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본주의 위기에서 세계화로**
***황금기의 종말과 신자유주의의 등장**
그렇다면 1970년대 이후 전개되고 있는 세계화의 본질과 배경은 무엇일까? 주류경제학자들은 세계화의 영향에 관해서 수많은, 대부분은 세계화를 지지하는, 이론적 실증적 연구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세계화 자체의 기원에 대해서는 그다지 진지하게 분석하지 않는다. 이들은 최근의 세계화도 기술 발전과 교통, 통신비용의 하락 등으로 인한 좀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변화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주체가 언제나 어떤 조건 하에서 이윤이든 효용이든 뭔가를 극대화하는 조화로운 세계에서는, 외부적인 조건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균형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정말로 그러한가?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제화의 흐름이 억압되었고, 최근의 세계화를 촉진한 정책변화는 여러 이해와 역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볼 때 세계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변화와 자본의 전략을 주목하는 정치경제학의 연구들이 더욱 도움이 된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주류경제학계의 열띤 논쟁과 연구들은 다음부터 소개하기로 하고 우선은 비주류의 논의들을 살펴보는 것이 역사 공부로는 더 좋을 것 같다. 물론 자본의 속성을 생각하면 자본주의는 그 기원부터 국제적이었고 1차대전 이전도 높은 국제화 수준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1970년대 이후에 새로이 발전되고 있는 세계화는 역시 당시에 전개된 자본주의의 동학(dynamics)이나 역관계의 변화와 관련지어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고리타분할지도 모르지만 역시 세계화는 당시 나타난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응한 자본의 축적전략이라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세계화의 주체는 역시 “자본”이며 이들의 이해와 압력이 세계화의 길을 여는 정책들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이제 자본주의의 위기가 어떻게 세계화로 이어지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929년의 대공황은 자본주의의 최대의 위기였으며 체제의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규제되지 않는 제멋대로의 시장이 끔찍한 불안정과 위기를 낳았던 것이다. 케인즈는 한때 공산주의자로까지 비판받으며 정부의 구원투수 역할을 촉구하였으며 결국 국가가 케인지언 복지국가(Keynesian welfare state) 이름으로 자본주의를 구출해 내었다. 물론 그걸로도 모자라서 2차대전을 통한 엄청난 자본파괴와 전쟁수요가 체제의 소생과 부활에 커다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대공황을 이렇게 극복한 소위 수정자본주의(mixed capitalism)는, 사회복지와 완전고용에 기초한 노동자의 소득증대와 대량소비 그리고 테일러주의 시스템에 기초한 대량생산의 선순환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포드주의(Fordism)”에 기초하여 고도성장을 구가하였다. 이러한 황금기의 자본주의는 국가, 산업자본가, 노동자 간의 일종의 타협과 금융자본에 대한 억압에 기초한 것이었고, 국내적 팽창정책은 자본의 유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자본통제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황금기는 채 몇십 년도 가지 못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자본주의 경제의 고도성장 자체가 위기의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었다.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완전고용을 배경으로 한 노동자의 세력이 강해지고 계급투쟁이 격화되어 부가가치에서 노동자가 차지하는 임금몫이 늘어나 이윤압박(profit squeeze)이 발생하였다. 또한 기술혁신이 정체되고 작업장에서의 노동자의 반란으로 인해 생산성은 상승이 정체되었다. 나아가 국제경쟁의 격화 그리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정책대응의 실패 등을 배경으로 결국 자본의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하고 70년대 초반에는 국제통화체제의 붕괴와 석유위기, 그리고 제 3세계의 반란 등으로 자본주의의 축적과 질서가 심각한 위기에 부딪치게 되었다. 황금기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에 고유한 과잉축적 문제를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적, 제도적, 기술적으로 모두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른바 축적의 사회적 구조(social structure of accumulation) 혹은 축적체제(accumulation regime)가 붕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황금기의 등장과 붕괴 과정은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해 상세히 분석되어 왔으며 어떤 요인이 더욱 중요했는가에 대해서 무척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Armstrong, Glyn and Harrison, 1991; Brenner, 1998; Dumenil and Levy, 2004a)
그러나, 바로 이 때부터 자본은 회심의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1979년 폴 볼커로 대표되는 미국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금리를 높이고 불황을 장기화하여 노동자 세력을 효과적으로 약화시키고 규율을 강화하였다. 또한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혹은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 경제정책은 노동자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민영화와 규제완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케인즈주의 복지국가의 경제개입 축소로 이어졌다. 선진국에서 시작된 이러한 정책 변화는 80년대 이후에는 외채위기와 IMF의 경제구조조정 정책을 배경으로 개도국에까지 퍼져나갔다. 신자유주의의 대두는 물론 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자본의 자유 확대를 추구하는, 70년대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자본의 대응이었다.(Dumenil and Levy, 2004a) 혹자는 신자유주의란 이름만 들어도 신물이 날지도 모르지만, 이는 자본에게는 새로운 신세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본의 대반격과 이윤율의 회복**
다음 그래프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사적부문 기업들의 이윤율 변화를 보여준다. 제조업의 이윤율은 60년대 후반 이후 그 하락이 사적부문 전체에 비해 훨씬 급속하며 80년대 이후에도 더욱 더딘 회복을 보여준다.
그림 1.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이윤율 변화, 전체 사적 부문(%)
주:
1) “유럽”은 독일, 프랑스, 영국을 지칭
2) 이윤율은 (순산출 - 노동비용)/총고정자본 으로 계산, 따라서 모든 세금과 이자 그리고 배당 등은 이윤에 포함된다.
자료: Dumenil and Levi, 2004a. Capital Resurgent: Roots of Neoliberal Revolution.
맑스가 일찍이 지적했듯 이윤은 자본의 성배(聖杯)이며, 이윤율은 자본의 축적, 즉 투자와 성장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물론 최근의 미국처럼 금융버블로 투자가 급등하거나 한국처럼 이윤율이 높아져도 투자가 증가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은 주로 이윤율의 변동에 좌우된다. 물론 맑스주의자들 사이에도 이윤율이 철의 법칙처럼 하락하는가 하는 것은 논쟁의 대상이다. 기계화 등으로 이른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됨에 따라 이윤율은 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생산성의 상승과 노동자의 임금몫의 감소 등으로 이윤율이 회복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머리아픈 논쟁은 접어두자. 어찌되었건 그래프에서 보이듯 선진국의 이윤율은 80년대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함께 상당히 회복되었다. 이윤율의 회복에는 물론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반격과 자본에 대한 규제완화 등을 배경으로 한 이윤몫의 급속한 증가가 매우 중요하였으며 신기술에 기초한 생산성 상승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80년대 이후 새로이 나타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과연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며 앞으로 새로운 장기적 호황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이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현재까지의 성과로 볼 때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우선 이윤율이 회복되었지만 80년대 이후의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은 황금기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성과를 보여준다. 이는 금융위기와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 심각한 외채위기를 겪었던 1980년대)을 보낸 라틴아메리카 등 개도국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경우 1950년대와 60년대의 평균성장률은 약 4.2%였지만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약 3.1%, 그리고 최근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의 성장률은 약 3%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한 새로운 금융주도 축적체제의 등장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황금기의 포디즘을 대체하는 안정적인 제도적 구성이 등장하고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특히 금융화(financialization)라 불리는 금융자본의 세력 강화가, 산업자본의 이윤 중에서 배당과 이자 지불 등 금융자본에게 돌아가는 부분을 증가시켜 산업투자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된다. 전체 기업의 이윤 중 금융기업이 차지하는 부분이 1980년대 초반 약 15%에서 계속 증가하여 2000년에는 약 40% 수준까지 상승하였고 산업기업들의 금융관련 투자도 급증하였다. 아래 그래프는 미국의 비금융기업의 이윤 중에서 금융자본에게 돌아가는 부분을 뺀 기업의 유보이윤(retained profit)을 보여준다. 투자와 성장은 이윤율 자체보다도 유보이윤과 더욱 밀접한 관련을 보이는데 80년대 이후에는 이윤율 회복에도 불구하고 금융자본의 몫이 증대하여 유보이윤과 투자는 그리 빠른 회복을 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2. 미국 비금융기업부문의 유보이윤과 축적률
1) 이윤율과 축적률은 1965년을 기준년으로 상대적으로 비교한 것
2) 축적률은 순자본스톡의 증가율(순투자/순자본스톡)로 계산
3) 유보이윤은 이윤에서 세금, 이자, 배당 등을 제한 순이윤으로 계산
자료: Dumenil and Levi, 2004b. Neoliberal Dynamics: A New Phase? CEPREMAP.
한편 90년대 후반 이후 미국에서는 이른바 신경제(new economy)의 도래와 함께 IT투자가 급등하였고 신경제로 인해 경기순환까지 사라진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가 열렸다는 기대도 만발하였다. 하지만 신경제의 생산성 상승도 상당한 한계가 있으며, 당시의 호황은 위의 그래프도 보여주듯 견고한 이윤증가보다는 버블과 엄청난 해외자본의 유입에 기초한 것이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물론 소득분배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상층부 부유층의 소비 증가와 기술혁신과 노동자에 대한 규율에 기초한 생산성 상승으로 새로운 장기호황이 전개될지도 혹시 모르겠다. 그러나 침체 이후 최근의 경제회복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개인저축률이 0에 가까울 정도로 떨어지고 경상수지와 재정적자가 증가하는 등 취약한 거시경제구조를 보여주고 있어서 호황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존재한다.(Brenner, 2004; Godley, 2003)
***자본주의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많이 새어나간 느낌이다. 흥미롭긴 하지만, 자본주의의 위기나 전망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일단 멈추고 다음 기회를 기약하도록 하자. 중요한 점은 자본의 세계화가 정확하게 이러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자본은 이윤율 저하에 대응하여 해외에 대한 투자와 국제적 자본이동이라는 새로운 전략적 대응을 보여주었다. 또한 산업부문의 이윤율 저하로 인해 자본이 산업에서 금융부문으로 이동하여 금융자본이 더욱 팽창하였고 산업자본보다 더욱 유동적인 이들은 보다 나은 이윤기회를 찾아 전세계로 뻗쳐나가기 시작했다. 상품, 서비스 자본이동의 자유화와 시장개방 등 전세계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세계화를 더욱 촉진하였는데 이는 정확하게 자본의 활동공간을 전세계적 차원으로 넓히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80년대 이후에는 자본에 대해 최대의 자유를 제공하고 국가개입이나 노동자의 저항과 같은 일체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전세계적으로 나타났다. 또한 세계화는 여차하면 해외로 나가버리겠다는 위협을 통해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위를 강화해 주었으며 신자유주의 정책도 더욱 힘을 받게 하였다. 이렇게 볼 때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현상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국민계정에서 국내와 해외의 이윤을 분석해 보면, 해외직접투자(U.S. direct investment abroad)를 통해 국의 초국적기업의 해외지사가 벌어들이는 이윤이 미국 기업들이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이윤(domestic profit)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0년대 후반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증가 일로에 있다. 또한 해외지사의 이윤과 포트폴리오 투자의 금융수익 등 기업과 금융기관 그리고 개인 등 모든 미국인이 해외로부터 벌어들이는 총수익이, 국내의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이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대 중반 약 40%에서 1980년대 초반 거의 95%로 급등하였다. 물론 80년대 이후에는 금융위기 등으로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의 수익이 급변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미국기업의 해외직접투자의 수익률이 국내투자의 수익률에 비해 별로 높지 않다는 보고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를 배경으로 해외투자가 이윤의 원천에서 중요해졌으며 신제국주의적 착취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것이 80년대 이후 이윤율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하기는, 미국의 해외투자는 미국으로의 외국인투자에 비해 직접투자의 비중이 훨씬 높고 특히 미국의 해외투자의 수익률이 미국 내로의 외국인투자에 비해 거의 2배나 높다는 점에서, 세계화된 세계경제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일종의 제국주의와 유사한 체제라는 주장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자본과 이를 대변하는 국가의 정치적 그리고 전략적인 대응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교통, 통신 등의 기술 발달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며, 경제위기와 자본운동의 세계화 사이의 관련에 대해서는 더욱 세련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변화가 안정적인 경제성장 대신 오히려 자본이동의 불안정성을 심화시켜 새로운 형태의 국제금융위기를 촉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 등 개도국들은 80년대 이후부터 빈발하는 경제위기로 몸살을 겪게 되었고, 점진적인 자유화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길을 고수했던 동아시아 나라들도 90년대 금융개방 이후 경제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은 무척 시사적이다. 또한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개도국들을 포함한 전세계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이 퍼져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와 세계화 그리고 세계경제의 불안정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금융자본과 세계화의 정치학**
이제 신자유주의 시기에 국제적 자본이동과 금융세계화의 발전을 위해 어떤 정책들이 도입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에릭 헬라이너의 국제정치경제학 연구의 역작 <국가와 세계금융의 부활(States and Reemergence of Global Finance)>은 선진각국에서 실시된 경쟁적인 금융자유화와 개방의 과정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1970년대부터 국제적 자본이동을 자유화하는 정책들이 대거 실시되었고, 이러한 흐름은 80년대 이후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원래 브레튼우즈 체제는 선진국들의 협조적인 자본통제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70년대 초반에는 무역과 초국적기업의 성장, 기술의 발달 그리고 유로시장의 발전 등으로 자본통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으며, 특히 이 시기부터 자본통제를 반대하는 세력이 힘을 얻으며 자유화가 진전되었다. 서유럽과 일본은 1971년 스미소니안 협정(Smithonian Agreement)에서 미국의 자본통제에 대한 협력을 끌어내었고 역외 유로시장에 대한 규제를 실현시켰지만, 선진국의 협조에 기초한 자본통제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미국이 금융자유화가 국내 경제정책을 조정하고 국제적 무역을 증가시키고 전세계의 경제적 복지를 증가시킨다고 주장하며 자유화를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3년 대통령 경제보고서(Economic Report of the Presdient)에서 자본통제에 대한 반대를 명시하고 1974년 자본통제 정책들을 폐지하여 국제금융시스템을 시장 중심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미국 정부는 적자가 증대되는 가운데 정책의 자율성을 유지하고 시장의 힘으로 서유럽과 일본의 통화를 재평가하여 국제적 조정의 압력을 전가하고자 했던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입장을 다른 선진국들에게 밀어붙이며 국제통화체제를 재편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1976년 IMF 협약의 수정에서 협력적인 통제의 의무는 강화되지 않았고, 4-1 조항이 “자본거래의 촉진”을 포함하도록 새로 수정되었는데 이는 6-3의 자본통제 조항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헬라이너가 “신자유주의적 국내적 전환(Neoliberal Domestic Shift)"이라 부른 국내의 역관계와 정책적 입장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자본자유화는 정확하게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한 것이었고 이전에는 자유화를 반대하던 산업자본가들도 위기를 배경으로 입장을 바꾸었으며 조지 슐츠 등 닉슨 정부의 관료들도 신자유주의에 경도되어, 새로운 신자유주의 동맹세력들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중앙은행가들은 변동환율과 투기적 자본운동에 대해서 우려했지만 통화주의가 득세하며 환율도 시장에 의해 조정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팽배하였다.
이러한 사상과 정책의 변화는, 1976년 IMF 위기를 맞은 영국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케인즈주의가 퇴조하고 강력한 긴축정책이 실시되었으며 자본자유화가 추진되면서,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미국은 인플레로 인해 달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상황을 자본통제 대신 대대적인 금융긴축으로 극복해 나갔으며 79-80년 이후에는 유로시장에 대한 규제도 포기하였다. 한편, 1981년 프랑스의 미테랑은 불황에 대응하여 대대적인 케인즈주의적 확장정책으로 다른 나라와 정반대의 길로 나아갔지만 인플레와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자본유출이 가속화되었고 결국 긴축정책을 받아 들이고 말았다. 자본이동의 발전과 국제금융자본의 세력 강화 등 이미 변화한 역관계 하에서 각국 정부들은 국제금융자본에 무릎을 꿇고 자유화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한편 1980년대 초반 미국은 재정적자와 금융긴축으로 금리가 급등할 수도 있었지만 사적 자본의 대량 유입으로 이를 모면하였고, 이 과정에서 미 재무부는 외국인의 미 채권 보유에 대한 세금감면, 익명의 재무부 채권 발행 등을 통해 금융자유화를 더한층 밀어부쳤다. 영국도 시티(City)의 금융자본의 압력 속에서 1979년 복구가 아예 불가능하도록 관련서류까지 폐기하며 환통제를 철폐하고 86년 빅뱅과 함께 미국과 경쟁하며 규제완화의 길로 들어선다. 일본도 미국의 압력과 함께 채권국으로의 전환 그리고 정부적자의 증대와 대장성 등 일본 내의 국제주의 세력 강화 등을 배경으로 자유화와 개방이 이루어진다. 그 밖의 선진국들도 자본유출에 대한 우려를 배경으로 다른 나라들을 좇아서 경쟁적인 금융자유화와 개방을 추진하게 된다. 이제 남은 곳은 70년대까지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국가주도적 산업화 모델을 계속 고수해 왔던 라틴아메리카 등의 개도국들이었는데 이들 나라들의 자본에 대한 장벽은 외채위기로 인해 극적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세계화의 물결과 워싱턴 컨센서스**
개도국들에서는 1980년대 이후 발발한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자유화와 개방이 급진전되었다. IMF는 위기를 겪은 개도국에 대한 구제금융과 함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들로 구성된 구조조정 프로그램(Structural Adjustment Program)을 강제하였다. 통화와 재정의 긴축, 민영화, 규제완화 그리고 무역과 투자의 개방 등이 그 주요 내용이었는데 이는 미국 정부와 금융자본이 원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클린턴 정부의 재무부장관 로버트 루빈은 골드만 삭스의 회장을 지냈으며 IMF의 부총재였던 스탠리 피셔는 현재 시티그룹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등, 흔히 “월스트리트-재무부-IMF 복합체(Wall Street-Treasury-IMF complex)”라 불리는 금융자본과 미 정부 그리고 IMF 사이의 인적, 물적인 네트워크 혹은 유착(?)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90년대 이후 이러한 정책들은 흔히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는 이름을 얻었다. 미국과 IMF, 그리고 남미 국가들의 금융 당국자들이 1989년 워싱턴에 모여 남미 국가들이 따라야 할 10가지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물가 불안을 잡고 국가개입을 축소하며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IMF의 구조조정 정책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었다.
우습게도 정작 워싱턴 컨센서스를 처음 제창한 윌리엄슨은, 이 개념은 IMF를 비판할 때 생각되듯 레이건 시대와 같은 완고한(die hard) 시장근본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항변한다. 그는 원래의 주장이 ‘국가를 무조건 축소하자’는 것은 아니었으며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조심스런 금융규제와 균등한 소득분배가 보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무튼 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시장근본주의 정책들은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을 비롯한 모든 개도국에 일률적으로 적용되었다. 심지어 1997년 경제위기 이후에는 전혀 처지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게조차도 강제되어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비판받은 바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세계화를 개도국에 밀어붙이는 첨병이었다.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는 선진국 자본의 개도국 진출을 심화시켰고 기간산업의 민영화와 그리고 규제완화는 외국자본에게 수익성 높은 시장과 손쉬운 이윤의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별반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80년대 이후 개도국 경제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오랫동안 정체하고 있으며 몇몇 나라들을 빼고는 빈곤과 소득분배가 악화되었다. 예를 들어, 멕시코의 경우 1982년 외채위기를 겪은 후 모든 종류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한 IMF의 모범생이었으나 빈곤은 심화되고 급속한 금융개방으로 인해 경제의 불안정이 더욱 악화되어 1994년 다시 새로운 금융위기를 겪었다. 특히 의료부문 등에 대한 정부지출 감소로 1980년에서 1992년까지 영양부족으로 인한 유아사망률이 3배로 높아지기도 했다. 또한 IMF의 구조조정과 최근의 WTO 체제로 인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AIDS와 같은 질병문제가 더욱 심각해졌고 잘못된 자유화가 기아문제를 심화시키기도 하였다.(Chossudovsky, 1997) 이쯤 되면 세계화는 선진국 자본만을 위한 것이며 개도국에게는 “세계화의 덫”이거나 “빈곤의 세계화”를 낳기도 했다는 항변이 이해될 만도 하다.
스티글리츠는 개도국의 현실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IMF가 “엉터리경제학과 어떤 이데올로기의 기이한 결합”이라 부른 잘못된 정책을 개도국들에게 강요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노벨상을 받은 석학의 일갈은 일견 통쾌하기는 했지만 자존심 센 주류의 주장을 뒤집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약간의 반성에 기초해서 국제기구와 학계에서는 제도의 중요성과 국가의 적절한 역할을 강조하는 “제 2세대 개혁(Second Generation Reform)” 혹은 “포스트-워싱턴 컨센서스(Post-Washington Consensus)” 등 여러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주장들은 세계화의 이득을 역설하며 자유화와 개방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개도국의 정체와 빈곤도 세계화의 탓이 아니라 덜 세계화된 탓이라는 주장이 더욱 일반적인 것이다.
세계화가 더욱더 진전된다면 과연 모든 나라들이 세계화의 덫이 아니라 은혜를 입어 결국에는 약속된 축복의 땅이 도래할 것인가? 먼저 세계화의 영향과 이득 그 자체에 대해서 더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오늘은 주로 비주류 정치경제학의 역사적 분석을 소개했지만 최근 경제학계에서는 세계화 혹은 자유화와 개방정책의 경제적 효과에 관해 다양한 이론적, 실증적 연구와 논쟁들이 전개되고 있다. 다음 글들에서는 이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참고문헌**
Armstrong, Phillip, Andrew Glyn, and John Harrison, 1991. Capitalism Since 1945, Basil Blackwell. 김수행 역, 1995.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동아출판사
: 이윤압박론의 입장에서 황금기 자본주의의 등장과 몰락을 다룬 경제사
Helleiner, Eric, 1994. States and Reemergence of Global Finance: From Bretton Woods to the 1990s. Cornell University Press.
: 선진각국의 자본자유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정치경제학적으로 분석
Godley, Wynne, 2003. The U.S. Economy: A Changing Strategic Predicament. Levy Institute.
: 현재 미국 호황의 거시적 취약성을 보여줌
Brenner, Robert, 1998. The Economics of Global Turbulence: A Special Report on the World Economy, 1950-1998. New Left Review 229.
: 선진국 자본간 경쟁을 70년대 위기와 이윤율 하락의 중요한 요인으로 제시
Brenner, Robert, 2004. New Boom or New Bubble: The Trajectory of the US Economy. New Left Review 25 - Jan Feb 2004
: 최근 미국의 호황은 버블에 기초한 지속불가능한 것이라는 주장
Dumenil, Gerald and Dominique Levi, 2004a. Capital Resurgent: Roots of Neoliberal Revolution. Harvard University Press.
: 70년대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신자유주의의 발흥에 대한 연구
Dumenil, Gerald and Dominique Levi, 2004b. Neoliberal Dynamics: A New Phase? CEPREMAP.
: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동학과 한계
Chossudovsky, Michel, 1997, The Globalization of Poverty: Impacts of IMF and World Bank Reforms. Zed Books. 이대훈 역. 1998. 빈곤의 세계화. 당대.
: IMF와 세계은행의 구조조정이 개도국에 가져다준 악영향에 대한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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