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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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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51>

로널드 레이건, 그 위대한 일생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이 타계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인 만큼 오늘은 그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레이건은 1911년 2월 6일에 태어났다.

년 신해(辛亥)
월 경인(庚寅)
일 정미(丁未)
시 --

10 년마다 만나는 대운;

01 기축(己丑)
11 무자(戊子)
21 정해(丁亥)
31 병술(丙戌)
41 을유(乙酉)
51 갑신(甲申)
61 계미(癸未)
71 임오(壬午)
81 신사(辛巳)
91 경진(庚辰)

그의 생애가 워낙 잘 알려진 만큼 생시를 몰라도 능히 복기해볼 수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년간(年干)과 월간(月干)의 경, 신, 재(財)가 그리 좋지 않기에 한미한 집안 출신이며 특히 부친이 그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야말로 자수성가하여 거물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임을 말해준다.

그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호소력 있는 목소리, 미소와 여유가 있는 얼굴 표정, 그리고 유머 감각이다. 특히 그의 언사는 언제나 긍정적이었지, 부정적이지 않았기에 월남전 패배의 상처를 미처 씻어내지 못한 미국인들의 마음을 달래고 위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레이건의 사주에서 좋은 기운은 월의 인목(寅木)이니 어머니로부터 좋은 영향, 특히 선량한 마음씨와 인내를 배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 최초로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37년 정축(丁丑)년이었다. 생일이 정미일인데, 정축의 해에 워너 브라더스 사와 배우 계약을 맺고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이었다. 일간이 정화(丁火), 불이니 영화 쪽과 인연이 있는 것이고, 일간과 같은 정화(丁火)의 해에 배우로서 데뷔했으니 사실상 그의 첫 번째 천직이라 할 수 있다.

나중에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는 1967, 정미(丁未)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될 때까지 영화와의 인연은 30 년간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정치인으로 또 대통령으로서 30년간을 살게 되니 사실상 그는 일생을 통해 두 번의 천직을 가졌던 대단한 사람이다.

영화배우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1947년 정해(丁亥)년에 영화배우 조합의 회장으로 선출된다. 이 또한 일간과 같은 정화(丁火)의 해이니 그로부터 그는 다섯 번이나 연이어 회장으로 재선출된다. 그의 정치적인 소질은 이미 이 때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민주당원으로서 해리 트루먼을 지지했다. 주지하다시피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정계에서 민주 공화 양당을 떠나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그 역시 트루먼의 매력에 끌렸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런 그가 공화당으로 당적을 변경한 것은 닉슨 전 대통령의 캘리포니아 주 지사 선거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그 해가 1962년 임인(壬寅)년으로서 그가 본격적인 정치인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영화 일을 계속하던 그는 1964년 갑진(甲辰)년에 텔레비전 연설에 출연한 인연으로 정식으로 정치계에 발을 내딛었다. 1962년부터 그는 갑신(甲申)대운에 들어서 있었기에 그의 삶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드디어 1967년 정미(丁未)년에 가서 캘리포니아 주 지사에 당선 취임했고 급부상하는 스타 정치인으로 자리매김을 받았다. 정미일에 태어난 그가 같은 기운인 정미년에 와서 세상에 본격 등장한 셈이다. 그는 주 지사를 연임한 후 1974년 갑인(甲寅)년에 가서 더 큰 도약을 시도하게 된다. 바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뛰어든 것이다.

이 해는 여러 모로 정치인 레이건에게 중요한 해이자 성과를 거둔 해가 되었다. 신문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그의 가능성이 널리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980년 경신(庚申)년에 가서 당내의 부시를 누르고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았으며, 카터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쟁취한다.

이는 1974년 갑인년부터 시작된 그의 상승세가 그와 충(衝)이 되는 경신년에 가서 성과를 거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69세로서 상당히 고령이었지만, 그는 그 점을 오히려 자신의 매력으로 만들어 나갔다.

다시 말해, 인생의 경륜에서 오는 넉넉하고 친근한 미소와 유머로서 고령의 문제점을 해결했으며, 미디어를 통해 수시로 국민들에게 다가감으로써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피폐해진 미국 국민들의 정서와 국력을 다시 결집하는데 성공했다.

‘강한 미국의 재건설’, 이것이 그의 메시지였고, 국민들은 이 메시지에 용기를 얻었다.

정치 지도자는 철학자도 아니요, 현인도 아니며, 뛰어난 경제통은 물론 아니며, 투사도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 이가 바로 레이건이었다. 전 국민의 역량을 한 군데 모을 수 있도록 흥을 북돋아주고, 작은 차이보다는 더 큰 목표를 위해 사람들과 단체들이 타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동기를 유발해주는 이가 정치 지도자의 제일가는 덕목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1984년 갑자(甲子)년에 재선에 성공한 후, 스타워즈 프로젝트 등의 지속적인 국방력 강화를 통해 빈사의 소련을 구석에 몰아넣음으로써 오랜 냉전을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지도력을 발휘했다.

레이건은 또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라는 인플레이션 정책을 통해 세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그 덕분에 우리는 저 유명한 ‘3저 경기’를 통해 선진 공업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경기가 좋았던 미국인들이 우리의 공산품을 거침없이 사주었던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그의 재임 중에 소위 쌍둥이 적자,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를 안게 되었지만 그것이 우리를 비롯한 신흥공업국들에게는 사실상 절호의 기회가 되었던 것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며, 나아가서 당시에 축적된 화교 자본이 오늘날 중국 경제가 약진하는 먼 원인(遠因)이 되었다 하겠으니, 그의 재임 기간은 미국과 전 세계에 있어 실로 빛나는 한 시대였다고 하겠다.

오늘날 세계 정치 경제는 결국 레이건 당시의 미국에 의한 세계 질서의 확립과 경제 부흥이 가져다 준 사후처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미국과 유렵의 결속은 이완되었고, 레이건 당시 전 세계로 풀려나간 엄청난 액수의 달러가 오늘날의 첨단 금융 시장을 만들어내었다. 지난 1997년 우리가 겪어야 했던 환 쇼크 역시 그런 금융 게임이 만들어낸 막간극인지도 모른다.

그에 대해 좋게 생각하든 탐탁치 않게 여기든, 그가 위대한 지도자였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레이건은 1988년 정권을 부시 대통령에게 넘기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94년 갑술(甲戌)년 가을에 가서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음을 공표하고 조용한 운둔 생활로 들어섰으니 이는 대운이 신사(辛巳) 대운이라 뇌세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 년이 지난 금년 갑신(甲申)년에 와서 대운 역시 경진(庚辰) 대운이라 경금이 갑목을 극하니 용신(用神)이 침해를 받아 숨을 거둔 것이다.

사망한 날은 다음과 같다.

년 갑신(甲申)
월 경오(庚午)
일 을묘(乙卯)
시 계유(癸酉)

결국 경금 대운이 와서 갑목을 누르는 해에 절기가 바뀌자마자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이다. 향년 93세로서 실로 위대한 일생이었다 할 것이다.

레이건의 일생을 반추할 때, 정화(丁火)일생은 정화(丁火)와 갑목(甲木)이 행운의 기운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그가 처음 배우로 데뷔한 것이 정축(丁丑)년이었고, 정해(丁亥)년에 영화배우 조합의 장으로 당선되었으며, 1964년 갑진(甲辰)년에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1967, 정미(丁未)년에 주 지사가 되었다.

그리고 1974년 갑인(甲寅)년에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후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1984년 갑자(甲子)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그런 그가 가장 당당하고 화려했던 모습을 보인 시절은 1987년 정묘(丁卯)년의 일이었다고 하겠다.

그는 1994년 갑술(甲戌)년부터 요양에 들어가 십년 뒤인 갑신(甲申)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른바 호상(好喪)이라 하겠으며 그 바람에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지는 사후의 영광마저 있는 것이다.

그의 일생을 간단히 정리하면 1937년 정축년부터 30년간은 배우로서 그리고 1967년 정미년부터 30년은 위대한 정치 지도자와 원로로서 활동했다고 요약된다.

실로 그의 시대는 미국이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으며, 그는 빛나는 시절을 이끌어간 위대한 정치 지도자였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각고의 노력 끝에 그처럼 대단한 자리에까지 나아갔으니 미국인들에게 오랫동안 귀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겠다. 그의 풍모를 생각하면 미국의 후임 대통령들은 상당히 옹색해 보인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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