부가 지나치게 협상국의 눈치를 보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WTO 조달협정을 맺은 26개국 미국, 일본, EU에는 다 있는 학교급식법의 '자국농산물공급' 규정조차 한국정부가 'WTO제소'운운하며 못 만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일본 정부는 농민단체·전문가들과 합의를 마친 후 협상에 임하는데 비해, 우리는 차관이 협상하러 간 다음날 국회에서조차 짤막한 보고만 들을 수 있을 뿐"이라며 "국회 농해수위도 적극적으로 사태를 알아보고 논의틀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사진 3>

***"정 이대로 나오면 좌시하지 않을 것"**

8월 1일 DDA 기본골격 합의 때, WTO 회원국 중 일본 등 30여개 국가는 해당 부처 장관 1~2명과 대규모 협상단을 보내고, 스위스는 대통령이 직접 협상에 나섰지만 우리는 농림부 차관이 협상 대표를 맡아 대조를 보인 바 있다. 식량안보와 생명산업에 대한 정부의 낮은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회 상임위라는 것이 양당 간사의 합의가 없으면 논의틀조차 마련되지 않는 구조인데 계속 이런 식으로 식물국회 상태가 유지되면 정면돌파하는 수밖에 없다"며 국회에서 쌀 재협상 논의를 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국회 안에서도 농민은 혼자였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이제 식량은 인권문제로 봐야"**

프레시안 : 현재 중국·미국과의 쌀 재협상이 3차까지 진행됐고, 9월 중순경 4차 협상이 열릴 예정이다. 주된 쟁점은 무엇인가.

강기갑 : 저율관세 의무수입량(TRQ) 증량과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의 민간유통화다. 관세화 유예도 인정치 않는 편이다. 중국은 수산물·과채류의 관세 인하, 납중독 게, 찐쌀사건 등으로 강화된 검역의 완화, 미국은 광우병 쇠고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관세화 요구는 가격경쟁력이 있는 중국이 더 강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적인 사안은 농림부가 비공개로라도 국회에 협상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 '관세화 유예, MMA 물량 최소화' 원칙만 되풀이할 뿐이다. 민주노동당 입장은 '관세화 유예·물량요구 거부'다.

쌀협상이 처음 이뤄졌던 94년과 지금은 상황이 현저하게 다르다. 애초에 농업이 UR(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 포함된 계기는 미국의 잉여식량 처리다. 80년대 내내 불황에 시달린 미국의 대대적인 식량 상품화였다. 그 이후, 세계적인 환경 파괴와 기후변동 등의 자연재해로 2002년부터 세계는 식량부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국제곡물가격도 20년만에 최고로 치솟았고, 중국도 최근 옥수수 수출을 중단했다. 매해 1억톤의 식량이 부족해 8억인구가 굶주리고 있고 또 이 대부분이 어린이다. 식량이 이제 생존권 차원이 아닌 인권 문제로 다뤄져야 할 이유다. 우리 역시 미국 카길사 등 세계 5대 곡물메이저의 곡물 독점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식량무기화는 불보듯 뻔하다. 아차하는 순간이다.

<사진 4>

프레시안 : 95년에는 식량수입이 미국이 34.7% 중국이 7.3%였는데, 2003년에는 중국이 24.3%, 미국이 23.2%다. 이에 더해 한국의 유통·식료·외식업체들이 대대적으로 중국에 진출하는 등 중국의 위협이 더 커지고 있다.

***"최근 옥수수 수출 중단한 중국의 식량위기가 재앙의 시작될 것"**

강 : 중국으로 연결될 남북간 철도가 개통되면 동북아에서 중국의 위력은 더 커질 것이다. 물류비 비중이 큰 농업의 특성상 물류비용 절감 차원에서 앞으로 중국에 점점 더 의존적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세계지배전략을 가지고 있는 제1의 곡물 메이저인 카길사의 전략이 곡물사업에서 대거 식료사업으로 옮겨갔듯이 식료식품산업으로의 이전이 세계적인 추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은 현재까지 곡물로서의 위협이다. 그러나 그런 중국조차도 최근 옥수수 수출을 긴급 중단하는 등 다른 제3세계 국가들처럼 식량수출국이면서도 2-3년내에 식량수입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중국의 식량부족 사태를 세계의 가장 큰 식량위기의 도래시점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늘어남에 따라 식품 안전 문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농지규모가 우리의 천배 이상되는 농장에서 농약은 그만큼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최근에 표백제 찐살건도 있었지만 식품사고를 누가 어떻게 책임지겠나. 정부의 철저한 검역밖에 없다. 일본과 미국같은 경우 검역시스템이 확실하다. 특히 자국농산물이 좀 넘친다 싶으면 검역을 철저하게 해, 각종 패널티를 걸어 양을 조절하기까지 한다.

프레시안 : 수입농산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수 있어도, 한국 식품기업의 대대적인 중국 진출 자체는 막을 수 없지 않나. 이런 식품화 경향에 대한 농민들의 자생적인 대책은 있나.

강: 한국의 농산물과 식품은 관리의 일원화가 안 돼있다. 농산물은 농림부가, 가공은 식품으로 분류돼 보건복지부와 식약청이 관리한다. 생산부터 최종 식품까지 농림부가 일원화시켜 관리할 필요가 있다. 현재 농관원이 있긴 하지만 인원부족등으로 제대로 안되고 있다.

정부가 정책적 뒷받침으로 장기적인 건강한 땅 살리기 등을 지원해 농민이 신선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건 장기적인 문제이고, 수입개방을 막는 게 현재는 가장 큰 일이다. 식량자급도도 26%밖에 안되는데, 또 개방되면 농민들이 농촌을 버리고 다 떠날 수 밖에 없다. 직불제 얘기가 나오지만 WTO 규정때문에 정부가 못 도와준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생산제한을 전제로 한 최소허용보조같은 경우 생산량의 10% 보조까지 가능하지만 정부 지원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무엇보다 '선개방후대책' 기조가 농촌을 피폐화시킨 주범이었는데, 이 기조가 계속되는 것이 문제다.

<사진 5>

***"DDA협상이 계속 연기될 정도로, 제3세계 식량수입국들의 힘이 예전같지 않다"**

프레시안 : 이번에 관세화가 유예된다 하더라도 협상국들의 끊임없는 물량확대 요구 등 개방화물결은 피할 수 없지 않나.

강 : 10년 전과 상황이 다르다고 했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감소 말고 또 다른 요인은 다름 아닌 제3세계 등 식량수입국들의 전과 같지 않은 태도다. 8월 1일 'WTO 세부원칙 규정시점'이 2004년 12월에서 2005년 12월로 연기됐다. 시애틀, 칸쿤에서 연기된 게 또 연기됐다는 것은 합의가 좀처럼 잘 안되고 있다는 증거다. 2007년도 1월 출범 예정인 거대한 DDA 협상도 이렇게 연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한 품목에 불과한 쌀 재협상 역시 충분히 연기될 수 있다. 협상은 협상이다.

더군다나 2005년 12월에 가야 관세감축폭, 특별품목 지정, 저율관세의무물량(TRQ)등 모든 세부원칙이 결정된다. 현재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이렇게 큰 틀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쌀 재협상에 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프레시안 : 협상이 미뤄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정부는 왜 협상을 서둘러 끝내려고 하나.

강기갑 :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최근 학교급식법 개정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동안 외통부에서는 학교급식법에 '우리농산물'이라고 명시하면 WTO 조달협정에 위배돼 제소당할 수 있다고 반대해왔다. 그러나 세부적인 이행계획서에 시·군은 명시안했기 때문에 전혀 협정위배가 아니다. 더구나 조달협정을 더 살펴보면 상호주의라는 게 있다. 1백프로 개방한 나라만이 개방하지 않은 협정국에 제소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다. 그러나 조달협정에 가입한 26개국 중 미국, 일본, EU등은 학교급식법에 '자국농산물 우선공급' 규정이 있다. 한국, 싱가폴, 이스라엘등만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꼬리를 내리고 혹시나 WTO 심기를 건드릴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는 게 한국 정부다.

<사진 6>

***"국회의 '쌀 재협상' 방관은 명백한 직무유기"**

프레시안 : 국회 차원의 논의는 없나.

강기갑 : 국회 농해수위는 현재 복지부동·직무유기 상태다. 내가 상임위에서 몇 차례나 농림부 장관에게 요구해서 쌀문제의 공개토론을 겨우 약속했지만, 국회 차원의 쌀재협상 파악 노력은 전혀 안하고 있다. 내가 양당 간사에게 농해수위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몇차례 요구했지만 지금껏 묵묵부답이다.

한국의 농림부가 무슨 힘이 있나. 그러면 국회 농해수위와 농민의 힘을 받아서 조율한 내용으로 협상하러 나가야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국회개혁과 상임위 민주화가 필요한 게 양당간사가 안 움직이면 의제로도 설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끝까지 이렇게 나오면 내 나름대로 정면돌파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나 혼자 방방 뛰는 방식으로 동료의원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도 없고...속이 터진다. 왕따당하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향후 각종 제안을 할 때 선입견을 가질 수 있으니깐. 안에 들어와서 보니 상임위가 진짜 문제가 많다. 회의를 하면 30분동안 그냥 딱 앉아있다가 자기 질의하고 다 나가버리고. 정부 답변도 듣지 않는 사람도 많고. 논의틀이 양당간사에게 묶여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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