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천(公薦)이라 하지만, 일본은 공인(公認)이라 한다. 표현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실질에서도 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현역 의원은 아주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모두 공인 하는 것이 관례다. 일본 정치, 특히 자민당의 정치는 자민당·관료조직·재계라는 이른바 '철(鐵)의 삼각(三角)'이 굳건하고 거기에 지방 토호(土豪)들의 조직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 '철의 삼각'을 깨겠다고 호언하며 집권한 민주당이 발버둥치기는 하였으나, 거의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철의 삼각'이 점차 굳어져 가고 있고, 지방 토호와의 연결도 튼튼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선 일본과의 한 가지 큰 차이는 '공천이 즉 당선'이라는 여야 당 각각의 확고한 지역기반 문제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새누리당의 영남·서울 강남 그리고 민주통합당의 호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주로 그런 지역에서 정치의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하기에 '공천 혁명('학살'이란 잔인한 표현도 쓴다)'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점이 일본 특파원이 경이롭게 보는 일본 정치와 우리 정치의 차이라 할 것이다.
여야의 정치행태, 특히 야(野) 측의 행태가 크게 바뀌었다. 과격화(radicalize) 되었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전번의 민주통합당 수뇌부 구성에 문성근 씨 등이 등장하는 등 상황이 달라졌다. 한미 FTA의 철폐를 요구하며 미 대사관 앞까지 당수를 비롯한 수뇌부가 몰려가고, 제주 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당수들이 현지에 가서 항의를 하는 등, 전에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 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날 서울 동대문갑 지역구를 전략공천지역으로 선정한 지도부 결정에 반발한 이 지역구 서양호 예비후보가 한명숙 대표에게 서한을 전달하려다 제지당하고 있다. ⓒ뉴시스 |
이런 급변된 양상을 보면서 미국의 60년대 중반 격동의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그때 미국은 월남전 반대, 흑인 등의 민권운동 등으로 들끓었다. 미국만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른바 '5월 혁명'이라는 큰 사태가 일어나고, 전 세계적으로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의 물결이 거세었다.
그때 미국의 한 문명비평가는 정치를 ① 선거정치(electoral politics) ② 운동정치(movement politics) ③ 음모정치(conspiratorial politics)로 나누고, 당시의 학생운동·민권운동을 운동정치로 분류하여 이론을 전개한 것으로 기억한다. 민주 정치가 아주 성숙한 나라에서는 선거정치와 운동정치가 구획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는 두 가지가 섞이기도 한다. 후진국에서는 세 가지가 혼합된다.
간단히 줄여 이야기하면, 운동정치는 단일 쟁점(single issue, 몇 가지일 수도 있으나 크게 보면 하나이다)의 항의투쟁이 많은데 단일 쟁점이기 때문에 효과가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집중하여 투쟁하는 것이기에 진상을 아주 철저히 들춰낼 수 있어 계몽적·교육적 효과가 크고, 그리하여 참여자는 물론 국민의 의식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월남전 반대나 흑백차별의 폐지는 단일 쟁점이다. 그래서 운동정치는 대단히 효과적일 수 있고, 종래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시의 미국 민주당이 이 운동정치의 결과적인 도움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약간 말려들기도 하였다. 운동가들은 미국 공화당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여하튼 그런 관련에서 민주당의 1968년 시카고 전당대회는 엄청난 소란에 말려들게 되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월남전을 놓고 서로의 틈도 점점 벌어지고. 그러나 결과는 운동가들의 기대와는 달리 '법과 질서(law and order)'를 내세운 공화당 후보 리차드 닉슨의 당선으로 귀결됐다. 그래서 "프라이팬을 피하려다가 화덕 속으로"라는 자조와 익살 섞인 평이 나왔었다.
노무현·이회창 두 후보가 경합하던 때다.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강원룡 원장이 올림피아 호텔에 둘을 시차를 두고 불러 토론회를 가졌었다. 이 후보의 경우에는 이삼열 교수가 주토론자로, 노 후보의 경우는 내가 주토론자로 지명되었다. 그때 나는 노 후보를 향해 "반미(反美)면 어떻고"란 말을 제발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 무렵 박명림 교수가 '미국의 한계'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한국은 북측과의 대치에서 불가피하게 한미안보체제 속에, 즉 어쩔 수 없는 그 한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좀 과장된 표현을 사용해 "손오공이 뛰어 보았자 결국 부처님 손바닥 위"(부끄러운 일이지만 남북 분단이란 불행한 운명으로 그렇다)라는 말까지도 했다. 그때 노 후보는 나를 지독한 친미주의자로 오해 했을지도 모른다.(노 후보가 초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노동위에 있을 때, 나는 4선으로 같은 위원회에 소속했기에 친하지는 않았어도 구면이기에 솔직한 토론을 한 것이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로, 한국전쟁 휴전 무렵 외무장관을 지냈고, 그 뒤 동네에서 <타임>지 강의를 하며 지내던 영문학자 변영태 씨를 기자로서 인터뷰한 일이 있다. 그때 변 씨는 젊은 후배를 잘 만났다는 듯이 묻지도 않았는데 "요새 젊은 사람들은 우리 조상들이 사대주의를 했다고 매도하는데 그것은 큰 착각이야.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훌륭한 외교를 했지. 그때의 중국은 오늘날의 미국과 유엔 같은 것이었어"라고 열변을 토하며 외교의 지혜를 설명했다.
그 후 우리나라 외교학계의 원로 이용희 교수로부터도 사대주의를 매도할 게 아니라 재평가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고 책으로 쓴 것도 읽었다. 변영태 씨와 같은 맥락이다.
▲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구럼비 바위 발파에 반대하며 7일 민주통합당 정동영 의원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연좌 농성을 했다. ⓒ 김민수 감독 트위터(@coconek) |
말이 좀 장황해졌다.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이야기하려니 그런 전제 설명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나는 한미 FTA는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절대 폐기되어야만 한다. 국내에서의 논의 말고,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일본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는 '미스터 엔(円)'으로 통하는 정통 경제관료이자 학자이다. 그도 ISD에 반대한다는 소신이다. 가령 지방의 건설업체를 육성하기 위해 프리미엄을 준다면 그것이 미국식 FTA에서는 ISD 감이다. 국내외 모두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의 균형발전을 위해 지방경제를 육성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그가 든 반대의 한 가지 이유였다. 우리의 골목 상권 보호와 비슷한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한미 FTA 폐기론에는 찬성하고 싶지 않다. 야당은 "재협상 추진, 필요시 국민적 합의를 거쳐 폐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는 하다. 민주통합당 안의 설명도 서로 달라서 '폐기를 각오하고 개정 투쟁' 운운도 있고, 또 '폐기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의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이다. MB 정권이 공교롭게 지금의 당사자이지만, 주체는 어디까지나 한국이라는 국가인 것이다. 국가와 국가 간의 일을 그렇게 간단하게 뒤집어 버리면 우리의 국가적 신뢰도는 어떻게 되겠는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할 한미 간의 신뢰 관계를 생각하여야만 한다.
제주 해군기지(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문제는 더 까다롭다. 지금 야당은 '공사 중단·원점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해운 상의 필요성, 군사 상의 요긴성 등은 우선 접어놓고 생각하자. 아마 그 문제에 대한 이의는 별로 없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의 점증하는 군사적 대결과 관련된다.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후텐마(普天間) 미군 지지의 이전 문제도 미·중간의 군사문제가 얽혀 매우 까다로웠다. 그 기지 이전 문제로 총리가 사임하기도 한 심각한 사태였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 간의 틈바구니에서 참으로 어렵고 난처한 입장에 있다. 우리의 안보는 한·미 안보체체가 기반이다. 그렇다고 우리와 경제 관계가 가장 밀접해지고, 또한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특히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꼭 협력해야 할 중국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사실 풀기 어려운 딜레마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운동정치권에서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그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나라의 정치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정당에서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국가 전체의 미래를 생각하는 대국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한·미 안보의 기본 틀을 벗어날 수가 없지 않은가.
"반미면 어떻고"하던 노무현 씨도 그래서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놓고 고민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운동정치와 선거정치는 이상과 현실을 놓고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차원이며, 또한 운동정치는 선거정치를 하는 정당들이 대국적 안목에서 소화할 문제인 것이다. 물론 기지 건설을 잠정적으로 중지하고 재고해 보자는 것이지, 기지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라고 둘러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하튼 한·미 안보란 기본을 놓고서는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많은 분야에서 우리가 지혜를 발휘할 일이 있을 것이다. 역시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대북 관계에 있어서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니만큼 미국에 끌려다니지만 말고, 우리가 주도권(initiative)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별도로 논의해 볼 일이다.
어느 신문에 보니 '노이사'라는 신조어가 나온다. 친노와 이대 라인, 486세대를 말한단다. 잘도 만든다. 그리고 학생 때 전대협 의장을 지냈으며 운동정치의 선봉으로 민주통합당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임종석 씨의 문제가 시끄러웠으며 드디어는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포기했다 한다. 아마 어느 정도 운동정치에서 벗어나자는 상황인 것 같기도 한데, 그 귀추는 두고 볼 일이다.
▲ 임종석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은 9일 공천장을 반납하고 당직을 사퇴했다. ⓒ뉴시스 |
다시 말을 정리해보면, 대개 운동정치는 단일 쟁점을 갖고 항의 등 투쟁을 하며, 또한 단일 쟁점에 국한하기에 마음의 갈등도 적고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정당이 하는 선거정치는 그것과는 대단히 다른 차원의 것이다. 부분과 전체는 상충 될 수 있다. 부분에서 소박하게 옳은 것을, 전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양보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국가를 운영하려면 엄청나게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총체적 정책구상을 가져야 한다. 여야 대결이란 그 총체적 정책구상 간의 대결이 아닌가.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은 민주통합당이 단일 쟁점에 너무 집중한다는 인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운동정치를 안으로 끌어안고 아직 그것을 정당 차원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운동정치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 때문도 있다.(통합진보당은 단계가 좀 다르다.) 파시즘 비슷한 양상의 태동도 보인다. 그러다가는 자칫 "프라이팬을 피하려다가 화덕 속으로"라는 비유가 한국에서도 되풀이되지 않을까.
이럴 때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소극(笑劇)으로"라는 아주 자주 인용되는 칼 마르크스의 유명한 구절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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