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정체성이 '개혁적 보수정당'으로 다소 싱겁게 정리됐다. 이념 정체성 정립을 주장했던 소장파 남경필 의원조차 "중도 개혁, 중도 보수로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정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며 "더 이상의 이념 논쟁은 불필요 하다"고 밝혀, 이제 한나라당내 최대 화두는 지도체제 문제로 옮아갔다.
홍준표, 이재오 의원 등 3선 그룹에서 '집단 지도체제'를 강하게 주장하는 데 대해 소장파 의원들은 '원내정당화'를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남경필, "과거의 것을 무조건 지키자는 것은 퇴행적 보수"**
남경필 의원은 30일 열린 당선자 연찬회 전체 토론에서 "원내 정당화는 17대 국회 최대 화두"라며 "국회의원 개개인이 실질적인 입법기관으로 권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포문을 열었다.
남 의원은 "지도체제 문제는 원내 중심 정당을 마련해야 되는지에 대한 토의가 선행된 뒤 해야 한다"며 "집단지도체제는 원내 정당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집단 지도 체제를 했다고, 지금도 집단지도체제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안된다"며 "과거의 것을 무조건 지키자고 하는 것은 수구나 퇴행적 보수가 될 수 있다"고 홍준표 의원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원희룡 의원은 "대표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복수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며 "복수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때까지처럼 일정한 친소관계에 따라 중진 다선이 역할과 기능없이 논의 그룹에 들어오는 것은 구시대적"이라고 당내 '밥그릇'에 대한 의도를 사전 차단했다.
원 의원은 "큰 꿈을 갖고 있는 다선 중진들, 당대의 리더로 생각하는 분들은 대표 옆자리의 좌석배치보다 직접 국민들을 상대로 국제 외교활동을 보여주고 밤새워 토론하는 것이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대권 주자로서 여러 명의 스타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원 의원은 "국회 내 의원들의 입법 활동이 강화되고, 의원총회의 기능도 대폭적으로 강화돼야 한다"며 "중앙당도 없고, 순수한 원내 정당화가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내에는 선거를 대비했을 때 집중적인 지지를 확산시킬 수 있는 각계각층의 대표성을 띄는 사람들과 특정 취약층의 관리, 청년당원 사이버 기능 등의 새로운 형태의 정당 모델로 개편해야 한다"며 '선진 개혁당'이라는 새로운 당명도 제안했다.
***홍준표, "토론 문화부터 갖춰라"**
이에 대해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홍준표 의원은 "지난 공천 과정에서 '쌀밥에 돌이 두개 들어 있다', '유통기간이 지났다'라는 말들을 하면서 인격적인 모독을 하는 사람들이 16대에 있었다"며 "17대는 건전한 당내 토론 문화가 질적으로 향상돼야 한다"고 사실상 '5ㆍ6공 퇴진론'을 주장했던 소장파 의원들을 겨냥해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홍 의원은 "지금 지도체제를 정비 안하면 2년 뒤에 또 문제가 된다"며 "박근혜 대표도 이회창 총재 시절에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주장하며 당권과 대권의 분리를 주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17대 당선자들은 '일당백'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수직적 관계는 불가능하고 횡적인 체제가 불가피하다"며 "이것을 어떻게 밥그릇 싸움이라고 할 수 있나"고 소장파 주장을 반박했다.
홍 의원은 "원내 정당화로 가기 위해선 중앙당을 폐쇄하고 중앙당의 대표를 없애고 원내총무를 대표로 임명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며 "중앙당을 폐지하지 못하다면 원내정당화로 갈 수가 없다"고 소장파 의원들의 '원내정당화' 주장도 비현실적이라고 반박했다.
이재오 의원은 "한나라당이 국가 전체를 경영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원내정당화만으로는 안된다"며 "23만 당원이 직선하는 대표와 의원들이 직선으로 선출하는 원내 총무와의 관계에서 대표에게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전당대회를 그대로 두는 상황에서 원내정당화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17대 여대야소 국면에서 우리 힘만으로는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다"며 원내에만 당력이 실리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의원은 "집단 지도체제를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판해서는 안된다"며 "총체적인 리더쉽을 부각시키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찬회가 마무리되고 소장파 의원들과 3선 그룹은 각각 초선 의원들을 접촉하면서 그 세를 확장시켜 가고 있다. 남경필, 원희룡 의원은 16대 미래연대 소속 의원들과 이성권, 김희정 의원 등 부산 소장파 의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홍준표, 김문수 의원은 전재희 의원, 고진화 당선자 등과 주말을 기해 접촉하고 있다.
이같은 양 측의 세 불리기 속에서 지도체제를 둘러싼 대립은 6월 전당대회까지 당내 뜨거운 화두로 남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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