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선일씨 피랍-피살 사건을 계기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개혁이 도마 위에 올랐다.
8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국방위원들은 NSC에 대해 김선일씨 피살 사건에 대한 무기력함을 질타했지만, NSC사무처장을 겸직하고 있는 권진호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NSC는 현장의 여러 대책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모니터링 수준의 역할밖에 못하는 매뉴얼상의 시스템이 돼 있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의원들의 더 거센 질타를 받기도 했다.
***"NSC의 권한과 책임에 심각한 문제의식"**
고 김선일씨의 피살사건에 대해 NSC의 대처를 질타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열린우리당 김명자 의원은 "고 김선일씨 사건을 정부가 아무리 변명한다고 해도 결국은 무한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변명의 여지가 궁색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전예방과 사후대처가 모두 부실했다고 진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에 있어서 좀 더 적절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참여정부는 NSC를 확대 개편했다"면서 "이런 상태에서 국민들은 NSC가 좀 더 자기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진호 사무처장은 "NSC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국가의 대처 방향을 정리해서 관련 대책을 책임있는 기관에 지침으로 내리고, 대통령 보좌기관으로서 대통령의 지침이 있으면 관련부서에 전달하는 것"이라며 "사건이 난 뒤부터 NSC는 현장의 여러 대책을 운영하는 데 있어 모니터링 수준의 역할밖에 못하는 매뉴얼상의 시스템이 돼 있다"고 해명했다.
권 처장은 그러면서도 "솔직히 말씀드려서 NSC는 안보상임위를 열어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고, 대통령에게 지침을 드리고 안보상임위에서 방향 설정을 하는 역할을 다 했다"며 "실질적인 것은 대책 본부에서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에 대해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파병과 관련해선 NSC가 파병의 지역과 규모를 결정하는 등 국방부나 외교부보다 훨씬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며 NSC의 책임 회피성 발언을 강하게 질타했다.
박 의원은 "김선일씨 피살사건은 독자적으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고 파병이 지연되고 혼선이 일면서 초래된 상황"이라고 주장한 뒤 "NSC가 모니터링할 수밖에 없다고 한 데 대해 권한과 책임이라는 면에서 대단한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
***임종인 "파병은 국제사회 약속이 아니라 미국과의 약속 아닌가"**
고 김선일씨가 피납된 사실이 알려진 직후 NSC의 대응을 두고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권진호 사무처장과 설전을 벌였다. '파병방침 불변'이라는 결정을 시급히 했어야 됐냐는 것이 초점이었다.
임 의원은 "알자지라 방송이 나간 몇 시간 뒤에 파병방침이 변함없다고 나오니 교민과 이라크 사람들도 많은 걱정을 했다"고 지적하자, 권 처장은 "우리로서는 테러리스트의 요구조건 받아들여서 파병을 안하겠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고, 순수하게 평화재건 목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라고 얘기하면 그 사람들(테러단체)도 재고하지 않겠냐는 기대도 있었다"고 답했다.
이에 임 의원은 "24시간내에 파병을 철회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는데, 파병한다고 발표하는 것은 '우리는 너희들과 교섭을 안한다. 김선일씨를 죽여라'는 것 아니냐"며 "NSC가 국회에 와서 사망 후 대책을 거론했다는 것도 NSC나 외교안보팀의 방침이 '죽어도 상관없다. 세계적으로 파병을 알리겠다'는 말밖에 더 되냐"고 매섭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권 처장도 이에 질세라 "동의할 수 없다. 김선일씨의 무사귀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만일 당시에 테러단체의 파병 철회라는 요구조건에 대해 한국정부가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고 상상했을 때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이나 정부의 대외 신뢰성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임 의원은 "국제사회의 약속이 아니라 미국과의 약속이 아닌가"라며 "미국이 국제적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가"라고 물었고 권 처장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약속"이라고 맞받았다.
임 의원은 "우리나라의 군대가 UN깃발아래 가 있나"라고 물었고 권 처장은 "유엔 결의하에 구성된 것"이라고 답했다. 임 의원이 재차 "아프가니스탄에 간 것과 같다는 말이냐"고 묻자 권 처장은 "대테러전쟁차원에선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진호 "몸이 세 개라도 모자를 지경"**
김선일씨 사건을 계기로 의원들은 NSC의 부처간 조정능력에 대해 질타한 뒤 전체 외교안보시스템의 개편을 요구했다. 그간 NSC에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돼 있고 정보도 독점하고 있다며 외교부나 국방부 등과 갈등설도 숱하게 흘러나온 바 있다.
청와대에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청와대에서 분리해,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이 사무처장을 맡도록 하는 입법예고를 해놓은 상태다. 현행은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이 NSC사무처장을 겸직하도록 돼 있고, 외교안보보좌관이 안보상임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권 처장은 "몸이 세 개라도 모자를 지경이라 현실화시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운영에 있어서는 국가안보보좌관으로 NSC의 전반적인 분야에 대해 총괄 지휘하는 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NSC 사무처가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권 처장은 "NSC사무처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임무도 있지만, 외교안보상임운영위 임무를 지원하게 돼 있는 것이 기본 임무"라며 "상임위원장인 내가 사무처의 지원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NSC는 외교안보시스템의 옥상옥"**
그러나 이 같은 체제 개편 방침에도 불구하고 NSC의 과도한 권한 집중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집중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NSC가 너무 의욕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다 보니 국방부나 통일부, 외교부의 고유 업무에 중복이 되고 있다"며 "안보시스템의 옥상옥(屋上屋)으로서 작용하려는 것이냐"고 NSC의 권한 집중을 비판했다.
같은 당 권경석 의원은 "헌법의 고유 기관인 국방부와 국정원, 외교부는 고유 권한이 있는데 이것을 컨트롤 타워 입장에서 통제할 때, 잘 되면 원할한 조정과 통제가 되겠지만 대개는 책임회피의 결과가 초래된다"며 "고유영역에 대한 피해 의식과 책임 회피 성향으로 전반적인 국가안보체제의 혼선이 빈발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의원도 "이번 사건으로 우리 외교안보시스템이 얼마나 부실했는가가 확인됐다"며 "시스템과 운영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재발할 수도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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