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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 실패하고도 고쳐지지 않는 ‘교육부 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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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 실패하고도 고쳐지지 않는 ‘교육부 버릇’

[기자의 눈]"학력세습문제, 부모들의 경제력 차이 인정해야"

일선 고교가 또 한번 술렁이고 있다. 2002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이 나온 게 엊그제 일인 듯싶은데 교육부가 또다시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방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이런 술렁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따져보면 앞서 14번의 대입제도 변화가 있었고, 이번에 바뀌면 15번째의 일이다.

***대입제도 실패가 '국민 의식 탓?'**

왜 대입제도는 계속 바뀌는 것일까.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패의 이면에는 당연히 '학벌'이 존재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능력보다는 배경이 중시되는 사회를 무수한 정책 당국자들이 만들어왔고, 거기에 삶이 고단했던 민초들은 "내 자식만이라도"라는 생각으로 이를 '방조'해 왔다. '치맛바람'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렇게 기득권을 형성한 이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제도를 더욱 공고히 해왔다.

얼마 전 정년퇴임한 한 교육부 고위관료는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대입제도가 자꾸 바뀌는 이유에 대해 "국민들의 의식 탓이 크다"고 했다. 이 관료의 논리대로라면 교육정책 당국자들이 외부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의 소신을 펼칠 수 있었다면 더 이상 바뀔 필요가 없는 대입제도가 벌써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과연 그런가. 엄청난 착각이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해 온 제도를 만든 것도 정책당국자들이고 거기에 국민들을 끼워 맞춰온 것도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14번이나 대입제도가 실패하는 동안 도통 '대화'라는 것을 몰랐다. '학벌'보다 더 지독한 악습이 바로 이것이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국민들과 합의해 가는 과정만 제대로 거쳤더라면 지금의 혼란이 상당부분 해소됐을 것이라는 게 교육계 일반의 시각이다.

그러나 그들이 귀를 연 곳은 오직 기득권층뿐이었다. 한 주요 대학의 총장이 공개석상에서 현행법에 어긋나는 '고교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또 그 대학의 입시설명회장에서 학부모들을 상대로 입학담당자들이 버젓이 이를 설명하고 있음에도 교육당국은 "그냥 검토해 봤다는 소리"라는 변명 한마디에 "아니라더라"며 제대로 된 진상조사조차 하고 있지 않다. 소신은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

***대화 없는 14번의 실패로 족하지 않은가**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와 범국민교육연대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연 '대입제도 개혁안 마련 토론회'에는 모처럼 대입제도를 만들고 있는 쪽과 이를 비판하고 있는 쪽이 모두 참석해 '대화'를 시도했다. 이번만은 제발 실패하지 않는 제도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참석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학부모·교육단체들은 이 자리에서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 또한 수능을 예민한 변별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들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학교 교육의 전 과정이 중요시되도록 내신제도를 개선하고, 평가권 또한 온전하게 일선 학교 현장의 교사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국·공립대는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자고 주장했다.

대입개선안의 초안자인 교육혁신위원회 또한 이번 대입개선안이 탐탁치 않은 눈치였다. 일선 고교 교사출신인 한 전문위원은 "개선안이 미리 사회일반에 공표돼 논란이 되면 그나마 이루려던 개혁조차 중도하차할 우려가 있어 논의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다"면서도 "발표된 시안을 놓고 보면 초·중등교육을 하나로 묶으려던 '교육 이력철'과 같은 핵심 제도의 제외는 아쉬움을 던지고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 담당과장은 '현실론'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는 "대입제도가 매번 실패하는 이유는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 때문이며, 따라서 이번에는 '경천동지'가 아닌 점진적·단계적으로 제도를 바꿔 나가겠다"고 했다. 말이야 옳다.

***"학력세습문제, 부모들의 경제력 차이 인정해야"**

하지만 그의 이어진 발언은 교육부 관료들이 인식하고 있는 현실론이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냈다.

그는 "일부에서는 수능을 폐지하자고 하지만 수능의 존재는 대학별 본고사의 억제책"이라며, "수능보다는 학생들의 심성을 약하게 하는 현 학교 교육에 더 문제가 있다"고 책임을 학교로 돌렸다. 그는 또 교사수급이나 교사의 재량권 문제는 뒷전인 듯 "대학 진학절차가 복잡하다고 하지만 학생부·수능시험·논술면접 등은 종합적인 검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급기야 그는 "학력세습 문제는 부모들의 경제력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교육부 책임은 전무하고, 모든 책임은 학부모와 학교에게 있다는 식이다.

대입제도의 변화는 사회 전반의 '상'이 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대입제도가 변하면 교육의 목표가 바뀌고 초·중등교육의 '상'까지 변화된다. 대입제도는 사회개혁과도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관계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대입제도는 중요하다.

따라서 대입제도는 몇 번의 공청회를 통해 졸속 처리될 사안이 아니다. 더군다나 국민의 합의가 없이 시행된 대입제도가 실패했다는 것은 이미 14번의 경험으로 족하지 않은가. 교육부는 오는 9월 23일 최종안 발표를 앞두고 세 차례 정도의 공청회를 연다고 한다. 과거와 동일한 '요식행위'를 접하는 모두의 걱정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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