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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과 고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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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과 고미오

최연구의 '생활속 프랑스어로 문화읽기' <21>

‘미슐랭(Michelin)'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타이어 미쉐린'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미쉐린은 프랑스 굴지의 세계적인 타이어 제작사이다. 미쉐린은 영어식 발음이고, 프랑스어로는 미슐랭이라고 발음한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은 미슐랭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타이어제작사 메슐랭에서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를 발간하기 때문이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 요리는 매우 중요하다. 요리는 문화의 총아이며 예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리에 관해서는 많은 것이 발달해 있다. 식당가이드나 요리비평도 그중 하나이다. 이번에는 프랑스의 레스토랑 가이드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프랑스는 외식문화가 발달한 만큼 많은 식당가이드 책자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단연 미슐랭(Michelin)과 고미오(Gaultmillau)를 들 수 있다. 이 두 개의 레스토랑 가이드는 그야말로 프랑스 미식문화를 상징하는 대명사다.

한국에서는 ‘미쉐린 타이어’로 유명한 미슐랭은 타이어 제작, 지도 발간, 가이드 책자 출판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기업이다. 미슐랭 가이드는 매년 봄에 출간되는 식당 가이드 책자인데, 무려 1700-18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데도 매년 50만부 씩이나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 셀러이다. 책머리에 간단하게 실려있는 여행정보와 레스토랑선택에 대한 몇가지 조언을 빼면, 그 방대한 분량은 전부 레스토랑과 호텔 정보에 할애되어 있다.

이 미슐랭 가이드는 해마다 전국의 레스토랑을 요리, 분위기, 서비스를 기준으로 심사해 우수한 식당에게 별을 부여하는데, 별 하나만 얻어도 그 식당은 금방 훌륭한 레스토랑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런데 별 셋까지 단다면 명실공히 권위있는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별 셋은 최고의 요리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사업적인 성공까지 보장해준다. 이런 공인된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즐거움을 맛보려면 보통은 몇 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할 정도이다. 시골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일지라도 먼길을 마다않고 전국의 미식가들이 모여든다. 물론 별 셋을 받고 욕심을 부려 시설투자를 지나치게 함으로써 경영적자를 면치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현재 프랑스 전체에서 별 셋을 달고 있는 레스토랑은 스무 개도 채 되지 않는다. 누구의 식당 어디는 별이 몇 개이고 어디는 몇 개라는 등의 이야기는 프랑스의 보통사람들에게도 큰 관심거리이다.

‘미슐랭 가이드’의 명성과 권위는 오랜 역사와 심사의 엄격함에서 나온다. 무려 한 세기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슐랭 가이드는 원래 1900년 앙드레 미슐랭이 처음으로 만든 책이다. 세계 최초로 분리ㆍ조립되는 타이어를 발명해 미슐랭 타이어 회사를 만든 사람은 에두아르 미슐랭인데, 앙드레 미슐랭은 바로 그의 친형이다.

당시 내무부 산하 지도국에 근무하던 앙드레 미슐랭은 프랑스를 여행하는 운전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자는 취지 하에 무료로 배포되는 여행 및 식당 정보안내서를 펴냈는데 이것이 미슐랭 가이드의 효시이다. 매년 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 발전해 온 미슐랭 가이드는 1926년부터는 미식을 상징하는 별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마치 미식 암행어사처럼 심사관은 일반 손님으로 가장하고 식당에 와서 요리의 맛과 레스토랑 전체의 분위기, 위생상태를 철저하게 체크한 후 평가를 하고 이를 근거로 별을 부여한다. 지난 100여년의 세월동안 미슐랭 가이드는 심사의 엄격성, 공정성 그리고 정보의 신뢰도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고 오늘날 ‘미식가들의 성서’와도 같은 흔들리지 않는 지위를 갖고 있다.

한편, 미슐랭 가이드와 쌍벽을 이룰 만한 또다른 가이드는 ‘고미오’다. 1972년 앙리 고와 그리스티앙 미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든 책인데, 심사체계가 훨씬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이다. 고미오는 매년 파리판, 지역판 등 지역별로 따로 발간되는데, 지역의 레스토랑을 ‘고급식당’, ‘우아하고 고전적이고 편안하고 분위기 있는 식당’, ‘간이 음식점(브라스리)’ 등 세 범주로 분류한 뒤 서로 다른 세 가지 모양의 조리사 모자로 등급을 표시한다.

고미오 가이드는 미슐랭 가이드의 별 대신에 조리사 모자를 달아주는데, 모자 하나에서 최고 모자 넷까지로 분류된다. 또한 엄격한 심사를 통해 식당의 질을 평가하고 여기에 수량화된 점수까지 부여하는데, ‘20점 만점에 몇 점’, 이런 식으로 점수를 매기고 있다. 조리사 모자 등급에다 20점 만점의 점수까지, 이렇게 등급이 세분화되어 있어 식당과 식당간의 점수 차이는 미슐랭 가이드보다 훨씬 크다.

요컨대 ‘미슐랭 가이드의 별 셋’과 ‘고미오 가이드의 20점’은 이렇게 프랑스 미식문화의 자부심과 권위를 상징한다. 작년 2월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로 손꼽히는 베르나르 루와조가 엽총으로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물론 미식의 나라 프랑스의 언론은 당대 최고의 요리사의 죽음을 앞다투어 대서특필했다. 5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루아조의 장례식에는 프랑스 일급 요리사들을 비롯해 2천명 이상의 조문객이 운집했다.

장 자크 아야공 프랑스 문화부장관은 “그의 요리는 완벽했다”는 성명까지 냈다고 하니 가히 그의 명망을 짐작할 만하다. 요리사의 죽음’이 언론 특종기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폴 보퀴즈, 알랭 뒤카스, 조엘 로뷔숑, 알랭 파사르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요리사로 손꼽히는 베르나르 루아조는 요리사이면서 외식업 그룹의 총수였다. 파리와 지방의 특급 레스토랑과 호텔, 부띠끄 등을 거느린 거대 외식업 그룹의 총수가 왜 30여년간 자신을 바쳐왔던 요리 인생을 마감하고, 엽총 자살을 해야만 했을까. 그것도 미망인과 12살, 11살, 6살짜리 세 자식을 남겨두고 말이다.

프랑스 사회와 언론은 그의 죽음을 색다르게 받아들였다. 가난하고 평범한 집안 출신이었던 루아조는 그야말로 무에서부터 출발해 요리계의 거성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17살때 르와르 지방의 한 식당에서 견습생으로 요리계에 입문했고 타고난 재능과 감각을 발휘하여 요리사로서 입지를 넓혀나갔다.

특히 콜레스테롤이 적고 가벼운 소스를 주로 하는 요리로 차츰 이름을 날리다가 1977년에는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 별 하나’를 얻는다. 1991년에는 음식맛, 분위기, 서비스까지 모두 만점을 뜻하는 별 셋을 받으면서 명실공히 프랑스 최고요리사의 반열에 오른다. 프랑스 요리계에서 ‘미슐랭 가이드 별 셋’의 의미는 그야말로 각별하다. ‘별’은 사회 전체가 그의 ‘요리’라는 예술 작품에게 주는 영광스런 훈장과도 같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또다른 레스토랑 가이드인 '고미오 가이드(Gaultmillau Guide)' 역시 베르나르 루아조의 식당 '라 꼬뜨 도르'에게 ‘20점 만점에 19점’을 부여했다.

이렇게 요리계의 정상으로 군림하던 베르나르 루아조가 갑자기 심한 충격에 빠진 것은 고미오 가이드의 금년도판 점수 때문이었다. 고미오 가이드 2003년판에 루아조의 식당은 원래의 점수인 19점에서 무려 2점이나 깎인 17점으로 매겨졌다. 루아조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요리사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에 대한 상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요리사들이 20점 만점이나 19점을 받은 것에 대해 루아조는 “나는 항상 1등이 되려고 했는데, 이제 2등도 아닌 3등이 되었다”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결국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레스토랑 가이드 점수의 강등와 이로 인한 자존심의 상처 때문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레스토랑 가이드의 점수가 강등되었다는 것을 루아조는 심각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던 것이고, 결국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택했던 것이다. 이는 명예와 문화적 자존심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프랑스 사회의 극단적인 모습과 프랑스 사회에서 요리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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