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시간에 을지문덕, 김유신,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리며 신이 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한 몸을 던져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 섰고 또 귀신 같이 적을 무찔러 승리를 안겨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계사 시간에는 우리는 거의 할 말이 없었습니다. 세계 속에서의 우리나라 좌표는 거의 약소국(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도 없고 거의 중국과 일본, 특히 왜구의 침략에 늘상 당하고만 산 나라) 아니면 중국의 속국 정도로 알려져 왔습니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로서의 우리나라 위상은 참담할 정도였고 나라라고 할 수도 없었죠.
일본의 속국이 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을사 오적이라고 하며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권중현, 이근택 등 을사 조약에 날인을 한 소위 매국노들이죠. 이 중에서 특히 이완용은 매국노의 대명사로 불리울 만큼 국민의 증오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이에 대비되는 충신, 애국자로는 이준 열사나 민충정공이 뽑히곤 했습니다.
필자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누구는 어릴 때부터 매국노가 되려고 노력했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매국노가 되고 말았을까요. 소질과 욕망 검색에서 자세히 나오겠지만 이완용은 권력욕이 대단한 반면 극히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투철한 국가관보다는 자기의 힘을 보태는 방향, 아주 큰 권력체에 업혀서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범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 해야 안심이 되는 그런 팔자입니다. 그러자니 힘있다고 생각되는 로서아에 붙었다가 더 큰 힘이 있어 보이는 일본에 붙어 자기의 위세를 부린 것이죠.
한편 민충정공은 법대로, 법의 규정대로, 법에 절대 복종하는 타입으로서 여기서 법은 국가 또는 왕가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배운 대로, 군자의 갈 길을 한점 의심없이 묵묵히 당연히 가고야마는 그런 사람입니다. 좀 융통성이 없고 붙임성이 없어서 인기는 없겠지만 이런 분의 의사결정은 항상 공공의 입장에서 공공을 생각하며 정당한 판단을 하므로 위정자로서는 최고의 덕목을 갖춘 것이죠. 요즘 말좀 잘한다고, 토론 좀 잘한다고 남의 약점을 잘 꼬집는다고 인기가 오르고 또 그런 인기인들이 모여 국가를 다스려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옛 사람들이 새삼 그리워지는군요.
이제 이 두사람의 라이벌을 소개합니다.
***이완용(李完用, 1858∼1926)**
조선 말기 문신·친일파. 경기도 광주(廣州) 출신.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다. 1882년(고종 19) 증광문과에 급제, 주교·규장각대교·검교·홍문관수찬·동학교수·해방영군사마 등을 지냈으며 86년 육영공원에서 영어와 신학문을 배웠다. 87년 박정양을 수행하여 미국에 건너갔다가 귀국한 뒤 부승지·이조참의·전보국회판·외무참의 등을 지내고 88년 주차미국참찬관·대리공사를 지냈다. 90년 돌아와 대사성·교환서총판·중추원의관 등을 지내고 96년 아관파천 때 이범진과 함께 친러파로서 외부대신에 올라 학부대신·농상공부대신서리를 겸했다.
1901년 궁내부특진관으로 있다가 친일파로 변신, 1905년 학부대신이 되어 일본의 을사보호조약 체결 제의를 앞장서 지지, 체결하게 하였다. 그해 12월 의정대신 겸 외부대신서리를 지내고 1907년(순종 1) 의정부참정으로 의정부를 내각으로 고쳤으며,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추천으로 내각총리대신·궁내부대신서리를 겸했다.
헤이그밀사사건 뒤 일본의 지시대로 고종에게 양위를 강요, 순종을 즉위하게 하였다. 이에 전국에서 항일의거가 일어났으며, 1909년 이재명의 칼에 맞아 부상당했다. 10년 8월 22일 총리대신으로 정부전권위원이 되어 한·일합병조약을 체결, 일제에게 나라를 넘겨주었다. 그 공으로 일제에 의해 백작이 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고문이 되었다. 3·1운동 때 독립투쟁을 비난하며 경고문을 발표하는 등 매국행위를 계속했다.
***민영환(閔泳煥, 1861∼1905)**
조선 말기의 문신·순국지사. 서울 출생. 호조판서 겸호(謙鎬)의 아들이다.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키자 주미전권대사를 거부하고 낙향하였다. 96년 4월에는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특명전권공사로 참석하였는데, 이때 중국 상하이(上海)와 일본·미국·영국·네덜란드·독일·폴란드 및 러시아를 횡단하는 등 해외파견사절로는 최초로 세계일주를 하였다. 다음해 1월에도 영국·독일·러시아·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를 특명전권공사로서 방문, 러시아 황제에게 고종의 친서를 전달하고 각국 외교사절을 예방하였다. 두 차례의 해외여행으로 서구문물제도와 근대화 모습을 직접 체험하였다.
독립협회를 적극 후원하고, 일본의 내정간섭에 항거하여 친일내각과 대립하였기 때문에 한직인 시종무관으로 좌천당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어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의정대신 조병세와 함께 조약의 파기를 상소하였으나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죽음으로 항거할 것을 결심, 본가에서 자결하였다. 그의 충절을 기려 나라에서는 후하게 예장하라는 명령과 함께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대신을 추증하였고, 의절의 정문도 세웠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시호는 충정(忠正).
< 출처 : 야후! 백과사전 >
자, 그럼 또 이 두사람을 한번 비교해 보도록 할까요.
***1) 이완용**
생년월일 : 1858년 7월 16일 (음력 6월 7일) 유시
운명요소 : 무오년 기미월 신해일 정유시(戊午年 己未月 辛亥日 丁酉時)
***2) 민영환**
생년월일 : 1861년 8월 30일 (음력 7월 25일) 오시
운명요소 : 신유년 병신월 신해일 갑오시(辛酉年 丙申月 辛亥日 甲午時)
***1. 소질 검색**
1) 이완용(戊 -> 己 -> 辛 <- 丁)
이완용에게는 세 가지 소질이 있습니다. 첫째는 신<-정 (辛<-丁: 사주용어 편관)의 관계인데 이 관계는 매우 겁이 많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권력과 힘에 의해서 매사를 판단하고 그러므로 권력과 힘을 얻기 위해 분투노력하고 환경 적응에 있어서는 카멜레온처럼 효율적으로 변신도 가능한 성질입니다.
두 번째는 신<-기 (辛<-己 : 사주용어 편인)의 관계입니다. 보통 편인이라고 하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깊은 이해력, 영오력이 있고 독창적이고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고 합니다만 이 신<-기의 관계는 가장 떨어지는 정도의 소질로서 맥을 짚는 데 서투르므로 엉뚱한 아이디어에 힘을 쏟고 심취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무->신 (戊->辛 : 사주용어 상관)의 관계입니다. 이 상관이라는 것은 외향적이며 독재적이며 또한 집단 성과를 꼭 자기 이득으로 챙기기 때문에 공공의 직위에는 맞지 않는 성질입니다. 이득을 위한 궤계, 기모권변, 모험투기, 창의력 등의 사용이 모두 자기 몫으로 향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일을 크게 그르칩니다. 특히 무->신의 관계는 배수진까지 치고 악착같이 노력하는 형이므로 나라까지 내 이익의 항목에 넣고 설친 것입니다.
2) 민영환(辛 <- 丙 -> 辛 <- 甲)
첫 번째 신<-병 (辛<-丙 : 사주용어 정관)의 관계입니다. 원래 정관이라고 하면 법에 꼼짝 못하는 당위성의 소질입니다. 아무리 어린 사람이 말을 해도 그것이 법에 맞고 옳으면 그대로 굴복하는 그런 소질입니다. 객관 공정하고 자기 것 양보해서 공정하게 만드므로 요즘 세상에서 보면 손해막심한 소질이죠. 정직 찾고, 예법 찾고, 규칙 찾고 도무지 내 한몸 속박 당하느라고 정말 힘든 성질입니다. 결국 나라가 결딴나는 것을 이런 사람이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죽음으로 그 잘못된 뜻을 알리려고 한 것이죠. 특히 신<-병의 관계는 법에, 국가에 절대복종하는 형이므로 죽음도 불사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신<-갑 (辛<-甲 : 사주용어 정재)의 관계입니다. 정재라고 하면 근검절약, 정직, 순서규정 다 지키고 실제로 땅 밟으며 경작을 해야, 성과를 올려야 딱 그만큼 밥 먹여 주는 어떻게 보면 깍쟁이 같은 소질입니다. 요즘 세상에서 보면 한마디로 융통성 없이 꽉 막혔다고 하겠죠. 특히 신<-갑의 관계는 이런 성질을 남한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니 오히려 남한테는 관대한 반면 자기나 자기 소속 조직에게 압박을 가하는 성격이 지나치다는 것입니다. 과도한 자기간섭형이라고나 할까요. 이 성질이 또 아마 자살로 이끌었을 확률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신-신 (辛-辛 : 사주용어 비견)의 관계입니다. 비견이라고 하면 자아의식과 자존심이 매우 큰 성질입니다. 그리고 자기 사람, 부하를 비상히 잘 돌봅니다. 상사에 항거하면서까지 부하를 챙기므로 어떻게 보면 좀 손해를 보는 듯한 성질이죠.
3) 소질 종합 판단
이완용은 겁이 많은 성질에다가 권력욕이 있으므로 자기보다 훨씬 큰 세력인 일본(처음에는 로서아에서 일본으로 옮기는 카멜레온적, 기회주의적 변신)을 등에 업고서 궤계다변, 엉뚱한 아이디어 등으로 입신한 반면 민영환은 법치, 일편단심, 자기 희생 등의 정신으로 나라가 잘못되는 것을 항거하여 자살했습니다.
***소질표**
***2. 욕망 검색**
1) 이완용(신해일에 기미월)
첫째 욕망은 명예욕인데 이것은 남을 이용해서라도 도장 하나로 사람을 부리고 싶은 명예욕입니다. 특히 천간 기(己)에 투간(천간에 나타난 것) 되어 있으므로 그 명예욕은 동기부여가 되어 철저한 명예욕이 됩니다. 두 번째 욕망은 권력욕인데 이것도 천간에 정(丁)으로 나타나 있어 그 권력욕은 끝없이 동기부여되어 소질로서 세상에 출세로서 표현되었습니다. 그 다음 사업욕으로서 이것은 소질로서는 표현되지 않아 잠재의식 속에서 무한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물욕, 재산욕으로 일생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2) 민영환(신해일에 병신월)
이 욕망은 자존심과 자아의식을 최대로 살리면서 자기실행하는 욕망과 또 하나는 자기 표현, 자기 창조 욕망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 표현 욕망은 투출이 안 되어 잠재의식 속에 들어가 있으므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취미 생활 등에 나타나곤 했을 것입니다.***3. 본능 검색*****4. 개성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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