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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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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제무역의 축복?

이강국의 '세계화의 정치경제학' <7>

***III. 무역자유화와 세계화**

***1. 국제무역의 축복?**

***고전파에서 현대까지**

이제 자본이 아닌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 즉 국제무역에 대해 생각해보자. 국제무역의 효과는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더욱 피부로 느껴지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수출이 없었다면 한국경제는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고 요즘에는 그나마 경제를 버티게 하는 것이 오직 수출 아닌가. 게다가 중국으로부터 온갖 상품이 밀려들어와서 품질은 나쁘더라도 값싼 물건들을 살 수 있지 않은가, 물론 경쟁업체들은 고생이 심할지도 모르지만.

자본이동과는 달리, 이미 고전파 시대부터 경제학자들은 국제무역이 발생하는 원인과 경제적인 효과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 왔다. 가장 유명한 이론은 역시, 달랑 표 하나와 함께 고등학교 교과서에조차 등장하는 리카도의 비교우위 이론(comparative advantage theory)이다. 영국의 면과 포르투갈의 포도주인가 하는 사례에 기초해서 각국이 서로 자신있는 제품만을 생산하여 서로 교환하면 둘 모두 행복해진다는 이야기. 아 여기서 비교우위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 비용을 말한다. 포르투갈이 두 제품 모두 생산성이 낮아도 그나마 상대적으로는 나은 포도주만을 생산하고 교환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결론에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나시는지.

현대의 모델들은 고전파보다는 한발 더 나아간다. 이른바 2국가-2재화-1생산요소를 다룬 리카도식의 이론을 넘어서서 현대의 헥셔-올린 모델(Hecksher-Ohlin model)은 2국가-2재화-2생산요소를 가정하여 생산요소인 자본과 노동의 상대적 차이로 인해 국제무역을 설명한다. 웬지 몰라도 생산성은 무조건 차이가 나야 하는 고전파 모델에 비해 적어도 헥셔-올린 모델은 비교우위 그 자체가 발생하는 원인은 더 잘 설명해준다.

즉 미국은 후진국에 비해 자본이 더 풍부하므로 자동차 등 자본집약적인 재화를 수출하며 방글라데시는 가진 게 노동뿐이라 여공들이 만든 나이키 운동화를 수출한다는 것이다. 교과서의 모델로는 간단해서 좋긴 하다. 하지만 이 역시 너무 단순하며 완전경쟁, 규모수익 불변의 생산함수, 그리고 비슷한 선호 등 꽤나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나아가 요소의 이동성이 제한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오히려 현재의 세계화 시대엔 잘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국제무역의 이득을 생각한 때문은 아니겠지만, 어떻든 미국정부는 방글라데시 노동자의 유입을 막고 있는 반면, 적어도 미국 자본은 맘껏 방글라데시로 날아가지 않는가.

문제는 이러한 이론이 현실을 별로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미 오래전 레온티에프는 자본이 풍부한 미국이 오히려 노동집약재를 더많이 수출한다는 ‘레온티에프 역설(Leontief Paradox)’을 제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현실에서 국제무역은 다른 산업이 아니라 주로 같은 산업 내에서 나타나며, 요소부존이 비슷한 선진국간에서 비슷한 제품들 사이에 무역이 더 빨리 증가했다는 현실은 새로운 무역이론의 등장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이론들**

새로운 논의들은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포함하고 있다. 키싱 등은 노동 자체의 차이를 강조하여 기술이 높은 숙련노동과 단순한 비숙련노동으로 나눈 다음, 비교우위도 이에 따라 달라지므로 숙련노동집약재와 비숙련노동집약재 사이에 무역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노동집약재를 많이 수출한다 해도, 그건 주로 기술자의 노동에 기초한 숙련노동집약재일 것이고 개도국 여공의 단순노동이 만드는 상품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각국의 생산기술상의 격차나 기술혁신 등과 관련이 큰 연구개발의 집약도가 무역패턴 결정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주장도 나타났다. 선진국의 경우 연구개발 집약적인 산업에서 수출이 높다는 연구가 이를 지지한다. 또한 무역패턴의 결정요인을 수요구조에서 찾아 각국의 수요구조의 유사성이 클수록 공산품 무역의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수요이론도 있다. 이렇게 기술적 차이와 수요를 강조하는 주장들은 요소부존이 비슷하고 소득수준이 유사한 국가들 사이의 공산품 무역을 설명하는 데에 장점을 지닌다.

한편 버논 등의 제품주기론은 상품도 연구개발 이후 시장에 나와 성장하고 성숙한 뒤 쇠퇴하는 일련의 라이프사이클을 겪고 이에 따라 산업의 생산입지가 국제적으로 달라지므로 국제무역과 투자 패턴도 변동된다고 주장한다.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도 상품이 태어나 자라고 늙는 순환과정에 따라 국내에서 생산, 판매하는 단계가 있고, 외국에 수출하는 단계가 있는가 하면 외국에 직접 투자하여 그곳에서 생산된 제품을 제3국이나 본국에 다시 수출하는 단계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들을 배경으로 1980년대 이후에는 크루그만으로 대표되는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이 국제무역이론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이들은 전통적 이론의 비현실적인 가정을 집어던지고 대신 규모의 경제, 수확체증, 그리고 불완전경쟁 등을 가정하여 산업내무역과 같은 국제무역의 현실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시장이 독점적 경쟁이고 기업이 생산을 늘일수록 평균비용이 떨어진다면 기업은 제품차별화 등으로 경쟁할 것이다. 이 경우 국제무역이 이루어져 시장이 확대되면, 스미스가 오래전 지적한 바와 같이, 규모의 수익이 발생하여 비용과 가격이 떨어질 수 있고, 이는 동일한 산업 내에서 더욱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게임이론 등까지 동원하여, 국가가 무역을 제한하고 자국산업을 보조해서 내셔널 챔피언(national champion) 기업을 키우는 경우 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도 있다는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 논의로도 이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의 국지화와 지역적 집적의 이점을 강조하여, 동일산업내의 기업들이 한 곳에 몰려있는 경우 기술, 시장, 학습 등의 외부성이 발생하고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요즘 대인기인 산업 클러스터(industrial cluster)에 관한 주장으로도 발전되고 있다.

따분한 국제무역 이론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도록 하자. 웬만한 국제경제학 교과서들은 모두 복잡한 그래프와 함께 여러 이론들에 대한 소개에 여러 장을 할애하고 있을 터이다. 이 이론들이 국제무역의 발생과 패턴, 국제가격의 결정에 관해 고심하고 있는 반면, 세계화를 둘러싼 논의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역시 국제무역이 가져다주는 효과, 혹은 경제적 이득일 것이다. 아래에서는 국제무역이 경제성장 그리고 각국의 요소가격 등에 미치는 영향들을 생각해보자.

***국제무역으로 모두가 행복해지기**

무역 덕분에 이전에는 소비하지도 못하던 상품을 값싸게 소비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면 그 이득은 자명할지도 모른다. 그 옛날 한국에서는 바나나도 얼마나 귀한 과일이었던가. 국제무역 덕분에 아프리카인들도 에이즈 치료약을 사용할 수 있고 미국인들도 중남미의 값싼 커피를 스타벅스에서 즐기고 있지 않는가. 아, 생명을 생각하면 에이즈 치료약을 그렇게 비싸게 파는 것이 옳은 일인지 커피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댓가를 받고 있는지 하는 질문은 접어두기 바란다.

비교우위에 기초한 이론들에 따르면, 각국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부존요소를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재화에 특화하여 수출하고 희소한 요소를 사용하는 재화를 수입하면, 당연히 양국 모두의 후생은 늘어나야 한다. 어렵게 말하면 양국의 생산가능곡선보다 소비가능곡선이 더 확대되어 선택의 여지가 넓어지고 싼 가격에 상대국의 재화도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국내산업이 독점적으로 소수의 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면 무역개방으로 인한 경쟁의 확대는 보다 다양한 제품을 값싼 가격에 공급하도록 만들어 소비자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그밖에도 국제무역은 온갖 효과들을 발생시킨다. 경제학을 공부해 본 독자라면 이름도 외우기 힘든 무슨무슨 정리들이 기억날지도 모르겠다. 우선 헥셔-올린 모델에 따르면, 특화로 국제무역이 발생하면 서로 다르던 각국의 상대적 생산요소의 가격도 균등하게 된다는 생산요소가격 균등화 정리가 있다. 더 나아가 이른바 스톨퍼-사무엘슨(Stolper-Samuelson) 정리는 한 재화의 상대가격이 상승하면 그 재화에 집약적으로 사용되는 생산요소의 명목가격이 재화 가격보다 더 크게 상승하고 다른 생산요소의 명목가격은 하락하여, 집약적인 요소의 소득이 더욱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정말로 국제무역이 이런 효과들을 가져다 줄까? 자본이 집약적인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스톨퍼-사뮤엘슨 정리가 이야기한 대로 국제무역으로 인해 노동자가 피해를 입는다는 우려가 높았고 따라서 보호주의의 목소리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한 가정과 모델에 기초한 이러한 주장이 복잡한 현실에 바로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봐도 후진국에서 자본의 요소가격에 대한 상대적 임금이 무역의 확대 덕에 선진국 수준만큼 높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무슨무슨 정리들은 차치하고, 국제무역의 단순한 후생효과만으로 무역자유화를 지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무역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전세계가 얻는 후생의 이득이 연간 4천억 달러에 이른다는 계산도 있지만, 어느 나라치고 국제무역을 일부러 완전히 가로막고 있는 나라가 있는가.

문제는, 장기적인 경제발전을 생각할 때 시장을 마냥 열어젖히고 무역을 자유화하는 것이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어느 후진국도 내내 농사만 짓고 앉아 있고 싶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업제품들은 애초에 선진국과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이 문제 아닌가. 비교우위든 뭐든 현재의 여건이 안된다면 세금이든 뭐든 써서 어떻게든 수입을 제한하고 외국 제품과의 경쟁을 막아서라도 국내의 산업을 발전시키려 노력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한때 유행했던 이른바 유치산업 보호(infant industry protection)와 수입대체산업화(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의 논리였다. 이런 주장은 국제무역을 통해서는 후진국은 더욱 정체될 뿐이라고 주장한 종속이론 등과 결합되어 많은 개도국들에서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프레비쉬와 종속이론**

15세기 이래 내내 식민지로 시달리다 독립 이후에조차 서구 자본의 신식민지로 전락한 고난에 찬 남미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들 사회의 정서가 이해될 듯하기도 하다. 혹자는 남미의 실패를 파퓰리즘(populism)의 실패로 호도하지만, 정작 남미를 얼마나 잘 아느냐고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숙명처럼 반복되는 종속과 위기의 굴레, 혼란과 혁명 그리고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구의 속박을 끊고 자주적인 발전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종속이론과 수입대체산업화의 열망이 싹텄던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핵심에 서있던 인물이 바로, UN의 라틴아메리카 경제위원회(ELCA)를 주도했고 UNCTAD의 사무총장이기도 했던 아르헨티나의 프레비쉬이다. 프레비쉬와 싱거는 이미 1950년대부터 선진국과의 무역으로 인해 개도국은 점점 손해를 보게 된다는 프레비쉬-싱거 가설을 주창하였다. 개도국이 비교우위가 있는 농산물 등 1차산품의 교역조건이 선진국의 공업제품에 비해 장기적으로 악화되어 무역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선진국에게만 돌아가고 개도국의 후진성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공업제품은 더 소비하려고 할 것이므로 국제시장에서 1차산품의 상대가격은 공업제품에 비해 더욱 떨어진다는 것이다.

프레비쉬는 날카로운 이론가인 동시에 보기 드물게 정열적인 활동가였다. 그는 1964년 제 1 차 UNCTAD 개최에 앞서, 흔히 프레비쉬 보고서라 불리는 ‘발전을 위한 새로운 무역정책을 위하여(Towards a New Trade Policy for Development)’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여 개도국의 발전을 위해, 개도국 제품에 대한 특혜관세제도와 선진국 자금의 개도국 융자 등 선진국의 무역정책의 전환을 역설하였다. 그는 또한 1968년 UNCTAD 2차 회의를 맞아 선진국의 원조를 늘이고 개도국의 발전을 위한 무역의 촉진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적으로 새로운 경제질서를 요구하는 제 3세계의 연대로 이어졌고, 부분적으로 국제무역협상에 반영되기도 했다.

그의 이론은 결코 선진국을 쫓아가지 못하던 저개발국의 현실과 심각한 수출 회의주의(export pessimism)를 대변하는 것이었고, 중심(center)-주변(periphery)으로 분할된 세계경제와 후진국의 종속을 설파했던 종속이론의 근거를 제공했다. 선진국으로 잉여가 흘러들어감에 따라 제 3세계가 정체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내부적 비판과 논쟁을 거치며 발전해 갔고 프랑크, 아민, 도스 산토스 등 온갖 다양한 종속이론들이 꽃피었던 것이다.

물론 프레비쉬의 주장의 가정과 현실에 관해서는 많은 비판과 논란이 존재한다. 최근 개도국의 공업화와 공업제품 수출증대는 이 낡은 주장을 무색하게도 하지만, 여전히 공업제품 내에서도 개도국의 상품의 교역조건은 악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아무튼, 만약 개도국이 선진국과 교역할수록 잃을 것이 더 많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답은 역시, 국제무역을 제한하고 스스로 공업을 키우는 것이었다.

***유치산업보호와 수입대체산업화**

역사적으로 남미를 위시한 여러 개도국들은 수출을 통한 공업화 대신 선진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대체하는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키는 성장전략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왔다. 남미 국가들은 대공황 이후 농산품 가격 폭락과 구조적인 교역조건의 악화를 배경으로 이미 1930년대부터 경공업 중심의 수입대체산업화를 국가주도로 실시했다. 이러한 전략은 전쟁을 배경으로 어느 정도 지속되었지만 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국내수요는 결코 크지 않았고 공업제품의 규모의 경제도 이룩할 수 없어서 정부의 재정악화로 이어지고 말았다.

사실 경공업의 수입대체산업화는 시작일 뿐이며 그 생산을 위한 자본재에 대한 또 다른 수입대체산업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남미 국가들은 1950년대 경에는 중화학 공업이나 수출가능한 상품 그리고 내구 소비재 중심의 수입대체 산업화를 추진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더욱 많은 자본이 필요했는데, 국내저축 부족과 재정의 악화로 인해서 주로 해외로부터의 자본유입에 기초하여 이를 충당하였다. 대외적으로는 관세나 환율의 고평가 등 수입을 억제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수단과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지원이 함께 사용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멀게는 이미 19세기 자국의 산업발전을 위해 보호무역을 주장한 리스트 등의 전통과도 맥이 닿아 있었다. 유치산업 보호론자들에 따르면 경제성장에서 중요한 산업은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간 동안 관세 등을 통해 보호되어야만 한다. 그 논리는 명확하다. 보호를 받는 동안 기업들은 생산을 증대시켜 내부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학습효과를 통해 생산성도 증가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호해서 아이가 튼튼히 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아이가 어른과 싸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보호를 통해 국내에서 먼저 경쟁력을 키웠던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남미의 수입대체산업화는 어느 정도의 성과에도 성공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였다. 과도한 보호는 부패를 낳았고 노동자계층의 요구는 어려움을 증가시켰으며 수입대체 산업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곡물가격의 고정 등으로 농민에 대한 억압과 심각한 반발로 이어졌다. 또한 외자도입으로 인한 외채부담이 가중된 반면, 여전히 주요 자본재는 선진국에 의존해야 했고 국내수요의 한계로 인해 인한 생산성 정체는 심각해졌다. 유치산업보호가 말이 된다고 해도, 어떻게 유치산업을 골라내고 얼마나 오래. 어떤 방식으로 보호해야 하는가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남미나 많은 개도국의 정부들은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부재했던 것이다. 남미의 수입대체산업화의 실패에 대해서는 수많은 설명이 있지만, 특히 동아시아와는 다른 제도적 차이가 주목받고 있다.

***발전경제학의 발전, 혁명과 반혁명**

지금에 와서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발전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의 역사를 보면 유치산업보호라든가 수입대체 공업화와 같은 주장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회의 그리고 소련 등 사회주의권의 급속한 발전을 배경으로 1960년대까지는 발전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개도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자유주의적 처방보다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간섭주의적 처방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또한 지긋지긋한 서구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과도 관련이 있었다. 2차대전 이후 독립을 이룩한 대부분의 개도국들에서는, 독립의 과정에서 자주적인 민족해방 세력들이 힘을 얻었고 이들의 사상은 경제적으로도 국가의 개입에 기초한 자립경제 건설의 노력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지금도 면면히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지만 발전경제학 이론에서도 개도국 경제는 선진국과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구조주의적(structuralist) 사고가 주류를 차지했고, 이와 관련이 있는 불균등발전론이나 빅푸쉬(Big Push)론 등 다양한 논의들이 만발하였다.

물론, 로스토우 등 몇몇 서구의 주류경제학은 제 3세계 국가가 국제분업에 참여하고 자유무역이나 해외투자를 통해, 즉 선진국들이 밟아 왔던 패턴을 따라가면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구 학자들은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숨기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지금의 선진국들도 관세 등을 통한 국내시장 보호와 외국에 대한 공격적 간섭주의에 기초해서 경제발전에 성공한 것을 보면, 개입주의 전략이 더욱 이해할 만도 하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개입 없이 시장에만 의존해서 성공한 케이스가 과연 몇이나 있는가.

실제로 전후 인도는 야심차게 소련을 모방하며 관리되는 자립경제를 추진하였으며 앞서 보았듯 남미 국가들도 생산재를 중심으로 내수시장을 육성시켜 성장을 이룩하려고 했다. 이렇게 내수시장 중심의 수입대체적 산업화전략이 개도국의 경제발전전략으로서 5, 60년대에는 오히려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발전경제학 내부의 혁명적인 흐름으로 부를 만도 했다. 그러나 이후 역사의 전개는 이러한 흐름이 전복되고 시장주의가 득세하도록 하였는데, 누군가는 이를 발전경제학의 반혁명(counter-revolution)으로 부르기도 했다.

***수출, 혹은 무역자유화의 이득?**

그 정서와 주장은 이해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남미의 무역보호와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은 거의 파산하였고 종속이론 등의 주장도 역사적 유물이 되고 말았다. 실제로 70년대까지는 남미의 경제성장도 상당했다는 점에서 여러 이해집단 사이에 휘둘렸던 정부의 능력부족과 80년대 초반 부채위기로 인한 혼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을 실패의 더욱 큰 요인으로 지적하는 이도 있다. 어떻든 남미의 실패는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수입대체산업화로 침몰한 남미와 수출지향적 산업화로 성공한 동아시아를 대비하면서 수출지향 혹은 무역자유화의 이득을 신주단지처럼 받들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믿음은 무척이나 튼튼해서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경제학자의 97%가 자유무역을 지지한다고 보고된다.

수출지향 혹은 무역자유화가 성장에 가져다주는 영향은 언뜻 생각해봐도 명백하다. 우선, 신무역이론에 비추어보면, 국내시장이 좁은 나라들은 넓은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생산을 확대하는 것을 통해 좁은 수요기반을 극복하고 규모의 경제를 얻어서 생산성과 효율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또한 수입의 확대를 통해서 선진국의 기술이 체화된 자본재가 도입된다면 보다 발전된 기술을 사용하고 ‘실행을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에 기초해서 국내의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른바 선진적인 ‘아이디어의 흐름(flows of ideas)’이 국내에 유입되면 국내의 기술발전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제성장이 촉진된다는 것이다.

또한 보호되는 국내시장에서 대충대충 사업하는 것에 비해서, 세계시장에서 활발히 경쟁한다면 생산의 효율성이 더욱 촉진될 것이다. 나아가, 국내시장의 개방은 외국기업들과의 경쟁을 더욱 촉진하도록 만들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결국 수입대체산업화의 문제점들은 고스란히 무역자유화의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입대체산업화에 비해서 적극적인 수출지향적 공업화가 부족한 외화의 확보에도 더욱 도움을 주며 따라서 심각한 국제수지위기를 겪는 가능성도 줄여줄 수 있다.

말로만 대충 얘기했지만, 이 모든 논의들은 복잡한 수학모델, 특히 최근의 신성장이론 등에 통합되어 무역자유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결과를 보일 수 있다. 이론이나 모델로는 무얼 못하겠는가. 요약하면 무역자유화와 국제무역 확대는 이론적으로 볼 때, 생산성을 상승시키고 또한 중요한 생산요소인 자본을 심화시켜서 결국은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국제무역의 정치경제학**

더욱 흥미로운 주장은 국가의 정책을 분석하는 정치경제학적 논의이다. 아 여기서 정치경제학이 뭔가 ‘진보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며 그 이름도 신정치경제학(new political economy)이라 불린다. 한국에도 지극한 관심을 보였던, 지금은 IMF의 수석경제학자인 앤 크루에거와 국제무역의 대가 바그와티 등은 70년대 초반부터 수입보호가 부패나 이른바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 activity) 혹은 더 나아가, 직접적으로 비생산적인 이윤추구(DUP: directly unproductive profit-seeking) 행위를 심화시켜 경제의 비효율로 이어진다고 역설한 바 있다.

관세나 비관세 등을 통해 수입을 보호한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뭔가 특권이나 지대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지대를 추구하기 위해 비생산적 노력들이 나타나 경제는 악영향을 받으며 그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특히 남미나 아프리카처럼 정부가 깨끗하지 못하고 사회의 부패가 심각한 경우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물론, 보호가 아니라 자유화 자체도 지대추구와 부패를 발생시킨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긴 하다.

이러한 부류의 논의들은, 국가가 규제대상에게 포획되어 규제가 오히려 강력한 집단의 이해만을 대변한다고 주장한 스티글러 등 시카고학파의 이론들과 힘을 합쳐,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을 단호하게 반대하는 소위 ‘국가의 실패(state failure)’ 주장으로 만개하였다. 케인즈나 후생경제학자 등이 ‘시장의 실패’에 기초하여 국가개입의 정당성을 설파한 반면, 이들은 국가의 실패가 시장의 실패보다 더욱 심각하므로 개방, 자유화, 규제완화, 민영화 등으로 국가가 아예 경제에 손을 떼는 편이 더 낫다고 목청을 높였던 것이다. 이러한 국가의 정치경제학은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워싱턴 컨센서스의 든든한 이론적 지주였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주장들은 오른쪽으로 너무 나가버린 것에 틀림없다. 정보경제학 등의 발전과 함께 최근의 논의들은 추를 다시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경제학의 이 모든 논의들은 언제나 국가를 뭔가 시장의 외부에서 간섭을 하거나 하지 않는 존재로 파악하여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시장의 작동과 자본의 축적 자체가 다른 제도들, 특히 국가에 항상 의존한다는 점을 애써 무시하는 듯 하다.

다시 무역이야기로 돌아오자. 아무튼 남미의 실패와 동아시아의 성공이 웅변하듯 무역정책의 승부는 거의 끝난 것으로 보인다. 관세 등 보호를 줄이고 무역을 자유화한다면 국내의 비생산적인 지대추구행위를 방지할 수 있고 수출로 인한 여러 이득으로 경제가 더욱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었던 것이다.

***다시 실증연구로**

이러한 주장을 배경으로 세계화의 80년대에는 종속이론의 시대가 가고 무역자유화가 새로운 교리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많은 개도국들이, 때로는 국제기구의 압력과 국내적으로는 총칼에 기초한 폭력 속에서 거대한 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수입대체산업화의 파산과 국가개입에 대한 회의를 배경으로 발전경제학에서도 반혁명의 흐름이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때 잘 나가던 종속이론가 카르도소는 시장주의자로 변신하여 브라질 대통령이 되기도 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러한 논의들도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흔히 주장되는 국제무역의 이득도 이론적인 가정에 따라 그리 뚜렷하지 않을 수 있으며,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나아가 역사적으로도 그랬지만 수출촉진과 국제무역의 완전한 자유화는 같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지대추구행위에 관한 이론은 내부적으로 상당한 난점을 안고 있다. 보호나 지대의 창출 자체가 꼭 비생산적인 행위나 부패로 이어져야 할 필요는 없으며, 그 비용이 얼마나 큰지 측정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의 국가관 자체는 너무 편협해서 경제발전을 위해 조정(coordination)이나 단체행동(collective action)을 촉진하는 국가의 긍정적인 역할을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오히려, 80년대 이후 자유화에 기초한 경제발전전략의 파산과 동아시아의 경험에 대한 재조명, 그리고 신제도경제학 등의 발전을 배경으로, 시장의 근본적 한계와 국가의 긍정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스티글리츠 등의 포스트 워싱턴컨센서스(post-washington consensus)는 정확하게 이런 흐름을 대변하고 있다. 하기는 신무역이론조차 자국산업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더욱 난감한 의문은 현실이 과연 이들의 주장과 일치하는가 하는 것이다. 동아시아가 수출지향적 공업화로 성공한 것은 역사적 현실이지만, 과연 한국과 같은 나라가 국제무역이 완전히 자유로운 체제였던가.

아무튼 경제학자들은 이론적인 주장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결코 아니다. 무역자유화에 관해서도 수많은 실증연구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전반적으로는 자유화의 이득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듯 하다. 그러나 자본자유화의 경우와 비슷하게 그 결과에 대해 비판적인 논의들도 제기되고 있다. 다음 연재에서는 무역자유화에 관한 실증연구들과 그 한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p.s. 참고문헌은 방대한 관계로 아직 정리중이라 이번 회는 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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