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최근 경제 관련보도는 '위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출은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내수는 한 겨울마냥 꽁꽁 얼어붙어 있어 경제회생이 과연 가능한 지 하루에도 몇 년씩 자문해 보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기의 한국경제를 매일 진단하고 있는 국내 신문사의 사정은 어떠한가. 경영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힘든 터널을 지날 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빗나간 경기 전망, '내핍'만이 살 길**
국내 최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은 지난해 발표한 2004년도 광고 경기 전망 보고서에서 "2004년 광고시장은 최소 전년수준에서 최대 4.5% 성장한 6조 8천억원∼7조 1천억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제일기획은 "2004년에는 내수침체, 개인부실, 카드부채, 청년실업, 정치 불안, 사회갈등 등 경기불안 요인이 내재돼 있으나 미국 등 세계경제의 점진적 회복과 국내 경제의 점진적 활성화로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올해 1월부터 여지없이 빗나갔다. 실제로 한국광고주협회가 매월 초 발표하는 광고경기실사지수(ASI) 전망치는 지난해와 비교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각 신문사는 지난해부터 누적되기 시작한 광고수입 감소 현상이 지속되고, 특히 예년에는 6월쯤에야 찾아오던 광고 비수기가 4월로 바짝 앞당겨지자 당황하는 기색마저 보이고 있다.
'춘궁기'가 여름으로 이어지자 각 신문사들의 '내핍'도 본격화되고 있다. 메이저 신문사인 '조중동'은 5월 들어 휴대폰 통화료와 사무비품을 아껴 쓰자는 움직임이 일더니 이제는 비상경영체제마저 선언한 상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내부 반발도 만만찮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대기업들도 비용절감에 나선 마당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신문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그렇지만 이로 인해 저하되는 구성원들의 사기 저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무형의 소실분은 장기적으로 조직 전체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감면·감부·임금삭감 이어 구조조정까지**
'내핍'으로 견딜 수 있는 '조중동'에 비해 일부 신문사들은 보다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주수입원인 광고시장이 위축되면서 경영자금의 유동성이 경색되자 어쩔 수 없이 지면의 양을 줄이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메이저 신문사들은 예년 여름 광고 비수기에 단행하던 감면을 보름 정도 앞당겨 오는 7월 초부터 단행하기로 했고, 경향·한국·한겨레 등은 이보다 앞서 이달 말쯤 감면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일부 신문사는 이미 감부에 들어간 곳도 있다. A신문사의 경우 지난해 모두 46만여부를 발행해 왔으나 올해 3월부터 35만여부로 무려 10만부 이상을 대폭 감부했다. B신문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꾸준히 감부를 단행, 36만여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사정이 악화되면서 급여·상여금 등의 임금삭감에 이어 구조조정을 제안하는 신문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일보 회사측은 일찌감치 임금 20% 삭감과 1백명의 인력 구조조정안을 노조측에 제안해 놓고 있다. 회사측은 또 지난 3일 오는 7월 중 기자조판제를 도입하기 위해 한국일보 서울경제 스포츠한국 사원들을 재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가 하면, 12일에는 서울 평창동 인쇄공장의 야간휴업을 결정, 대규모 구조조정 임박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이밖에 지난 2001년부터 상여금을 포함해 모두 2백50%의 임금이 체불돼 있는 상태다.
무료신문 <AM7>의 창간으로 위기돌파를 노렸던 문화일보는 오히려 무료신문이 적자를 발생하면서 발목이 묶여 '10월 현금 유동성 위기'설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회사측은 이달 중순 노조측에 하반기 상여금 4백%의 삭감을 제안해 놓고 있다. 문화일보도 한 때 내부에 구조조정설이 나돌아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5개 무료신문의 각축으로 광고매출 저하, 가판판매 부진 등 '이중고'를 겪고 있는 스포츠지들의 사정은 더욱 열악해 지고 있다. 스포츠지 가운데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해온 스포츠서울의 경우 회사측이 노조와의 협의 없이 이달 지급돼야 할 상여금을 체불하면서 '파업 불사'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학림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일부 경영진은 회사 경영사정이 어려워지면 근본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임금·인력 등에 손을 대는 못된 습성을 보이고 있다"며 "언론노조는 이러한 움직임을 단호히 배격하고 6월~7월 신문개혁투쟁 기간 동안 '신문개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신문시장의 위기와 관련해 지난 24일 신학림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의 내용이다.
***"줄도산 시간문제, 원인제거에 전체 언론계 나서야"**
- 요즘 신문업계에 위기감이 팽배하다.
"지난 97년 12월 외환위기 때 민주노총이 집계한 정리해고 통계내용을 보니 신문사들이 급여삭감, 인력 구조조정 등에 있어 제일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당시 신문 종사자들은 '억' 소리 한번 못 내고 당하기만 했다. 그래도 그 뒤에는 신문시장이 생존 가능한 구조로 돌아서 그나마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장은 극단적으로 왜곡돼 있고, 기업들도 이를 알고 철저히 차별정책을 쓰고 있다. 이대로 가면 마이너 신문사들이 구조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나.
"한마디로 신문시장이 '돈 놓고 돈 먹기 판'이 됐기 때문이다. '조중동'이 바로 원흉이다. 그들은 빚을 내든, 뒷배경의 기업에서 차입을 하든, 아니면 축적자본을 이용하든 간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비해 마이너 신문사들은 이러한 능력조차 없다. 신문을 팔면 팔수록 손해나는 장사로 만든 그들이 지금의 위기를 불러왔다."
- 원인에 대한 처방전은 무엇인가.
"병세가 워낙 깊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신문시장에서 법이 지켜지고, 기본 질서가 확립돼야 한다. 우선은 기존 신문고시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 그래야 큰 신문은 큰 신문대로, 작은 신문은 작은 신문대로 규모의 살림이 가능해 진다. 더불어 마이너 신문사는 사장 이하 간부, 평사원들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신문시장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들이 문제의식을 갖지 않으면 더 이상 희망은 없다."
- 임금삭감, 구조조정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이미 '조중동'을 제외한 신문사들은 겨우 생계가 가능할 정도의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여기에 경영진은 노동조건을 더 낮추려 하고 있다. 노동조건의 저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 뒤 그래도 생존의 가능성이 없을 때 취해야 할 마지막 선택이다. 경영진은 돌아봐야 한다.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해 자신들이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 경영상황이 악화되면서 신문업계의 보수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갖고 있던 50마저 잃을 수 없으니 체제 수호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 신문사 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나를 방어하려다 전체를 잃을 수 있다. 지금 상황을 안일하게 대체해서는 안된다. 우선, 자기 회사 경영사정을 속까지 뒤집어 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1년제인 임기를 2년으로 늘려야 한다. 더불어 우리사주조합 등이 있는 신문사는 스스로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임기제인 전문경영인 한 사람이 모두의 미래를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 끝으로 산별노조위원장으로서 올해 임·단협을 어떻게 이끌 생각인가.
"'진짜 살려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언론계에는 이미 투쟁을 통해 활로를 모색한 사업장이 여럿 있다. 경인방송(iTV)은 정통부의 SBS 눈치 보기에 맞서 정면으로 싸운 덕분에 계양산 송신소 문제를 해결했고, 인천일보는 구성원들의 단결로 옛 중앙정보부 출신 사장을 몰아내고 경영정상화에 매진하고 있다. 경인일보 또한 지방토호인 사주의 보수화 준동을 적절히 견제해 나가고 있다. 회사가 어려워지는 이유에는 경기 침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제도, 왜곡된 환경을 정상화하는 게 곧 살 길임을 알려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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