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에 접어들면서 소양왕(307-251 BC) 치하의 진(秦)나라는 이미 천하를 통일할 국력을 키우고 있었다. 6국의 합종(合縱)이 무너져 진나라의 각개격파가 진행되어 아무도 진나라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못하는 국면이 되었다.
그러나 BC 270년경까지는 통일의 전망이 세워지지 않고 있었다. 패권의 주역으로 떠오른 진나라의 내부가 아직 정비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후(穰侯)를 비롯한 귀족 권세가들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으면서 가까운 나라보다 멀리 떨어진 나라를 공격하는 근교원공(近交遠攻)의 정책을 펴고 있었다. 먼 나라와 싸우면 이기더라도 국가영역의 확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전쟁을 담당한 권세가들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는 점에서 근교원공책은 중앙집권에 역행하는 방향이었다. 소양왕 초년의 진나라는 왕권이 아직 귀족의 권세를 누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 알려진 범수(范睢)를 소양왕이 등용한 것은 귀족을 억눌러 중앙집권을 꾀하는 데 뜻이 있었다. 위(魏)나라에서 망명해 온 한미한 출신의 범수는 진나라 귀족층의 천적(天敵)이 되었다. 소양왕은 범수의 헌책에 따라 귀족층을 옹호하던 태후까지 폐하며 왕권을 강화하고 한(韓), 위, 조(趙) 등 이웃나라들을 공략하여 국력을 확충, 천하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진나라를 통일의 길로 이끈 범수의 정책이 성공을 거둔 것은 당시 대다수 인민이 오랜 전쟁상태에 염증을 느껴 통일을 통한 평화의 길을 염원하고 있었던 데 힘입은 것이었다. 근교원공책이 기조를 이루던 분권적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던 시대 변화를 잘 읽은 것이다.
동북공정에 자극받아 대 중국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원교근공책’을 제창하는 논설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두 나라 사이의 시비는 따로 논하기로 하고, 과연 지금이 원교근공책에 적합한 시기인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양왕이 범수를 앞세워 원교근공책을 쓴 것은 분권의 시대로부터 통일의 시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였다. 진나라 내부에서도 귀족을 억눌러 왕권을 절대화하는 한편, 대외투쟁의 역량을 패권 강화에 집중시킨 정책이었다. 먼 나라를 회유하거나 견제해 놓고 가까운 나라부터 공격해 역량을 더 키운 다음 더 먼 곳으로 공격의 창끝을 확산해 나가는 길이었다.
냉전의 시대가 바로 원교근공책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나라들끼리 같은 진영에 속한다고 하여 밀착된 관계를 가지는 한편 이웃한 나라, 심지어는 동족집단 사이에도 이념이 다르다 하여 원수처럼 지내던 시기였다. 동유럽 국가들은 중서부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소련의 패권에 유린당했고,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를 철권으로 다스렸다. 천하통일의 이념이 진나라의 패권을 정당화한 것처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미국과 소련의 패권을 위해 복무했다.
평화를 꿈꾸며 진 시황의 통일에 환호하던 민중은 십여 년이 지나자 인위적인 획일화 정책에 환멸을 느끼고 봉기를 시작했다. 진나라 패권의 도덕성에 한계가 드러난 것이었다. 소련 붕괴로 미국의 유일패권이 확립된 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식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미국 패권의 도덕성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진나라가 무너진 후 항우는 진나라의 통일체제를 조금만 고치고 그대로 물려받아 자신이 진 시황의 역할을 바로 대신하려 하였다. 반면 유방은 분권체제로 대폭 돌아가는 방향을 세워 항우와의 쟁패에서 이겼고, 한나라는 그 후 1백 년 가까운 세월을 통해 점진적으로 통일체제를 구축했다. 통일체제를 위한 준비가 미비한 당시 상황에 적합한 방향을 유방이 제시했던 것이다.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을 말한 것 역시 지금의 세계가 통일체제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명간의 갈등은 극복되지 않은 채 냉전체제 밑에 잠복해 있다가 냉전체제가 해소됨에 따라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는 2백년 가까운 대립의 시대를 청산하고 공동체 구성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테러전쟁은 이슬람을 결속시키고 있다. 블록화는 문명권을 축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다.
근대는 물질 획득을 향한 경쟁의 시대였다. 이 경쟁은 인접국 사이에서 국경을 놓고 벌어졌고, 이웃한 나라일수록 사이가 나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근대를 벗어나고 있는 지금은 물질보다 신뢰가 경쟁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다. 무역상의 수지보다 신용등급이 경제에 더 큰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지 않았는가.
지리적-역사적-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 사이일수록 신뢰 형성에 좋은 조건이다. 미국의 패권이 무너지고 온 세계가 군웅할거의 양상이 되었을 때, 문명권을 배경으로 굳건한 동맹관계를 가지는 나라가 그러지 못하는 나라보다 유리한 기회를 가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고립된 시절 내 주장만 내세우던 자세를 다시 살펴 이웃과의 조화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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