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자멸적 선거전략 택해
4.11 총선의 결과는 새누리당의 1당 유지와, 민주통합당의 패배,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일정한 약진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박근혜의 선거 승리로 집약되었고, 야권연대 위력의 한계를 보임과 함께, 무엇보다도 민주통합당의 자멸적 선거 전략이 가장 큰 패인으로 짚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 초기 유리한 상황에 들떠 오만해졌고, 공천 과정에서의 파문 관리에 무능했으며 연이은 논란을 정리하지 못한 채 결국 "자질론"에 걸려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참담한 실패를 자초하고 말았다. 진보통합당의 경우 야권연대의 틀 속에서 선전했고 결과가 나쁘진 않았으나, 창원-울산의 노동벨트가 모두 무너졌고 진보진영 내부의 정파 갈등과 대립이 선거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자기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큰 그림으로 보자면 결국, 애초에 모든 조건이 상당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계속 민심에 실망을 주었고 이에 더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선주자가 있지도 않았으며 설사 있다 해도 대표 급의 위치에서 전국적인 영향력을 과시하지 못한 것이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만들어냈다고 하겠다.
문재인, 수세적 선거 전략 넘었어야
민주당의 사실상 대선주자인 문재인의 경우, 부산 전선의 돌파라는 목표를 가진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비례로 나서서 각 지역의 선거유세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박근혜와 전국적 대치를 하는 방식을 선택해 보다 큰 이야기를 거론하는 위치를 만들어냈다면 본인은 물론이고 당을 위해서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확장전략을 기반으로 한 선거가 아니라 .부산지역에 자기 발목을 묶는 수세적 선거를 치르고 만 것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패착이 아니었나 싶다.
대선 전초전의 성격을 갖는 선거에서, 막강한 대선주자를 갖지 못한 정당의 진로가 얼마나 어렵고, 또한 그런 조건에서는 보다 정밀한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한 선거였다.
전략 실패의 대목은 너무도 분명하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방송에 대한 장악과 막말 파문에 대한 부풀리기가 있었다고 해도, 이 모든 것에 대한 대응능력이 민첩하지 못했으며 이번 선거 이후에 우리가 살아가야할 세상에 대한 명료한 정책과 비전, 프로그램을 생활밀착형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은 통절한 반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이것은 야권전체에서 가장 큰 몸집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의 패배에 대한 지지 세력의 분노까지 담겨져 있는 지점이라는 것을 절감하지 못하면 매우 곤란해질 것이다.
그러나 향후 정국의 방향은 4.11 총선의 보다 복잡하게 내재된 의미를 누가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이끌고 나갈 것인가에 따라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일 수 있다. 승리와 패배를 단순한 구도로 대치시켜 놓고 평가할 경우, 패배로 계산되는 표 안에 담겨 있는 중요한 민심의 의지를 비롯해서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수도권의 선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도권 모델 주목해야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수도권의 새누리당에 대한 거부와 보수적 지역주의 구도의 팽팽한 긴장을 목격했다. 수도권의 경우,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고통에 대한 비판이 정치화된 반면에 지역은 "우리가 남이가?"가 최대로 작동한 묻지마 투표가 힘을 발휘했다. 여기서 우리는 대선의 과정에서 수도권 모델의 전국화냐, 아니면 지역주의 구도의 주도권 강화인가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을 확인하게 된다.
박근혜의 선거 전략과 승리는 지역주의 구도에 의존한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만일 수도권 모델이 제기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를 내용적으로 보완한다면 박근혜의 대선 승리는 확실해질 수 있다. 반면에, 바로 이 대목에서 새누리당의 구조적, 계급적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야권이 수도권 모델 확산의 전략을 치밀하게 세워 이 문제를 전국적 의제로 만들어 나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총선은 유권자들이 선거 직전의 정보를 감정화하는 측면이 높은 반면에, 대선의 경우에는 투표율도 높고 총선보다는 좀 더 이성적 판단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수도권 모델의 분석과 확산전략은 충분한 정치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서울 강남의 경우에도 천정배가 보여주었듯이 상당한 균열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민생문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양극화, 복지정책의 구체적인 논의와 세금문제를 정리해나가는 것은 대선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안철수 투입론"에서 경계해야 할 바
이 과정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주의해야 할 것은, 대중적 관심사에 접근할 때 그 논의와 자세의 품질이 높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나꼼수"의 정치적 역할과 의미가 나름 평가되어야 하겠지만 그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 야권 전체에 대한 보통 시민들의 감정적 판단에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젊은 세대의 관심과 기대를 겨냥한 점은 이해가 가지만, 그에 못지않게 보다 진지하고 깊이 있게 사안을 접근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무엇을 중심에 놓을 것인지 자중자애할 일이다.
이제 대선정국에서 "안철수 투입론"이 보다 절실해질 텐데, 현재로서는 안철수 이미지만 존재할 뿐이지 그 내용은 안개속이다. 이것은 위험한 상태다.
대중들의 관심과 인기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결국 내용을 충실하게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안철수의 경우 외곽에서 변죽만 계속 울릴 것인지, 아니면 보다 적극적 책임을 느끼고 정치적 의지를 가진 존재로 나설 것인지 속히 결정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 대선 정국의 혼선을 배제하고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내용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정치적 신뢰와 기대, 그리고 경제정책의 명확한 내용 정리
수도권 모델의 확산이라는 기준을 놓고 생각해보자면, (1) 정치적 신뢰와 기대 (2) 경제정책의 명확한 내용,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을 때 야권의 대선 주자는 괄목할 만한 성적을 기록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적 신뢰와 기대는 살아온 과거, 이미지, 인품, 그리고 대중을 대하는 자세 등으로 일정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 대목이지만 그와 동시에 중대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단련된 능력이 있는가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사회경제적 갈등을 풀어 복지국가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대선 정국은 바로 이 두 가지 조건을 놓고 검증받고 지지를 가늠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문재인이나 안철수 모두 시간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민주당으로서는 더더욱 초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민주당은 통합과정에서 구조적 조율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 체제로 들어갔다는 어려움이 있긴 했으나, 이젠 선거결과에 대한 신랄한 내부 평가를 통과하면서 대선 정책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체제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이때, 패인 분석 못지않게 승리할 수 있는 현존하는 조건에 대한 성찰과 파악이 중요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아니면 선거 평가가 내부 역량을 약화시키고 혼란을 가져와 대선준비의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민주당의 정치적 능력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싸움의 진짜 시작이다
대선까지 시간이 얼마 있지 않다. 민주통합당은 자신의 집권 시기에 대한 깊은 성찰과 정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로써 특히 노무현 시대에 대한 반성적 극복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적 정책을 내놓고도 그 내용을 진정성 있게 채워나가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기초가 바로 세워져야 민주당의 미래적 정체성이 확실해질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약화된 노동운동의 복구와 진보진영의 내부적 갈등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번 선거에서 법적 해체가 강제되는 진보신당의 구성원들과의 화해와 통합의 의지를 만들어내는 일부터 착수해야 한다. 그에 더해 이번 선거 기간에 출현한 녹색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 손을 잡고 갈 것인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이번 의회에서 어떻게 진보적인 내용으로 관철해나갈 것인지도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대선정국에서 결코 서로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제 새로운 싸움의 진짜 시작이다. 이만한 성적표를 거둔 것이 도리어 대선 정국을 위해서는 가장 좋은 약일 수 있다. 고강도의 긴장을 할 터이니.
부디 주어진 기회를 낭비하지 말고, 속히 패배감에서 벗어나 매일 어려운 살림살이로 고통받고 있는 이 나라 서민들의 얼굴을 떠올릴 때다.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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