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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또다른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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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또다른 불만

이강국의 '세계화의 정치경제학' <11> 세계화와 개도국의 노동자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세계화의 악영향에 대해 이미 오랫동안 큰 걱정을 해 왔고 때로는 심각한 불만을 제기했으며 이와 관련된 연구들이 이미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개도국의 노동자에게는 세계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언뜻 생각해볼 때 어떻든 세계화가 개도국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전반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임금도 상승할 것이고 아무튼 종국에는 개도국 노동자에게도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미 보았듯이 자본자유화와 국제무역의 성장효과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면 이러한 낙관적인 견해도 조금은 조심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역시 개도국 안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존재할 것이며, 세계화는 선진국 기업들에만 이득을 주며 개도국의 노동자들은 세계화의 패자가 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아래에서는 세계화에 대한 개도국 노동자들의 현실과 주장을 들여다보자.

우선, 국제무역이 활발해진다면 스톨퍼-사무엘슨 정리의 예측대로 후진국 노동자들의 상대적 임금도 높아져야 할 것이고, 선진국으로부터 이전된 공장이 후진국에 건설된다면 선진국 노동자들이야 개도국과의 무역과 경쟁으로 위협에 시달리더라도 후진국 노동자들은 살림살이가 나아져야 할 것이다. 실제로 중국이나 베트남 등 많은 개도국의 노동자들은 선진국의 FDI 덕분에 빈곤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이전에는 농촌에서 일하던 많은 이들이 도시의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아서 세계화에 대한 불만은 선진국에서 그치지 않는다. 후진국 노동자, 혹은 이들을 대변하는 반세계화 운동가들도 세계화를 비판하며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감정적으로 피부에 다가오는 주장은 역시 선진국의 기업이 후진국 노동자를 너무 심하게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도국 노동자의 임금은 선진국 노동자에 비해 몇십 분의 일도 되지 않는 반면, 나이키나 베네통 등 잘나가는 브랜드들은 이런 값싼 노동을 사용하여 무지무지하게 높은 이윤마진을 얻고 거의 모든 이윤은 선진국 자본가의 수중에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또한 세계화의 진전과와 함께, 선진국 자본들은 그들의 배만 불리기 위해 성인이 아닌, 때때로는 10대 초반의 아동노동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터키와 같은 나라들에서 미세한 카페트를 짤 수 있는 노동자들은 전통적으로 어린아이들이었으며 부모가 오히려 아이들을 일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는데, 국제무역 확대와 기업중심의 세계화가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도 주장된다. 결국 세계화는 개도국의 성장을 돕기는커녕 빈국의 노동자들에게 빈곤과 열악한 노동을 강제하며 선진국 기업들은 오히려 개도국을 착취하는 사악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다.

***착취공장의 슬픔(blues)**

이야기 하나. 엘살바도르는 1998년 현재 3천만 벌에 가까운 의류를 수출하며 미국으로 수출되는 의류 수출에서 8번째를 차지한다. 수출자유지역(마낄라도라: maguiladora)의 노동자 수는 6만5천명에 이른다. 그러나 유명 외국 브랜드의 하청 의류업체 공장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실태는 무척이나 끔찍하다. 이 공장의 여공들은 시간당 겨우 60센트를 받으며 일주일 내내 때로는 하루에 15시간까지 일하며 화장실에 갈 권리조차 통제된다.(Kernaghan, 1999) 이 곳의 노동자들은 수출자유지역의 기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노조를 조직할 권리가 전혀 없으며 총으로 무장한 깡패들이 노동자를 감시하며 노동부의 관리조차 노동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공장을 조사할 수 없다고 전해진다.

하긴 이건 남 일이 아니다. 전태일이 몸을 불사르며 고발하고자 했던 6,70년대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일하던 우리의 어머니들도 꼭 그렇게 일하지 않았던가. 침침한 조명 아래서 때로는 피를 토하며 그렇게 달러를 벌어서 어떻게든 공업을 발전시켜 왔던 주역은 바로 이들 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맑스가 묘사했던 초기 자본주의 영국의 끔찍한 노동실태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는 역시 자본주의에서야 상황만 된다면 언제나 등장하는 자본의 오랜 본성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곳에서 생산되는 리즈 클레어본(Liz Clairbone)의 우아한 여성용 자켓은 소매가격이 198달러인데, 그 중 엘살바도르 여공들에게 지불되는 비용은 고작 84센트, 소매가격의 0.4%에 불과하다. 운송, 마케팅, 광고 등 다양한 비용에 비해서 노동비용은 아무 것도 아니며 대부분의 이윤은 자본가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일하는데도 이들 여공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빠듯해서 식사와 방값을 내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을 정도라고 보고된다. 역시 동대문 노동자들의 슬픈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때로는, 아니 자주, 어떤 노동자들은 아무리 죽어라고 일해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법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노동자의 생활임금(living wage) 수준은 시간당 약 1.18달러 정도이며 이를 맞추려면 자켓에서 노동비용이 약 0.8%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고 한다. 이러한 임금인상이 리즈 클레어본의 이윤에 별다른 영향을 미칠까?

이야기 하나 더. 바야흐르 올림픽 시즌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스포츠스타들의 멋진 활약이 가득한 열띤 경기들을 보여주고 많은 이들은 환호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정정당당한 경쟁과 인류애라는 이상 아래 성화가 불붙고 세계의 젊은이들이 힘과 지혜를 겨루는 세계평화의 대제전.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올림픽의 선수들은 하나같이, 심지어 아주 가난한 방글라데시의 육상선수들조차도 나이키나 아디다스의 마크가 선명한 브랜드 스포츠의류를 입고 신발을 신고 있다. 이 관대한 기업들은 물론 광고를 위해 공짜로 선수복을 제공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올림픽에서는 선수들과 함께 스포츠용품업체들이 달리기를 하며 수영을 하며 경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 이제 생각해보라. 일반용 나이키 신발 한 켤레도 만만치 않겠지만, 이들의 트레이닝복과 운동화가 얼마나 비싼지, 그리고 정작 이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과연 누구인지.

대부분의 브랜드 스포츠용품들은 동남아 등지의 나라들에 있는 하청공장에서 생산되는데, 그곳의 노동조건은 위의 엘살바도르 이야기와 전혀 다르지 않다. 특히 스포츠용품을 만드는 동남아의 착취공장(sweatshop)에서는 흔히 15살도 되지 않는 어린 노동자들이 지금도 일을 하고 있어서 충격을 던져준다.

아동노동은 최근의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쉽게 줄어들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5-14세 사이의 후진국 아동은 2억 5천만 명에 이르며, 그 중 반은 거의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그 중 61%는 아시아, 그리고 32%는 아프리카의 아동들이다. 심지어는 미국조차도 농업 등에서 불법적 아동노동자 수가 29만 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서부 인도의 아동노동 실태를 보고하는 한 연구는 “경제성장이 견고한 시기에 아동노동이 절대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제성장의 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waminathan, 1998)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심지어 일주일 내내 고된 노동을 하는 아동노동자들의 조막손으로 나이키의 로고가 붙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나이키 운동화를 신기가 그리 편한 일은 아니다. 정정당당한 승리의 영광을 보여주는 올림픽의 월계관은 이들 노동자들에게는 고행의 가시면류관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반세계화 운동가들이 흔히 예로 드는 이런 이야기는 멕시코나 브라질의 의류공장,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운동화 공장, 그리고 인도나 방글라데시의 봉제공장 등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분노를 느낀다면 당신은 세계화반대를 외치게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더 문제 아닐까.

***냉정하게 현실을 들여다보기**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가고 마음이 아프지만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좀은 과장되어 있는 면도 없지 않으며 이에 기초해서 세계화와 선진국 자본을 욕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물론 착취는 자본의 본성이겠지만 정작 개도국의 노동자들은 자본에게 착취조차 당하지 못하는 더욱 끔찍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크루그만의 항변처럼 필리핀의 여공들은 그나마 착취라도 받으며 나이키 공장에서 일하지 못하면 거리의 창녀가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이미 오래 전 경제학자 조안 로빈슨은 “착취받는 슬픔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착취조차 받지 못하는 슬픔이다”라고 쓰지 않았던가. 그리고 너무 심한 착취는 감정적으로 용서받기 힘들다 해도, 농업이나 다른 서비스업에 속박되어 있을 경제를 어떻게든 산업화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그와티도 그의 새로운 책 “세계화를 옹호하며”에서 개도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조하는 주장들은 이해도 가지만 현실을 너무 왜곡하고 있다고 엄숙하게 일침을 놓는다.(Bhagwati, 2003) 그런 경우도 물론 존재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가난한 나라에 선진국 자본이 공장을 짓거나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것은 결국에는 전반적으로 볼 때 그 나라 노동자들에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중국 등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직접 설문을 한 여론조사를 인용하는데, 대부분의 개도국 노동자들은 다국적기업의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 하며 이들의 생활수준이 다른 노동자들의 생활수준보다도 당연히 더 높다는 것이다. 결국 나무를 보지말고 숲을 바라본다면, 즉 FDI의 유입과 개방이 개도국의 경제성장에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면 외국기업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유치와 환영의 대상이며 세계화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당연히 옹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단순히 세계화와 선진국 기업에 분노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지도 모른다. 개도국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린다고 해도, 다른 기회와 비교한다면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거시경제적 실패나 심각한 부정부패 그리고 외국자본만큼이나 나쁜 국내기업 등 다른 여러 문제들을 차치하고 세계화를 개도국의 빈곤과 개도국 노동자의 착취와 빈곤을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모는 것도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긴 돌이켜보면,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의 경제발전도 처음에는 그 많은 여공 누나들의 지치고 팍팍한 어깨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물론, 그런 산업화보다는 차라리 다 같이 못사는 빈곤이 낫다고 얘기한다면 그건 다른 문제이다. 가장 빈곤한 방글라데시가 언제나 주관적인 행복지수는 가장 높은 나라로 나오기도 하니까.

하지만 다국적기업의 하청공장에서 일하는 엘살바도로의 여공들도 그들의 일자리에 만족한다고 대답할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창녀가 될 수 있는 여공 이야기가 너무나 열악한 노동조건과 착취를 정당화하지는 못할 것이다. 창녀가 되지 않는 다른 직업의 기회를, 특히 더 나은 정당한 노동의 기회를 뭔가 다른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최선 아닐까. 언제나 그렇듯, 자본이란, 특히 개도국에 진출한 선진국 자본은 이윤을 쥐어짜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또한 개도국의 많은 수출자유지역들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제한되는 현실이 보여주듯, 선진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개도국간의 “바닥으로의 경주” 경쟁이 임금과 노동조건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역시 가장 중요하게는 후진국 정부 스스로가 교육이라든가 다른 고용기회의 창출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선진국 자본의 국내투자가 값싼 노동력의 착취만이 아니라 국내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능력과 비전이 있고 발전지향적인 정부를 만들어내기 위한 개혁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열악한 노동현실을 감시하고 완화시킬 수 있는 노동자 자신의 조직과 노력 그리고 이를 도와주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선진국이나 국제기구의 각종 지원과 감시의 노력과 개도국 정부와 노동자간의 협력 등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개방과 자유화가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면, 내부적인 이런 노력들 없이 단순히 시장을 열고 자본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도국의 노동자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아동노동과 세계화**

그 누구의 아동노동 사용도 용서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아동노동만 해도 그것이 꼭 세계화에 의해 더욱 늘어난다고 보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서구 자본이 굳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토착자본 혹은 동네의 가내수공업 하에서도 여전히 파키스탄의 소녀들은 카페트를 짜지 않겠는가. 물론, 국제무역이 확대되고 카페트 산업이 커진다면 아동노동 문제도 더욱 심각해질지도 모르며 나이키와 같은 다국적기업들이 아동노동을 이용하려 한다면 정말로 큰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세계화와 국제무역의 진전과 함께 개도국 아동노동의 실태가 전세계 시민들의 분노와 반발을 불러일으켜 문제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기도 하다.

아동노동과 같은 끔찍한 문제를 모델과 숫자로 분석하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겠지만, 몇몇 연구자들은 이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 전문적인 계량연구를 통해 아동노동을 분석하기도 했다. 현실에서 아동노동은 흔히 부모의 결정이다. 자식을 고생시켜서 잘 살고픈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만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고 찢어지게 집이 가난하다면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거지가 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 볼 때, 아동노동은 가장 중요하게는 교육의 비용이 크고, 특히 자본시장의 실패로 가난한 부모들이 충분한 돈을 빌리지 못해서 아이들의 교육을 포기하는 경우에 더욱 심각해진다. 하지만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가 많은 나라에서 세계화가 진전되어 적어도 이론적으로 이러한 노동자들의 절대적ㆍ상대적 임금이 올라간다면, 이는 부모가 아이들의 교육에 더 신경을 쓰고 아동노동을 줄이는 유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앞서 보았듯 현실과 이론은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다른 이론적 가능성도 있다. 신무역이론에 비추어 보면, 비숙련노동자만 많은 후진국은 산업구조가 높은 제품의 산업내 무역에서는 소외될 수 있으며 이는 아동노동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지도 모른다. 결국 세계화와 개방이 아동노동에 미치는 영향은 이론적으로 그리 뚜렷하지는 않은 것이다.

유니세프에서 일하는 시노 등은 전문적인 계량분석을 통해서 세계화가 아동노동을 증가시키는지를 살펴보았는데, 국제무역량으로 측정된 국제무역의 증가 그 자체가 아동노동을 증가시키는 증거는 없다고 보고한다.(Cigno et al., 2002) 특히 무역개방의 정책적 지표를 사용하면 오히려 개방적인 무역체제의 나라들이 아동노동의 사용비율은 오히려 낮아지며, 소득수준이 높고 교육과 의료지출이 많은 나라가 아동노동이 더 작다는 것을 보인다.

어찌 보면 이러한 결과는 당연하게도 보이는데, 선진국일수록 의료나 무역개방 자체가 더 높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의 계량연구도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듯하다. 때로는 감정적인 비판과 무심한 반박을 포함한 논란들이 존재하지만, 역시 노동력에 대한 교육과 적극적인 사회정책이 아동노동의 감소에 가장 중요하다고는 것은 많은 보고들이 지적하는 바이다. 그런데 세계화 자체가 개도국 정부의 재정지출을 압박해서 교육과 사회보장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세계화의 악영향은 좀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또한 아동노동과 같은 문제는 언제나 숨겨져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실태는 흔히 보고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쁜 상태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렇게 개도국에 진출한 선진국의 기업들에서 아동노동이나 착취공장(sweatshop) 등과 같은 열악한 노동조건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세계화와 다국적기업의 수치스런 얼굴임에 틀림없다.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globalization with human face)’라면 이런 볼썽사나운 표정들은 사라져야만 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런 얘기는 우리에게도 낯설지는 않다. 나의 베트남 학생 하나는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가끔은 너무 심한 노동착취로 욕을 먹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국제경쟁을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더러 인간적인 자본가들도 적지 않겠지만, 경쟁에서 분투하고 있을 기업의 양심에 이런 문제들을 호소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게도 정작 가장 강력한 역풍은 선진국의 소비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동노동과 착취공장에 반대하기**

1996년 잡지 <라이프> 6월호에 게재된 사진 한 장은 스포츠용품산업의 거인 나이키를 곤경에 빠뜨렸다. 나이키의 멋진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진 축구공을 웅크리고 앉아 꿰매고 있는 12세 파키스탄 소년 타릭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 자기의 손가락보다 더 큰 바늘로 축구공을 만들고 있는 3살짜리 인도의 ‘아기’ 실기의 사진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 아동노동을 사용하던 여러 비도덕적인 다국적기업들에게도 쇼크를 주었다.

같은 해 10월 CBS의 뉴스프로그램 ‘48시간’도 베트남에 있는 나이키 공장의 착취문제를 상세히 보도해서 불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원래 나이키는 한국에서 하청공장을 시작했으나 한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하려 하자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옮겼고 결국에는 베트남까지 옮겨간 것이었다. 다국적기업들이 아웃소싱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세운 공장들은 인권문제, 환경문제, 노동문제 등의 사각지대였다. 나이키 역시 아웃소싱을 통한 값싼 해외 노동력의 활용을 통해 경쟁우위를 지키고자 했는데, 이러한 전략의 이면에는 아동노동이라는 비참한 현실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사진> 라이프지에 실린 아동노동을 고발한 사진들, 12세의 타릭과 3세의 실기.@라이프

나이키는 이 사진들로 시민단체로부터 지탄을 받았고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쿨한 이미지는 탐욕에 가득찬 것으로 손상됐고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격노한 시민단체들은 ‘베트남 노동감시(VLW: Vietnam Labor Watch)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1997년 베트남을 방문하여 현지 노동자문제를 조사했고 이들의 충격적인 보고는 53명의 국회의원들과 각종 단체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1997년 나이키의 수익은 전년에 대비해서 절반으로 급락했고 주가도 반토막이 났다. 결국 나이키는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장 스스로가 사과하고 다시는 아동노동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며 마케팅 비용만큼 외주공장 관리에 돈을 쏟아부었다. 적어도 나이키 스스로에 따르면, 하도급공장을 선정할 때 비용 외에 작업환경, 아동 고용 여부 등을 고려하였고 나이키 협력업체는 이런 기준을 엄격하게 지켜야만 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아동노동을 포함한 착취공장의 노동에 기초한 제품을 소비자들이 스스로 구매를 거부하는 불매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하청업체의 노동조건에 대한 이런 노력의 시초는 1990년대 초 아이티의 야구공 제조공장의 열악한 인권문제를 제기한 가톨릭 선교사들의 모임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선교단체와 자선단체들이 과테말라, 멕시코 등 여러 나라의 착취공장 반대운동을 주도했고 노동조합의 가세는 클린턴 정부의 노동부 장관 라이히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조사하도록 만들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공정무역(fair trade)”를 주장하며 50개가 넘는 미국의 대학의 학생단체들이 대학 내의 상점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한 개도국 노동자의 노동을 사용한 제품을 팔지 않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많은 소비자단체들도 이 운동에 참여하여 코스트코나 월마트 등의 기업들이 아동노동과 관련된 납품업체들을 바꾸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세계적인 감시와 노력은 초국적기업 스스로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도록 만들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경영에 대한 강조로 이어지고 있다. 너무 탐욕스러우면 벌을 받기도 하는 것일까. 이러한 착취공장의 사용 여부는 사회적 책임을 잘 지키는 기업에 대한 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에도 중요한 고려사항인데, 최근에는 좀은 도덕적인 기업에 투자하는 사회책임투자가 수익률이 더 높다고 주장되기도 한다.(Domini, 2001) 이윤이 목표인 자본주의 사회, 그 체제의 핵심 기업의 주인인 주주의 행동주의가 심각한 착취를 막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신기한 일이기도 하지만, 소비자의 반발은 그만큼 힘이 세기도 한 것이다.

이런 노력은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특히 개도국 정부의 취약한 감시 등을 고려하면 후진국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의 완화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립적인 싱크탱크인 옥스팜(Oxfam) 등은 여전히 나이키를 포함하여 아디다스, 퓨마, 아식스 등 스포츠용품업체의 하청업체들의 아동노동 문제와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문제가 2004년 현재에도 심각하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나이키와 리복 등에 의류를 공급하는 인도네시아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계약도 없이 법정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하루에 17시간, 1주일에 6일이나 일하며 성희롱과 같은 사례도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올림픽 엠블렘이 찍힌 의류를 생산하고 있는 이런 공장들을 예로 들며, 올림픽은 공정성과 인간의 성취를 나타내는 장이지만 정작 스포츠스타들이 입고 있는 이들 제품의 생산과정은 이러한 이상과는 정반대라고 아프게 꼬집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아동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 문제와 관련해서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나이키처럼 노동규약(labor code)을 준수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며 격화되는 국제경쟁이 노동조건을 더욱 나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Oxfam, 2004)

이와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주의할 점도 존재한다. 후진국의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생산된 제품은 선진국에서 생산된 제품들을 경쟁에서 밀어낼 것이므로 후진국 기업들도 노동기준을 지켜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무역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소위 블루라운드(Blue Round)라 불리는 논의도 나타나고 있다. 공정무역이라는 점에서는 이해도 가지만 이는 결과적으로는 후진국에게 불이익과 차별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후진국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수준인 선진국의 높은 노동기준을 후진국에게 강요하는 것은 후진국 기업에 대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정책은 후진국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결국, 노동권의 보호와 후진국 기업에 대한 심각한 배제와 차별 사이에서 적절한 접점을 찾아내려는 지혜로운 노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임금, 일자리 그리고 실업**

열악한 노동착취와 아동노동 문제 등 좀은 감정적인 주장을 넘어서, 세계화가 개도국의 노동자에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들을 분석한 전문적인 연구는 아직 별로 발전되지 않고 있다. 이미 논란 속에서 많이 진행된 선진국 노동자에 관한 연구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더욱 많은 노력이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앞서도 살펴보았듯, 최근의 국제무역이론은 생산요소를 자본과 노동이 아니라 흔히 숙련노동과 비숙련노동으로 구분하여 국제무역이 노동자 그룹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기계와 같은 자본은 금융자본이 이동하는 세계화된 시대에는 개도국에서도 구입될 수 있는 반면, 노동의 숙련은 교육이 그 효과를 발휘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아무래도 이동성이 더 낮기 때문에 자본보다도 노동의 숙련이 더욱 고정된 생산요소로 생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도국에서도 초등교육을 마친 노동자가 많은 나라에서는 세계화와 함께 숙련이 요구되는 산업이 부분적으로 더 발전하여 노동자간의 숙련프리미엄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물론 노동자 대부분이 초등교육도 마치지 않은 나라에서는 기술이 필요한 산업이 전반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숙련프리미엄이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세계화와 개도국 노동자에 관한 연구가 드물긴 하지만 라마의 세계은행 연구는 몇몇 재미있는 결과를 보여준다.(Rama, 2003) 그에 따르면 국제무역이론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여전히 선진국과 개도국의 임금은 큰 차이가 있지만 이는 주로 생산성의 차이에 기인한다. 만약 국제무역이 개도국의 생산성 수준을 높이고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개도국의 임금도 상승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라마는 GDP에서 국제무역과 FDI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개도국 노동자의 임금도 상승한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확인한다. 무역량이 증가하면 그 이후 1-2년 동안은 임금 성장률이 마이너스이지만, 5년 정도가 지난 이후에는 비로소 임금이 상승한다. 무역과는 달리 FDI의 경우 반대로 단기적으로는 임금이 상승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임금이 하락하지만, 여전히 전체적으로는 임금에는 플러스 효과가 있음을 보고한다. 세계화의 이득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그의 시도는 훌륭하지만, 무역량과 FDI 모두가 경제성장 그 자체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간과하는 난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도 역시 인정하듯, 세계화로 인해서 거시경제가 불안해지고 특히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경우 노동자의 몫이 한결같이 크게 하락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세계화가 임금에 미치는 이러한 일시적인 악영향도 함께 고려되어야만 할 것이다.

한편, 세계화가 개도국 노동자의 직업에 따른 전반적인 임금격차에 미치는 영향은 모호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들은 무역자유화는 교육의 임금프리미엄을 높여준다고 보고한다. 특히 남미 등 개도국의 임금격차 증가는 중국으로부터의 노동집약적 상품 수출의 급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볼 때, 최근에는 개도국간의 경쟁도 임금격차에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선진국으로부터의 FDI가 더 많이 유입될수록 숙련노동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따라서 교육에 기인한 임금격차는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라마는 무역과 FDI가 늘어나면 교육에 따른 임금격차가 늘어난다는 실증결과를 보여준다.

세계화가 개도국 노동자의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시장이 개방되고 국제무역이 늘어나면 산업구조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는 당연히 개도국 노동자의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많은 연구들은 개도국의 경우 국제무역으로 인해, 이전에는 보호되며 지대를 받는 산업들의 지대가 줄어들어, 이 부문의 노동자들이 흔히 직업을 잃게 되며 보호받던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한다. 또한 이러한 변화와 함께 노동이동이 약간 더 활발해짐을 지적한다. 물론 국제무역의 확대는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낼 것이지만, 수출자유지역 등에서 생겨나는 일자리는 사라지는 직업에 비해서는 보통 더욱 불안정하며 조건이 나빠서 주로 시골의 여성 등이 그 자리를 메꾸게 된다. 따라서 이 부문에 대해서는 노동시장의 규제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렇게 세계화가 일자리의 파괴와 창출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일자리의 파괴가 상대적으로 더 높고, 또한 개방으로 인해 거시적 불안정이 심화된다면 세계화가 개도국의 실업률을 높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실제로 몇몇 연구들은 개방과 세계화가 개도국의 실업률을 높임을 확인해준다. 라마는 칠레, 모리셔스, 폴란드, 스리랑카 등 지역의 모델로 얘기되는 대표적인 세계화국에서 개방과 개혁이 이뤄진 후 10년 동안 실업률이 계속 상승했음을 지적한다.(Rama, 2003) 라틴아메리카를 대상으로 한 세계은행 연구도 구조조정과 세계화를 배경으로 전반적으로 실업률이 약간 상승되었음을 보고한 바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파라과이는 실업률이 크게 높아졌던 것이다.(World Bank, 2000)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도 피부로 겪은 바 있듯이 금융개방과 이후의 위기 그리고 그 와중에 나타나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생각하면, 세계화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실업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러나 라마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각국을 비교하면 무역개방도가 높은 나라가 실업률이 더 높지는 않으며, 오히려 개방도가 높으면 실업률의 각국간의 편차는 줄어든다. 이 결과는 여전히 무역정책이 아니라 무역량에 기초한 무역변수를 사용하는 것이라 문제가 없지는 않다. 사실 실업률이나 노동조건은 각국에 따라 다른 노동시장의 제도나 노자간의 역관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의 거시경제정책 등에 무척 중요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세계화 그리고 그로 인한 위기 등이 정부의 완전고용을 지향하는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에 상당한 제한을 가하며 역관계 자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라마는 노동자에 대한 지원을 위한 직접적인 사회보장이나 노동정책보다도 아마도 교육이나 거시경제적 안정성 등이 노동자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 지적한다.

착취받는 개도국의 노동자들, 개방과 세계화, 그리고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장 생존의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세계화의 영향을 이렇다 저렇다 분석만 하고 있는 것은 너무 한가로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든 비판이나 반대 이전에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경제학의 역할이 아닐까. 비판과 옹호를 모두 고려해보면, 후진국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여러 불만들은 부분적으로는 너무 감정적이고 과장도 되었지만 부분적으로는 수긍할 만도 한 듯하다.

이렇게 세계화가 선진국과 후진국의 노동자에 미치는 국내적인 영향 외에 최근에는, 세계화를 배경으로 전세계적 차원에서 소득분배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열띤 논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국내적인 소득분배와 국가간의 소득격차를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지만 무척 의미 있는 작업이다. 나아가 세계화가 개도국의 빈곤과 국내의 소득분배에는 어떤 효과를 미칠지에 관해서도 더욱 활발한 논의들이 나타나고 있다. 다음 연재에서는 이러한 논의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참고문헌**

Cigno, Alessandro, Rosati, Furio C. and Guarcello, Lorenzo. 2002. Does Globalization Increase Child Labor? World Development, 30(9).

Kernaghan, Charles. 1999. Sweatshop Blues: Companies Love Misery, Dollars and Sense. March/April

아동노동의 실태를 보도한 Life 지의 기사
http://cbae.nmsu.edu/~dboje/nike/pakistan.html

Boje, David, M. 2001. Are Sweatshops Mysoginistic Revenge?
http://cbae.nmsu.edu/~dboje/nike/sweatshops_overview.htm

Domini, Amy. 2001. 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 Making a Difference and Making Money.

Swaminathan, Madhura. 1998. "Economic Growth and the Persistence of Child Labor: Evidence from an Indian City." World Development 26: 1513-28.

World Bank. 2000. Securing Our Future in a Global Economy. World Bank Latin American and Caribbean Studies. Washington, D.C.: The World Bank.

Rama, Martin, 2003. Globalization and Workers in Developing Countries. World Bank Policy Research working paper No. 2958.

Oxfam, 2004. Play Fair at the Olympics.
http://www.fairolympics.org/en/report/olympicreporteng.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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