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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 자리에 나왔다"

서울 광화문의 1만여 추모 촛불, "파병을 철회하라"

"무엇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이 자리에 나왔다"
서울 광화문,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 없는 촛불들이 또다시 켜졌다.

26일 밤 7시 30분경 시작된 추모 촛불집회는 전국 10여곳에서, 서울에서만 연인원 1만5천여명(경찰추산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동안 '파병철회' 구호와 함께 진행됐다. 교보문고 앞에서부터 종각까지 6차선 도로를 꽉 메운 시민들을 둘러싸고 44개 중대 4천4백여명이 배치됐으나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탄핵저지에 1백만 촛불이 필요했다면, 파병철회엔 2백, 3백만이 필요"**

이날 추도 묵념으로 시작한 집회에서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손세실리아씨의 '장미를 노래하고 싶다'는 추모시 낭송에 이어 추도사들이 뒤따랐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언제까지 우리가 미국 꼬붕역할을 해야하나. 한번 한 약속은 어쩔 수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국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오만과 망발"이라며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 나서야 할 때"라고 호소했다.

민주언론운동연합 최민희 사무총장은 "우리 이 정도로는 파병철회 못한다. 탄핵 저지하는데 1백만 촛불을 들었다면 파병엔 2백, 3백만개의 촛불이 필요하다"고 동참을 호소한 뒤, 대통령에게 "노 대통령. 반미면 어떻냐고 했던, 탄핵세력에게 맞서겠다고 했던 기개는 다 어디갔냐"며 따져물었다.

최 총장은 이어 "열린우리당, 70%가 운동권 출신이라 더 부끄럽다. 파병철회를 당장 당론으로 안 정할 거면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해 집회참여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최 총장은 언론에게도 "이 땅의 언론인들은 세무조사는 그렇게 반대하더니 왜 파병철회로 정부 압박 안하나"라며 "조선일보는 '이 정도 희생 몰랐냐'고 한다. 조선일보 기자는 알았나. 우린 몰랐다. 잘 아는 당신들이 이라크로 가서 죽으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연설했다.

***"김선일씨 추모·파병철회 촉구 삼보일배 할 것"**

청소년 단체 '희망'의 공인권(19)씨는 "이게 정말 '나라' 맞냐"고 되물었다. 그는 "미선이효순이 때 아무말 없던 정부가 미국이 파병하라면 즉각 한다"며 "교과서에서 아무리 정의를 말하면 뭐하나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세상부터 먼저 만들어 달라"고 분개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홍상욱씨는 '김선일씨 추모 파병철회 촉구 삼보일배'를 제안했다. 홍 회장은 "28일 낮12시 서울대를 출발해 29일 오후 1시 국회에 도착해 파병철회 편지를 전달하고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30일에는 광화문에서 출발, 청와대까지 삼보일배를 하고 편지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테러리스트한테 굴복할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정말로 큰 테러리스트에 굴복하고 있지 않냐고 되묻고 싶다"며 "미국이 그동안 남미, 베트남, 아프간, 이라크에서 벌여온 잔악무도한 테러와 침략, 또 그에 동참한 오욕의 역사의 대가를 바로 김선일씨가 치른 게 아닌가"라고 '보복적 파병찬성'론을 경계했다.

***"저, 살고 싶다는 절규만 보면 가슴 한 구석이 탁 막혀"**

가수 안치환씨의 공연, 김선일씨의 마지막 절규가 담긴 영상물 방영, 김씨의 넋과 전쟁에 희생된 이라크 민중들의 넋을 기리는 이삼헌씨의 진혼무가 이어지며 숙연한 분위기속에 집회 참석자들은 곳곳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안치환씨가 "우린 모두 김선일 씨가 죽은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있다. 안타깝고 서러운 김씨의 죽음 앞에 추모의 노래를 바친다"며 '꽃상여타고', '총알받이' 등을 혼신적으로 부르자 집회장의 열띤 분위기가 고조됐다.

도저히 울분을 참을 수 없어 참석했다는 주부 김경자(55)씨는 "내가 저 '살고 싶다'는 절규만 보면 가슴 한 구석이 탁 막혀온다"며 "타국 땅에서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겠나. 그 심정을 상상하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도대체 이 정부는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눈물을 훔쳤다.

작년부터 계속 파병반대 집회에 참가해왔다는 대학생 이경진(23)씨는 '대통령 하야'까지 주장했다. 그는 "더 이상의 인내는 없다"고 잘라 말한 뒤,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을 배신해왔던 대통령이었지만 탄핵위기 때, 사람들은 엄청난 고뇌 속에 다시 그에게 기회를 줬다. 그럼에도 끝까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남은 것은 하야 뿐"라고 단호히 말했다.

파병반대국민행동과 반전평화국민행동은 30일 저녁6시 종로에서 이라크 '이라크 주권 이양 국제 행동의 날' 집회를 열고 7월3일 저녁7시에는 '범국민 추모의 날' 행사를 열어 추도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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