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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진보개혁의 열망 이루지 못하면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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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12년 진보개혁의 열망 이루지 못하면 범죄"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 박선숙 의원 "파괴의 불덩이에 찬물을 끼얹겠다"

박선숙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을 만나고 왔다. 민주화운동, 청와대 대변인, 환경부 차관, 그리고 현재 국회의원까지 운동과 행정부 입법부 모두를 두루 경험한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이다. 정치가 무척이나 난무해진 이 때, 하지만 그래서 정치가 더 중요해진 지금 그가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일까 궁금했다.

"나에게 정치란 '끝나지 않는 숙제'이다." 왜냐고 물었다.

"70년대 학번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유신 체제 하에서 성장하면서 '내가 살아 생전에 민주주의 된 나라를 볼 수 있을까'라는 절망 속에서 최소한으로 숨 쉴 공간을 위해 운동이 필요했다. 민주화 된 세상에서 사는 것만으로 더 바랄게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97년에 정권교체라는 또 하나의 산을 넘으면서 이제는 평범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했는데 그것도 끝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최근 5년을 보면서는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얼마나 끊임없는 시련을 요구하는지, 세상의 변화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구나 생각한다."

다만 이 때문 만일까? "정치가 사람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압력이 굉장히 높고 엄격한 시험과 같은 정치라는 영역에 들어서면, 그 권력의 힘 앞에서 각자에게 내재되어 있던 내면의 무언가가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정치는, 권력은 뢴트겐처럼 사람의 내면을 고스란히 노출시킨다고 생각한다. 지난 17년간 내 내면에서 무엇인가 사사로운 것이 자라나지는 않는가 늘 경계하며 살아왔다. 나에게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시험이자 숙제이다."

그렇다면 그 내면의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정답이고 옳다는 도그마에 사로잡히기 시작할 때 내가 괴물과 닮아가는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당한만큼 갚아주자"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런 말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노의 불을 지른다. 반대로 "우리가 당했지만 똑같이 갚아줄 수는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를 것인가 찬물을 끼얹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나라면 항상 찬물을 끼얹는 쪽에 서겠다."

왜 그런가? "불타오르는 사람들의 분노만 갖고는 긍정적인 내일과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분노의 응축이 어떤 상황을 타파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 다음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선순환, 혹은 진전을 이뤄내려면 분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인간, 역사, 진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힘이 필요하다."

모두가 변화의 불쏘시개가 되겠다며 불을 향해 달려갈 때, 그게 긍정의 변화가 아닌 파괴의 불덩이로 모두를 태우려하면 그게 우리 편이어도 언제든 찬물을 끼얹겠다며 양동이를 짊어지고 함께 뛰어간다. 그러니 무겁지, 그러니 숙제지, 그래서 고맙지.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조직된 소수를 당할 수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과연 평등한 제도인가 하는 숙제를 늘 안고 생활했다, 어떻게 하면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민주주의의 제도적 허점들을 끊임없이 보완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찬물을 끼얹다 찬물을 되맞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불과 함께 들판 여기저기를 넘실거리고 싶은 욕망, 양동이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달리고 싶은 마음을 내버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숙제를 끌어안고 씨름하고 있는 그녀가 있어 참 좋다.


민주화운동, 정부(환경부 차관), 국회의원 등 운동과 행정부과 입법부 모두를 다 경험했다. 운동과 행정과 정치가 다른 듯 하지만 같은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점에서 다르고, 어떤 점이 같은 것 같나?

학생운동을 시작하고 사회운동도 했지만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35살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에 떠밀리듯 정치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돌아가신 김근태 선배가 정치계에 입문하고 후배들 몇 사람이 김근태 선배를 돕기 위한 팀을 만들면서 나의 정치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넉 달간 함께 일하다가 95년 6월 첫 지방선거 당시 김근태 선배가 나를 부대변인으로 추천했다.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도저히 못하겠다고 계속 버텼지만, 동의와 설득을 누구보다 중요시 하는 선배가 하도 강하게 말씀하셔서 하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때의 결정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 박선숙 민주통합당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그때까지 나는 운동을 하는 것과 정치를 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운동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의 변화를 원하는 것이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면에서 운동과 정치, 행정은 같은 맥락에 있지만 활동 영역이 다르다. 운동을 하면서 나는 사회의 변화와 관련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역할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는 공개적인, 공식적인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고, 이후의 모든 활동이 그러했다. 95년 이후 벌써 17년이다. 그동안 공적인 영역에서 살아온 셈이다.

사회운동과 정부, 정치의 세 가지 영역은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면에서는 같은 맥락에 있지만 정부와 정치가 제도와 법의 영역에서 이뤄진다면, 사회운동은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1960년, 1987년은 다수의 국민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억압하는 제도정치를 국민의 힘으로 굴복시키는 민주주의의 힘이 분출된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1960년 4.19로 이승만정권이 무너졌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전두환 군사독재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힘이 제도화되어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 법과 제도로 정착되는 데는 사회운동과 제도권에서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회나 정부에 가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권력을 갖더니 달라졌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정치가 사람을 망친다'고 이야기 하는데 거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가 사람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압력이 굉장히 높고 엄격한 시험과 같은 정치라는 영역에 들어서면, 그 권력의 힘 앞에서 각자에게 내재되어 있던 내면의 무언가가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정치는, 권력은 뢴트겐처럼 사람의 내면을 고스란히 노출시킨다고 생각한다. 지난 17년간 내 내면에서 무엇인가 사사로운 것이 자라나지는 않는가 늘 경계하며 살아왔다. 나에게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시험이자 숙제이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의 정치와 관련하여 때로 정치는 악마적 힘과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여기서의 정치나 권력은 악마적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시험이자 숙제라 답했는데, 그렇다면 이런 악마적 힘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줄곧 내적인 긴장감을 가지고 있던 것인가?

먼저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위하여 어떤 거래를 하는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베버의 명제 앞에서 '무엇을 위하여 거래하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베버의 말을 목표로 하는 종국의 긍정적인 결과를 위해 일정하게 힘을 빌린다거나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해석한다면, 거기에도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거래하거나 빌릴 수 있는 것은 특정할 수 없는 다수 국민의 힘이다. 어떤 목표나 목적을 위해서라도 국민의 힘 말고 다른 어떤 힘과도 타협해서도 거래해서도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국민의 힘은 항상 옳은 방향으로 간다는 낙관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다수를 이롭게 하는 국민의 힘이라는 기준과 방향을 잃지 않도록 긴장감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여론 또는 다수의 힘은 당장의 이해관계나 감정에 치우칠 때도 있다. 그럴 때 다수 국민의 힘에 편승할 것인가, 혹은 때론 대결하면서라도 다수의 이익을 지키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 여론을 거스르는 판단이 필요할 때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결정하나?

ⓒ프레시안(최형락)
가령 국민의 정부 당시 의료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의 예를 들어보자.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을 통합한다고 할 때 반대가 적지 않았다. 특히 직장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분들은 지역의료보험과 통합하면 손해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당연히 여론의 반대도 있었다. 의약분업은 더 심각한 문제였다. 의사협회가 반대하고 나서, 병원들이 진료를 거부하자 문 닫힌 병원 앞에서 아픈 아이 안은 엄마들, 연세가 많은 환자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연일 뉴스에서 병원에도 못가는 현실을 탓하고, 환자와 가족들의 아우성을 보도했다. 정부와 대통령으로선 참 견디기 힘든 여론의 압력이었다. 당시 나도 김대중 대통령께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렵다"고 말씀드렸었다. 그때 김 대통령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견뎌야 합니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결국에는 국민들이 이해해줄 겁니다"라고 하셨다. 이외에도 수많은 예들이 있다. 당장의 여론과 종국의 여론 혹은 장기적인 여론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래서 당장의 여론이 아니라, 근본의 여론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한다.

운동, 행정, 정치의 각 영역에서 갖는 핵심 가치는? 키워드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에서 휴머니티라고 하는 동시대인에 대한 애정과 공감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갖는 입장의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입장과 의견,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근본적인가에 대해서 꼭 질문을 해본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생각의 차이가 좁혀지기는 정말 힘들다. 운동을 할 때와 정치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생각의 차이가 늘 존재했고 그것들을 좁혀가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를 좁히고자 하는 것이 정치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의 차이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인가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가까이 있는 동료의 의견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다수인 국민의 생각과 바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나.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쉽사리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매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피아(彼我)의 구별은 있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오랜 역사 속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진보와 보수이다. 하지만 이러한 근본적 차이가 있는 진보와 보수라 할지라도 사생결단으로 상대방을 없애기 위해 싸우지는 말아야 한다. 서로가 더 잘하기 위해서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싸움을 정치라고 한다면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려고 한다면 적어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비민주적인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처럼 된다"고 니체는 말했다. 정치적 노선의 차이, 정책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인간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 권력의지가 없는 정치인이라고들 한다. 사실 '내 정치'를 꿈꾸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권에 들어왔다."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았다, 이렇게 '내 정치'를 꿈꾸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훌륭한, 좋은 국회의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박선숙에게 정치란 무엇인지?

정치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지만 나의 시작은 조금 달랐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 좀 더 나은 세상,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이런 것들이 나를 운동으로 이끌었고 정치의 영역도 그런 길의 연속이라고 하겠다. 70년대 학번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유신 체제 하에서 성장하면서 '내가 살아 생전에 민주주의 된 나라를 볼 수 있을까'라는 절망 속에서 최소한으로 숨 쉴 공간을 위해 운동이 필요했다. 민주화 된 세상에서 사는 것만으로 더 바랄게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하나의 큰 고개를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어서 끊임없이 새로운 숙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사회적 책임에서 벗어나서 착하게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97년에 정권교체라는 또 하나의 산을 넘으면서 이제는 평범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했는데 그것도 끝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최근 5년을 보면서는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얼마나 끊임없는 시련을 요구하는지, 세상의 변화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구나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정치란 '끝나지 않는 숙제'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내게 '권력의지'가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커다란 권력의지를 갖고 있다. 더 나은 세상, 사람을 중하게 여기는 세상을 향해 가기 위해 반드시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개혁과 진보의 집권에 대한 열망을 나는 갖고 있다. 국회에서 진보개혁세력이 다수가 되고, 2012년 대선에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 지금 국민들께서 이렇게 단단하게 결심하고 계시는데, '이루지 못하면 그건 범죄다, 다시 죄를 짓는 거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역사에 여러번 죄를 짓지 않았는가? 6월항쟁 이후 좀 더 빨리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했던 죄, 민주정부 10년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잃은 죄 말이다. 그로 인해 지난 4년 국민들이 모진 세월 보내야 했지 않은가? 선거를 잘못한 국민 탓이라고 누군가 말한다. 그러나 그건 제3자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도저히 투표장에 갈 수 없게 만든 건 바로 우리들이었다. 수많은 유권자들이 기권하고,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도 차마 대통령으로 뽑기에도 부끄러운 후보에게 몰표를 준 건 그가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심정 때문이 아니었겠나?

다시 권력의지 문제로 돌아가면, 나는 이번에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강한 권력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려면 좀 더 깊은 반성적 성찰과 진술이 필요하다. 두 번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잘못한 일들은 무엇이었는지 통절한 고해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약속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근태 선배가 유언처럼 남긴 '2012년을 점령하라'는 말은 남겨진 우리 모두의 숙제다.

70~80년대를 지나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당시에는 고문 등 물리적 폭력 또한 일상적이었다고 들었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과 닮아간다는 말이 있는데 괴물과 싸우면서도 인간적인 감수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이 있었는가. 그 시대를 어떻게 지나올 수 있었나.

분노와 증오가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그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분노와 증오에 먹히면 상대방을 이기는 것 자체만을 목표로 하게 된다. 김근태 선배와 같은 좋은 언덕이 많았다. 그들이 갖고 있었던 용서할 수 있는 힘과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을 자기 바탕으로부터 잃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물론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아갈 수 있다. 운동이 명분과 가치를 앞세우면서 내부에서 스스로 잔인해질 수 있다. 자신의 행위를 모두 정당화 하면서 스스로 폭력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 부단히 경계하고, 싸우고, 싸우다 비판도 받았다. 김근태 선배와 나 같은 사람들은 민청련을 하는 과정에서나 그 이후, 우리보다 훨씬 이념적이고 전투적인 사람들로부터 너무 유하고 중도적이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았다. 이러한 비판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그게 가장 위험한 것이다. 우리가 정답이고 옳다는 도그마에 사로잡히기 시작할 때 내가 괴물과 닮아가는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당한만큼 갚아주자."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런 말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노의 불을 지른다. 반대로 "우리가 당했지만 똑같이 갚아줄 수는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를 것인가 찬물을 끼얹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나라면 항상 찬물을 끼얹는 쪽에 서겠다. 똑같이 갚아주자는 것은 악순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타오르는 사람들의 분노만 갖고는 긍정적인 내일과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분노의 응축이 어떤 상황을 타파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 다음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선순환, 혹은 진전을 이뤄내려면 분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인간, 역사, 진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힘이 필요하다.

혹시 내 안에 '나도 이런 면이 있구나'하는 것을 발견해 본 적은 없는지?

사람들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가끔 가까운 사람들에게 화가 날 때가 있다. 이때가 반성할 시간이다. 분노란 내가 반드시 옳다는 것에 대한 지나친 확신 혹은 상대방에 대한 부인이나 부정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화가 날 때면 항상 반성한다.(웃음) 나란 사람은 늘 반성하는 사람이다.(웃음)

2011년에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이 선정한 2011년 국정감사 우수 의원상 수상, 대규모 유통업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에 기여한 공로로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공로상도 받으셨다. 실제로 의정활동을 함에 있어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어디인가?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최소한의 밥값을 하는 것이다.(웃음)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은 국민을 대변하는 입법기관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지역구 의원은 지역구민들을 주로 대변한다면 비례대표 의원은 불특정 국민을 모두 대변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비례대표를 전국구라고들 하지 않나. 전국 유권자가 모두 내 지역구민이니 짐이 굉장히 무겁다.

ⓒ프레시안(최형락)

지역구민으로 분류할 때 제대로 대변되지 않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이 있다. 실제로 숫자가 적어서 소수자인 경우도 있지만 조직되지 못해서,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다. 조직된 소수가 조직되지 못한 다수를 이긴다고 올슨은 말했다. 바로 민주주의의 맹점이다.

내가 속한 상임위는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보훈처 등이 속해 있다. 전국민이 금융소비자인데 그 권리는 누가 대변하는가? 얼마 전까지는 금융소비자라는 말도 생소하지 않았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정부가, 금융감독기관이, 금융기관이 '선의의 관리자로서의 주의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는 조직되지 못한 개인들이어서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할 일이 많았다. 법과 제도를 바꾸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대기업과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와 같은 상임위에 속한 비례대표들은 특히 할 일 많은 상임위를 만난 셈이다.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조직된 소수를 당할 수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과연 평등한 제도인가 하는 숙제를 늘 안고 생활했다. 어떻게 하면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민주주의의 제도적 허점들을 끊임없이 보완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나의 국회에서의 활동의 중심은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드는 일, 다수의 이해를 대변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요즘 민주통합당이 슈퍼스타K 방식으로 청년 비례대표후보를 뽑고 있다. 실제로 400여명이 넘는 청년들이 지원했다고 들었는데, 이런 방식의 청년 비례대표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통합당 되기 전 민주당에서 2010년 초부터 1년 내내 청년 비례대표제 등을 비롯하여 쇄신 개혁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청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것 자체가 좋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비판적 토론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주로 내가 비판적 발언을 많이 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어 정치영역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과연 청년의 대표성을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에는 의문이 있었다. 오히려 이러한 발탁이 그들로 하여금 다수의 청년들과 분리시키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이것은 과거 나 자신에게 했던 질문과도 같다. 약관의 나이에 여성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앞서 최초로 여성 부대변인을 하고, 청와대에서 일하는 과정 속에서 내게 주어진 자리와 위치에 대한 부담이 항상 있었다. 청와대 대변인이 된다는 것은 나 개인에게는 영광일 수 있겠지만, 오히려 다수의 여성들에게 위로와 격려보다는 박탈감과 상처를 주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그래서 여성으론 처음으로 대통령 수석비서관 겸 대변인을 맡기시겠다는 김대중 대통령 말씀을 거듭 고사했다. 그래도 거듭 설득하시니 어쩔 수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갈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특별히 주어졌을 때,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굉장히 컸다. 혹시 내가 잘못하면 다른 여성들에게 돌아올 기회들이 봉쇄되지는 않을까 하는 중압감 말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청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그 과정을 엄밀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한 사람을 뽑는 것도 좋지만 동시대의 수많은 청년들을 낙담시키지 않고 그들에게 대표성을 동의 받을 수 있을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선발된 사람들이 정말로 잘해야 한다. 개인에게는 영광이 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잘못하면 많은 사람들의 기회를 봉쇄하는 것일 수 있다. 2,30대 청년들에게 청년비례대표제는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할 기회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분야를 버리고 나오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청년들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연령이 그 사람의 활동의 질과 양을 규정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의 연령이 자기 분야에서의 일정한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적 발언들을 할 수 있는 기초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2,30대는 4,50대와는 다른 종이다. 우리가 아날로그라면 청년들은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청년층에게 어떤 중요한 역할을 맡기고 기대해도 모자라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 세대들과 디지털 세대와의 결합이 얼마나 잘 될 수 있을 것인가가 과제이다.

의원을 포함하여 비례대표 의원들을 보면 복지국가 논의 등 지역구에 함몰되지 않아 전국 단위의 주요 이슈들을 잘 만드는 것 같다. 최근에 석패율 제도 도입 찬반 논쟁이 있으면서 오히려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여론이 일기도 하였는데, 비례대표제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청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를 하나씩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전체적으로 제도의 완결성, 대표성에 제한이 있다. 2000년 총선 이후 16대 국회 때 국민의 정부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중선거구제, 비례대표의 확대 문제를 국회에 제안했었다. 그러나 당시 통과되지 않았고 참여정부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같은 구상을 했었다.

정치가 기본적으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표성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지역의 대표성과 각 분야의 대표성의 균형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20%의 비례대표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10년 전에 이미 비례의석을 100석 정도까지 늘리고 정당명부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논의했었다. 그래서 각 분야의 대표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그런 제도 속에서 유권자에 의해 청년들이 선택받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이런 제도 없이는 대표성을 충분히 담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변화는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를 내놓을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통과되기 어렵다. 둘 중 하나다. 국민들이 정치제도의 발전을 위해 현재의 지역구를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를 100석 정도로 늘리는 결심을 하거나, 현재의 의석수를 묶어놓은 상태에서 지역구 의원들이 스스로 지역구를 줄이자고 결심하는 것이다. 2001년에도 시도했다지만 안됐고 2007년에도 안됐다. 지금도 청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논의가 나오지만 그 베이스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들어가지 않으면 제도 자체로서의 완결성이 없다. 19대 국회의 과제다. 19대 국회 구성되면 곧바로 이런 제도개혁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서 빠른 기간 안에 완료했으면 한다.

"약자 향한 연민으로 정치 입문 당 원하면 내년 총선 도전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오는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할 계획인가?

총선승리와 대선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나의 권력의지는 내가 무엇이 되는 쪽보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쪽을 향해 있다. 이번 총선의 승리를 낙관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수의 유권자들이 이 정부는 안되겠다, 한나라당이건 새누리당이건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쉬운 선거가 아니다. 수도권과 영남, 충청권 등에서 접전이 펼쳐질 것이다. 특히 수도권은 1천표 안팎에서 당락이 갈리는 지역구가 수십개가 될 것이다. 심판의 칼날을 피해 이명박 대통령을 감추고, 심지어 과거와의 단절을 이야기하는 박근혜 대표를 앞세우고, 새누리로 간판도 바꾸고, 정책도 바꾸고 있지 않은가? 'MB는 싫어도 박근혜까지 버릴 수는 없는 거 아니야' 하는 정서를 보수는 물론 중도까지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4대강과 부자감세, 재벌을 위한 규제완화에 동조했던 박근혜 대표가 재벌개혁과 복지를 들고 나오고 있다. 유권자들 가운데 혼동을 불러일으키려 하는 것이다. 여야 어느 쪽이든 다 복지와 재벌개혁을 이야기하니, 둘 중 누구를 선택해도 된다는 심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중간층 표를 흔들려는 의도다. 이런 시도가 어느 정도 먹히고 있다고 본다. 최근 여당의 지지율은 MB 지지율의 거의 두 배에 이른다. MB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중이다. 이대로 가면 정말 위험해진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 박근혜 대표의 새누리당과 MB의 한나라당은 정말 다른 것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박근혜 대표는 누구인가? 문재인 이사장이 던진 정수장학회는 장물이다는 문제제기가 그런 것이다. 박근혜 대표는 MB 4년간 어디에 있었는가? MB 조수석에 앉았던 동승자라는 한명숙 대표의 표현이 그런 질문이다. 박 대표가 협력하지 않았으면, MB는 4대강도 부자감세도 재벌편들기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박 대표의 새누리는 전혀 새롭지 않는 MB 한나라당의 복사판이다. 이런 점들을 끊임없이 드러내줘야 한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다수가 되면, 다가오는 대선에서 집권하면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 우리의 실력을 보여야 한다. 그러면 어려운 선거에서 버텨내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총선승리 위해 할 일이 많다.

정치인 박선숙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의원님을 "겉은 버드나무처럼 부드럽지만 속에는 철심이 있다"라고 표현하셨는데, 공적 영역이 아닌 개인의 삶으로 돌아갔을 때 모습은 어떠한가?

여성들이 사회적·경제적 참여, 특히 정치 참여를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육아·보육 시스템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지 않고서는 어렵다. 내가 활동한 지난 25년의 기간은 누군가의 등에 업혀 온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이를 맡기느라 친정어머니와 언니의 등골을 휘게 만들었고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못해준 게 많다. 청와대 들어가기 전 3년은 선거를 치르느라 전국을 몇 바퀴나 도는 강행군이었다. 청와대 5년은 정말 중노동이었다. 흔히들 청와대에 들어간 사람들이 힘들어서 이빨이 빠져가지고 나온다고 하지 않나.(웃음) 보통 1년이 지나면 청와대를 그만 두고 나간다. 2년이 지나면 환자가 되어서 나가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5년이나 있었다. 밤 12시에 집에 들어갔다가 아침 5시 반~6시에 나오니까 깨어있는 아이를 보지 못했다. 어느 날, 아이 사진을 봤는데 아이 얼굴이 달라진 것 같더라. 잠잘 때 본 것과는 달리 얼굴이 약간 균형이 깨져 있었다. 혹시나 해서 치과에 가보니까 송곳니 하나가 나오지 않아서 얼굴이 그리 된 것이었다. 이 송곳니 하나 찾으려고 생 어금니 4개를 뽑았다. 평소에 애를 봐왔으면 조기처치가 가능했을 텐데... 정말 못할 일을 많이 했다. 그 아들이 지금은 25살이고 지난해 군대를 병장제대 했다. 이외수씨가 화천에 사시면서 화천이 영하 22도라고 트위터에 올린 것을 보고 '우리 아들이 작년 2월에 화천에서 제대했어요.'라고 했다. 그러니까 어떤 분이 '아니, 처녀인 줄 알았는데' 그러시더라.(웃음)

그렇게 아이를 키웠다. 가족들의 등에 업혀서... 사실은 동료들이나 가깝게 지내는 비슷한 연배의 선후배들을 보면 다 비슷하다. 아이한테 제대로 못해줘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노력한다. 환경부 차관 그만두고 1년 쉬는 동안 부채 청산한다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마침 아이가 대학시험에 떨어지고 재수할 때라...그렇지만 그것은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거였고.(웃음)

우리집 아이는 자라는 동안에 엄마가 청와대에서 일한다거나 정부에서 일한다거나 하는 것을 주변의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엄마가 영 부담스러웠던 게 아닌가 싶다. 내 입장에서도 만인으로부터 칭찬보다는 비난을 받는 공직, 정치에서 일하니, 엄마의 직업 때문에 아이까지 주위에서 나쁜 소리 듣지 않을까 늘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의 터널을 지났다. 독립적으로 각자 알아서 산다.(웃음)

아직까지 한국은 남성위주의 사회고 특히 정치라는 영역은 더 그런 것 같다. 이번에 나꼼수의 비키니 응원 논란을 보면서 논란이 많았다. 이 과정을 보면서 어떠했나?

일단 이런 물음을 해본다. 나꼼수가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하는 메신저인가 하는 것이다. 나꼼수는 권력을 조롱하는 풍자의 영역에서 등장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정색을 하고 논평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꼼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커지면서 책임이 커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우리가 책임지고, 책임 있는 언행을 하겠다'고 하면 그건 나꼼수가 아니지 않은가?

다른 하나는 비키니 사진인데, 그 사진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진을 올린 사람과 보는 사람 간의 생각과 취향의 차이이다. 즉, 개인과 개인의 문제인 것이다. 나꼼수와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나는 비키니를 보면 항상 놀란다.(웃음) 노출된 사진을 보면 놀라는 사람이니까 '별 게 다 있네.' 그냥 그러고 말았다. 그런데 이후에 주진우 기자의 코멘트가 문제가 된 것 아닌가. 좀더 빨리 '표현이 지나쳤다, 잘못했다'하고 평소에 하던 대로 쿨하게 나가면 좋았을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트위터는 수다이다. 트위터 글에 정색을 하고 덤벼드는 경우가 있다. 수다가 너무 힘이 세져서 이제는 그냥 소곤소곤대는 수준이 아니고 너무 큰 목소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당을 대변하는 논평보다 SNS의 코멘트가 더 힘이 세진 때문이다. 그래서 트위터에 대해 규제와 처벌의 칼을 대려 한다. 하지만 나는 반대다. 트위터의 목소리가 커져도 두려워 할 일 없으면 그만 아닌가? 트위터의 말을 두려워 할 게 아니라, 그런 일들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트위터가 문제가 아니라, 트위터에 오르내리는 정치현실, 경제현실이 문제다. 묶고 막는다고 현실이 없어지는가? 트위터를 막으면 다른 곳으로 터져 나온다. 트위터의 자정능력에 관해 얼마전 한 교수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기존 미디어에서 오보를 정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트위터의 자정이 더 빨리 이뤄진다는 취지였다. 트위터에서 일종의 집단지성에 대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회 참여나 정치 참여를 함에 있어 여성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여성은 남성보다 아름답고 섬세하고 모성도 있다. 이것이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이것을 무기로 삼는 것은 곤란하다. 95년에 처음 정치권에 들어왔을 때 어느 기자가 나에 대해서 "외모가 특별하진 않지만… 실력으로 승부한다"라고 기사를 썼다. 너무 고맙더라.(웃음) 나는 늘 내게 여성으로서 대표성이 있는가 하고 질문해 왔는데 그 근본 질문과 닿아 있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개인의 자질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더 대표성 있게 일할 수 있는가하는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미모도 경쟁력이다'라는 식의 분위기 속에서는 여성들은 일도 열심히 잘 해야 하고, 외모도 끝없이 경쟁해야 한다는 강제가 들어 있다. 그렇게 유도하면 안 된다.

남성들에게는 인맥과 지연, 학연을 통해서 저절로 주어지는 정보들이 있다. 여성들에게는 대부분 그런 지연, 학연이 없다. 정말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일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을 더하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성들이 인맥 넓히기 등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오히려 일에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다. 여성들이 인맥이 없어서 문제라고 하는데 그런 인적 네트워크는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일에 집중하면 그 결과로 반드시 오게 된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의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관계는 오히려 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특정인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면 오히려 균형감각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밥 먹고 술 먹어야 정치가 되는데 여자들은 그런 것을 못해서 핸디캡이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밥 먹고 술 먹는 대신, 차라리 세미나를 하고 회의를 하고 스터디를 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에게 필요한 첫째는 공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 만나는 일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들 만나는 것 못지않게 공부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던 어른이신 김대중 대통령과 김근태 의장을 2009년과 2011년 연이어 보내면서 힘들었을 것 같다.

김근태 선배와 10년, 김대중 대통령과 10년을 보내면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와 심성을 배웠다. 두 분에게서 특별한 기회를 많이 받았고 그것을 어떻게 갚으며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조금 다르지만 최근 수십 년의 역사 속에서 두 분 모두 인간으로서 가장 깊은 분노와 증오를 가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 두 분의 내면에 개인이 겪은 일에 대한 분노와 증오는 없었다. 대신 본인들이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탄식과 많은 이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거나 소홀히 함에 대한 분노는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분들에게는 근본의 힘이 있었다. 김 대통령은 그것을 종교의 힘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나는 끊임없이 '무엇이 그들의 힘이었을까'하고 질문한다. 또한 우리 시대의 정신적인 큰 지주가 없어졌기에 그 자리가 어떻게 메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박선숙에게 자유란?

공적으로는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이것이 운동의 시작이기도 했는데 그 때는 누구나 자유로운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했다. 그리고 무엇이 우리의 자유를 가로막는가,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숙제로 다가왔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마음의 평화'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불의하거나 부정한 것에 마주할 때, 그를 극복하지 못할 때 마음의 평화를 잃게 된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분노한다. '영혼의 자유'는 얽매이지 않는 것과 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데 스스로의 자유를 위하여 두려워하거나 굴하지 않으려 한다. 20대 초입에 광주항쟁 이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도 세상이 그를 외면하고 침묵하는 현실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를 경험했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쳐 조사받고 끌려가고 하는 과정 속에서 또 다른 폭력과 공포의 경험들이 있었다. 그런 순간순간에는 공포 때문에 위축되고 좌절하고 했지만 그 속에서 넘어설 수 있는 힘들이 생겼다. 그런 시대를 거쳐 오면서 굴복하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자책과 회한의 통로를 뚫고 나오면서 훨씬 단단해졌다. 사람은 지키고자 하는 무언가가 생기면 두려움을 갖게 된다. 나는 마음의 평화, 영혼의 자유 같은 누구도 다칠 수 없는 그런 것 말고는 잃을 게 별로 없는 사람이어서 아마도 큰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최형락)

청년 박선숙은 어떠했으며 동시대의 청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의 청년기는 공포의 시기였기 때문에 두려움이 나를 좀먹는 것으로부터 내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운동에 참여하면서 사람 사는 것 같이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지금의 우리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가졌었다. 그렇지만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20대의 시간은 평생의 자산이 되는 시간이니 무엇이든지 두려움 없이 부딪치고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든 새로운 도전과 시험들 속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황금 같은 시간이기에 지금 주어진 공포와 고통조차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한 발 지나온 선배로서 말하자면, 청년기에 느낀 죽을 것 같았던 공포와 고통이 결국 삶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뷰 및 정리: 정치경영연구소 김경미, 손어진, 장지선)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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