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에선 당 정체성과 지도체제 문제 등을 놓고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정체성 문제를 놓고선 당 개혁의 주도세력인 소장파 의원들은 "한나라당이 좀 더 중앙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3선이상 중진들은 이에 반발했다. 지도체제를 놓고서는 당내 비주류로 평가받고 있는 3선 그룹이 "집단 지도체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 반면, 소장파와 4~5선 이상의 중진들은 "박 대표 체제를 지원해야 한다"고 3선그룹의 주장을 '밥그릇 탐욕'이라고 일축했다.
'한나라당 해산후 신당 창당' 논의는 다수 의원들의 반발로 일단 수면밑으로 잠복했다.
***소장파, "지금 한나라는 우편향"**
당내 정체성 정립은 개별 정책을 통해 구현돼야 한다는 데에는 의원들 사이에 이견이 없는듯 보였다. 그러면서도 "우편향 돼있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가운데로 옮겨야 한다"는 소장파들과, "정체성 논의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중진의원들 사이에 입장 차이는 뚜렷하다.
남경필 의원은 "지금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제대로 된 모습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보느냐"며 "한나라당이 우편향된 모습이기 때문에 제자리를 찾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세 의원은 "워낙 한나라당이 우편향돼 있다"며 "다른 사람이 우리를 중도 우파로 인정하도록 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념은 우리가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의원은 "연찬회 형식이 아니라 정체성 특위 같은 것을 구성해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희룡 의원도 "좌우의 관념적인 논쟁이 아니라 올바른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기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나라당은 극우부터 중도 우파까지 모여 있는데, 중원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3선이상 중진 "이념논쟁 불필요"**
그러나 소장파 의원들의 이같은 주장에 3선 이상 중진 그룹은 "이념 논쟁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3선 그룹을 주도하고 있는 홍준표 의원은 "지금 정강정책에도 한나라당은 중도우파라고 나와 있다"며 "젊은 의원들이 공부도 안하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5선의 강재섭 의원은 "한나라당이 어떤 정당인지는 국민들이 잘 알고 있다"며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면서 이념은 파병 문제나 국가보안법 등의 정책을 통해 저절로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는 수구고, 진보는 개혁이라는 식으로 논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권철현 의원도 "현재는 진보에 대한 개념이 없이 논의가 진행중"이라고 소장파 의원들을 비판했다. 권 의원은 "건국 이후 한국사회를 이끌어 왔던 메인스트림이 보수이고, 이것을 교체시켜 기득권을 없애고 메인스트림을 바꾸자는 것이 한국에서는 진보"라며 "예전 사회학에 나와있는 식의 좌우 이념 논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홍준표, 김문수 등 "집단 지도체제 도입" 주장**
지도체제 논란은 이재오, 홍준표, 김문수 의원 등 당 비주류로 분류되는 3선 그룹이 '집단 지도체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소장파 의원들은 "정체성 확립과 원내 정당화 문제 등이 논의되기 전에 지도체제 얘기를 꺼내는 것은 밥그릇 싸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고, 강재섭 의원 등 박근혜 대표를 지지하는 중진그룹도는 "현 지도체제에 문제가 없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홍준표 의원은 "1인 지배로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없다"며 "집단지도체제는 박근혜 대표의 지론이기도 하다. 집단적으로 모여서 다양한 의견이 수렴돼야 된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집단 지도체제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선 "합의로는 지도체제가 불가능하다"며 "협의로 해야 된다"고 '5~10인 협의체'를 주장했다.
김문수 의원도 "박근혜 대표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당이라는 것이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장-중진, "3선 그룹, 밥그릇 싸움 하자는 거냐"**
그러나 소장파 의원들은 3선 그룹의 지도체제 논의에 대해 "정체성이 우선 확립돼야 한다"며 "시기상조"라고 대립각을 분명히 했다.
권영세 의원은 "지도체제 문제는 원내 정당화가 제일 관심거리"라며 "최병렬 대표ㆍ홍사덕 총무 체제에서도 총무 역할이 은근슬쩍 대표에게 넘어가더라. 원내총무라는 자리에 대한 제도적인 역할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내 정당화에 논의가 모여 져야지, 초점이 집단지도체제로 가면 곤란하다"고 밝혔다.
정병국 의원도 "지금 시점에서 왜 지도체제 문제가 나오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원내 정당과 중앙당 슬림화가 중요한데, 왜 머리를 키우자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남경필 의원은 "우리의 자림 매김이 있은 후에 실용으로 갈 것이냐, 원내 중심 정당으로 갈 것이냐, 원내총무냐 대표냐 그리고 나서 거기에 맞는 지도체제 문제가 나와야 한다"고 선(先)정체성 정립 후(後)지도체제 논의를 주장했다.
이념 논쟁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한 중진 의원들도 지도체제 문제에 대해선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4월 대표 경선에서부터 박근혜 대표를 지지했던 강재섭 의원은 "대표가 개성있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뭐 어떻게 갖다 먹을 것이 없는지, 숟가락 하나 얹을 것이 없는지 생각하면 안된다"고 지도체제 논의를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판했다.
***박세일, 재창당 주장 "정치적 개혁"으로 후퇴, 수면밑 잠수**
박세일 당선자가 제시한 '신당 창당' 주장은 박 당선자가 "법률적 방법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당 개혁은 정치적인 방향이 나은 것 같다"며 한 걸음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 큰 논란이 일지는 않았다. 그러나 법률적인 창당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재창당에는 공감하는 당선자들이 많아 6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재창당 논란은 한나라당내 뜨거운 화두로 남게 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표도 "법률적인 창당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고, 다수 의원들 역시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일부 소장파 의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소장파 내부에서도 목소리는 엇갈렸다.
원희룡 의원은 "한나라당의 중심세력이 이동하고 사실상의 신당을 창당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세일 당선자의 문제제기는 상당히 고무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권영세 의원은 "법률적인 당 해산은 당의 부채도 청산된다는 점에서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부정적으로 봤지만, "당명 개정 등을 통해 새로 태어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논의를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경필 의원은 "강연 발제 취지 자체에는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면서도, 법률적 해산과 재창당에 대해선 "지금 말하기는 어렵다.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언급을 회피했다. 소장파 정병국 의원도 "재창당과 당명 개정보다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모습을 바꾸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중진 의원들 사이에선 반대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권철현 의원은 "지금 이념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이 당선됐는데, 새로 창당하자는 것은 분당한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고, 홍준표 의원은 "정당을 해산하면 사무처 당직자들 월급은 다 어떻게 주냐. 정당 체제가 바뀌고 리더가 바뀔 때마다 당을 새로 만드는 것은 안될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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