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실증연구, 계량분석과 그 한계**
앞에서 살펴본 이 모든 이론들은 물론 이론일 뿐이다. 현실과 맞지 않는다면 도대체 이론이나 모델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자본자유화가 정말로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도 결국엔 현실에서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론의 주장을 현실에서 '실증적으로(empirically)' 확인하기 위해 '계량경제학(econometrics)'의 기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률과 같은 설명하고자 하는 변수가 어떤 변수들에 의해 얼마나 설명이 되는지 여러 데이터를 사용하여 통계적인 회귀분석(regression analysis)을 수행하는 것이다. 물론 설명변수들은 이론과 관찰에 기초하여 선택되고 모델에 관심 변수를 추가하고 다른 변수들을 통제한(control) 다음, 그 변수가 통계적으로 유의한지(statistical significance) 아닌지를 탐구한다.
무엇이 경제성장을 결정하는가 하는 것은 가장 오랫동안 모든 경제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질문이다. 90년대 이후 경제학자들은 성장에 중요한 변수들을 계량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기울여 왔다. 어느 학자는 언젠가 논문에 '나는 방금 4백만 번의 계량분석을 하였다(I Just Ran Four Million Regressions).'라는 제목을 달기도 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분석들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을 결정하는 표준적인 거시변수는 초기의 국민소득 수준, 국내투자율, 교육의 정도, 법질서와 같은 제도의 질 등을 포함한다. 물론 온갖 변수들을 체크해볼 수 있다. 혹자는 종교나 젓가락 문화를 고려하기도 했으며, 적도에 가까운 열대지방 나라일수록 성장률이 낮다는 주장은 그럴 듯하다. 최근에는 성장률 대신 소득수준을 이용하여 제도의 질, 지리적 조건(geography), 무역개방 등 성장의 보다 근본적인 결정요인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성장률에 대한 실증연구는 흔히 백여 개 이상 국가의 데이터를 이용한 이른바 크로스컨트리 횡단면 분석(cross section analysis)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성장률, 투자율, 교육 등 몇 십 년간의 변수를 국가별로 평균하여 성장률이 어떤 변수들에 의해 잘 설명되는지 회귀분석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여러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선 각 나라들을 비교하는 것이므로 시간적인 변화를 고려하기 어렵다. 또한 설명하고자 하는 변수가 설명변수에도 반대 방향의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내생성(endogeneity)'의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제도의 질은 성장률에 중요하지만, 선진국일수록 제도가 발전하므로 그 인과관계가 복잡한 것이다. 나아가 모델에 포함되지 않는 숨겨진 요인이 설명변수와 피설명변수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학자들은 설명변수와 관련이 있으나 피설명변수에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소위 도구변수 등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그리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간적인 변화의 정보를 포함하는 패널 데이터를 이용한 분석이나 설명변수에 피설명변수의 과거의 값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를 분석하기 위한 동학적 패널(dynamic panel) 분석 등 다양한 기법들이 발전되고 경제성장을 설명하는 실증연구에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많은 계량연구들은 데이터 측정의 문제라든가 그 인과관계가 블랙박스로 남아 있는 등의 여러 난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수량적인 계량분석도 질적인 사례연구 혹은 제도적 연구 등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엄청난 데이터와 복잡한 기법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밥벌이인지도 모르지만, 실은 이 실증분석이란 것도 자주 자의적이며 데이터를 마사지하거나 현실을 이론에 끼워 맞추려 하는 경우도 있다고 미리 고백해야겠다. 경제학적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겐, 실증연구들의 결과는 주의깊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제 1라운드: 뜨거운 감자, 자본자유화와 거시적 계량분석**
학자들은 먼저 금융시장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통합되었는지, 금융세계화 자체에 대한 질문을 오래전부터 던져왔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펠드스타인과 호리오카의 1979년 논문은 국제적인 금융시장의 통합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제한적이라고 주장하여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선진국들조차 국내투자는 국내저축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해외 자본이 국내의 투자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따라서 자본이동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 이후에는 국내투자와 저축의 연관정도가 차츰 낮아지고 있다고 보고되며, 국내의 기업저축과 투자의 연관을 분석하거나 각국의 금리격차를 실증적으로 살펴보는 등 다양한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자본자유화에 관한 열띤 논쟁과 국제금융위기를 배경으로 자본자유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실증연구들이 만개하고 있다. 계량분석 연구들을 살펴보기 전에 몇 가지를 먼저 지적해두자. 우선 자본계정 자유화 혹은 금융개방 정책 그 자체와 현실의 자본유입을 구분해야 할 것이다.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금융시장의 빗장을 열고 자유화를 추진하더라도 외국자본이 유입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자본은 오히려 중국과 같이 상당한 규제가 존재하는 국가에 더 많이 투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연구들은 개방정책 그 자체보다는 성장잠재력이나 시장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자본유입에 더욱 중요함을 보여준다. 또한 현실의 자본흐름 자체도 직접투자나 포트폴리오 투자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으므로 각각의 자본이동의 영향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경제학의 역사를 보면, 자본자유화에 대한 실증연구는 무역자유화를 다룬 연구에 비해서는 상당히 더디게 발전하였으며 90년대 후반 이후에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역시 자본자유화가 보다 최근의 현상이라는 점 외에도 자본자유화라는 변수 자체를 측정하기 어렵다는 분석상의 여러 난점들에도 기인하는 것이다. 많은 연구들은 자본자유화 정책을 나타내는 지표(index)로서 각국의 국제수지 통제에 관해 매년 발표되는 IMF의 보고서 '외환제도와 외환통제에 관한 연간보고서(Annual Reports on Exchange Arragnements and Exchange Restriction)'에 기초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각국의 자본수지, 무역수지, 그리고 환율통제를 0/1의 더미변수(dummy variable)로 측정하며, 학자들은 이 변수를 앞서 말한 표준적인 성장모델에 추가하여 계량을 돌린다.
세계의 여러 국가들을 포괄한 이 분야의 최초의 연구는 아마도 그릴리와 밀레시 페레티의 1995년 논문일 것이다.(Grilli and Milesii-Ferretti, 1995) 그는 IMF의 자본수지 개방에 대한 더미변수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분야의 논쟁을 촉발한 것은 역시 1998년 발표된 로드릭의 논문이었다.(Rodrik, 1998) "누가 자본자유화를 필요로 하는가?(Who Needs Capital Account Convertibility?)" 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소논문에서 그는 IMF의 자본개방 더미변수를 사용하여 100개가 넘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한 크로스컨트리 분석을 통해 자본자유화가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통제변수로 초기 국민소득, 제도의 질 등을 사용한 이 연구는 자유화가 성장이나 투자를 촉진시킨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후 많은 연구들이 동일한 변수를 사용하여 자본자유화의 성장효과를 측정하였는데 대부분 로드릭과 같은 회의적인 결론을 보고하여, 자본자유화의 실증연구가 학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결과는 주류경제학자들에게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것이었으며 이후 이를 둘러싼 논쟁이 점입가경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실 IMF의 0/1 더미는 자본통제의 강도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으므로 학자들은 좀더 나은 자본자유화 변수를 개발하고자 노력하였다. 여러 노력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학자가 아닌 한 정치학자에 의해 제시되었다. 퀸은 IMF 보고서의 각국에 대한 보고를 자세하게 읽은 후 5단계의 서로 다른 정도를 갖는 자본자유화 변수를 구성하였다.(Quinn, 1997) 그는 이 새로운 지표를 경제성장률에 관한 계량모델에 추가하여 자본자유화가 경제성장률을 높여준다고 보고했고 주류경제학의 이론을 구해냈다. 그의 연구는 자본개방의 수준 대신 자본개방의 수준의 변화분을 자본자유화의 변수로 사용하였으며 기법적으로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듯 하다. 후에 에드워드도 이 지표를 써서 자본자유화의 이득을 보고하여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각 연구들은 대상기간과 국가들 그리고 모델에 들어가는 변수들도 약간씩 다르다는 것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한편 퀸의 발전된 자본자유화 지표는 대상국가가 적고 몇 개년의 자료만 공개되어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IMF의 지표나 보고조차 실제로 현실에 나타난 자본통제의 정도와 무엇보다도 통제의 집행(enforcement) 정도를 정확하게 보여주지 못한다는 난점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경우 언제나 개방된 나라로 보고되지만 현실에서 싱가포르 정부는 자본유출입을 제한하기 위한 무척 다양한 비공식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며, 같은 정도의 통제로 보고되더라도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에 비해서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자본통제가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다.(Epstein et al., 2003) 자유화 자체를 정확히 측정하기는 결코 쉽지 않지만, 최근에는 퀸이 구성한 것과 같은 발전된 정책변수와 IMF의 더미변수, 나아가 현실의 자본유입 모두를 사용하여 초기의 연구들을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제 2라운드: 조건과 경로?**
사실 자본자유화의 경제적 효과를 단순히 살펴보기만 하는 것은 썩 흥미롭지 않다. 똑같은 정책이라도 다양한 경제적, 제도적 조건들에 따라 효과가 다를 수 있으며, 효과가 있다고 해도 과연 어떤 경로를 통해서 그것이 나타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보다 최근의 연구들은 자본자유화가 만약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면 과연 어떠한 조건 하에서, 그리고 어떠한 경로를 통해 나타나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 주류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자유화는 소득수준이 높고 제도가 더욱 발전한, 그리고 금융부문이 더욱 발전한 나라에서 더욱 큰 이득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계량 연구들도 이에 즉시 화답하였다. 그 해석이 쉽지만은 않지만 경제학자들은 흔히 계량모델에 정책변수와 조건변수를 곱한 상호작용(interaction) 변수를 추가하여 이를 연구한다. 상호작용 변수가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면 그 조건하에서 정책의 효과가 뚜렷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에드워드는 퀸의 지표와 1980년대의 데이터에 기초해서 자본자유화가 효과가 개도국보다 선진국에서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자본자유화가 생산성도 높여준다고 보고했다.(Edwards, 2001) 한편 클라인과 올리베이는 자본자유화는 금융시장을 발전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이를 통해 결국 경제성장을 촉진한다고 주장하였다.(Klein and Olivei, 1999)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결과가 별로 튼튼하지(robust) 못하다는 것이다. 아르테타 등은 에드워드가 사용한 것과 매우 비슷한 데이터를 사용하여, 에드워드가 보여준 1980년대의 결과는 남미가 부채위기를 겪었던 80년대 초반 시기에 의해 큰 영향을 받으며 그의 결과는 실증적 근거가 취약함을 보여주었다.(Arteta et al., 2001) 반면 이들은 암시장 환율프리미엄(black market premium)으로 측정되는 거시경제의 왜곡정도가 낮을수록 자유화의 성장효과가 뚜렷함을 보여, 이를 질서있는 자본자유화(orderly capital account liberalization)를 옹호하는 증거로 제시했다. 최근 클라인의 연구는 자본자유화의 성장효과는 중진국에서만 나타남을 보이고, 성장효과와 소득수준 간에 역 U-자 형태의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Klein, 2003) 그밖에도 오도넬은 클라인과 올리베이와 유사한 모델과 데이터에 기초하여 자본자유화가 금융발전과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는 모호하다고 계량적으로 반박하였다.(O'Donnel, 2001)
아마도 그 회의적인 결론으로 인해 워킹페이퍼로도 공개되지 않았지만, 세계은행에 근무하고 있는 크라이의 1998년 논문은 이미 이러한 비관적인 결과를 잘 보여준 바 있다.(Kraay, 1998) IMF의 자본개방지표, 퀸의 지표 그리고 현실의 자본유입 등 다양한 데이터를 사용한 그의 계량연구는 자본자유화가 성장에 도움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초기 국민소득, 제도의 질, 금융의 발전 등 다양한 요인들도 자본자유화가 성장을 촉진하는 전제조건이 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많은 변수들이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거나 심지어 음의 부호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자본자유화가 성장을 촉진하는 경로와 관련해서도 크라이는 자유화가 투자를 촉진시키는 증거는 없으며 이러한 결과는 로드릭 등 다른 연구들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경제적 조건들 위에 사회정치적 맥락 등 다양한 변수들을 조건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자유화의 이득을 맹신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정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찬다는 흥미로운 논문에서 자본통제도 국가개입의 중요한 요소이므로 국가개입이 성공하는 조건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Chanda, 2001) 사회적으로 상대적으로 통합된 국가에서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서 성공적인 경제정책을 펴기가 쉽지만, 사회가 분할되어 갈등이 심하다면 정부의 경제개입이 각 집단의 요구에 따르기 쉽고 정부개입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소득분배 등 다양한 사회적 변수를 자본통제의 조건으로 포함하여 계량분석을 했는데, 인종적으로 더욱 통합된 국가에서는 자본자유화가 아니라 자본통제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결과는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매우 뚜렷했다.
***제 3라운드: 연구의 발전 그리고...**
이러한 혼란스러운 결과는 연구의 발전을 더욱 자극하였다. 몇몇 연구자들은 크로스컨트리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서 시간적인 변화를 살펴볼 수 있고, 인과성과 생략된 변수 등의 문제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되는 패널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은 2002년 발표된 에디슨 등의 연구이다.(Edison et al., 2002b) 이 연구는 유입된 국제적 자본스톡을 변수로 사용한 동학적 패널(dynamic panel) 분석도 포함하여 다양한 계량분석을 시도하였으나, 회의적인 결과만을 확인하였다. 이들은 퀸과 IMF의 변수도 함께 사용하여 다양한 계량분석을 시도하였는데 자본자유화가 성장을 촉진하는 뚜렷한 결과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들은 IMF의 워킹페이퍼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계량분석에서는 복잡한 요인들이 충분히 고려되기 힘들기 때문에, 이것이 자본자유화를 반대하는 논리가 될 수 없지 않은가라고 언급하고 있다.
필자도 최근 자본자유화의 효과를 체계적으로 살펴보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퀸의 자본자유화 변수 코딩(coding) 방법에 따라, 그의 연구보다 훨씬 많은 국가와 시기를 포괄하여 각국의 자본개방 정도를 변수화했다. 100여개가 넘는 국가들을 표준적인 계량모델로 분석한 크로스컨트리 연구에서는 자본자유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를 검증할 수 없었다. 투자나 투자의 효율성과 같이 흔히 자유화가 성장을 촉진한다는 경로도 확인되지 않았으며, 금융의 발전이나 무역개방, 암시장 환율프리미엄 등 거시적인 왜곡 교정 등 현재까지 제시된 어떤 조건들도 자유화가 성장을 촉진하는 전제조건이라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특히, 기존의 주장과는 반대로 제도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그리고 선진국일수록 자본자유화의 성장효과는 오히려 낮아졌는데, 이러한 결과는 별로 언급되지 않지만 이미 크라이나 에디슨 등의 연구에서도 부분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사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뭔가 긍정적인 '조건(preconditions)'을 찾아 헤매 왔지만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발상을 전환한다면 자본자유화가 성장의 필요조건은 아니며, 제도가 효과적이라면 국가개입을 성공적으로 만들 것이므로 오히려 자본통제가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자율적이고 능력 있는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개입이 성장을 촉진했던 한국과 같은 발전국가의 경험이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필자는 발전국가와 관련이 있는 사회제도적인 변수라고 할 수 있는, 인종적 유사성, 균등한 토지분배 그리고 국가관료제의 특징 등이 부분적으로 자본통제가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건이 됨을 발견했다. 나아가 고부채 모델(high debt model) 국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금융, 자본통제에 기초하여 성장에 성공하였고, 자본시장의 개방이 경제위기로 이어졌다는 주장에 기초하여 필자는 기업들의 부채비중이 높을수록 오히려 자본통제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한편, 퀸 등은 다시 그들의 변수와 패널 모델을 사용하여 패널 분석을 시도하여, 지난 연구와 일관되게 자본자유화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하고 있다.(Quinn et al., 2001) 하지만, 여전히 자본시장 개방의 정도가 아니라 그 변화분을 변수로 사용했으며 그 기법도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또한 자본자유화의 성공조건도 함께 분석하였는데, 초기 소득, 금융의 발전 등 어떠한 조건들도 자본자유화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성공적인 조건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도 패널분석에서는 혼합된 결과를 얻었다. 고정효과(fixed effects)를 고려한 패널분석에서는 자유화가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뚜렷했지만 이를 고려하지 않은 모델에서는 그 효과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는 불확실하지만 기존의 논의와는 달리, 자본자유화가 효과가 있다면 무척 단기적이며 아마도 자본유입으로 인한 지속되기 어려운 단기적 투자 붐과도 관련이 잇는 것으로 유추된다.
아무튼 최근에는 IMF 경제학자들의 연구조차 자본자유화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없으며 오히려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회의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Edison et al., 2003) 2003년 발표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프라사드 등의 연구는 최근까지의 실증연구들을 검토한 이후, "체계적으로 증거를 살펴보면 금융세계화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강력한 증거는 없다."라고 보고한다. 그들은 또한 스스로 실제적 자본유입을 변수로 사용하여 금융세계화 혹은 국제적 자본의 유입이 개도국의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는 뚜렷하지 않으며 소비의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즉, "금융통합(financial integration)이 성장을 (이론적으로) 촉진한다고 해도, 그 효과가 유의하다는 뚜렷하고 강력한 경험적 증거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자본유입의 증가가 경제성장률과 뚜렷한 관계가 없다는 이들의 계량연구의 결과를 보여준다.
그래프 1. 자본유입의 증가로 측정된 금융개방의 정도와 일인당 실질경제성장률의 관계 (1982-1997)
자료: Prasad et al.(2003)
물론 이들은 부패 정도가 낮을수록 직접투자유입이 증가한다는, 자본자유화의 이득을 위해 어떤 수용능력(absorptive capacity)이 중요하다는 연구를 인용하지만, 정작 많은 연구들의 결론은 회의적으로 보인다. 그 결론이 맘에 들지 않는 연구는 빛을 보기 쉽지 않은 국제기구 내의 정치학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1998년 사장되었던 크라이의 비운의 연구에 비해 이들의 연구가 발표된 것은 아마도 자본자유화에 대해 점증하고 있는 최근의 비판과 우려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실증연구들에 관한 소개는 아마도 독자들에겐 이론보다도 더욱 따분했는지도 모르겠다. 경제학이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럴 때는 필자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그러나 이들이 바로 이론을 지지하는 경험적인 '증거'로 제시되기 때문에 논쟁과 결과에 대한 이해는 어려워도 필수적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주류경제학자들이나 IMF 등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면, 거시데이터를 사용한 실증연구들은 여러 전제조건을 고려하더라도 자본자유화와 국제적 자본의 유입이 장기적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뚜렷한 증거를 보여주지 못하며 모호한 결과(mixed results)만을 보여준다.(Eichengreen, 2002) 아래 표는 최근까지 나타난 기존의 연구들을 정리한 것이다. 구체적인 참고문헌은 첨부된 필자의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표 1. 자본자유화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중요한 거시적 계량연구들
((o): 통계적으로 유의함, (x): 유의하지 않음)
Study
Country/
period
Index
Effects
Preconditions and channels
Grilli and Millesi Ferretti (1995)
61/ 1966-89
IMF dummy
Growth (x)
Quinn (1997)
64/ 1960-89
Quinn's
Growth (o)
Rodrik (1998)
More than 90/ 1960-89
IMF dummy
Growth (x)
Investment (x)
Institutions (x)
Kraay (1998)
64/ 1985-97
Both and capital flows
Growth (x)
Investment (x)
Institutions (x)
Financial development (x)
Chanda (2001)
82/ 1975-95
IMF dummy
Growth (x)
Higher ethnic fragmentation (o)
Edwards
(2001)
59/ 80's
Both
Growth (o)
TFP (o)
Higher level of growth (o)
Arteta et al. (2001)
59/ 80's
Both
Growth (x)
Lower black market premium (o)
O'Donnel (2001)
66/ 1971-94
IMF dummy, stock of foreign asset and liabilities
Growth (x)
Financial development ( x)
Quinn et al. (2001)
76/ 1960-98
Quinn's
Growth (o)
Level of growth (x)
Emerging market democracy (bad)
IMF (2001)
57/ 1980-99
IMF dummy, external asset
Growth (x)
Investment (o)
Financial development (o)
Institutions (x)
Klein and Olivei (2001)
69/ 1976-95
IMF dummy
Growth (o)
Financial development (o)
Financial development (o)
Bekaert et al. (2002)
95/ 1980-97
Equity market opening date
Growth (o)
Investment (o)
Financial development(x)
Edison et al. (2002a)
89/ 1976-95
Both
Growth (o)
Edison et al. (2002b)
57/ 1980-2000
Both, flows
Growth (x)
Level of growth (x)
Institutions (negatively o)
Klein (2003)
85/ 1976-95
Both
Inverse-U shaped relation of growth level
Prasad et al.(2003)
76/1982-97
Capital flows
Growth (x)
Volatility of consumption (o)자료: Lee, Kang-Kook (2004).
물론 새로운 데이터와 기법을 도입한 연구와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거시적 계량분석 대신 미시적인 실증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다음 연재에서는 FDI 등 각 형태별의 국제적 자본이동의 효과를 살펴본 연구들과 최근 각광을 받으며 등장하고 있는 미시적인 계량분석들을 간략히 소개하고, 길었던 자본자유화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짓도록 하자.
<참고문헌>
본문의 모든 참고문헌들은 아래의 논문에 나와 있음.
Lee, Kang-Kook. (2004), "Does Capital Account Liberalization Spur Economic Growth, or Do Controls?: Focusing on Conditions and Channels" mimeo.
www.chol.com/~lyova/study/lee-calgrowth.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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