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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때문에 아이들에게 ‘의심’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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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때문에 아이들에게 ‘의심’을 가르쳤다”

[현장] 원로 퇴임교사들, 반공교육 참회선언

위용을 자랑하던 태풍 ‘송다’가 휩쓸고 간 지난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네거리. 이제는 촛불시위의 ‘메카’가 된 교보문고 앞에 백발의 원로 퇴임교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듯 서로 악수를 나누던 원로교사들은 이윽고 후배교사들이 준비해온 한 장의 플래카드를 손에 쥐고 취재진 앞에 섰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하늘을 향해 불끈 쥔 주먹을 치켜 올렸다.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악법 철폐 없이 교육개혁 없다” “교사들이여, 비문명 잔혹법 폐지에 떨쳐 일어서라.” 그렇게 원로교사들의 반공교육 참회선언은 시작됐다.

***“나는 학교에서 친일과 군사독재를 가르쳤다”**

올해 일흔셋인 이상선 전 경기 은행초등학교 교장은 스스로가 반공교육의 산 증인이라고 했다. 해방되던 해 뒤늦게 초등학교를 들어가 이후 만들어진 국보법에 따라 철저히 반공교육을 받았고, 교사가 되어서는 다시 아이들에게 반공교육을 가르쳤다고 했다.

하지만 80년 광주민중항쟁은 그의 삶을 뒤흔들어 놓았다.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찬탈한 이들이 군사 독재의 하수인으로 교사들을 마치 의식화의 도구처럼 활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나가다가 국보법이 있다는 것을, 그 뿌리에 친일을 했던 기득권들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참회합니다. 4.3을, 4.19를, 5.18을 학교현장에서 왜곡하며 반통일 교육을 가르쳤던 과거를 말입니다. 치욕의 과거는 명확히 진상이 규명돼야 합니다. 저의 이 말은 양심선언이자 울분의 선언입니다. 후배교사 여러분, 시민 여러분. 17대 국회에서 국보법이 사형선고를 받을 수 있도록 동참해 주십시오.”

마이크를 들고 있는 이 전 교장의 손이 잠시 떨리는 듯 보였다.

***“악법이 존재하는 한 참교육이란 없다”**

지난 82년 이른바 ‘아람회 사건’에 연루돼 1년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던 올해 일흔 둘의 정해숙 선생은 국보법 얘기가 나오자 치를 떨었다. 민주화를 지지하며 당시 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했던 그에게 신군부는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국보법 위반 죄목을 뒤집어 씌웠던 것이다.

“말도 안되는 악법이 존재하는 한 참교육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학교현장에서 남을 의심하게 하는 불신을 가르치면서 어떻게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 악법 철폐 없인 교육개혁 또한 없습니다.”

노 교사의 외침은 후배교사의 지지로 이어졌다.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김경욱 교사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북한가요를 틀어주면 찬양고무죄가 되고, 북한관련 유인물을 나눠주면 이적표현물법 위반으로, 또 동료교사와 북한 관련 토론을 하면 이적단체 구성이 되며, 이를 안 학부모들이 고발을 하지 않으면 불고지죄로 처벌을 받는 것이 바로 국보법”이라며 “국보법을 폐지하는 대신 반통일적 교육요소에 대해 이를 불법화하는 대체입법이 필요하다”고 이색제안을 내놨다.

교단 경력 2년의 김세정 교사는 “전근대적 악법인 국보법을 신주단지 모시듯 안고 사는 것은 오로지 수구기득권 세력밖에 없다”며 “후배교사들은 더 이상 교실에서 한 민족을 적이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며, 수구기득권을 돕는 미국을 좋은 나라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국보법 허깨비들이여 어서 꺼져라”**

고교 평교사로 오로지 아이들만 가르쳤던 올해 예순 일곱의 윤한탁(교육문화공간 ‘향’ 대표) 선생은 시에다 자신의 주장을 담아 발표했다. 윤 선생은 외쳤다.

북이든 남이든
나쁜건 나쁘다 하고
좋은 건 좋다하고,

남이든 북이든
찬양할 건 찬양하고
비난할 건 비난해야지,

어째서 북만 나쁘고 남만 좋은가!
반드시 남만 찬양해야 하고 북만 비난해야 하는가!

북이든 남이든
동이든 서이든

나쁜 걸 좋다하고
찬양할 걸 비난해야 하나!

마음은 생각으로 구속할 수 없고
생각은 말로 구속할 수 없는데,
말은 보안법으로 구속할 수 있는가?

하물며, 보안법 무법자여!
꿈도 못 꾸게 잡아 가두고
양심도 못 갖게 꽁꽁 옭아 매놓고,
소망도 품지 못하게 감시하자.
보안법이여!
당신들 영혼도 감옥에 가두고
너희들 하느님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라

들어라. 늙은 보안법이여!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사랑의 자유를 파괴할 텐가!
거짓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참된 자유를 파괴할 텐가!
그대들 자유만을 위해 우리 사랑의 자유를 죽일 텐가!

국가보안법이여,
컴컴 밤에만 나타나 겁주는 허깨비들이여 사라져라
이제 어서 가뭇없이 떠나라, 흔적도 남기지 말고 꺼져라.
너희들의 씨꺼먼 56년간 긴 밤은 가고,
우리들의 새날이 온다
통일의 새날이 밝아온다.
밝은 새날을 맞아
맘껏 고무도 하고 마음대로 찬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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