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대통령 노무현은 휴가를 가고, 그 사이 젊은 병사들은 침략출병의 신호에 맞추어 이라크로 보내졌다. 그것은 마치 야반도주(夜半逃走)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떳떳치 못한 파병이기에 대통령은 이들에게 격려의 말 한마디 없이 몸을 숨겼고, 이들은 누구의 축복과 따뜻한 환송도 받지 못한 채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전장(戰場)으로 향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이로써 한국을 전범(戰犯)국가의 대열에 공식적으로 들어서게 했다. “친일청산” 운운하면서 과거에 대한 논란을 벌이고 있으나 그 친일에 대한 역사의 엄중한 문책은 본질적으로 식민종주국에 대한 적극적 굴종과 협력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의 현재(現在)”는 그런 발언을 할 자격조차 갖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이러한 세력들이 내세우는 친일청산은 그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야비한 정략(政略)으로 변질하고 말 수밖에 없다.
***야반도주 같은 파병, 축복 없는 출병**
대통령 노무현은 민족의 생명과 관계된 주권적 권리를 미국의 침략전쟁에 그대로 바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죄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역사는 향후 그에게 침략 파병과 관련한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기만하고 무시한 반민주주의자(反民主主義者)에다 전범(戰犯)이라는 딱지를 추가해서 붙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박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친일청산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반민족적이고도 반인류적 선택을 국익이라는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이름으로 정당화시키고 있는 대미굴종의 처신을 정책으로 받들고 있는 세력의 청산이다. 이것은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친일세력 청산의 과제를 완성시키게 되어있다.
그러나 이들 종미(從美)세력의 주도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이 나라는 한-미간의 식민지적 주종관계에 대한 다른 명칭에 불과한 이른바 한미동맹의 족쇄로 계속 그 진정한 발전이 저해될 것이다. 최근 점점 노골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중국의 위압적 패권주의에 대한 극복도 대미종속의 주체적 극복과정에서 그 능력을 길러낼 수 있는 것이지 따로 다른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그 과정에서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인식이 국제화되는 것이다. 아니면, 일전(一戰)을 불사하지 않는 한 상호 직접충돌을 피하고자 하는 강대국 간의, 우리를 얕본 비밀담합으로 우리는 언제든 중간에서 희생당할 수 있는 것이다.
***종미세력의 주도권 청산이 가장 절박한 과제**
노무현 정권은 “김선일”이라는 젊은이가 이라크 현지에서 파병철회를 요구하는 무장단체에 인질로 잡혀 그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파병고수>를 공언하여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부족해서 이제 이 땅의 아들들을 집단적으로 사지(死地)에 몰아놓고 있다. 그 이후를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다. 아니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파병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일체 귀를 막고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노무현의 모습은, 국민여론을 경청하면서 문제를 풀겠다고 했던 참여정부의 수반이 아니라 종주국의 군사주의를 추종하는 종속 파시즘의 독선적 권력자로서의 면모를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강하게 보이고 있다. <위험한 인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김선일의 죽음 앞에서 아파하며 가슴을 치지 않았다. 논점의 호도와 책임전가에 급급했을 뿐이다. 그는 또한, 어떤 비통한 죽음을 맞이할는지 알 수 없는 병사들의 장래에 대하여 떨리는 심정으로 국민들과 이야기를 나눈 바 없다. 오직 자신의 결정은 이미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는 냉혹하고도 오만한 주장만 내세웠을 뿐이다. 자국 국민들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여 미국의 압력을 뿌리친 우리보다 작고 약한 나라의 용감한 지도자들은 그에게 안중(眼中)에도 없다.
성서에 등장하는 모세는 거대한 애굽 제국의 제왕 바로(Pharaoh) 앞에서 그들의 풍요의 원천인 나일 강에 지팡이를 담근다. 그러자 강은 졸지에 핏빛으로 변했다. 무엇을 말함인가? 제국의 번영, 그 밑바닥에 흐르는 민중의 통곡하는 유혈(流血)을 고발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강물은 누구도 먹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국익 운운하면서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우기고 있는 이들 침략 파병주의자들은 그로써 이 나라 역사의 밑바닥에 흐르게 될 피는 보이지 않는다. 무고한 이라크 민중들의 피에 대해서도 물론이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국(異國)의 이름 모를 들판에서 조국의 먼 하늘과 어머니를 그리며 통절한 청춘을 접어야 할 지 모를 지경에 대한 애통함이 없다.
***인간에 대한 뜨거운 영혼이 없는 정치, 생명의 희생 필연적**
인간에 대한 뜨거운 영혼이 없는 자들이 주도하는 정치는 반드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인간의 생명을 저버린다. 스스로도 거짓인줄로 알고 있는 온갖 간교한 논리와 기만적 합리화로 더 많은 희생의 재생산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제국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 동조하는 노무현 정권과 여당인 열린 우리당 집권세력들은 이렇게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오늘을 속이고 역사를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파병지지를 표한 한나라당도 물론 동일하나 그 주도권이 정부와 여당에 있다는 점에서 그 책임의 비중은 다르게 따져져야 한다.
이라크 전선(戰線)은 피아(彼我)를 구별할 수 없는 상황으로 깊숙이 빠져들어 갈 것이다. 게릴라 전쟁으로 대미(對美) 독립항쟁을 벌이고 있는 이슬람 무장 세력은 곳곳에서 미군과 그에 종속된 이른바 다국적 군대를 공격하고 괴롭히게 될 것이다. 명분도 목적도 분명치 않은 전쟁에 내던져진 파병부대는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결국에는 애초에 보호의 대상으로 전제했던 이라크 민중들과 적대적으로 맞서게 될 것이며 무차별 민간인 살상 또는 학살의 무서운 죄를 피할 수 없게 되고 말 것이다.
실로 생사(生死)가 왔다 갔다 하는 전투장 현지의 논리를 들어 불가피한 상황 운운하면서 이 모든 전쟁범죄는 덮어져갈 것이며, 한국은 이라크 민중과 중동전체의 이슬람 양심세력의 적(敵)으로 전락하고 미국이라는 점령세력의 앞잡이로 공격대상이 되어 그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여파는 매우 오래 갈 것이며 우리의 가해(加害)로 만들어진 이 상흔을 치유하고 관계를 진정으로 회복하는 데에는 최소한 30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자신의 부모나 형제자매들, 또는 친구들이 한국군의 폭격과 총탄에 죽는 것을 목격한 소년과 소녀들이 성장하여 이 모든 것을 용서하고 새로운 관계로 나서게 되기까지 우리는 이들 세대에게 끊임없이 사죄의 변을 늘어놓아야 할 것이다.
***침략파병 선봉에 선 노무현 정권의 실상은...**
인류적 양심을 포기할 것을 강요하는 대통령, 민주적 논의의 참여통로를 봉쇄하는 반민주적 정권, 민족적 자존을 훼손시키고 있는 반민족적 권력, 그리고 민생의 절박한 현실에 대해서는 지극히 무능하고 정파주의적 이익을 위한 정치공학에는 날랜 집권세력. 이것이 지금 침략파병에 앞장서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실상이다.
이러한 정권과 집권세력이 이 중차대한 시기에 이 나라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비통할 지경이다. 이들에게는 인간의 아픔에 대한 보편적인 심정(心情)도, 외세의 개입과 간섭을 막아내려는 민족주의적 열정도 없고,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는 깊이 있는 세계사적 안목도 기대할 수 없으며 주변정세를 주도적으로 대응해나갈 치밀하고 차분한 전략적 지혜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지배 엘리트의 이 지극히 치명적인 결함에는 오로지 한가지의 해결책밖에 없다. 그것은 민중들의 준엄한 질타와 항거이다. 자신과 자신의 이웃의 생명과 미래가 집단적으로 무너지고 있는데도 침묵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포기에 다름이 아니다.
***침략 파병, 동북아 전쟁 준비의 과정 될 수 있어**
침략파병은 중동현지의 전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에 옮겨지고 있는 미국의 거대한 전쟁준비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결정적 과정이 된다.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동북아 사령부의 등장, 일본 자위대의 신속배치군화와 평화헌법의 개정 움직임, 그리고 한반도 주둔 미군의 전력 강화등과 결합된 한국군의 국제적 지위는 도대체 무엇을 겨냥한 것이겠는가?
침략파병은 한국군을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른 신속배치군으로 전환하는 구상의 실험이라는 의미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금 매우 불길한 늪으로 한발 한발 들여놓고 있는 것이다. 제국의 거대한 자본과 군사력의 강력한 동맹 세력화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은 이제 결코 약하지 않다. 최근 보이고 있는 더욱 뚜렷해진 독선적 행태와 정치적 오만은 그러한 상황의 반영이다.
날이 갈수록 위험한 권력으로 변모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현실을 목도(目睹)하고 있는 우리는 새로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 나라의 진정한 발전과 진보의 길과 관련하여 노무현 정권의 등장과 현실은 역설적으로 기만적인 유사(類似)세력의 존재에 대한 역사적 각성을 깊게 해주고 있다.
제국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의 고리로 변질해가고 있는 정권을 그대로 용인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무책임한 자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존엄한 인권과 자주의 시대는 우리에게 “양심에 충실한 뜨거운 용기와 역사 앞에 솔직한 결속”을 준열하게 요구하고 있다. 때가 너무 늦지 않게 말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