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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경제 민주화는 누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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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경제 민주화는 누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경제 민주화가 따로국밥인가? 정책 따로, 공천 따로!

총선을 코앞에 두고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야권은 그간의 헛발질을 만회할 절호의 찬스라도 잡은 듯, 연일 맹공을 펼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북한의 위성발사를 색깔 논쟁으로 엮어가려는 수구진영의 눈물겨운 사투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천안함 사태 한가운데서 치러졌던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를 다시 한 번 애써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당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천안함이 아니라 무상급식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정책 이벤트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시민들의 요구는 무상급식을 넘어 대학 반값등록금, 워킹푸어 처우개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 등과 같은 노동·복지정책 전반으로 확산되는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최근엔 이런 흐름이 '경제 민주화'의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정치권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했다. 새누리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경제민주화 조항인 헌법 119조 2항을 만든 김종인 박사를 영입하고, 경제 민주화 실현을 당의 정강·정책에 넣었다. 민주통합당은 유종일 박사를 위원장으로 한 경제민주화특위를 구성해 이와 관련한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복지국가 담론을 둘러싼 여야 간 정책대결에 이어 이번엔 경제 민주화를 놓고 두 번째 대결을 기대할 만 했다. 이처럼 '누가 더 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드느냐'로 경쟁하게 되면 결국 긴장하는 것은 기득권 집단이요, 덕을 보는 것은 일반 시민이다. 그간 여야는 지역주의와 색깔론을 앞세워 서로 극단적인 대립을 하면서도 정작 실질적인 사회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거의 차이가 없어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전가되어 왔음을 기억할 때, 최근 이런 정책 대결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공천과정을 통해 우리가 목격한 바는, 이런 기대가 너무 성급했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그간 경제 민주화를 강조했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유명무실한 후보자들을 대거 공천했다. 지역구 후보야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니 현실적인 측면에서 다소 이해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비례대표 명단마저 경제 민주화나 복지국가 건설과는 거리가 먼 인사들로 채운 것은 4월에 내리는 눈만큼이나 황당하기만 하다. 당장 여야에서 경제 민주화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들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사퇴하거나 낙천됐다. 김종인 박사는 "자신이 강조해 당 정강정책에 들어간 경제 민주화를 실천할 인사들이 공천에 포함되지 않은 것 같다"며 비대위를 나왔다. 유종일 박사는 수도권 전략공천과 비례대표 명단에 들어가리란 소문이 무성했지만, 결국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결국, 공천이 끝난 현재 상황에서의 일차적 결론은 여야가 제시한 경제 민주화 공약들이 단순한 말 잔치로 끝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 지난달 21일 새누리당 공천장 수여식장 ⓒ프레시안(최형락)

어디 갔어? 시민들 목소리 다 어디 갔어?

이쯤에서 드는 의문은 '어떻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 상당수가 원하는 경제 민주화 같은 요구가 정치권에 도무지 반영되지 않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라 함은 시민들 다수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인물 혹은 집단이 정책 결정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인데, 왜 정당들은 시민이 아닌 재벌과 경제관료 등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집단의 목소리에 오히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느냔 말이다. 김종인 박사의 인터뷰 내용을 좀 더 들어보자.

"솔직히 대기업 임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국회의원들(은) 우리 손안에 들어 있다면서 걱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심지어 자기들 이익 대변할 의원들을 공천에 적극 영향을 발휘해서 당선시켜 상임위원장 맡기면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건 하나의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올 초 경제 민주화와 복지에 대한 논의가 여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기획재정부 관료들, 그리고 보수언론들은 전방위적인 압력을 가했다. 예컨대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5단체는 지난달 22일 공동성명 발표문을 통해 기업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을 자제하고 시장경제 원칙을 바로 세울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앞서 기재부는 지난 2월 복지테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정치권이 정제되지 않은 복지제도를 무분별하게 만들고 있다며 제동을 걸기도 했다. 결국 공천결과만 놓고 보면, 이들의 원하는 바가 거의 반영된 듯하다.

이처럼 정책 결정 과정이 일반 시민이 아닌 기득권 집단들에게 포획되어 버린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기득권 집단의 견고한 방어벽을 뚫고 어떻게 경제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이번 총선의 공천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던지고 또 답해야 할 핵심적인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장하준 교수나 김상조 교수 등 학계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어떤 경제 민주화인가' 논쟁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즉 경제 민주화를 '누가, 어떻게 실현 가능케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 더욱 진지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 지난달 21일 민주통합당 공천장 수여식장 ⓒ프레시안(최형락)

백마 탄 왕자는 없다

김종인 박사를 비롯한 많은 시민들은 그 가능성을 개혁적 리더십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즉, 경제 민주화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한 인물이 말 그대로 대권(大權)을 획득해 기득권자들의 반대를 이겨내면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으리란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몇 차례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인물에 걸었던 대중의 기대가 얼마나 쉽고 빠르게 분노와 절망으로 바뀌었는지를 배웠다. 그것도 아주 최근의 경험들을 통해서 말이다. 그만큼 기득권층의 방어막이 견고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인물이 갖는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정말 준비된 개혁적 인물을 통해 경제 민주화 정책이 도입될 수도 있다. 하지만 5년 후엔? 운이 좋아 그다음에 또 그런 인물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그럼 10년 후엔? 이처럼 인물에 대한 기대는 끊임없이 불안한 질문을 요구받는다. 500여 년 전 마키아벨리가 새로운 개혁을 시도하는 군주에게 통찰력 있게 언급한 바와 같이, "적대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제나 당파적 열성을 갖고 공격하는 반면 지지자들은 새로운 질서를 미온적으로 방어하므로, 새 질서를 도입하려는 군주는 큰 위험에 처하게" 되기 쉽다. 요컨대 한 명의 인물에게 온전한 개혁을 기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그런 인물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그 개혁이 향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운동 정치'의 한계

다른 한편에선 시민사회 운동에 기대를 거는 그룹이 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을 시작으로 한국 사회에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실제로 나름대로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촛불집회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지시키기도 했고, 희망버스를 통해 한진중공업 문제를 공론화해 결국 노사협상이 타결되는 데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이런 접근은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거나 근본적인 체제의 변화로까지 이르지 못하고 그 동력이 상실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운동 이후 등장한 16대 국회가 과연 그 이전과 얼마나 달랐는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 격렬했던 촛불시위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조금 늦췄을지는 모르나 그와 비교할 수 없는 큰 규모의 한미 FTA 타결을 막지 못했고 결국 추가협상까지 진행되어 얼마 전 발효되었다. 한진중공업 문제 역시 일개 회사의 문제는 해결했지만, 그 외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경제 민주화도 이런 경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민운동을 통해 경제 민주화가 중요하다는 당위성과 필요성은 전달되겠지만, 결국 그것만으로 의미 있는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는 없으리란 것이다. 이처럼 정치권 밖에서 권력을 비판하는 것에 집중했던 '저항의 정치', 혹은 '운동 정치'라는 것이 그것 자체로 그칠 경우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 지난 2월 22일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한미FTA 발효 철회 및 폐기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경제 민주화와 비례대표제

결국 경제 민주화가 성공하고 그 영향력이 지속되기 위해선 그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제도권 내부로 복원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이 체제로 인해 이득을 보는 집단과 손해를 보는 집단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두 집단의 목소리가 정책 결정 과정에 동등하게 반영되는 것이 바로 경제 민주화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이 한국에선 재벌과 같이 이득을 보는 집단의 목소리는 강력하게 반영되는 반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집단인 비정규직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이 전체 임금 노동자의 무려 2/3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목소리가 정책결정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왜 주요 정당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가? 그럴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재벌에게 유리한 정책과 공약들을 더 우선시하는 듯 보이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이유는 현재의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를 중심으로 한 선거제도 하에선 이들의 목소리에 민감하지 않아도 당선이 가능하고 집권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라도의 민주통합당과 경상도의 새누리당을 떠올려 보라. 해당 지역구에서 오직 일등만이 선출되는 현재의 선거제도 하에서 이들은 굳이 정책대결을 하려고 하거나,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후보만 되더라도 이미 당선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의 선거제도는 의도적으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배제시키는 제도이다.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는 지역구에서 1위에 오른 후보만 당선되고, 2위 이하의 후보들에게 던진 표는 모두 사표(死票)로 처리된다. A, B, C, D 네 정당이 전국적으로 35%, 30%, 23%, 12%의 득표율을 각각 획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국회로 입성하게 되는 목소리는 A 정당을 지지한 35%뿐이다. A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65% 시민들의 의견이 역설적이게도 소수의 의견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의 선거제도는 정당들의 정책대결에 대한 유인을 낮출 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도 배제시키는 제도인 것이다.

결국, 그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사라진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복원해 경제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케 하는 선거제도의 도입, 즉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각 정당들이 득표율에 비례하여 의석을 확보하기 때문에 사표가 최소화된다. 다양한 사회 세력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의석수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 정당은 더 이상 지역주의에 안주하거나 특정 집단의 목소리만을 중시하기 힘들다.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시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정확히 그만큼의 의석수가 줄어드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부산 지역에서 총 18개의 의석 중 17개를 차지해 94% 의석점유율을 확보했다. 하지만 실제로 한나라당이 얻은 득표율은 겨우 52%에 불과했다. 거의 절반의 시민들이 다른 당을 지지한 것이다. 만약 당시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면 한나라당은 겨우 9석만을 차지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한나라당은 부산에서도 민주당이나 다른 진보정당들과 본격적인 정책대결을 통해 그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되는 것이다. 이처럼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사회의 다수인 서민들과 중산층의 목소리가 안정적으로 정책결정과정에 반영될 수 있게 된다. 비로소 특정 인물의 능력이나 특정 집단의 배려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경제 민주화의 성공 조건이 제도적으로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87년 체제의 극복'이니, '2013년 체제의 등장'이니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새로운 체제란, 말 그대로 새로운 인물이나 세력이 아닌 새로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등장하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도 마찬가지다. 그것의 실현 가능성은 결국 과거의 체제와 결연히 단절하고 새로운 체제를 여는 제도의 마련 여부에 달려 있다. 사실 이번 총선에서 그 씨앗은 이미 뿌려진 듯하다. 야권 연대의 합의문에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의 도입을 명기한 것이다. 이제 총선을 지나 대선으로 가는 길에 이 씨앗을 잘 길러 대선 후보 단일화의 조건으로 선거제도 개혁이 열매 맺을 수 있을지 향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당장 눈앞의 총선결과는 '정권 심판론'이나 '미래 선택론' 혹은 '민간인 사찰의 진실공방 여부'에 따라 좌우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누가 승리하건 그 승리의 원동력을 대선까지 유지하기 위해선, 결국 외환위기 이후 시민들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양극화 해소, 복지국가 건설, 경제 민주화 등에 대한 기대를 누가 얼마나 구체적인 로드맵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이것을 성공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체제의 변화를 누가 이끌어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취지문]

PR청년포럼은 PR포럼의 청년그룹으로서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는데 동의하는 개인, 청년단체,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정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PR포럼에서는 청년들이 다양성이 인정되는 속에 합의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례성, 다양성, 공정함이 보장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이를 위해 비례대표제 확대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조금은 거칠지만 생생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열망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정치의 해인 2012년에 비례대표제 확대가 우리 사회 주요한 사회적 아젠다로 자리매김하는데 청년들의 이 작은 몸짓들이 마중물이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하며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연재를 시작해봅니다.

PR청년포럼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prforum.tistory.com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슈퍼스타K가 아니다

-구럼비 파괴되던 날, 나는 비례대표제를 고민했다
-이게 선거인가! 이게 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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