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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자유화와 금융위기, 그리고 자본통제

이강국의 '세계화의 정치경제학' <4>

***금융자유화와 개방에서 금융위기로**

금융자유화와 개방 이후 개도국을 강타한 수많은 금융위기의 역사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80년대 초 남미부터 90년대 초의 스칸디나비안 국가들과 90년대 후반의 동아시아에서 최근의 러시아와 터키 그리고 다시 남미까지, 거의 모든 개도국들은 열병처럼 금융위기를 겪은 바 있다. 금융위기의 공식은 무척 간단하다. 적절한 규제없이 대내적 금융자유화와 대외적 금융개방이 함께 진전되면 금융부문의 취약성이 심화되어 은행위기가 나타나고, 흔히 개방 이후 유입된 외국자본의 유출로 인해 환율폭락 등 외환위기의 형태로도 폭발한다. 그래서 은행 혹은 금융위기와 외환 위기가 흔히 동시에 나타나서 쌍둥이 위기(twin crisis)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Kaminsky and Reinhart, 1999) 물론 이러한 상황은 금융중개기능의 붕괴와 외채부담 급증, 그리고 이로 인한 심각한 기업 파산과 실업 등 종내에는 전반적인 경제위기로까지 이르게 된다.

그 수많은 위기의 사례들과 이론들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능력 밖이겠지만, 뭐니뭐니해도 라틴아메리카의 금융위기가 가장 유명하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멕시코, 우루과이는 1970년 중반 이후 대외적인 금융개방을 포함한 금융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시행하였는데 거의 모두 1980년대 초 금융위기에 직면했고, 미국의 금리인상을 배경으로 부채위기까지 함께 겪게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금융부문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감독 없이 금융자유화가 급진전되어 도덕적 해이에 빠진 은행부문의 대출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결국 금융위기로 인해 GDP의 절반이 넘는 비용을 지출하였다. 칠레의 피노체트 군부독재정권은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을 총칼로 무너뜨리고 1970년대 중반 영국보다도 일찍 신자유주의를 도입하였다. 정부의 주먹(visible fist) 아래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대거 도입한 칠레는 금융부문에서도 금리자유화, 은행의 민영화, 신용배분에 대한 규제철폐 그리고 금융시장의 개방 등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심각한 투기와 버블이었고 금융위기로 인해 금융부문 총자산의 거의 반에 이르는 금융기관들이 파산하고 말았다.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은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을 비판하고 자유화를 주장하였던 주류경제학자들의 믿음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자유화가 저축과 투자, 그리고 자금배분의 효율성 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촉진하기는커녕 금융부문을 취약하게 만들고 결국은 위기로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유명한 표현대로, 금융억압을 끝내자(goodbye financial repression) 찾아온 것은 금융위기(hello financial crash)였던 것이다.(Diaz-Alejandro, 1988) 한편 개방 이후 해외자본이 유입되었지만 생산적인 국내투자로 이어지지 않았고 여러 경우 국내저축은 오히려 억압되었다. 흔히 라틴아메리카의 국내적 금융위기는 잘못된 금융자유화가 그 주범으로, 외채위기의 원인으로는 방만한 재정이나 심각한 인플레와 같은 잘못된 거시경제정책 그리고 무분별한 차관도입 등이 중요했다고 지적된다. 그러나 금융위기와 부채위기는 서로를 더욱 악화시키며 70년대까지는 꽤나 훌륭한 성장을 하던 이 지역 경제를 수렁에 빠뜨리고 말았다.

1980년대를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으로 흘려보낸 남미 국가들은 80년대와 90년대에는 IMF의 구제금융과 함께 더한층의 자유화와 개방을 도입하였지만 상황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역사란 한번은 비극 한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했지만, 1994-5년 멕시코, 1999년 브라질, 그리고 2001년의 아르헨티나에 이르기까지 최근까지도 만성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금융외환위기는 이 지역의 시민들에게는 오로지 비극만을 가져다주고 있는 듯하다. 오죽하면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워싱턴 컨센서스에 따라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자 경제를 개방했으나 돌아온 것은 환투기와 외국 금융자본의 남미 경제 지배였다”라고 말하기도 했을까.

금융위기의 파도는 다른 지역도 비껴가지 않았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도 1997년 심각한 금융위기에 의해 깊은 내상을 입고 침몰하고 말았는데 이는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 경제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동아시아의 기적”이라 불리던 이들의 금융위기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따라서 현재까지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뒤에서 한국 이야기를 하며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동아시아 금융위기도 90년대 초 각국에서 성급하게 진행된 금융자유화와 개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들 국가는 자본흐름에 대한 조심스런 규제 속에서 국내 투자를 촉진하며 급속한 성장을 이룩했지만, 90년대 초반에는 정치경제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변화 속에서 금융시장을 개방하라는 대내외적 압력이 강화되었고 결국 단기자본을 포함한 금융시장의 빗장을 열어젖히고 만 것이다. 물론 과다한 투자로 인한 수익성 악화나 수출시장의 쇼크 등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도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적절한 규제와 감독없이 도입된 금융자유화와 개방으로 인해 단기외채가 급등하고 금융부문의 취약성이 심화되었던 것이 더욱 일차적인 요인이었다. 위기 이전에는 개방과 밝은 성장전망을 배경으로 이 지역에 대한 자본유입이 급등하였지만, 일단 위기가 촉발되자 패닉에 휩싸인 국제금융시장의 무리짓기 행위가 태국에서 시작된 위기를 멀리 한국에까지 전염시켰다. 결국 국제자본은 단기대출에 대한 롤오버(rollover) 거부라는 형태로 이 지역으로부터 급속히 빠져나갔으며 결국 기적(miracle)을 파산(debacle)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금융위기의 모델들**

이렇게 빈발하는 국제금융위기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다양한 외환위기 모델들을 고안해내었다. 크루그만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제 1세대 모델은 위기를 재정적자 등 거시경제적 펀더멘털(fundamental)의 악화로 설명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환시장의 참가자들이 평가절하를 예상하여 투기적 공격을 감행하고 이에 따라 중앙은행의 준비금이 고갈되면, 종내에는 평가절하나 고정환율제의 포기 등이 나타나고 외환위기가 발발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거시지표가 더욱 중요하며 이들과 외환위기간의 관계가 경험적으로 뚜렷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특별한 거시경제정책의 실수 없이 위기가 발생했던 92년 유럽의 EMS 위기와 94-5년의 멕시코의 위기는 소위 “자기실현적 기대(self-fulfiling expectation)”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한 제 2세대 모델을 등장하게 만들었다. 이들에 따르면, 외환보유액의 부족이나 외채 급증 등 한 국가가 위기범위(crisis zone)에 속해 있는 경우에는 시장참가자들이 어떤 예상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이른바 복수균형(multiple equilibria) 상태가 나타나게 된다. 이들이 환율상승(평가절하)이나 위기를 예상하여 투기적인 공격을 하게 되면 실제로 그 행위 자체가 정말로 위기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Obstfeld, 1996) 뜻한 바 그대로 세상이 움직인다니 자본에게는 신기하고 멋진 일인지도 모르지만 위기로 고생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정반대일 것 것이다.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빈발하게 발생하는 금융외환위기는 썩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듯하다. 최근에는 주로 금융기관을 통해 유입된 외국자본의 급속한 유출을 설명하기 위해 외환위기 모델에 예금인출사태로 인한 은행도산(bank run) 모델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Goldfajn and Valdes, 1997) 사실 동아시아에서 국제적 자본이 황급히 빠져나갔던 것은, 실제로는 문제없는 은행도 사람들이 망할 것이라 걱정하면 누구나 그 은행의 창구에 돈을 찾으러 달려가 결국 은행이 망해 버리는 현상과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었다. 물론, IMF의 역할이 극장에서 “불이야”라고 외치는 것처럼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동아시아 위기 이후 경제학자들은 거시적인 문제점을 넘어서, 기업, 금융 부문 등의 미시적인 펀더멘털까지도 금융위기 모델을 만드는 데 고려하고자 한다. 또한 최근의 이론들은 한 나라의 외환위기가 별로 문제가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 주변의 나라에도 국제금융시장을 통해 쉽사리 확산되는 전염적(contagious)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Eichengreen et al., 1997) 하긴 여러 모로 볼 때 금융위기는 역병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그 바이러스는 아마도 모든 자본, 특히 금융자본에 고유한 “탐욕”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최근의 모델들은 이제 2.5세대 혹은 3세대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학문이 현실을 따라잡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듯하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의 모델들은 점점 국내의 거시적인 문제점이 그다지 크지 않아도 약간의 충격이나 패닉 만으로 투자자들의 무리짓기 행위와 함께 심각한 금융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 문제없는 국가에서 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모델들은 자본자유화와 금융세계화의 위험을 잘 보여준다. 자본자유화의 규율효과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긴 하지만, 작은 충격으로도 심각한 자본의 유출입으로 위기를 발발케 하는 국제금융시장은 때로는 벌로 회초리를 들 일에 혹시 총칼을 들이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금융개방이 불안정과 위기를 심화시킨다면 이는 당연히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미 여러 연구는 경제의 불안정이 투자의 감소 등으로 인해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침을 보여준다.(Ramey and Ramey, 1995) 물론, 금융세계화가 불안정을 얼마나 심화시키는가 하는 것도 열띤 논쟁의 대상이며 세계화가 진전된 90년대 이후 불안정은 낮아지고 개방이 불안정이 성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감소시킨다는 주장도 있다.(Kose et al., 2004) 하지만, 역시 성급한 자본자유화와 금융시장의 개방의 위험은 백번 조심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어떤 전제조건들?**

이러한 문제점을 피해서, 자본자유화를 옹호하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적어도 어떤 조건들(precondition) 하에서는 자유화가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자본자유화도 적절한 순서에 맞춰서 차근차근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질서있는(orderly) 혹은 순차적인(sequential)” 자본자유화라고 불리며, 현재 IMF 등 국제기구와 주류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정책을 마치 정답처럼 개도국에게 권고하고 있다.(Mckinnon. 1991; Eichengreen and Mussa, 1998) 사실 그 조건들이란 것이 온갖 바람직한 것들을 다 포함한다면 별로 하나마나 한 주장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 주장은 자본자유화의 정석으로 받아들여진다.

자본자유화와 금융개방이 성공적이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우선, 금융시장의 발전과 금융부문에 대한 적절한 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된다. 적어도 국내금융시장이 상당히 발전되어서 밀려드는 해외자본을 적절히 생산적인 투자에 사용할 수 있고 투기와 버블로 이어지는 악영향을 최소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해외자본의 유출입으로 인한 불안정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정부의 규제와 감독 역할이 필수적이라 주장된다. 한편, 부패가 심각하고 정부가 무능력하다면 자본자유화정책도 정부와 유착된 집단에게만 이익을 가져다주고 도덕적 해이를 심화시켜 오히려 자원배분의 왜곡과 비효율성을 낳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다소 모호하지만 “제도(institutions)”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물론 소득수준이 높은 선진국들이 후진국보다는 제도의 질과 금융시장의 발전정도가 더욱 높을 것이므로, 이제 학자들은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가난한 국가들은 자본자유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점잖게 제시한다.

또한, 이들은 금융시장의 개방과 자본자유화 이전에 심각한 인플레이션이나 재정적자 그리고 환율시장의 왜곡 등이 교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라틴아메리카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거시적인 불균형이 심각한 경우, 자본자유화와 해외자본의 유입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불안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본자유화는 무역자유화와 상품시장의 개방이 이루어진 다음에 진전되어야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주장된다. 다른 시장들이 균형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금융시장의 개방은 이론적으로 기대되는 이득을 낳을 수 없으며, 금융자본보다 안정적인 국제무역과 관련된 외환의 흐름이 먼저 자유화되는 것이 금융시장의 개방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썩 그럴 듯 하지 않은가. 때로는 경제학자들도 현실에서 배우며 스스로 흐뭇해 하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자유화에 대한 독자들의 걱정도 좀은 덜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러한 주장의 난점은 어느 정도의 전제조건이 필요한지 별로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90년대 초반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이러한 바람직한 조건들이 상당히 충족되어 있는 선진국들조차도 금융개방 이후 위기를 겪곤 한다는 점이다. 자본자유화의 약속이 실현되는 땅을 만들기 위해 개도국들은 얼마나 노력하고 또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실은 아무도 모를 일이며 혼돈과 같은 국제금융시장의 발전은 이러한 노력을 더욱더 어렵게 만드는 듯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드릭은 개도국의 경우 제도의 발전 등과 같은 전제조건들을 갖추는 데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선진국들조차도 금융위기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개도국은 자본자유화의 도입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odrik, 1999) 아,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사실 전제조건이 갖춰지면 자본자유화가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경험적으로도 별로 입증되지 않고 있다.

***자본통제, 급진적 대안?**

현실이 이러하다면 차라리 위험한 자본자유화 대신 자본통제를 지속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비주류적인 이러한 주장들이 오히려 최근에는 주목을 받았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 1997년의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에는 크루그만, 스티글리츠 등 저명한 주류경제학자들조차도 적어도 단기적인 국제금융자본에 대해서는 통제를 가하는 것이 현명한 정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90년대 후반 세계금융시장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국제금융체제의 확립이 필요하다는 대담한 논의들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자본의 반대 속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이러한 흐름은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헤지펀드와 같은 소위 “핫머니(hot money)”라 불리는 단기적 금융자본의 흐름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동아시아 위기 이후 크루그만은 “이제는 급진적이어야 할 때(It's time to get radical)”이라는 기사에서 비록 단기적이지만 위기 시 효과적일 수 있는 자본통제의 의의에 대해서 강조하였다.(Krugman, 1998) 그는 IMF의 정책보다도 일시적인 외환통제가 더욱 효과적인 위기 탈출의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에 대해서도 조건부지지를 밝혀 화제를 모았다. 그밖에도 많은 학자들이 단기자본의 이동으로 인한 악영향을 지적하며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서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경제연구소의 버그스텐도 각국에 따라 각국에 따라 단기적 자본에 대한 통제를 실시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고 최근에는 IMF의 연구조차도 몇몇 특별한 경우 단기자본에 대한 통제가 경제를 안정시킬 수도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IMF, 2000) 그야말로 이것이 최근의 위기에서 “학자들이 배운 교훈(what I learned)”이었는지도 모른다.

국제금융자본은 화가 날 일이지만 자본통제는 이론이나 주장에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실제로 미국과 경제학자들의 엄청난 반대 속에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는 위기 이후 1998년 9월 전격적으로 고정환율제를 실시하고 1년 이하의 증권시장 유입자금의 자본유출을 강력히 통제하며 국내금융기관의 대외계정간 자금이동과 역외의 링깃화의 국내이전을 규제하는 등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는 이러한 통제에 기초해서 IMF의 구조조정에 의지한 한국이나 태국과는 전혀 반대의 방식으로 국내적으로 확장적 거시정책을 추진하며 위기에 대응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경제를 부분적으로 안정화시켰다고 주장되며 말레이시아도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빠른 경제회복을 보였다.(Kaplan and Rodrik, 1999)

또한 1990년대 칠레는 밀려드는 해외자본유입에 대응하여 자본유입의 일정부분을 1년 동안 중앙은행에 무이자로 예치하는 가변의무예치금제도(VDR: variable deposit requirement) 혹은 URR (unremunerated reserve requirement)이라 불리는 부분적인 통제정책을 실시했는데 많은 학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칠레 정부는 1991년 처음으로 포트폴리오 투자의 20%를 1년 동안 무이자로 예치하도록 한 후 92년 이후에는 그 비율을 30%로 늘이고 대상도 계속 확대하였다. 1998년에 철폐된 이 통제정책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인 주장들도 없지 않지만 자본유입에서 단기자본의 비중을 줄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늘이는 효과를 낳았다고 보고된다.(Gallego et al., 1999) 한편 콜롬비아도 칠레와 유사한 자본유입 통제정책을 실시한 적이 있고 말레이시아는 1994년에도 일시적인 자본통제조치를 취한 바 있는데, 이러한 각국의 경험은 90년대 이후에도 국민국가의 수준에서 자본통제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을 방문한 스티글리츠는 한국도 칠레식의 부분적인 규제를 도입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할 만 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자본통제와 경제발전**

주류경제학자들이 주로 단기적 국제금융자본만을 대상으로 한 일시적인 자본통제를 언급하는 반면, 진보적인 비주류경제학자들은 국민국가의 경제발전과 관리라는 광범위한 관점에서 보다 포괄적인 자본통제를 역설한다. 이들은 황금기의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노동자의 소득증대는 국내수요를 확대하는 케인지언 복지국가의 완전고용정책에 기초한 것인데, 이는 정확하게 브레튼우즈 체제의 자본통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 심화되면 정부가 팽창적 거시정책과 노동자를 지지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며, 특히 금융정책의 자율성도 잃게 되므로 자본통제가 해체된 80년대 이후 나타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등장하고 노동자 세력이 약화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것이다. 국제적 케인즈주의(international Keynesianism)이라고도 불릴 만한 이들은 따라서 자본통제의 회복이 황금기와 같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의 제도적 기반이라 믿는다. 재미있게도 이들은 자본통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라고 목소리를 높인다.(Crotty and Epstein, 1996) 각국에서 자본자유화가 추진된 가장 중요한 배경도 바로 이 정치적 힘과 이해 아니었던가.

하기는 자본자유화가 아니라 자본통제가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이론적인 가능성도 적지 않다. 우선, 효과적인 자본통제는 자본도피를 방지하여 국내에 금융자원을 가두어 투자를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외환시장의 통제에 기초한 환율관리가 수출을 증가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개방 이후 위기를 우려해서 외환보유고를 쌓아 두는 비용도 피할 수 있다. 주로 금리가 낮은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투자되는 외환보유고로 인한 비용은 심한 경우 GDP의 3%나 된다고 지적된다. 자본통제는 무엇보다도,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확대하여 팽창적 거시정책과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관리를 가능하게 하고 자본자유화가 위기로 이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경제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자본통제가 국내의 생산적 투자 증대로 이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능력있는 정부의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자본통제가 적절한 경제발전전략, 특히 정부의 효과적인 산업정책과 적절한 국내적 금융통제와 결합되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개도국의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공적인 자본통제를 위해서는 특수한 제도적인 조건이 필수적이라고 지적된다. 실제로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등에서 도입된 자본통제는 효과적이지도 않았으며, 이들 정부는 자율성이 부족하고 관료의 능력도 약하며 부패도 심각했기 때문에 통제가 오히려 비효율을 더욱 심화시켜 국가 실패(state failure)로 이어지고 말았다. 반면 자율적이며 효과적인 관료제를 갖추고 있었던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로 불리는 동아시아 국가의 경우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정부가 해외자본을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이를 국내적 자금배분의 원천으로 삼아 정부의 주도 하에 생산적인 국내투자를 촉진하였고 이것이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동아시아의 전략과 그 성공도 냉전이라든가 미국의 지원과 같은 특수한 국제정세로부터 커다란 도움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세계화가 진전되고 국내외적 정치경제적 역관계조차 현격히 변화한 현실에서 이러한 전략이 다시금 실현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존재한다. 하지만, 성급한 금융개방으로 위기를 맞고 위기 이후 이제는 더욱더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있는 한국의 과거의 경험이 이러한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되는 것은 아이러니칼하기까지 하다.(Lee, 2004)

자본통제는 흔히 인정되는 금융기관의 외화관련 건전성규제의 강화로부터 자본시장의 자본이동의 제한에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국민국가의 수준을 넘어서서 전세계적 차원에서 단기자본의 국경간 이동에 0.1% 가량의 아주 낮은 세금을 부과하자는 이른바 토빈세(Tobin tax)는 여전히 많은 진보세력들이 주장하고 있으며 유럽 정부들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정작 당사자 토빈은 그의 주장이 잘못 이해되었다고 불만을 표한 적도 있지만, 아무튼 국제적 단기자본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이제 전세계에서 초미의 관심사이다. 물론 국제적 협조에 기초한 자본의 통제는 기술적인 문제도 만만치 않겠지만 역시 정치적인 문제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애틀 이후의 반세계화 시위대나 다보스포럼에 대항하는 세계사회포럼이 금융자본 통제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자본통제를 위한 정치적 노력인 것이다. 각국의 차원에서는, 많은 나라들에서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 개방의 제한 그리고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해외차입에 대한 제한 등이 광범위하게 실시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자본시장은 90년대 초반부터 점진적으로만 개방되어 완전히 문이 열린 것은 IMF의 압력과 함께 경제위기 이후였다. 또한, 금융기관들의 해외단기차입도 90년대 중반 이전에는 상당히 규제되어 왔으며, 이에 대한 규제완화가 바로 위기로 직결되었던 것이다.

오늘 이야기는 자본자유화에 대해 너무 비판적으로만 살펴봤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자본자유화나 자본통제 그리고 금융위기에 관해서는 수많은 주장과 흥미로운 논쟁들이 제기되고 있어서 이 짧은 지면으로는 간략한 소개조차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와 연구들은 다른 지면이나 필자의 책에서 다루겠다고 변명하는 수밖에 없겠다. 아무튼, 앞서 보았듯 투자를 촉진하는 해외자본의 역할이나 경쟁 촉진을 통한 효율성 향상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세계화의 이득일 것이다. 또한 말레이시아나 칠레 등의 자본통제도 그 국가의 특수한 상황과 맥락에 기초하여 이해되어야 하며 다른 국가들에 일반적으로 적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굳이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더욱 강조하는 것은, 금융세계화가 선(善)이라는 상식이 널리 퍼져 있는 현실에 딴지를 걸고 막대를 반대쪽으로 구부리는 노력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한편, 주류경제학자들은 여전히 자본통제는 그 이득보다 비용이 더욱 높으며 일시적으로 위기극복과 경제관리에 효과적이라 할지라도 장기적인 경제성장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소리 높여 주장한다.(Forbes, 2004) 이러한 주장은 정확하게 자본자유화가 거시적인 그리고 특히 미시적인 효율성을 증대시켜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자본자유화의 성장효과에 관한 수많은 실증연구들이 제시되어 왔다. 하지만 이론과는 달리, 자본자유화와 국제적 자본이동의 이득은 그리 뚜렷하지만은 않으며 상당히 모호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연재에서는 복잡한 계량분석을 사용한 실증연구(empirical studies)들을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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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의 자본통제의 여러 효과들에 대한 광범위한 분석

Lee, Kang-Kook. (2004). The Political Economy of Capita Controls, Liberalization and the Crisis in Korea. mimeo
: 한국의 자본통제에 기초한 경제발전과 자유화 그리고 위기로 이르는 과정을 분석

Forbes, Kristine J. (2004). Capital Controls: Mud in the Wheels of the Market Discipline. NBER Working Paper No. 10284.
: 자본통제는 미시적 효율성을 떨어뜨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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