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새누리당 1인체제의 위험성을 미리 경계할 때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새누리당 1인체제의 위험성을 미리 경계할 때다

[남재희 칼럼] 미셸스 '과두체제의 철의 법칙'을 음미한다

공천 정치라고 할까, 공천 대공연이라 할까.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각 당의 공천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가장 놀란 것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간에 전국적으로 연합 공천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부분적인 합의는 예상했지만, 그와 같이 거의 전국에 걸쳐 합의할 수 있을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현장성이 없이 간접적으로만 바라봐 현장의 열기나 간절한 소망을 느끼지 못해서일 것이다. 아마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 '개혁세력·진보세력 간의 역사적 대합의'라고 기록되어야 마땅할 줄 안다. 진보신당이 빠진 것이 얼마간 허전했는데 한 선거구에서는 진보신당까지 포함하는 3당의 연합공천도 있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서도 중앙에 관계없이 지방에서 먼저 합의한 몇 곳도 있었다는 이야기고 보면, 밑으로부터 위로 밀어붙이는 정치적 힘이 무시 못 할 점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일대 합의로 야당은 쾌조의 국회의원 선거전을 치르게 되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통합진보당이 이제 독자적인 원내교섭단체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는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 역시 특기할 일이다. 우리의 의회 정치가 다양하게 변할 것이며, 어떻든 수준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을 진보당이라는 약칭으로 부를 수 없는 것은 진보신당이 진보당의 약칭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의 4.11 총선 공천이 박근혜 위원장의 '친박 감싸기'로 진행되고 있다며 박 위원장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 때 당 대표를 지낸 정몽준 의원이 이번 새누리당의 공천을 "사당화(私黨化) 차원의 잘못된 공천"이라고 일갈하였다. "특정인을 위해 당의 권력을 사유화" 운운은 주목할 만한 발언이다. 물론 정 의원은 그 스스로가 재벌의 한 사람으로 발언을 되도록 자제해야 마땅한 입장에 있다. 똑같은 정치인이며, 국회의원인데 왜 차별하느냐고 혹 항변할지 모르지만 그런 게 아니다. 국민의 정서가 있다. 국민들의 재벌에 대한 눈이 곱지 않다. 또 실제로 재벌들은 무소불위로 횡포를 부려왔다. 정 의원은 자기는 억울하다고 할지 모르나 여하튼 그런 재벌 측에 속해 있으니 어쩌나.

그렇지만 새누리당 공천이 "사당화 차원"이라는 정 의원의 지적은 수긍이 가는 면도 있다. 그런 면이 보인다. '공천이 잘 되었다, 잘못 되었다'를 논하기 이전 차원의 이야기다.

하기는 정당들의 공천이라는 것이 본래 민주성만을 따지게는 안 되었었다. 이제까지의 여러 정당들이 '공천 혁명'을 말해 왔었다. 공천에서 크게 물갈이를 하여 당의 체질과 이미지를 쇄신해 온 것이다. 거기에 민주성의 잣대만을 갖다 대려면 좀 문제가 생긴다. 전날에 공산당에서는 '민주적 집중제'란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말해왔었는데 그것은 어떤 면에서 필요한 듯도 한 것이지만 관료화·독재화를 면할 수 없었다. 우리 정당들의 공천에서도 그 민주적 집중제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옛날 표현으로 '조자룡 헌 칼 쓰듯' 공천 때 칼을 마구 휘두른다.

민주통합당 공천의 메커니즘이 보도되기는 하였으나 충분하게 자세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 공천이 최고위원 선거가 치러진 이후이며, 몇몇 세력의 집단적 결정이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경우는 누구의 눈에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거의 한 사람의 결정, 결단으로 느껴진다. 공천위가 있고, 시민 배심위가 있고, 그 위에 비대위가 있지만, 비상대책이란 명분 아래 그 기구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원내대표·정책위의장·사무총장 등은 남아 있다)이 선출된 게 아니고 박 위원장에 연원(淵源)하여 임명된 게 아닌가. 그러니 정몽준 의원의 지적처럼 공천이 모두 박 위원장 개인의 책임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가 삼권분립의 한 부(府)인 '입법부=국회'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일이다. 물론 총선에서 국민의 표에 의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공천은 그 국회의원 선출과정에서 반 이상의 몫을 하고 있다. 공천이 즉 당선이라는 지역구도 대단히 많아 그런 경우는 결과적으로 공천이 곧 국회의원을 임명한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권한을 한 사람이, 또는 그에 권한이 연원한 기구가 행사하고 있으니 두렵지 아니한가. 사실은 공포에 떨 일이기도 하다. 웃는 얼굴이지만 무섭다. 한 사람이 국회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씨 등도 그랬지 않느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씨는 어떠했느냐. 가까이는 이명박 씨도 이재오 씨를 내세워 이른바 친박계를 '공천 대학살'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과 그것을 핑계로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다르다.

공천 제도에 있어서 무언가 달라져야 하겠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에서는 각 선거구에서 각 당의 예비 선거를 통해 상·하 의원 후보가 지명된다. 그때 탈락자가 얼마간 생기기도 하지만 현역 의원들은 다수가 지명받고 있다. 중앙당이 있기는 있으나, 예비 선거의 승리가 곧 지명이다.

일본에서는 전에 한 번 말한 것처럼 현역 의원은 아주 아주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모두 공인(公認)된다. 일본은 미국과는 달리 중앙당이 꽤나 강하다. 인사 등의 힘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의 정당만 못하지만, 정책·조정 등 역할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 강하다 할 것이다.

우리가 아직 미국이나 일본식을 따를 수는 없을 줄 안다. 정치 수준이 아직 그들에 못 미치고, 발전 단계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식으로 한다면 우리 정치는 바로 정체가 되고 부패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아직은 개혁, 그것도 큰 개혁이 끊임없이 있어야 할 단계이다.
▲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공천 제도를 개혁할 것인가?

앞으로 중지를 모아 연구할 과제이며 난제이다. 다만 방향은 개인이 아닌 집단 결정이란 방향이다. 민주적 집중제란 표현을 사용하기는 싫다. 최근 보도되고 있는 중국 보시라이(薄熙來) 퇴진과 관련된 중국 공산당의 결정 과정을 보면, 최소한 1인에 의한 결정은 전혀 아닌 것이고 그들 나름의 집단 결정을 원만히 하는 것 같다.

그러한 정당 구조와 관련된 연구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20세기 초엽에 나온 로버트 미셸스(Robert Michels, 그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활약한, 말하자면 다국적 인(人)이다)의 <정당들-현대 민주정치의 과두화 경향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이다(한길사에서 로버트 미헬스 지음, <정당 사회학-근대 민주정치의 과두화 경향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와 있다. 편집자). 그의 이론은 '과두체제의 철(鐵)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 조직들은 규율과 행정적 계속성이라는 내부적 필요성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폐쇄적이 되고 과두체제가 되어 영속한다는 것이다. 과두체제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과두체제를 넘어 1인체제가 되어 탈이다.

지금 새누리당 1인체제는 대부분의 당원들이 스스로 흔쾌히 택한 것이다. (이미 거명한 정 몽준 의원 등 얼마간의 사람들은 불만이 있겠지만) 그들은 정상적인 절차를 따라 당의 지도 체제를 구성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상체제'를 구성해 1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물론 그 1인만이 당을 이끌고 당의 명운을 판가름할 대통령 선거까지 잘할 수 있다는 절대 다수 당원들의 암묵의 합의가 있어 아주 흐뭇한 마음으로 스스로가 원해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과두체제·1인체제의 길은 대개 그러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커다란 위험이 있었다고 앞으로의 정치사는 말할 것이다. 지금부터 그런 1인체제라면, 만약에 대선에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1인체제는 더욱 굳어져서 임기 초부터 화석화가 진행될 것이 아닌가.

미셸스도 과두체제 극복의 방안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못했다. "민주정치 과두체제의 위험을 조용하고도 솔직하게 검토하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할 것이다. 비록 완전히 그런 위험을 회피할 수는 없지만..."이라고 그는 책의 결론에서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농민의 우화 하나를 들었다. 우리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우화이지만, 참고로 소개하면 이렇다. 임종을 앞둔 농부가 자식들에게 밭에 보물을 묻어두었다고 유언을 하였다. ("아하, 그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죽자 자식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 밭의 모든 구석구석을 파 보았다. 헛일. 그러나 그들이 지칠 줄 모르고 땅을 판 노동의 결과로 풍작이 되었다. 이 우화의 보물은 민주정치를 상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정치를 위해서는 단일 처방이 없고, 모든 방면으로, 모든 구석구석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뜻일 게다.)

새누리당은 지금부터라도 밭의 구석구석을 파 보아야 한다. 정몽준 의원의 경고 내용을, 정 의원과는 관계없이 그 내용 그 자체로 뜻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바로 그 시정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 1인에의 위임을 가급적 지양하고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 많은 당직을 선출제로 하고 그 일을 바로 착수해야 할 것이다.

미셸스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1인화·과두화를 방지하기 위한 "이 잔인한 게임은 끝도 없이 계속될 것이다".

새누리당의 일은 새누리당의 일인 동시에 우리 정치의 일이다. 국회에서 그렇고, 대통령직(만약에 그들이 성공한다면)에서도 더더욱 그렇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