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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 셰익스피어 못지않은 불후의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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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심청전, 셰익스피어 못지않은 불후의 명작"

<인터뷰> 오는 7월 국제셰익스피어학회 참가 김주현 교수

영문학자 김주현 박사(숭실대 명예교수)가 오는 7월 21일부터 영국 스트래트포드에서 열리는 31차 국제 셰익스피어학회에서 심청전을 불후의 명작으로 소개하는 '훠린(Foreign) 셰익스피어'논문을 발표한다. 김교수는 지난 20여년간 계속 셰익스피어 학회를 통해 동양인의 입장에서 셰익스피어 희곡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해 왔는데 이번 논문 또한 그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진1> 오는 7월 영국 국제셰익스피어학회에서 우리 고전 '심청전'의 문학성에 관해 발표할 예정인 김주현 숭실대 명예교수@프레시안

영국의 이 학회에서는 세계 각국 셰익스피어 학자들의 논문을 모아 선별하여 발표하고 이를 책으로 엮어내는 일을 해왔다. 김주현 교수는 그동안 13편의 셰익스피어 연구 논문을 발표했으며 1994년 영국 캠브리지 D.S. 브루어 출판사에서 '셰익스피어에 대한 동서양 문화권 시각의 에세이'(Bi-Cultural Critical Essays on Shakespeare)가, 2001년 영국 올림피아 출판사에서 '각국 문화를 통한 셰익스피어 이해'(Shakespeare Across Cultures)가 출판되었다.

2년에 한번씩 열리는 국제 셰익스피어 학회는 각국에서 4백명 내외 학자들이 참관하고 50편 내외의 연구논문이 발표된다. 여기서 발표되는 논문은 각국에서 접수된 것 가운데 심사회의를 통과한 것에 한한다. 논문발표 경력이 있는 노장그룹과 참관만 하는 소장학자들이 모이지만 서툰 질문에는 답변도 얻지 못할 경우가 있다.

동양인으로 영어권의 문학을 논하는 일은 동양과 서양문학 전반에 통달해야 하고 고급한 영어가 구사돼야 하기에 셰익스피어학회에서 발표하거나 참석하는 동양인 학자는 김교수가 국내 영문학자로서는 유일하다. 한국에 비해 일본의 영문학계는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 여러 명이 번갈아 발표하고 40명 정도씩 열심히 참석하며 일본학계에 대한 선전도 적극적이다. 그 외 인도에서도 더러 발표한다.

6월 초여름 하루 김교수와 만나 심청과 페리클레스, 오셀로에 나오는 데스데모나의 정조관념, 리어왕과 딸들 사이에 일어난 효의 문제, 서양 요정과 한국의 무당등 그의 논문에 언급된 종횡무진의 문학적 사고에 접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진 2> 김주현 교수

심청전은 모두 아다시피 우리나라 최고 고전중 하나다. 오리지널 판소리 심청전에서 시작해 연극 영화 소설 발레 오페라 미술 외국인이 하는 연극, 심지어는 패러디 쇼까지 끊임없이 여러 가지 형태로 등장하며 그 다양성은 대단하다.

조선조까지 한글을 무시해서 우리말로 쓴 문학적 작품이 그 수가 많지 않지만 그중 이름모를 작가로부터 심청전같은 수작이 생겨난 것은 천만 다행한 일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해주려는 불교적 신앙의 힘,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의 효도라는 유교적 테마, 용궁에서 펼쳐지는 도교적 환상의 세계 등 한국인의 생활에 배어있는 유불선의 삼요소가 무리없이 잘 펼쳐진다.

또 봉사라는 기구한 운명이면서도 어두운 비극적 상황으로만 치닫지 않는 유쾌한 유머어와 등장인물의 구성이 있다. 이런 것들이 심청전을 깊이있게 하고 많은 현대에도 사람들 이 재능껏 이를 각색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주현 교수는 심청전을 셰익스피어의 비희극 페리클레스와 비교하며 (현실에서 죽지만 사실은 죽지 않는) 불멸의 신화적 요소가 갖춰진 불후의 명작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시잔3> 국립창극단의 2004년 '심청전' 공연 장면

'셰익스피어 희곡에 대등한 동양의 문학작품으로 나는 한국의 심청전을 듭니다. 일본에서는 노(能)를 거론하지요. 조선에서 우리말로 쓴 작품을 무시하고 기껏 한시만 많이 남기다가 심청전이 어떻게 남았어요.

난 우리 고전 중에 심청전이 가장 훌륭하다는 생각이에요. 도덕적인 것을 넘어서 그 구성의 입체감이 정말로 훌륭합니다. 기독교 모르고는 서양것 연구 못하듯이 불교 유교 도교 모르고는 동양을 연구 못하는 거지요.'

김주현 교수는 일본 도야마(富山)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영문학으로 돌아 85세인 지금까지 영국 버밍검대학을 거점으로 셰익스피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인이기에 유교 불교 도교를 알고 기독교, 우리말에 한문과 일어, 영어와 라틴어 독일어를 공부했기에 동서양 비교가 가능했다. 그것은 단순한 비교문학의 차원을 넘어선 일 같아 보인다.

1919년 생인 그는 광복 당시 우리나라에서 영어교원자격증을 가진 단 3인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이승만 정부에서 영어통역을 하기도 했다. 현재 영국의 버밍검대, 미국 일리노이대, 일본 도야마 대학에 초청되어 가끔씩 셰익스피어 특강을 하고 있다.

'심청전은 비현실과 현실의 융합입니다. 불사(不死)의 신화만 다루면 종교로밖에 풀 수 없지만 현실과 우리가 보지 못하는 저 세상의 환상이 잘 융합되어 있어요. 파우스트나 단테의 신곡도 두 세계를 융합한 것이고 셰익스피어의 희곡중 4개가 다 두 개의 세계를 혼합시켜 조화롭게 꾸민 것이지요. 우리 문학 작품 중 이렇게 허와 실이 잘 조화된 것도 없습니다.'

<사진4> 김주현 교수

군주 페리클레스는 안티오쿠스왕에게 쫓겨 망명, 귀국중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났다. 아내 사이사가 딸을 낳은 직후 죽은 것처럼 보여 바다에 던져지지만 그녀는 떠내려가다 소생하여 다이아나 신전의 신관이 된다. 딸과도 생이별, 딸은 양육처에서 쫓겨나 해적에게 넘겨지지만 후일 천우신조로 페리클레스와 만나게 되고 다이아나 여신의 도움으로 아내와도 만나 가족이 재결합한다는 줄거리다.

'셰익스피어의 말기 작품들은 다 허와 실을 조화되게 했지만 심청전의 허와 실은 페리클레스에서 우연하게 형성되는 허와 실보다 더 분명하게 조화되어 움직입니다. 심청전의 허는 용궁의 초자연세계, 실상은 용궁 전후 심청이 인당수 빠지기 전까지와 나와서 아버지 찾기까지지요.'

이번 논문은 외국인이 잘 모르는 심청전을 설명하며 어떤 점에서 훌륭한 작품인가를 언어나 구조적 면이 아닌 포맷만으로 분석해 본 것이다.

"'효'가 심청의 주제입니다. 그러한 효도를 하면 (눈을 진짜 뜨고 청이도 잘된다는) 훌륭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러한 결말은 내재적인 힘, 다시 말해 심청전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가호와 도교가 하나의 힘으로 인도해서 되는 것입니다. 허와 실의 조화, 불멸의 신화적 요소, 그 점이 불후의 작품 요소가 됩니다. 페리클레스도 가족이 헤어졌다 초자연적 힘에 도움을 받아 아내와 딸과 합칩니다. 단테의 신곡, 파우스트,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나 겨울이야기도 허와 실의 조화이지요. 햄릿이나 오셀로의 테마는 딴사람의 작품에도 수두룩합니다."

한국학자들이 심청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김교수는 말한다. 깊이 있는 연구논문이 보고 싶어서이다.

일본에서는 제아미(世阿彌)가 쓴 노가 일본인이 말하는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한다. 이것도 허와 실의 조화다. 노라는 연극 자체가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인물은 죽었던 사람들인 허를 상징하고 가면 안 쓴 등장인물은 실의 세계에 있는 산사람들이다.

지까마스 몬사이몽(近松門左衛門)은 또 일본의 인형극, 가부끼를 문학적 가치가 있는 희곡으로 만들었다. 작가는 여기서 '허실의 皮膜論'을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형극은 원형의 흔적만 남아있을 뿐 문학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김주현 교수는 우정 일본에 가서 노를 연구한 적이 있다.

오셀로를 다룬 논문 '동양의 시각에서 본 데스데모나' 에서는 정절에 대한 동서양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오셀로는 우연히 잡아본 데스데모나의 손이 축축했다하고 급기야는 두꺼비까지도 들먹이면서 왜 이런 '음란한' 여자와 결혼했나 후회한다고 말하지요. 그것이 동양에서 어떤 뜻을 지닌 것인지를 살펴본 것입니다. 셰스피어 시대에도 그런 통설이 있었기에 쓴 말이겠지요. 데스데모나는 이야고의 음모에 대한 아무 변명도 없이 살해되어 순결한 성정을 극에서 더 돋보이게 합니다.

결국 오셀로는 잘못한 것을 후회하고 자기도 죽어 비극이 되는데 자꾸 파고 들다보면 셰익스피어는 참말로 알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기존의 여러 소스들을 갖다가 개작해 극으로 만들었지만 괴테보다 단수가 높고 어떤 작가보다도 난해합니다. 이 사람 자체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영미의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은 그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구조를 들춰내는 김교수의 연구를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인다.

국제 셰익스피어학회 회장 앤 쿡교수(미국 반더빌트대학)는 '죽음, 정조, 초자연의 힘, 가족의 결합등 셰익스피어 극의 중요요소를 영국 아닌 다른 문화전통에서 바라본 시각으로 흥미롭고 새로운 입체감을 더했다' 고 평했고 영국 셰익스피어연구소 소장 로저 프링글도 '한국문화 전통에 대한 박식함으로 서구 일변도의 셰익스피어 연구에 신선한 해석을 가했다'고 평했다.

심청전 오리지널에 구사된 유불선의 구조에 매료되어 이후 현대버전의 심청전을 주목해오다가 본 김교수의 논문이었다. 심청전은 셰익스피어까지 거론되고 이렇게 깊이 있게 다룰 수 있구나, 그 연구를 한 사람이 한국 학자인 점이 좋았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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