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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들의 '시체 기념 사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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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들의 '시체 기념 사진'에 대하여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15>

어느 멀쩡한 이라크 아저씨가 미군에게 끌려가 순식간에 시체로 변했다. 그 이라크 어느 동네의 이름없던 아저씨의 얼굴이 세계적으로 알려져서 필자까지 보게 된 계기는, 그 아저씨 주검 옆에서 낄낄거리는 미군 "년놈" 덕분이다.

국제 정치나 정치 경제에 대한 분석과 사유는 정말로 냉철한 태도가 필요하다. 알프렛 마샬의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가 경제학 이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인간으로서의 아주 기본적인 진실과 이상까지 뭉개지는 수가 있다. 미국 국제정치학의 소위 "현실주의(realism)"가 키신저 등등의 악마주의로 변해버린 것이 그러한 연유이다. 그러니까, 그 이라크 아저씨 주검의 사진 앞에서 잠깐 호흡을 고르고, 차가운 이성만이 아니라 마음과 몸까지 합하여 차분히 몇 가지만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1.**

트로피(trophy)라는 단어는 중세 불어 trophe'e에서 왔다. 싸움터에 세운 승리 기념비라는 뜻이지만, 사실은 사냥 나가서 죽인 사자 등의 맹수의 머리통이 원래 의미였다. 더 옛날로 가면 그리스어 tropaion이 어원인데, 그 의미는 "돌려버린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목을 꺾어서 뜯어내는 동작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유럽 지배 계급의 역사적 근원은 군인이다. 그람시가 말한 바 있듯이,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우월함을 평민들에게 종종 과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자신들의 싸움 기술을 보이는 방법으로 사자 대가리를 뜯어내든가 점령지 남자들의 고환을 모두 잘라내어 피라밋을 쌓던가 했었다. 이것이 그 잘난 서양 "문명"의 야만 시대의 기억이다.

언젠가 인도의 간디에게 어떤 영국 기자가 거드름을 떨며 이렇게 물었다. "서양 문명(Western Civilization)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간디는 아주 공손하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서양이 문명? 말도 안되지만, 예쁜 표현이군요. (It would have been a good idea)".

트로피는 아무나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냥이나 전쟁에서 휘두르는 무기와 말(馬)은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기에. 그래서 트로피라는 것은 지배 계급의 집안에만 전시되는 장식물이었다. 그래서 북미대륙이라는 넓고 깨끗한 땅에 총 한자루 달랑 차고 풀려나간 유럽 천민들이 툭하면 벌인 짓이 그 천민같은 유럽 "귀족"들을 흉내내는 것이었다. 위엄과 품위의 짐승인 북미 물소(buffalo)를 있는 대로 잡아 죽여 그 되도 않은 통나무 집 벽에 걸어놓는 유행이 그렇게 생겨났다. 미국인들의 트로피 문화의 시작이다.

부처님의 눈에서 보면, 버팔로도 생명이고 사자도 생명이다. 하물며 이라크 아저씨는 더 소중히 해야할 인간의 생명이다. 하지만, 버팔로를 때려잡고 베트남 캄보디아 인들을 사냥한 미국인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나보다. 그냥 목을 비틀어 뜯어내어 집에 기념품으로 전시하면 되는 물건으로 보일 것이다. 이러한 미국인들의 심성을 잘 표현한 것이 바로 "프레데터(Predator)"라는 영화이다. 그러니 이라크 아저씨의 주검 앞에서 쌩긋 웃는 "년놈"들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유럽 귀족들의 용기와 체력에 미치지도 못하는 미국 촌동네 아이들. 몇 달 전부더 미군들은 시가전이 두려워서 차로 순시를 돌 때는 시속 80킬로미터 정도로 밟는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이 소강 국면으로 들어가면, 이 따위 겁장이 모습은 바로 피지배민들에게 경멸과 멸시를 사게 되어있다. 광범위한 반항이 이라크에서 조직되는 것은 이 비겁한 꼴불견의 미군이 자초한 사태이다.

***2.**

영혼이라는 것에 대해, 동양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말이 있다. 먼저, 백(魄)은 육신을 움직이는 일종의 오퍼레이팅 시스템 같은 것이다. 혼(魂)은 가슴의 중단전에 깃드는, 한마디로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신(神)은 머리로 들어오는 일종의 정보의 집적체로서, 이것이 혼과 백을 기동시키는 원동력 –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서 eidos라고 할 만한 것이다 – 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의 영혼은 육신의 욕망과, 마음의 따뜻함과, 정신의 올바름이 합쳐진 것이라는 관념이다. 예수 시절의 유태인들도 귀신과 인간의 마음을 구별하는 지혜가 있었고, 이것이 서양 언어에서 spriit(머리로 들어온다)과 soul(가슴에 있다)의 차이를 낳는 원천이었다.

저 이라크 동네 아저씨의 주검 옆에서 예쁘게 웃고 있는 그 "년놈"들의 머리에는 spirit이 있을까. 그네들의 가슴에 soul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면, 이들의 존재는 사람인가 짐승인가. 자기의 물리적 "힘"이 더 세니까 트로피를 챙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짐승의 의식 수준인가. 그렇다면 이들도 영혼을 온전히 갖춘 인간일까.

***3.**

한국의 국제 정치학 교수나 관료 등 지배 엘리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덕분에 영어를 잘한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그가 입만 벌리면 하는 말이 있다. "국제 정치는 권력이다. 인간의 영혼이고 이상이고 도덕이고의 문제를 국제 정치에 연결시키는 것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짓이다. 이게 바로 선진국 미국 국제 정치학계의 공통된 지혜(그 사람은 이것을 "진리"의 차원으로 표현했었다)이다". 그 논리의 연장에서 보면, 이라크에서 미군이 무슨 "개지랄"을 하건, 한국 시민 누군가가 미군 흉기에 목구멍이 바람 구멍이 되든, 무조건 파병은 해야 한다. 그게 냉철한 "국익"이니까.

겉으로는 냉철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외교 정책의 옵션은 미국에 대한 복종 뿐이다"라는 태도이다. 이 태도의 근원은 사실상 정신적 노예 상태에 있다. 어떤 상황이 닥치건, 노예가 할 바는 딱 하나 뿐이다. 주인 앞에 나아가 엎드려 다 내주는 것. 왜냐면 노신 선생 말마따나, "그 이외에 방도가 없으므로". 그런데 그 결과 전쟁에 끌려나가고 세금을 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앞장서서 엎드린 한국의 지배 엘리뜨들이 아니라 꾸준히 성실하게 살아온 평민들이다. 그 후에 그 자들이 평민들에게 항상 떠드는 강변이 있다. "너네들이 국제 정치를 알아? 미국을 따라 가는 것 말고 무슨 "현실적인" 방도가 있어?"

1969년에서 1971년 기간, 캄보디아 사람들은 미 공군의 융단 폭격으로 70만 이상의 인명 희생을 겪었다. 이 숫자는 오륙년 후 크메르 루지가 죽인 숫자 50만을 훨씬 뛰어넘는다. (20만의 생명이다.) 즉 "킬링필드"의 진정한 주역은 미군이다. 그런 짓을 명령한 자는 키신저이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미군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베트남에서는 승리해야 한다. 그런데 베트콩들이 인근 캄보디아 마을에 숨고 있다. 그렇다면 베트남 접경 캄보디아 지역을 초토화해야 한다. 소이탄이 쓰였다. 폭탄 안에 가솔린이 들어 있어, 폭발 반경의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지옥의 묵시록에서 서핑보드를 타기 위해 숲을 박살내는 장면의 폭탄이 바로 이것이다. 두개골도 췌장도 나무 그루터기도 다 한줌 재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이런 키신저라는 인간에게 스웨덴의 무슨 한림 나부랑이들은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였다. 이게 서양 "문명"의 한 단면이다.

이 키신저의 사상적 배경이 바로, 미국 유학간 우리나라 정치학자들이 하늘처럼 모시고 있는, 소위 미국식 현실주의(realism)이다. 이게 악마주의(diabolism)와 다른 것일까.

***4.**

부처님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주 대단한 일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태어난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아마도, "타고난 영혼을 아주 고귀하게 완성"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정도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밥을 굶건 팔이 잘리건 견딜 수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바로 이런 정신이 신라 때의 박제상부터 사육신을 거쳐 안중근 여운형 김구로 이어지는 한국인들의 정신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렇게 믿으면서 수천년 살아온 한국인들이 어째서, 미군들이 이라크 아저씨의 몸을 트로피로 삼는 인간말종의 세계로 가야 하는가. 거기 갔다가 돌아온 한국인들은 미군들에게서 무슨 악종의 정신적 태도를 묻혀오겠는가.

이 모든 것을 불사하고 이라크로 떠나라고 명령하는 자는 누구인가. 외교부 장관인가. 무슨 여의도의 '선량'인가. 아니면 대통령인가. 당신들이 나의 영혼의 고귀함과 내 자식의 양심을 책임질 수 있는가. 아니면 입 다물라. 그리고, "국익" 운운하는 자들이 있으면 이렇게 물어보라. 세금은 당신 혼자서 냈느냐고. 당신이 뭔데, 똑같이 세금낸 주제에(오히려 그 자들 중에는 탈세한 자들도 심심치 않게 있을 것이다) 감히 "국익" 전세낸 것 처럼 떠드느냐고.

정말, 우리의 영혼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이라면 대통령 아니라 교황 아니라 무슨 옥황상제가 뭐라하든, 사람 시체를 놓고 잔치를 벌이고 있는 이 더러운 전쟁에는 끼어들지 말자. 미국의 악마주의적 현실주의가 벌여놓은 지난 반세기의 북새통을 반성하고 있는 최근 국제정치이론 학계의 지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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