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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처칠: 2차대전서 격돌한 철천지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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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처칠: 2차대전서 격돌한 철천지 원수

CEO출신 역술인 김남용이 본 '역사의 라이벌' <7>

유태인 대학살의 원흉. 세계를 제패하겠다며 벌인 2차대전의 끔찍함, 그러나 입만 벌려 연설하면 온 국민이 까무러치던 뛰어난 선전선동가, 정말 일개인의 일생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불행 속에 쳐넣을 수 있는 것인지 새삼 놀라게 되는 이 시람, 아돌프 히틀러는 미국 정보국에서 정신분석까지 하게 한 장본인이었습니다. 필자가 사주명리학을 공부하게 된 동기는 이러한 범죄적 독재자들과 또 영웅들을 한번에 완전히 알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것입니다.

한편 윈스턴 처칠은 생긴 것도 좀 느릿느릿하게 생겼고 그만큼 생각도 빠릿빠릿한 것 같지도 않고 또 상급학교 진학에도 실패한 사람입니다만 히틀러의 속을 그만큼 똑부러지게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습니다. 좀 과장해서 얘기한다면 처칠이 없었다면 유럽을 히틀러가 완전히 점령, 장악했을 것이고 히틀러의 제3제국은 1000년을 계속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막은 사람이 처칠입니다. 참 둘은 어떻게 보면 영원한 앙숙이요 또 철천지 원수인 것입니다.

***라이벌 소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4.20 ~ 1945.4.30)**

독일 정치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브라우나우암인 출생.

오스트리아 세관원의 아들로 태어나 린츠 근교에서 자랐다. 레알슐레(실업계 중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졸업하지 못하였고, 화가가 되기 위해 빈에 있는 미술학교에 1907·1908년 두 차례 응시하였다가 실패하였다. 그 뒤 빈에서 일정한 직업없이 유산과 고아연금으로 생활하였고 그림엽서나 광고그림 등을 그려 수입을 얻기도 하였다.

13년 병역을 피해 독일 뮌헨으로 이주하였다가 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군에 자원 입대, 바이에른 보병의 전령병으로서 전공을 세워 2차에 걸쳐 철십자훈장을 받았다. 18년 독일 패전 후에도 군에 남아 군대 내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위원회 등에서 근무하였다. 19년 독일노동당(20년 국민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으로 개칭, 통칭 나치스)에 입당한 뒤 뛰어난 연설로 선전활동을 전개하여 당세를 확장하였고 20년 군에서 제대, 나치운동에 전념하였다.

21년 임시전당대회를 개최한 뒤 당의 총서기가 되어 실권을 장악하였으며 베르사유조약의 폐기, 유대인 배척, 바이마르 공화제 반대 등을 주장하여 일반 민중의 지지를 얻었다. 23년 11월 뮌헨에서 봉기하였다가 실패, 투옥되었고 25년 출옥하여 내부적으로 분열되었던 나치스의 재건에 힘써 30년 9월 총선거에서는 나치스가 6백만표 이상을 득표, 독일 제2당으로 부상하였다. 32년 대통령선거에서 힌덴부르크에게 패배하였으나, 같은 해 7월 총선거에서 나치스가 승리, 제1당이 되었고 33년 1월 독일 총리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2월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계기로 공산당을 억압하고 반대파에 대한 대탄압을 강행하였으며, 이어 총선거에서 승리한 뒤 의회에서 전권위임법을 성립시켜 일당독재체제를 확립하였다.

이듬해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죽자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자신이 총통 겸 총리로 취임하였다. 35년 베르사유조약의 군사제한조항을 폐기하고 병역의무를 다시 도입하여 군비확장에 의한 실업극복에 성공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독일 민족 생존권수립의 정책을 폈는데 35년 자르의 영유권 회복, 38년 오스트리아 합병, 39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점령 및 같은 해 9월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 2 차세계대전을 일으켰다. 40년 6월 프랑스를 정복한 뒤 이듬해 소련 침공을 감행,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였으나 43년 2월 스탈린그라드(지금의 볼고그라드), 같은 해 5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패배하였다. 유태인 말살정책을 고집하여 수백만의 무고한 유태인을 학살하였다. 악의 화신으로 여러 차례 암살될 뻔하였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45년 4월 29일 소련군 포위 아래 베를린에서 에바 브라운과 결혼한 뒤 이튿날 총통관저에서 자살하였다. 저서로 《나의 투쟁(1925∼26)》 《제 2 의 책(1961)》 등이 있다.

***윈스턴 처칠(Sir 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1874.11.30 ~ 1965.6.24)**

영국 정치가. 옥스퍼드주 블레넘궁 출생. 명문 귀족 말버러가(家)의 후손이다.

해로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1894년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육군에 들어가 97년 이후 인도·수단 등에서 군무에 종사하였다. 이어 보어전쟁에 《모닝포스트》지 기자로 종군,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여 유명해졌다.

그 여세로 1900년 이른바 카키선거에서 보수당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보호관세무역에 반대하고 자유무역을 주장하다가 탈당하고 자유당으로 옮겼다. 자유당내각이 성립되자 1906년 식민차관(植民次官)에 임명되고, 이어 상공장관·내무장관 등을 거쳐 11년 해군장관을 지냈다. 그 과정에서 보어인과의 화해, 개혁정책 등을 추진하고 해군의 근대화에 노력하다가 15년 보수당과의 연립내각 수립을 기해 사임하였다. 16년 군무에 복귀하였고 17년 군수장관, 19년 육군장관으로 임명되어 러시아혁명에 간섭하는 전쟁에 주력하였고, 21년 식민장관을 역임하면서 중동에서의 영국 세력권 확립에 노력하는 한편 아일랜드 남부에 독립을 부여함으로써 민족운동을 진정시켰다. 22년 자유·보수 양당연립이 무너지고 총선거에서 낙선하였으나 보수당으로 옮긴 뒤 24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해 재무장관에 취임,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단행하였다가 노동당의 반대를 받았고 26년에는 결국 총동맹파업을 유발하였다.

한편 나치즘에 대한 체임벌린내각의 유화정책(宥和政策)을 비판하여 29년 사퇴, 39년까지 집필에만 몰두하였다. 제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정계에 복귀하여 해군장관이 되었고, 40년 체임벌린 사임 후 총리가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41년 대서양헌장을 선언하는 등 전후 국제질서 구축에도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자국의 사회개혁을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등한시한 결과, 45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51년 다시 총리가 되었다가 55년 80세의 고령으로 은퇴하였다. 2차대전 직후 행한 <철의 장막(1946)> 연설은 특히 유명하고, 문필에도 능하여 53년 《제2차 세계대전(1948∼53)》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의 저서로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세계의 위기(1923∼29)》 《나의 초년시대(1930)》 《말버러(1933∼38)》 등이 있다.

자 그러면 이제 이 두 사람을 운명요소(사주명리학)로 비교하겠습니다.

① 아돌프 히틀러
생년월일 : 1889년 4월 20일 유시
운명요소 : 기축년 무진월 병인일 정유시(己丑年 戊辰月 丙寅日 丁酉時)

② 윈스턴 처칠
생년월일 : 1847년 11월 30일 사시
운명요소 : 갑술년 을해월 경인일 신사시 (甲戌年 乙亥月 辛巳時)

***1. 본능 검색**

1) 히틀러 (丑<-辰<-寅->酉)

본능 맨 밑마닥에는 호랑이띠 그위에 용띠 그위 맨위에 소띠, 그리고 다른 쪽 맨위에는 닭띠가 있는 구조입니다. 호랑이 띠는 잘 아시다시피 놀라운 관찰력,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깊은 계략, 한번에 먹이감을 제압하고 현장을 장악하는 탁월한 공격력이 돋보입니다. 그리고 용띠는 시원시원함, 도량이 크고 가슴 속에 이상향을 꿈꾸며 이를 적극 실행하는 강한 추진력이 있죠.

또한 소띠는 자기 방식을 절대로 바꾸지 않는 철저한 완고성과 이를 끝까지 밀고 가는 고집과 되새김질로 씹고 씹다가 한번에 욱하고 터뜨리는 괴퍅성도 있습니다.

닭띠는 공작새 성질이 있죠. 자기의 화려함에 도취하고 정신적 허영심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과 과도한 자존심과 조급함 이를 위한 두뇌회전은 남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입니다.

2) 처칠 (戌->亥->寅<-巳)

본능 맨 밑바닥에는 개띠와 뱀띠 그리고 개띠로 압박받은 돼지띠 그 위에 호랑이띠의 구조입니다.

히틀러는 호랑이띠가 맨 밑바닥에 있어서 잘 알아볼 수 없었는데 처칠은 호랑이띠가 맨겉에 있어 금새 알아볼 수 있죠. 호랑이띠는 히틀러를 참조하십시오.

개띠는 사명감과 책임감의 대명사죠. 먹이를 사냥할 때 탐색, 추적에 큰 실력을 인정 받고 있는데 이런 일로 매우 자부심이 큽니다.

뱀띠는 조심성이 단연 돋보입니다. 앞을 의심하고 조사하는데 탁월하죠. 처칠이 정보부를 어떻게 운용했나를 보면 대단합니다. 그렇지만 먹이를 조준하면 단 한번에 확실하고도 재빠른 공격으로 먹어치웁니다.

돼지띠는 멧돼지의 저돌성, 아무도 못말리는 돌진, 한번 한다고 하면 기여코 하고야 마는 의지력이 돋보입니다.

3) 본능 종합 판단

히틀러의 특징이라하면 아무래도 관찰력(호랑이띠)과 이상향에 대한 버릴 수 없는 꿈(용띠)과 대중 앞에서 도취하는 그 화려함(닭띠)이 특징입니다. 그 사람 개인 위주로 보면 대단하지만 남들의 희생이 따르죠.

한편 처칠은 사명감(개띠)이 돋보입니다. 모든 재능은 이 국민에 대한 사명감을 뒷받침한다고 할까요. 본인보다는 남을 위한 봉사였습니다.

***본능표**

***2. 개성 검색**

1) 히틀러 (己<-戊<-丙->丁)

개성 맨 밑바닥에는 병이 그 위에 무가 그 위에 기가 있으며 다른쪽에 정이 있는 구조입니다.

병은 이해력과 관찰력이 대단하나 매우 조급하기도 합니다.

무는 탁월한 합리적 관리 능력이 최고입니다. 단지 자기 방식대로 자기 중심으로 일을 수행하는 결점이 있지만 기초를 다진 후 착착 일을 진행시키는 뛰어난 성질이죠.

기는 이해흡수력이 뛰어나고 다재다예 재주가 많고 자기자신에게 매우 충실한 이기적 성질이 있습니다.

정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개혁성향, 주도면밀성이 있어서 그의 정치관계 전술 전략을 꾸미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 처칠 (甲->乙<-庚->辛)

개성 밑바닥에는 경과 갑이 그 위에 을과 신이 위 그림처럼 있습니다.

경은 과단성과 민감성 그리고 큰 것을 덥썩덥썩 집어주고 작은 일은 부하에게 던져주는 대담성이 있으며 또 말을 조리있게 잘합니다.

갑은 돌파력과 사람을 선두에서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죠. 정직과 추진력으로 특징 지어집니다.

을은 표현능력이 풍부하고 현실감각이 뛰어나며 독점력과 타산적 성격이 매우 강합니다. 은근히 조심성도 많습니다.

신은 감수성과 자존심 그것보다 강한 권력욕이 있으며 이를 위한 두뇌회전이 대단합니다. 즉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말을 들을 정도이나 약자를 돌보는 인정미 때문에 가끔 큰 일에 낭패를 당합니다.

3) 개성 종합판단

히틀러는 의외로 권력욕보다는 자기 사업 완성에 더 큰 비중(무)를 두고 자기의 재능(기)과 개혁(정)을 진행시킨 반면 처칠은 권력욕(신)과 타산적 독점욕(을)으로 일관한 면이 많다고 하겠습니다.

***개성표**

***3. 소질 검색**

1) 히틀러 (己<-戌<-丙->丁)

인생의 목적이 자기 표현, 인기영합, 명성(사주용어 식신 병->무 )에 있습니다. 즉 창의, 창조, 기술 예술 계통에 소질이 있다 하겠습니다. 히틀러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또 연설은 기가 막힐 정도로 잘했다고 합니다.

2) 처칠 (甲->乙->庚->辛)

처칠은 깔끔하고 계산적이며 (사주용어 정재 경->을 ) 또 교유능력(사주용어 편재 경->갑)이 탁월하면서 또 보스역할(사주용어 편관 갑<-경, 年에 있는 갑과 日에 있는 경의 작용)을 하려는 소질과 목적이 있습니다.

3) 소질 종합 판단

히틀러는 창의 창조 자기표현 연예 쪽의 개인 위주의 소질, 목표인 반면, 처칠은 편법 사용도 잘하는 보스와 교제 교유력이 탁월하다 하겠습니다.

***소질표**
※ 여기서 C 급은 재능이 썩 좋은 편이 아닌 것에 해당되지만 비도덕성 때문에 C급이 되는 수가 많음

4. 욕망 검색

1) 히틀러(병일에 진월)

소질편에서도 설명했지만 창의창조, 기예 방면과 자기 표현욕, 명성욕이 매우 강하고 그것이 소질에도 나타나 (사주용어 투출 透出) 큰 동기 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2) 처칠(경일에 해월)

의외로 욕망쪽에는 자기 표현욕, 창의 창조 기예 방면에 큰 욕망이 있다 하겠습니다. 이것은 소질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므로(투출되지 않음) 동기부여는 되지 않았지만 그의 문학 재능으로 나타나 저술 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3) 욕망 종합 판단

히틀러와 처칠 모두 창조 창의 자기표현욕이 컸지만 이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동기부여 면에서는 히틀러가 앞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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