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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과 단종: 조카마저 죽이고만 비정한 권력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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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과 단종: 조카마저 죽이고만 비정한 권력 투쟁

CEO출신 역술인 김남용이 본 '역사의 라이벌' <17>

아니, 도대체 권력이 뭐길래, 왕의 자리가 그 무엇이관대 인륜도 저버리고 천륜마저 헌신짝처럼 내던질 수 있단 말인가? 생후 3일만에 어머니 현덕왕후 돌아가시고 아버지 문종마저 일찍 승하하시어 졸지에 천애고아가 된 어린 조카 단종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줄 수양대군이 오히려 윽박지르고 타박하고 공포에 떨게 하다가 마침내는 왕의 자리마저 선양(禪讓 : 다음 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줌)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빼앗고 고적하기 그지 없는 영월 외진 곳에 귀양보낸 것도 모자라 존귀한 목숨마저 끊어버리고 말았단 말인가? 참으로 슬프고도 애달픈 단종이시여!

그러나 한편 왕권 수호의 정치이념이 확고하고 또 이를 수행하기 위한 역량을 두루 갖춘 수양대군의 입장에서 보면 어린 조카가 왕권을 신하들에게 빼앗기고 또 인사권 등에서 김종서, 황보인등 고명대신들에게 휘둘리는 것을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을 뿐더러 때마침 호탕한 인기남아인 동생 안평대군과 신권파(臣權派)의 거두 김종서의 연합전선으로부터 크나큰 위협을 느낀 나머지 결국 수양파의 최일급 참모인 칠삭둥이 한명회의 기상천외한 계략에 힘입어 기적 같이 정권의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이죠.

계유정난 즉 1453년, 계유년(癸酉年)에 수양대군은 김종서, 황보인 등 신권파를 그들의 생살부에 따라 단종의 명이라고 속이고 척살했으며, 이 정변으로 정권은 수양대군파가 완전히 장악하였습니다. 이후 사육신(死六臣)인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 등이 단종 복위를 위하여 거사 모의를 하였으나 김질의 배신 고발로 모두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이 옛 성현의 말씀대로 군왕에 대한 충성심에서 계속 현정권에 불복하고 전왕인 단종의 복권운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감안하여 일설에 의하면 수양파의 실력자인 신숙주가 차라리 단종을 죽여서 모든 유생의 복권 의지를 포기토록 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즉 충성의 목표물이 되는 단종을 없애야 왕권에 대한 복위 문제가 없어진다는 논리로 유능한 인재들을 충성이라는 명분에서 구해내자는 것이랍니다. 여하튼 신권파가 막강하고 왕권파가 미약하면 그 갈등은 매우 심각하여 조선조 초기 정도전과 이방원(태종)의 피말리는 싸움을 필두로 하여 다시 이 단종조에 재연됨으로써 이 와중에 목숨마저 빼앗겨 버린 단종이야말로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사건에, 또 얼마나 처절한 인생입니까? 12살에 왕위에 올랐다가 15살에 왕위를 빼앗기고 18세 청춘의 나이에 유배지 영월에서 사약을 받고 세상을 하직하고야 만 것입니다.

개인 단종의 슬픔은 그가 영월에 유배되었을때 다음과 같은 시를 읊어 우리들을 더욱 슬프게 합니다.

자규시 (子規詩)

蜀魄啼 山月低 니 相思苦 倚樓頭 ㅣ라
爾啼苦 我心愁 니 無爾聲 이면 無我愁 ㄹ낫다
寄語人間 離別客니 愼莫登 春三月
子規啼 明月樓를 여라

두견이 슬피 울고 달은 산마루에 걸려 밤이 깊으니
그리워서 더 괴로운 이 마음 다락 끝에 몸을 기대었어라

두견아 네가 괴로워 울면 나 또한 쓸쓸하기만 한데
네 울음이 없으면 내 근심도 사라져 버리누나
이별한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춘삼월 두견이 우는 달밝은 밤엔
제발 다락에 올라가지 마시기를

사육신 중 으뜸인 성삼문이 새남터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 울면서 따라오는 딸을 보며 허무하게 읊은 시조 한수 소개하면

擊鼓催人命 울리는 북소리 명줄을 재촉하고
回頭日欲斜 돌아보니 해는 서산에 기우는구나
黃泉無一店 황천에는 객점도 없다 하는데
今夜宿誰家 오늘 밤은 뉘 집에서 묵어 갈가나

다음은 단종을 유배지 영월까지 호송했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곡탄 언덕에 주저앉아 슬픔에 겨워 읊었던 시조를 소개하면

천만리 머나먼 길ㅣ 고은님 여희옵고
 둘ㅣ 업셔 냇의 안자시니
져물도 ㅣ 야 우러 밤길 녜놋다

천리 만리 머나먼 곳에 어린 임금 이별하고
슬픈 마음 둘데 없어 홀로 냇가에 않았으니
저 물도 내 마음속 같이 울며 밤길 흘러가누나

***세조(世祖ㆍ1417~1468)**

조선 제 7대 왕(1455∼68). 이름은 유, 자는 수지(粹之). 세종의 둘째아들이고 문종의 아우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 왕비는 정희왕후 윤씨이다. 대군으로 있을 때 세종의 명령을 받들어 궁정 안에 불당을 설치하는 데 적극 협조하고 승려 신미의 아우인 김수온과 함께 불서(佛書)의 번역과 향악(鄕樂)의 악보(樂譜)를 정리하였다. 1452년(문종 2) 관습도감도제조에 임명되었다.

이 해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측근 심복인 권람·한명회 등과 함께 정국전복의 음모를 진행시켜, 이듬해인 53년(단종 1) 계유정난을 단행하여 조정 안에 있던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밖에 있던 함길도도절제사 이징옥마저 주살, 내외의 반대세력을 제거하였다.

1455년 단종에게 강박하여 왕위를 수선(受禪)하였다. 1456년(세조 2) 좌부승지 성삼문 등 이른바 사육신(死六臣)이 주동이 되어 단종복위를 계획한 사실이 발각되자 관련된 신하들을 모두 사형에 처하였다. 정치 정세가 안정됨에 따라 최항 등에게 명하여 왕조정치의 기준이 될 법전의 편찬에 착수하게 하여 《경국대전》의 찬술을 시작하였다.

한편 1467년 회령 출신 이시애(李施愛)가 지방민을 선동, 길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이 반란을 무사히 평정하여 중앙집권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세조는 정치운영에 있어서는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이른바 <하의상통(下意上通)>보다는, 자기의 소신을 강행하는 <상명하달(上命下達)>의 방법을 택하였다. 즉위 직후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의정부의 서사제(署事制)를 폐지, 육조의 직계제(直啓制)를 시행하여 중신(重臣)의 권한을 줄이고 왕권의 강화를 기도하였으며, 단종복위사건을 계기로 집현전·경연 등을 폐지하여 왕명의 출납기관(出納機關)인 승정원의 기능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무단강권정치는 왕권강화 면에서는 공정할 수 있으나 정치면에서는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묘호는 세조, 능호는 광릉(光陵)이라 하였다.

***단종(端宗ㆍ1441∼1457)**

조선 제 6대왕(1452∼55). 이름은 홍위. 아버지는 문종(文宗), 어머니는 현덕왕후 권씨, 비는 정순왕후 송씨이다. 1448년(세종 30) 8세 때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452년 5월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죽자,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어려 정치하는 일에 어두우니 모든 조처는 의정부와 육조가 서로 의논하여 시행할 것과, 승정원은 왕명출납을 맡고 있으므로 신하들의 사삿일은 보고하지 말도록 교서를 내렸다.

문종의 고명을 받은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 등이 측근에서 보좌하고, 집현전학사 출신인 성삼문·박팽년·하위지·신숙주 등도 측근에서 보필하였다. 1453년(단종 1) 10월 수양대군은 정권을 빼앗고자 자기 측근인 권람·한명회의 계책에 따라, 안평대군을 추대하여 종사를 위태롭게 하였다는 죄명으로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병조판서 조극관, 이조판서 민신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수양대군을 영의정으로 삼고, 거사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정난공신(靖難功臣)의 칭호를 주었다. 그리고 안평대군은 사사되었고, 그 아들 우직은 진도에 유배되었다.

1454년 정월 송현수의 딸을 왕비로 삼았으며, 1455년 윤 6월 수양대군이 왕의 측근인 금성대군 이하 여러 종친·신하들을 죄인으로 몰아 유배시켰다. 급박한 주변 정세에 단종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어 수강궁으로 옮겼다. 1456년(세조 2) 6월 집현전학사 출신인 성삼문·박팽년 등과 성승·유응부 등에 의하여 상왕을 복위시키려는 사건이 일어났으나 계획이 실행되기도 전에 김질의 고발로 실패하였다. 이로 인하여 단종은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 이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이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다시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되었다가 10월 죽음을 당하였다. 묘호를 단종으로 추증하고, 능호(陵號)를 장릉(莊陵)이라 하였다.

자, 그러면 운명요소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세조(수양대군)**

정유년 계묘월 경오일 병술시(丁酉年 癸卯月 庚午日 丙戌時)

***단종(노산군)**

신유년 병신월 정사일 병오시(辛酉年 丙申月 丁巳日 丙午時)

***1. 소질 검색**

1) 세조(丁<-癸->庚<-丙)

수양의 소질에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경<-계(庚<-癸)의 관계입니다. 이 소질은 개혁, 창의, 창조 소질(사주용어: 상관) 입니다만 어떤 일을 수행할 때 계산, 타산, 맥은 잘 짚는데 그것을 실행하는 요령이 모자라고 매끄럽지 못해서 비극적으로 끝나는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또 이 소질은 외향적이며 기세등등하고 독재독선적이며 자기 이득을 위해 집단 조직을 이용하는, 즉 사조직을 만들어 이용하는 천재적 소질입니다.

두 번째 경<-병(庚<-丙)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보스관리형(사주용어:편관)인데 특히 병(丙)의 역할은 상사를 너무 몰아세우기 때문에 미움을 받기 쉽고 결국 독불장군식으로 상사에게 왕따를 당하기 쉬운 소질입니다. 그러나 어떤 위험도 솔선수범으로 앞장서고, 불요불굴 사명감으로 일하는 일벌레죠. 여기서 위의 개혁 성향 소질(상관)과 맞물리면 절대로 타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권력층도 가차 없이 공격해 비난하는 무서운 소질이 됩니다.

세 번째는 정->경(丁->庚)의 관계입니다. 이 소질은 특히 부하를 다루는 데 장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에게도 120% 이상의 성과(눈에 보이는 실적)을 요구하기 때문에 부하들은 끊임 없이 노력해야 하고 또 부하를 일일이 꼼꼼하게 챙기는 소질입니다.

2) 단종(辛<-丙->丁<-丙)

크게 두가지 소질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병(丁<-丙)의 관계인데 이것은 공동투자가형(사주용어: 겁재)으로서 이중성격의 자기포장으로 복잡한 세상에 대응해 나갑니다. 즉 남에게는 친절, 말주변으로 잘 대하지만 실제로 속은 매우 냉혹하다든가 혹은 그 반대이든가 합니다. 노력 없이 요령으로 남의 힘을 빌려 살아가려는 면도 보입니다.

두 번째는 신<-정(辛<-丁)의 소질입니다. 이 소질은 보스관리형(사주용어: 편관)으로서 은근히 남의 위에 서려고 합니다만 매우 소심하고 겁이 많고 신중한 처신을 하는 것이죠. 더구나 여기서 신(辛)은 병(丙)과 합(合)이 되어서 그 역할이 현저히 줄어들므로 이 소질은 매우 약합니다.

3) 두 사람의 소질을 보면 수양대군이 매우 정치적이면서 개혁적이고 또 자기 것을 철저히 챙기는 소질인 반면 단종은 약간의 정치적 소질 이외에는 자기보호적 소질 밖에는 없습니다.

<표>

***2. 욕망 검색**

1) 세조(경일에 묘월)

세조의 욕망은 자기 부하, 재산을 꼼꼼하게 챙기는 실물 경제형 욕망입니다. 또 하나는 사업 욕망입니다. 모두 잠재된 욕망이어서(천간투출이 안 되었으므로) 그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2) 단종(정일에 신월)

단종의 욕망도 세조와 같이 부하, 재산을 꼼꼼하게 챙기는 실물 경제 욕망입니다. 다음은 리더형 권력 욕망이 들어 있습니다만 모두 다 소질과는 연결이 되지 않고 잠재 의식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3. 본능 검색**

1) 세조(酉->卯->午<-戌)

닭띠(酉)의 두뇌회전과 토끼띠(卯)의 꾀가 사사건건 충돌하는 본능입니다. 이렇게 되면 항상 인간 관계에서 피해의식이 많이 늘어나는 형태가 됩니다. 그 다음 말띠(午)의 화려함, 개띠(戌)의 사명감이 함께 어우러진 본능입니다.

2) 단종(酉<-申<-巳->午)

닭띠(酉)의 두뇌회전과 원숭이띠(申)의 방어적 관찰력 그리고 뱀띠(巳)의 정조준, 조심성과 말띠(午)의 화려함 등이 있는데 여기서 원숭이띠와 뱀띠는 합(合, 사주용어임. 서로 껴안는다는 뜻임)이 되어 부부 사이가 매우 좋은, 특히 처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본능입니다.

***본능표**

***4. 개성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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