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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어린이들과 함께 새로운 반만년을 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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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남북 어린이들과 함께 새로운 반만년을 준비합시다"

<인터뷰>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이기범 사무총장

약속시간인 오후 4시를 조금 넘겨 프레시안 사무실에 들어선 그의 손엔 녹차 페트병이 들려 있었다. “어휴, 어제 그동안 밀린 보충강의를 여섯 시간 하고 밤에는 후원회원 분들을 만났더니...”

<사진1> 이기범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 @프레시안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이기범 사무총장.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 남북합작으로 어린이병원을 세우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한 그는 병원 개원식을 위한 4박5일간의 방북에서 귀환한 직후에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바로 다음 날인 17일에도 낮에는 본업인 강의를 하고(그는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다), 밤에는 어린이병원 건립을 도운 남측 후원회원들을 만난 것이다.

사실 ‘평양어린이어깨동무병원’ 건립은 남북어린이어깨동무(이하 ‘어깨동무’)가 주축이 되어 추진한 일이지만 후원회원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이 총장은 말한다.

방북단 규모 96명이 말해주듯 이번 병원 건립에는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탰다.우선 홍창의 명예교수를 비롯한 최용,최황 교수 등 서울의대 어린이병원 관계자들. 이들은 남북을 오가며 북측 의료인들과 함께 어린이병원 진료의 기술적 문제들을 조율했다. 치과의사 김재찬씨 등은 치과 의료장비를 주선했다. 건축가 황영현씨는 자원봉사로 7차례나 평양을 드나들면서 병원 설계를 완성했다. 뿐만 아니라 상당한 액수의 후원회비까지 끌어왔다. 그녀는 이번 평양방문에 자신의 고교생 아들을 동행했다. 어린이 공동육아운동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은 어린이병원의 놀이시설을 만들었다. 이밖에 삼성, SK, LG, 한화 등 대기업들도 후원회비, 기자재, 기술제공 등으로 힘을 보탰다.

이번 병원 건립에 대해 이기범 사무총장은 “어린이를 위한 기술집약적 시설인 병원이 남북간 협력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데 의미를 두었다.

실제로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은 정주영체육관 이래 처음으로 남측 지원에 의해 북쪽에 세워진 시설물이다. 병원은 고도의 기술집약을 요하는 시설물이라는 점에서 병원 건립을 위한 남북간의 교류는 훨씬 빈번했던 것 같다. 일례로 2002년 2월 어린이병원 건립에 합의한 이후 이 총장 등 ‘어깨동무’측의 방북은 20회가 넘는다. 또 병원 건립이 본격화된 지난해 7월 이후 남측 건설기술자의 방북만 15차례나 된다.

여담이지만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에 대한 북측의 신뢰와 애정은 각별했던 것 같다. 평양 도착 첫날, 버스로 정주영체육관 옆을 지날 때 북측 안내원들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저게 정주영체육관’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지난 1996년 분유지원캠페인을 시작으로 이번 어린이병원 건립까지 8년여간 꾸준히 어린이관련 대북 지원협력사업을 추진해온 ‘어깨동무’에 대한 북측의 신뢰는 상당한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이번 방문단 중의 한 인사는 “남측 민간단체가 대북 협력을 타진해 오면 북측 관련 기관에서는 ‘어깨동무’측에 알아보라고 할 때가 많다”고 귀띔해준다.

“초기 대북지원이 긴급구호에 그쳤다면 2002년경부터는 장기개발쪽으로 옮겨가는 추세입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젖염소라든가 씨감자, 슈퍼옥수수 등 주로 농업분야에 한정돼 있었다면 이번 어린이병원 건립으로 의료쪽으로도 협력범위가 넓어졌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2> 지난 14일 평양 동대원구역 새살림동에서 열린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 개원식에서 이기범 사무총장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윤석봉

90년대 후반 시작된 초기의 대북지원이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형태였다면 2,3년전부터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함께 찾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이 총장의 설명이다. 일례로 ‘어깨동무’ 방북단의 귀환 하루 전날 평양에 도착한 남측 라이온스클럽에서는 안과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굿네이버스'라는 민간단체는 의료용 수액(링거) 공장 건설을 추진, 완공단계에 있다고 한다.

96년 6월 결성된 ‘어깨동무’의 대북사업도 이러한 경로를 밟아왔다. 당시엔 북한의 식량난이 워낙 화급했던 때라 처음에는 분유 등 식량지원, 그리고 2000년부터는 구충제, 항생제, 영양제 등 의약품 지원에 치중했다. 그러다가 장기개발과제로 처음 눈을 돌린 것이 콩우유공장 건립이었다.

“구호품으로 들어온 분유가 여러 종류이다 보니 어린이들이 배탈이 잦을 수밖에 없었죠. 분유를 바꿔 먹이면 배탈이 나잖습니까. 그래서 어린이들에 대한 안정적 영양공급을 위해 콩우유공장 설립을 추진한 거죠.”

1일 2톤(연간 7백톤) 생산규모의 콩우유공장은 이미 지난 2001년에 완공돼 평양 인근 3천5백명의 어린이 및 영유아들에게 하루 200-1000 cc의 콩우유를 공급하고 있다(이 시설은 이번에 건립된 어린이병원 내에 있다). 그리고 이번 병원 준공에 맞춰 1일 0.7톤(연간 2백50톤) 규모의 분말우유 공장이 새로 설립됐다.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벽지의 어린이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저장성이 높은 분말우유 공장을 건립한 것이다.

그 다음 프로젝트가 바로 이번 어린이병원 건립이다.

“북한의 영아사망율은 1천명당 23명, 남한 6.2명의 4배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북녘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질병은 설사, 그리고 감기ㆍ폐렴 등 호흡기 질환입니다. 북한 의사들은 설사와 폐렴을 2대 어린이질병이라고 합니다. 영양상태가 좋고 의료시설만 완비돼 있으면 결코 중병이 될 수 없는 이들 질병이 북한 어린이들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죠.”

<사진 3> 이기범 남북어린어깨동무 사무총장

어린이병원 건립을 계기로 ‘어깨동무’의 대북사업은 속도를 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우선 오는 9월부터 남측 기업의 도움으로 평양수지연필(샤프펜슬)공장에서 원주필(볼펜)과 수지연필이 생산될 예정이다. 올해 목표 생산량은 각 2백만자루. 학용품 생산 지원은 지난해 북측이 먼저 요구해와 ‘어깨동무’측의 주선으로 성사된 사업이다. 생산설비 등의 지원을 맡은 남측 기업은 E-마이크로(주)로 이 기업은 지난 2000년 부도난 회사를 노동자들이 공동출자하여 재설립한 업체로 기업이윤을 기대하지 않고 통일사업의 일환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지난해 겨울부터는 유치원ㆍ탁아소 등의 창문 등을 개선ㆍ교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어깨동무’측은 난방이 충분치 않은 데다 창문마저 부실한 북한 어린이 시설의 창호를 개선함으로써 겨울철에 많이 발생하는 감기와 폐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사업은 어린이병원 창호 공사를 맡았던 한화종합화학이 맡고 있다.

이제 ‘어깨동무’는 대북사업의 범위를 평양 바깥으로 확대해 갈 것을 꿈꾸고 있다. 이미 지난 달 원산을 방문, 이 지역의 고아원 및 유치원 시설을 현대화할 것을 북측 관련기관과 합의했다. 나아가 콩우유공장, 어린이병원 현대화사업 등도 계획하고 있다.

사실, 필자를 포함해 방문단 중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던 것은 ‘왜 하필 평양이냐’ 라는 점이었다. 평양이 북한에서 가장 혜택받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정작 지원을 받아야 할 지역은 평양 아닌 다른 지역이 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었다.

이에 대해 이기범 사무총장은 “일단은 평양을 거쳐야 합니다. 이곳에서 시범적 성격의 사업을 통해 북측과 성과와 신뢰를 쌓아가는 게 순서입니다. 성과가 확인되고 신뢰만 형성된다면 그 다음 단계는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길게 보고 일을 해나가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남북간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사진 4> 이기범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 @프레시안

이어 그는 “앞으로 남북간 협력에서 민간부문의 비중이 좀더 커져야 합니다. 그리고 전문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정부간 협력보다는 민간끼리의 협력의 교류의 활성화나 성과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2000년부터 ‘어깨동무’가 지원한 의약품 등에 대해 북측 조선의약협회에서는 매년 사용처를 꼬박꼬박 알려 왔다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된 물품과 관련해 모니터링 문제가 제기된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또 경직된 이념이나 감상적 통일지상주의보다는 실질적 역량에 바탕을 둔 구체적 협력이 남북간 신뢰구축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인 듯하다.

그의 이같은 소신은 어쩌면 그의 개인적 이력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가 걸어온 길은 통일운동보다는 어린이운동에 훨씬 더 가깝다. 대학 3학년(외대 영어과)인 1978년 대표적 빈민촌인 난곡에 선후배들과 함께 ‘해송어린이걱정모임’을 만든 이래 그는 줄곧 공동육아, 어린이평화운동 등을 전개해 왔다. 1979년에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아침이슬'의 가수 김민기의 문화체육관 공연을 성사시켜 그 수입금으로 난곡과 창신동에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당시 반포의 아파트 한 채 값이 2백70만원일 때 공연수입금이 3백만원이나 됐다고 자랑하는 그의 얼굴은 방북 당시의 그답지않게 들뜬 표정이었다.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공동육아 운동에 뛰어들었다. 20-40가구의 부모들이 조합을 결성해 공동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공동육아’를 창립한 것은 1993년이었다. 지금 이 단체 소속으로 전국에서 40여개의 조합형 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다. 1996년 이 ‘공동육아’와 한겨레신문이 공동으로 창립한 것이 바로 ‘남북어린이어깨동무’다. ‘어깨동무’는 98년 7월 별도의 사단법인으로 독립했고, 지금은 상근활동가 7명이 후원회원 1천여명의 어엿한 중견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사실 ‘어깨동무’의 권근술 이사장이나 이기범 사무총장은 평양에 어린이병원을 세웠다는 사실보다는 남측 어린이 11명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녘을 방문했다는 데 더 감격해 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리틀엔젤스공연단 등이 평양을 방문했지만 순수한 의미에서의 어린이 방북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어깨동무'는 남녘 어린이 방북을 위해 그동안 적지 않은 공을 들여 왔다. 이미 98년 11월부터 남북어린이 교류를 북측에 제의해 왔고, 이후 3차례에 걸쳐 남북 어린이의 그림을 교환했다. 또 북측 어린이들과의 만남에 대비해 2002년부터는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 어린이들과 평화캠프를 해 왔다.

평양 도찻 첫날의 환영만찬에서 권근술 이사장은 답사를 통해 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아니 준비하기 위해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갈 통일 연습을 해야 할 때”라며 북녘 어린이들의 8.15 서울 방문을 제안했다. 돌아오기 전 날 환송만찬에서 북측은 남측의 방문초청에 대해 ‘고맙다’고 답했다. 어쩌면 이번 광복절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어린이의 교류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진5> 지난 14일 오후 평양제4소학교 어린이들이 남측 방문단과 헤어지면서 '다시 만납시다'를 외치고 있다. 윤석봉

반만년 한민족의 역사에서 50여년의 분단은 한낱 한점에 지날지도 모른다.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껴안을 수만 있다면. 6.15 남북공동선언 4주년인 지난 15일 북녘에서 오른 백두산 천지에서 이기범 사무총장이 행한 다음 연설에서처럼...

“반만년 역사의 백두에 서니, 분단의 역사는 한 점, 찰나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여기 백두산에서 분단의 역사가 아니라, 반만년에 걸친 조선과 대륙의 대화를 들어야 하고 다시 반만년의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린이들과 함께 새로운 반만년을 시작하고자 여기에 왔습니다.
모든 어린이는 생명이고, 모든 생명의 시작은 물이며, 모든 물의 시작은 천지입니다. 천지는 변하면서 변하지 않으며, 흘러내리나 결코 다함이 없고, 넘쳐흐름으로 모든 것을 살립니다.

남북, 북남의 어린이 사랑으로 천지가 가득 채워져 흘러넘치게 합시다. 천지의 생명수가 이 땅을 흠씬 적셔서, 남북, 북남의 모든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통일을 이루고 새로운 반만년을 여는 주역이 될 것을 믿습니다.

오늘은 6.15 공동선언 4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입니다. 6.15공동선언이 알찬 결실을 맺도록, 백두의 풀과 나무로부터 배웁시다. 풀과 나무는, 정상에 가까울수록 거세지는 바람을, 누워서 혹은 엎드림으로써 끌어않아 날려버리며 자랍니다. 남북, 북남의 화해와 통일이 가까워질수록 거세지는 바람을 풀과 나무의 지혜와 인내로 이겨냅시다.

이제 남북, 북남의 어린이들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어깨동무할 그 날이 곧 오도록 모두 노력하자고 약속합시다. 반만년 역사의 백두에서 우리의 새역사를 약속합시다. 6.15공동선언 4주년을 맞아 백두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한 우리의 약속. 그 약속은 캄캄한 밤에 뿌려진 별처럼 선명하게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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