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보수신문의 논조에 밀려 점차 개혁성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경계의 목소리가 언론계로부터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민언련 "우리당, 조선일보식 프레임에서 벗어나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 이사장 이명순)은 30일 논평을 내어 "보수신문들이 개혁을 '혼란'과 '이념논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일부 수구신문이 열린우리당의 노선과 정체성을 물고늘어지는 이유는 여당의 '보수성향'을 부추겨 개혁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라며 "이같은 태도야말로 열린우리당을 제1당으로 만든 국민들의 민의를 무시하는 오만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질타했다.
민언련은 또 "열린우리당은 개혁을 염원하는 국민들과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 사이에서 (오히려)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조속히 '조선일보식 프레임'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했다.
***언론노조 "우리당, 수구 기득권 치마폭에 안주하려 하나"**
이에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위원장 신학림)도 29일 '수구 기득권 세력의 치마폭에 안주하려는 열린우리당의 '실용주의'에 분노한다'는 제하의 성명을 내고 반개혁적 의제를 확산시키고 있는 보수신문과 이에 편승해 개혁 후퇴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열린우리당을 동시에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정 의장과 열린우리당 내 실용주의파는 '단기적 경기회복을 위해 모든 개혁과제를 뒤로 미룬다' '기득권층의 반발을 살 수 있는 개혁과제를 나중에 천천히 검토한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라"며 "'이념보다는 실용'이라는 그럴싸한 구호를 내거는 것은 '정치적 사기'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언론노조는 이어 "(열린우리당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우려해 물러서기 위한 구실로 실용주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실사구시'적으로 도그마(교조)를 깨 가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한 개혁의 본령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한국사회에서 그 도그마는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시장 만능주의=신자유주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또 "유권자들이 열린우리당에게 17대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안겨준 것은 민생과 정치, 사회개혁을 철저히 추진하라는 시대적 염원에 따른 것"이라며 "실용주의를 내세워 이를 외면한다면 열린우리당은 언론노동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언론노조의 29일자 성명 전문이다.
***수구 기득권 세력의 치마폭에 안주하려는 열린우리당의 '실용주의'에 분노한다**
'이념'보다는 '실용'이란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지난 4월26∼28일 열우당 당선자 워크숍을 마무리하며 결론 삼아 얘기한 내용이다. 지금은 시급한 민생 현안부터 해결하고 국가보안법 개폐, 언론개혁 입법, 사법개혁 등은 뒤로 미룬다는 게 이른바 '실용'의 실천적인 귀결이다. 정부와 협의를 통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미루고, 비정규직 보호대책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기로 한 것도 열우당이 추진하는 '실용'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
우리는 '이념'과 '실용'을 칼로 무를 자르듯 '일도양단'하는 정 의장과 열우당 내 자칭 '실용주의파'들의 오묘한 신통력에 실로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너무나 오묘한 나머지 수구·보수 언론의 해석하는 '실용'도 제각각이다.
<동아일보>에게 이라크 파병 문제는 '이념성 개혁 이슈'이다. "(열우당 내) 일부 젊은 의원들은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위해 보안법 개폐, 이라크 파병 철회, 사회개혁 등과 같은 이념성 개혁 이슈에 우선순위를 둘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4월28일치 사설)고 보도한다.
반면 <중앙일보>는 "지금은 흩어진 민심을 통합하고 경제회복, 대북지원, 이라크 파병 등 시급한 현안에 매달려야 하며, 야당과 국민의 협조를 구해야 할 때"(4월28일치 사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중앙일보에게 이라크 파병 문제는 이념성 개혁 이슈가 아닌 시급한 현안, 곧
'실용'인 셈이다.
수구·보수 언론의 이런 '제논에 물대기식' 해석이야말로 열우당이 내세우는 실용주의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임을 짐작하게 한다. 정 의장과 열우당 내 실용주의파는 솔직해지기 바란다. '단기적 경기회복을 위해 모든 개혁과제를 뒤로 미룬다', '기득권층의 반발을 살 수 있는 개혁과제를 나중에 천천히 검토한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면 될 일이다. 거기에다 '이념보다 실용'이라는 그럴싸한 구호를 내거는 것은 '정치적 사기'에 해당한다.
어떻게 국가보안법 개폐가 '이념'인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에 해당하는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개폐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에 딴지를 거는 세력은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의 표현을 빌리면 "보수가 아니라 '엉터리 보수'"일 뿐이다.
신문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불법·탈법적인 불공정 거래가 판을 치고 이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유지·강화하는 '조중동'의 신문시장 독과점에 대해 정당한 규제를 행사하라는 요구는 '이념'과는 거리가 없다. 노르웨이나 이스라엘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소유지분 제한에 대해 '재산권 침해' 운운하는 일각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정 의장과 열우당 내 실용주의자들은 은행에 대한 소유지분 제한을 규정한 현행 은행법이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지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
단순화시킨다면, 실용주의는 '유용한 것이야말로 진리'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런 실용주의는 무원칙한 자본의 이익 추구를 정당화시키고 사용자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우리는 정 의장과 열우당의 실용주의에서 이런 위험성을 짙게 감지한다.
정 의장과 열우당 내 자칭 '실용주의자'들이 정작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실사구시'이다. 출자총액제한제 때문에 투자를 할 수 없다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엄살에 대해, 반기업적인 사회 풍토 때문에 기업해 먹기 힘들다는 재계의 푸념에 대해,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지나친 보호 때문에 청년실업이 늘어난다는 재계의 '참주선동'(僭主煽動)에 대해, 노동시장 유연성이 높아야 고용이 늘어난다는 검증되지 않은 재계의 주장에 대해, 신문사 소유제한은 재산권 침해라는 일부 족벌언론의 주장에 대해, 실사구시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이다. 실사구시의 대상에 배드뱅크만이 380만여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는 최대 해법이라고 내세운 열우당 자신의 주장이 포함됨은 물론이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우려해 물러서기 위한 구실로 실용주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실사구시적으로 도그마(교조)를 깨가는 것, 그것이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한 개혁의 본령이다. 한국사회에서 그 도그마는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시장 만능주의=신자유주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유권자들이 열우당에게 17대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안겨준 것은 민생과 정치, 사회개혁을 철저히 추진하라는 시대적 염원에 따른 것이다. 실용주의를 내세워 이를 외면한다면, 열우당은 언론노동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