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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실증연구, 경험적 증거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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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실증연구, 경험적 증거를 찾아

이강국의 '세계화의 정치경제학' <8>

***2. 다시 실증연구, 경험적 증거를 찾아**

***그나마 뚜렷한 무역자유화의 이득**

이론적으로 볼 때, 무역자유화의 경제적 이득은 상당히 모호한 자본자유화에 비해서는 훨씬 더 뚜렷해 보이며 실제로 압도적 다수의 실증연구들이 이러한 결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역자유화를 지지하는 최근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적인 연구는 아마도 ‘세계화, 성장 그리고 빈곤: 통합적인 세계경제를 건설하기(Globalization, Growth and Poverty: Building an Inclusive World Economy)’ 라는 긴 제목의 2002년 세계은행 보고서일 것이다.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언제나 많은 기초연구(background paper)들에 기반한 것이며, 이 보고서 내용 중 무역과 성장에 관한 연구는 Dollar and Kraay 의 2001년 연구인 ‘무역, 성장, 그리고 빈곤(Trade, Growth and Poverty)’에 기초하고 있다. 이들의 논문은 1980년대 이후 무역을 자유화한 이른바 세계화 추진국(globalizer)의 경제성장이 그렇지 않은 국가들보다 뚜렷하게 더 높음을 역설하였다.

경제학계에서는, 무역자유화와 개방이 개도국의 경제성장에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는 수많은 계량논문들이 오래 전부터 발표되어 왔으며, 이들은 거의 모든 학자들로 하여금 무역의 개방이 선이라고 굳게 믿도록 만들었다. 그 방법론은 자본자유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제성장률 혹은 일인당 국민소득 수준을 설명하는 표준적인 경제성장모델에 뭔가 무역자유화를 보여주는 변수를 도입하여 무역개방이 성장에 통계적으로 얼마나 유의한가를 계량을 돌려서 살펴보는 것이다.

그 중 최근의 대표적인 것만 추려도 1995년 브루킹스 페이퍼에 실린 삭스와 워너의 논문, 그리고 1998년 Economic Journal에 실린 에드워즈의 논문, 1999년 American Economic Review에 실린 프랑켈과 로머의 논문 등 참고문헌만 몇페이지가 넘어가며, 최근에도 이 주제와 관련된 연구는 쉼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렇게 많은 실증연구들을 살펴보고 나면, 정말로 적어도 국제무역에 관해서는 주류경제학 교과서의 결론이 현실에서도 사실이라는 인상을 받기 쉽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문제는 잘 알려진 이들 실증연구들조차도 완벽하지 않으며 상당한 허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완벽한 계량연구가 어디 있겠는가만은. 많은 이들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지만 흔히 인용되는 유명한 연구들도 여러 문제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며 이를 비판하는 논의들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아래에서는 이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허점과 비판**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의 교수인 다니 로드릭은 세계화 논쟁에서 여러모로 볼 때 흥미롭고도 핵심적인 인물이다. 그가 원래는 터키 출신이며 경제학부가 아니라 정책대학원의 교수란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아무튼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그는 시장개방과 자유화의 이득을 비판하는 비주류적인 시각의 연구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단지 반대쪽 입장에서 이론적으로 주류경제학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계량분석 등 주류경제학의 방법론을 그대로 사용하여 경제개방이 선이라는 맹신의 허점을 정열적으로 폭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 스티글리츠를 부른 이름처럼, ‘내부의 배신자(rebel within)’라고도 할 수 있을까.

그와 로드리게즈가 함께 쓴 1999년 논문 ‘무역정책과 경제성장: 크로스컨트리 증거에 대한 회의주의자를 위한 가이드(Trade Policy and Economic Gowth: A Skeptic's Guide to the Cross-National Evidence)’은 무역자유화를 지지하는 가장 유명한 실증연구들을 조목조목 비판하여 신선한 충격과 또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무역자유화가 성장을 촉진한다고 주장하는, 유명한 저널에 출판된 가장 잘 알려진 여러 논문들에 대해서 각 연구들의 문제점들을 보여주고, 이들 연구를 다시 계량적으로 수행하여 그 결과가 별로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한다.

무역자유화에 관한 실증연구에서 역시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데이터 그 자체이다. 무역자유화 정책의 효과를 분석하는 논문들은, 자본자유화와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그 정책의 변수로서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무역개방 혹은 자유화의 진정한 척도는 과연 무엇일까?

몇몇 연구들은 직접적인 정책 변수가 아니라, 수출이나 수입 등 무역량을 GDP로 나눈 값, 즉 실제의 무역량(trade volume)을 변수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책변수가 아니고 간접적인 변수이며 때때로 정책과 별다른 관련이 없을 수도 있음이 흔히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규모가 큰 국가의 경우 무역체제가 개방적이어도 보통 이 변수는 상대적으로 작기 쉽다. 또한 어떤 다른 요소가 무역과 성장에 동시적으로 작용을 미칠 가능성도 크다. 더욱 중요하게는 경제성장에 따라 무역이 증가할 수 있으므로, 무역이 증가해서 경제가 성장하는 것인지, 경제가 성장해서 무역이 더욱 증가하는 것인지가 인과성이 불분명한, 계량분석에서는 치명적인 ‘내생성(endogeneity)’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른 연구들은 관세율, 비관세장벽의 정도, 그리고 시장에서 환율의 왜곡 정도 등 여러 변수들을 함께 고려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삭스와 워너의 유명한 연구는 평균관세율과 비관세장벽의 비율이 40% 이상, 암시장 환율프리미엄이 20% 이상 넘거나 사회주의거나 주요 수출품이 국가독점인 경우를 무역이 보호되는 나라로 규정하고, 아닌 경우는 개방된 나라로 판단하는 0/1의 더미 변수를 사용하였다. 이 변수를 사용하여 그들은 무역을 개방한 나라의 성장률이 뚜렷하게 폐쇄된 나라보다 높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개방한 나라들끼리는 이른바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잡는 ‘수렴(convergence)’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변수도 상당히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퍼센트의 기준도 자의적이지만, 로드리게즈와 로드릭은 이들의 개방지표는 주로 암시장환율 프리미엄과 수출의 국가독점에 의해 대부분 설명되며 정작 주요한 관세나 비관세장벽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비판한다. 나아가 암시장환율 프리미엄은 실제로는 다른 요인에 영향을 크게 받는 거시적 불균형의 지표이며, 수출의 국가독점은 실은 언제나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보이는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지역의 더미변수와 유사하여, 결국 무역정책을 잘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삭스와 워너는 수출의 국가독점의 지표를 아프리카의 구조조정에 관한 세계은행의 보고서로부터 인용했는데 그 결과로 아프리카가 아니거나 구조조정 중이지 않은 나라는 그 표본에서 빠져 있다. 나아가, 계량적으로도 제도나 다른 더미변수를 추가하면 무역자유화 변수로 각광받았던 그 유명한 삭스-워너 더미(Sachs-Warner dummy)는 쉽게 그 통계적 중요성이 사라져버린다.

***잘못된 변수, 허약한 증거, 여전한 의문**

한편, 이 주제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인용된다고 하는 1992년 논문에서 달러는 ‘환율왜곡 정도(index of real exchange rate distortion)’와 ‘실질환율 변동성(real exchange rate variability)’라는 지표를 고안하여 이것을 무역보호의 변수로 사용하였다. 그는 각국의 소비재 가격이 국제가격과 얼마나 차이를 보이는가를 이 지표로 측정하고자 했고 이를 아주 간단한 계량모델에 추가하여 성장에 음의 효과를 미침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로드릭 등에 따르면, 첫 번째 지표는 수출보조가 없고 전세계적인 일물일가의 법칙이 성립하며 교통비용으로 인해 국가간 가격차이가 없을 때에만 수입보호의 정확한 지표가 되며 두 번째 지표는 단지 인플레이션 등 거시적 불안정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문제가 있다. 또한 그들은 환율왜곡 지표는 계량모델에 지역더미를 넣거나 초기 국민소득을 추가하는 등 모델을 약간만 바꿔도 그 유의성이 사라져버림을 보여서 무역자유화 지지자들을 실망스럽게 만들었다.

최근 프랑켈과 로머는 현실의 무역비중이 가지는 내생성 문제를 인식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다. 그들은 소위 ‘인력 방정식(gravity equation)’을 이용하여 국가의 규모, 각국의 거리 그리고 지리적 조건 등을 사용하여 양국의 무역 흐름을 회귀분석을 통해 계산해내고 이를 합해서 현실의 무역비중에 대한 도구변수로 사용했던 것이다. 즉, 지리적 조건 등 소득과는 관계가 없는 외생적인 변수들을 사용하여 ‘자연적 무역개방정도(natural openness)’를 가상적으로 계산해냈고 이 변수를 사용해서 무역개방이 역시 경제성장과 뚜렷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여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 개방정도 변수도 역시 무역정책을 나타내는 정확한 지표는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연구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로드리게즈와 로드릭은 지리적 조건은 무역을 통해서가 아니라 질병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도 소득에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지리변수를 모델에 추가하면 이 변수의 설명력이 약화됨을 보여주었다.

그밖에도 로드리게즈와 로드릭은 무역자유화가 국가간의 소득을 수렴시킨다는 연구나 무역개방이 총요소생산성을 상승시킨다는 연구 등 다양한 논문들을 그들의 데이터와 기법 그리고 해석 등 여러 차원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최근 발전하고 있는 패널분석에 대해서는 무역자유화의 보다 장기적 효과를 보여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우려를 표명한다. 계량연구의 난점을 기억한다면 사실 어떤 연구도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며 이들의 주장은 비판을 위한 비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비판은 무역개방의 성장효과를 지지하는 실증적 증거로 제시되는 중요한 연구들의 아킬레스건인 지표와 기법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비판하여 그 결과가 무척 취약함을 보여준다.

한편, 무역자유화의 효과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는 거시적 연구에 비해서는 드물지만 심심챦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공장수준의 데이터를 이용한 이러한 연구들은 수출 자체가 생산성 향상 등 기술적 이득을 가져오기보다는 더욱 효율적인 생산자들이 수출을 더 많이 하는 결과를 보고한다. 결국 미시적으로도 무역개방의 이득은 그리 뚜렷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무역보호가 경제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유화의 이득도 일반적인 것은 아니며 여러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로드리게즈와 로드릭도 “무역자유화가 이득을 가져올지도 모르지만, 세계경제로의 통합만을 강조하는 것이 다른 중요한 개발전략들을 대체해 버리는 것”에 커다란 우려를 던지고 있다.

맑스주의자인 벤 파인 등도 신무역이론이 주장하는 생산성 상승효과는 뚜렷하지 않다며 신자유주의와 무역자유화에 대한 맹목적 지지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Deraniyagla and Fine, 2001) 이들은 많은 연구들을 검토한 후, 신무역이론의 결론은 특정한 가정에 기초하고 있고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모델도 많으며, 크로스컨트리 뿐 아니라 특히 산업이나 기업 수준의 무역자유화의 생산성 향상효과는 현실에서 검증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이론적인, 현실적인 주장들은 (무역자유화를) 결코 지지하지 않으며”, “자유무역과 보호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연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거없는 세계은행의 보고서**

무역개방이 언제나 선이라는 협소한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면, 2002년 세계은행의 보고서도 비판을 면키 어렵다. 사실 이 보고서의 기본이 되었던 달러와 크라이의 연구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어서 비판적인 학자들의 집중포화를 받은 바 있다.

이들은 무역개방의 지표로서 변수로서 관세율과 수입/GDP 비중 둘 모두를 사용하여 1980년대 이후 세계화국(globalizer)과 비세계화국(non-globalizer)를 구분한 후 세계화국의 경제성장이 상대적으로 뛰어남을 보인다. 또한 (수출+수입)/GDP 변수와 시기별 데이터의 변화를 사용하여 무역량의 증가가 경제성장 수준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계량분석의 결과를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도 보았듯이 무역량 변수는 정책변수가 결코 아니며 경제성장에 따른 무역증가를 고려하면 문제가 많은 지표이므로 세계화국/비세계화국을 가르는 그들의 첫 번째 기준은 별로 올바르지 않다. 이들은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도 심각한 실수 혹은 의도적인 문제점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비록 데이터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무역량 비중은 1970년대 후반과 1990년대 후반을 비교하여 세계화국을 골라내는 반면, 관세율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후반을 비교하여 둘 모두 세계화국이 성장이 촉진되었음을 보인다. 이들의 원래 논문은 세계화국에 그들의 기준에 따라 포함되어야 하는 콜롬비아를 빠뜨리는 실수를 하기도 했는데, 많은 이들의 비판 이후 2001년 발표된 워킹페이퍼에는 2000년 발표된 초고의 몇몇 오류가 수정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트릭을 쓰지 않고 그들의 기준대로 똑같은 분석을 수행해보면 그 결과가 이들 저자의 주장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로드릭은 1980년대 초반의 관세율과 수입/GDP 비중을 사용하여 세계화국과 비세계화국을 나누어보면 세계화국의 성장률이 체계적으로 높지는 않음을 보였다. 다른 비판가들도 적어도 관세율만을 가지고 관련기간을 비교하면 관세율이 크게 낮아지지 않은 비세계화국의 성장률이 더 높아졌다고 보고했다. 또한 관세율이 많이 떨어진 나라들이 오히려 관세율의 수준은 높았는데, 이렇게 볼 때 경제성장에 관세율의 변화가 중요한지 수준이 중요한지 상당히 혼란스럽다.

비판가들은 관세율과 같은 무역정책변수는 무역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무역자유화의 지표로서 이를 직접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것이라 강조한다. 실제로 로드릭은 이를 사용하면 무역자유화와 경제성장간의 관계가 결코 뚜렷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래는 직접적인 무역정책의 변수인 관세율을 사용하여 초기소득과 교육수준을 컨트롤한 뒤 성장률과의 관계를 살펴본 것인데 그 관계가 약한 마이너스이며 통계적으로 전혀 유의하지 못함을 알 수 있으며, 비관세장벽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림 1. 성장률과 관세율(tariff rate)과의 관계, 1975-94**그밖에도 이들의 연구에서는 최근 중국과 인도의 고성장이 그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 사실 세계화국에 포함되는 중국과 인도의 경우 경제성장 이전에 무역을 자유화한 것이 아니고 경제성장의 도약이 있은 지 약 10여년 이후에 무역자유화가 도입되었음을 볼 때, 이들의 주장은 취약함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각 10년간의 변수의 차분을 가지고 무역량의 성장효과를 주장하는 그들의 계량기법도 난점이 많으며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생략된 변수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국제기구의 정치학**

결국 세계은행의 연구나 주장도 들여다보면 썩 믿을 만한 것 같지는 않다. 하긴 국제기구들끼리도 입장이 틀려서 IMF가 언제나 가장 오른쪽인 반면 UN 등의 연구는 주류경제학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현실이다. 궁금하신 분들은 당장 IMF나 세계은행의 홈페이지와, UN 산하인 UNCTAD나 WIDER(World Institute for Development Economics)의 홈페이지를 비교해보라. 한때 미국이 UN에 15억 달러나 되는 분담금을 내지 않고 체납했고 IMF와 언제나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특히 세계은행이나 IMF 등 국제기구들의 연구가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맞는 방향으로 경도되어 있다는 내부의 정치학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던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이자 부총재 스티글리츠가 미국정부와 당시 재무부 장관 서머스의 압력으로 인해 옷을 벗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내부적인 연구와 그 발표도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세계은행은 매년 내부경제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저널리스트들이 원고를 다듬어 세계개발보고서(word development report)를 발표하는데, 2000년의 주제는 빈곤문제의 해결을 위한 것이었다. 2000년에는 경제학자들의 내부원고를 미리 공개하여 코멘트를 받았는데 그 전반적 결론은 빈곤의 해결을 위해서는 성장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분배 등 빈곤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상당히 전향적인 내용이었다. 이 보고서는 스티글리츠 등의 노력이 반영된 것이었다. 이 보고서의 작성은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지닌 코넬대학의 교수 칸부르에 의해 감독되었고 그는 스티글리츠에 의해 임명되었던 것이다.

이 보고서의 초고에 대해 서머스는 당연히 격노하였다. 한편, 토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세계은행은 또다른 연구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서머스의 측근으로 불리는 달러와 크라이의 다른 논문 ‘성장이 빈곤층에 좋다(growth is good for the poor)’라는 논문이었다. 이 연구의 결론은 분배를 위한 정책들이 빈곤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비해서는 성장 자체가 빈곤층에 훨씬 큰 도움이 된다는 주장으로 기존의 세계은행이나 미국정부의 입맛에 아주 잘 맞는 것이었다.

서머스는 세계은행에 2000년 세계개발보고서 원고를 분배보다 성장 자체를 강조하는 달러와 크라이의 연구에 맞추어 수정하도록 공공연히 요구했다고 하며, 칸부르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결국 2000년 옷을 벗고 말았다. 달러와 크라이의 이 연구가 앞서 언급한 연구와 통합되어, 무역->성장->빈곤완화를 주장하는 세계은행의 공식적(?) 입장이 되었지만, 사실 성장이 빈곤층에 좋다는 주장도 이미 엄청나게 많은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여담에 따르면, 그 데이터 사용과 기법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나라들을 단순히 평균해 버린 결과의 문제점에 대해서 달러 스스로도 인정하며 ‘성장은 부유층에 좋다(growth is good for the rich)’라는 제목을 달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샜지만, 무역자유화에 관한 실증연구들의 문제점들에 대해 주류경제학자들은, 여전히 많은 한계가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개방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고수하고 있다. 워너 등 몇몇은 로드릭 등의 비판에 대해서 논쟁을 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패널데이터를 사용한 연구들이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계량연구의 기법과 결과의 튼튼함에 대해서 논란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한편 최근에는 성장의 근본적인 결정요인(deep determinants)과 관련된 논쟁 속에서 무역개방의 역할이 계량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다음 연재에서는 이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고 사례연구에 기초한 실제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서 간략히 이야기해보자.

***참고문헌**

Rodriguez, Francisco and Dani Rodrik, (2000). "Trade Policy and Economic Growth: A Skeptic's Guide to the Cross-National Evidence" Macroeconomics Annual 2000. MIT Press.
http://ksghome.harvard.edu/~.drodrik.academic.ksg/skepti1299.pdf

위에서 언급되었던 대부분의 실증연구들에 대한 로드릭의 비판, 1999년 판 워킹페이퍼의 업그레이드 버전

Srinivasan, T. N. and Jagdish Bhagwati, (1999). "Outward-Orientation and Development: Are Revisionist Right?" Yale University Economic Growth Center Discussoin Paper No. 806.
http://www.econ.yale.edu/growth_pdf/cdp806.pdf
: 스리니바산 등의 로드릭 비판

Dollar, and Aart, Kraay, (2001). "Trade, Growth and Poverty". World Bank Working Paper. 2615.
http://econ.worldbank.org/files/2207_wps2615.pdf
: 달러와 크라이의 그 말많은 연구

Deraniyagala, Sonali and Ben Fine. (2001). "New Trade Theory Versus Old Trade Policy: A Continuing Enigma."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25(6)
http://www2.soas.ac.uk/Economics/workpap/adobe/wp102.pdf
: 파인 등의 비판, 다운로드는 워킹페이퍼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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