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호 가나무역 사장은 "김선일씨 석방을 위해 노력한 이라크 현지인 E변호사가 정부의 파병방침 확정이 살해 요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주장하며 김씨 피살 책임을 정부에게 떠넘겼다.
이에 앞서 감사원은 김선일씨 사인이 미군에 대한 군납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석방 노력을 미온적으로 했던 김사장 잘못이라고 결론내린 뒤 김사장에 대한 사법처리를 요구하고 있어, 정부와 김사장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양상이다.
***"파병방침에 상황이 악화됐다"**
김천호 사장은 30일 국회에서 열린 고 김선일씨 피살사건의 의혹 규명을 위한 청문회에서 "김선일씨 석방을 위해 노력하던 이라크 변호사가 18~19일 경에 상황이 '꼬여간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 사장 주장에 따르면 E변호사는 18~19일경 "정부의 파병방침에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며 "정부가 아니라면 대사관에서라도 파병방침을 철회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E변호사가 정부의 파병방침 결정시 화를 많이 냈다"며 "그는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 차원에서라도 파병의 문제를 재고하겠다는 발표만이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사장은 또 지난 6월21일 연합뉴스 안수훈 기자와 인터뷰 등에서는 김선일씨뿐 아니라 가나무역의 원청업체인 미 KBR 직원들도 납치됐다고 발언했던 것과 관련, "거짓 진술한 것은 안타깝다"며 자신의 주장이 거짓말이었다고 주장하며 "21일 이후 외부의 압력을 받고 진술에서 미군과 관련한 사실을 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김 사장은 또한 지난 5월31일 김선일씨가 피납된 후 대사관에 알리지 않고 직접 협상을 한 것에 대해 "내가 이라크에 1년간 있으면서 이라크의 현지인이 피랍돼 어떻게 구출되는가를 몇 번 보고 얘기를 들었다"며 "이라크는 무정부 사태고 피랍이 되면 물밑 접촉을 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판단해 E변호사를 통해 무장단체와 직접 협상을 하려고 했다"고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우원식, "주이라크대사관이 피랍일자 은폐했다"**
한편 이날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주이라크 대사관이 외교통상부와 협의해 김선일씨의 피랍 일자를 은폐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새로 제기했다.
우 의원은 "주 이라크대사관이 김선일씨의 피랍일자가 5월31일이라는 보고서를 22일 오전 1시에 외교부에 제출했다"며 "보고서에 이라크대사관은 '김사장에게 납치일자를 언급하지 말라'고 조치했다고 적혀있다"며 외교부의 조직적 은폐의혹을 제기했다.
우 의원이 이날 공개한 이라크대사관이 외교부에 보낸 비문에는 "김 사장에게 납치 일자를 언급하지 않도록 분명히 조치했다. 납치일자 문제로 인한 파장이 우려돼 이 문제에 대한 본부 입장을 회신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우 의원은 "이것은 이라크대사관이 피랍일자를 은폐하려 한 것이고, 명백한 외교부의 직무유기"라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 반기문 외교부장관은 "그런 일 없다. 그런 보고서도 없다. 중요한 문제였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단호히 부인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에는 우 의원의 추가 질의에 대한 답변과정에 "비문을 받은 것은 맞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반 장관은 "대사관이 숨기려고 했던 의도는 아니었다"라며 "김천호의 진술이 자주 바뀌어 대사관의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외교부에 문의하려 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AP통신 최상훈 기자가 '김선일'을 물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AP통신의 문의전화 여부를 놓고도 외교부 직원의 말이 여러차례 왔다갔다 했다.
청문회 결과, AP통신이 외교부에 김선일이라는 사람이 피랍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한 사람은 처음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서수경 기자가 아니라 최상훈 기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AP의 이수정 기자도 외교부에 이 같은 사실을 문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외교부 에서도 정우진 외무관 외에 다른 사람이 추가로 AP기자의 문의를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수경 기자는 "최상훈 기자로부터 'APTN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비디오 테잎을 방영했나'라는 질문을 받고 방송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방송 스케줄을 보니 전혀 없었다. 그런데 최 기자가 재촉을 해 외통부에 전화를 해 '이라크내에서 한국인이 실종 또는 납치된 보고가 있었나'라고 질문했다"고 말했다.
서 기자는 외교부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선일'이라는 이름을 거명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에 앞서 전화를 했던 최상훈 기자라고 밝혔다. 서 기자는 "내가 전화를 했을 때 외통부에서 그런 전화가 두 번째라고 얘기했고, 그래서 최상훈 기자에게 확인을 했더니 최 기자가 '내가 김선일 또는 김순일로 발음되는 한국인이 피랍됐는지를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두 차례의 전화를 받은 정우진 외교통상부 외무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오락가락하는 진술을 해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정우진 외무관은 감사원 진술에서 6월3일 오후 4시5분경 서수경 기자의 전화를 받았고, 김선일씨 실종 여부에 대해 "잘 모른다. 알아보고 전화해주겠다"라고 답한 뒤, 3시간 10분 뒤에 서 기자의 전화번호 메모를 보고 전화를 걸어 "그런 일(피랍된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 바 있다.
정 외무관은 또한 서 기자가 증인으로 채택되기 전까지만 해도 "김선일 이름을 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만 기억 자체가 워낙 없기 때문에 AP측의 문의에도 반박할 수 있는 기억이 없다"고 애매한 주장을 폈었다. 그러나 서 기자가 이날 청문회에 나와 "자신은 김선일이라는 이름을 언급한 적 없다"고 하자, 곧바로 정 외무관은 "감사원 때도 그랬고 '김선일'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말을 바꾸었다.
하지만 곧바로 서 기자가 "최상훈 기자가 '김선일'을 언급하며 물었다"고 밝히자 "지금까지도 기억이 잘 안난다. 김선일이라는 이름을 들은 기억이 나도 참 답답할 정도"라고 또다시 말을 바꾸었다.
감사원 조사결과도 그러하나 국회 청문회에서도 '진실'은 간 데 없고, 모두가 '책임 회피'에 급급한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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