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에 등원하게 될 여성 국회의원은 39명으로 전체 2백99명의 의원 가운데 13%를 차지한다. 16대 273명의 국회의원 중 여성이 16명으로 5.9%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획기적인 양적 증가가 이뤄졌다. 당연히 언론이나 정가에선 17대 국회를 '여성의 정치세력화 원년'으로 평가하기도 하는 등 이들의 행보에 벌써부터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2백99명 중에 39명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에 불과하고, 여성 당선자들 역시 검증되지 않은 초선 의원들이 많아 '크게 달라질 것이 있겠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이에 23일 양재동 외교안보연구원에서 한국국제정치학회 주최로 '양성평등 시대의 여성 참여'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열린우리당 박영선 대변인과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의 첫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TV토론 형식의 공방이 아닌 패널들의 개별 발제로 이뤄진 토론회 형식 탓에 격렬한 '입씨름'은 펼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두 대변인은 발제 중간 뼈있는 말을 건네기도 하는 등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펼쳐졌다.
정치인 자격으로 두 대변인 외에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으로서 17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손봉숙 당선자가 패널로 참여했고, 김민정 서울시립대 교수,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 백영옥 명지대 교수가 참석했다.
***여성 39명의 진출 배경 : 비례 50%와 부패 척결 의지 반영**
17대 원내에 진출한 39명의 여성 의원들은 지역구 의원이 10명, 비례대표 의원이 29명이다. 16대는 지역구 의원이 5명, 비례대표 의원은 11명이었다. 여성 의원의 원내 진출이 늘어나게 된 배경으로 정당명부에서 여자를 홀수에 남자를 짝수에 배치한 제도적 개선이 결정적이었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제도적 개선도 역할을 했지만 부정부패 척결의 열망이 여성의 의회진출을 이뤄낸 주된 동인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변인은 "지난 1년 동안 '차떼기'로 상징되는 부패 때문에 많은 분들이 더 정치에 관심이 높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한국 정치권이 갖고 있는 고질적 문제인 부정부패 고리를 끊는 대체 인력의 중심세력으로의 여성"을 내세웠다.
전여옥 대변인은 "한국사회에서 여성 법무부 장관, 여성 당대표 등의 출현은 그간 쌓였던 불평등에 대한 분출"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며 오빠와 동생들을 먹여 살렸던 여성들의 인프라에 한국 남성들이 감사하고 있었고 잊지 못하고 있었다"고 여성의 의회 진출은 '필연'이라는 주장을 편 뒤, "여성이 정책에 관여하면 부패가 줄어든다"는 여성이 갖고 있는 '깨끗한 이미지'도 한 몫했다고 주장했다.
손봉숙 당선자도 "부정부패 비리 정치에 대한 반사이익을 여성이 본 것 같다"며 "또한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여성의 숫자도 많았다"고 말했다.
***전여옥 대변인 '여성의 생물학적 우월성' 주장, 비판받기도**
전 대변인은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을 내세우며 17대 여성 의원들의 활약에 많은 기대를 하는 편이었다. 전 대변인은 "여성은 사람의 얼굴을 잘 읽는 휴먼 스킬과 기회포착 능력, 멀티플레이어 능력 등이 남성보다 우수하다"며 17대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희망섞인 전망을 했다. 또한 "여성의원들 사이의 초당적인 협력도 가능하다"며 친여성 법안 통과에 대해서도 낙관했다.
손 당선자도 "선천적으로 여성이 남을 배려하는 데 훨씬 앞서있다고 생각한다"며 "정치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데 크게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손 당선자는 ▲투명하고 공개된 정책 결정 ▲남성 중심 정치 문화 개선 ▲친여성적 법안 통과 등을 여성 국회의원들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민정 서울시립대 교수는 "전 대변인이 제기한 여성과 남성의 본질적인 차이라는 논리는 그 동안 여성을 소외시키는 데 사용돼 왔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본질적인 차이를 여성의 정치 참여를 확대시키는 논리로 사용되는 것은 조심해야 되지 않나"고 생물학적인 논거에 대해 비판했다.
***"13%는 13%일뿐" 과대평가 경계**
그러나 회의론도 만만치 않았다. 39명의 역할에 대한 과대평가를 경계하는 시각이다.
박영선 대변인은 17대를 여성의 정치 세력화의 교두보로써의 의미부여를 했다. 박 대변인은 "정치적 의제에 있어서 여성으로서 어떤 포지션을 갖느냐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할 과제"라며 "올해가 여성의원의 양적 확대를 이뤘다면 검증과정을 거친 뒤, 18대 국회에선 양적 확대와 질적 확대를 동시에 이뤄야 되는 교두보 역할을 해야 된다"고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민정 서울시립대 교수는 "13%의 여성이 국회에 들어간 것은 여성이 정치와 더 이상 관계가 없다는 얘기를 못하는 계기가 된다"며 "공급 측면에서 여성과 정치 사이의 괴리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13%는 정말 13%일 뿐"이라고 과대평가를 경계한 뒤 "13%로 반여성적인 법안을 저지할 수도 없고, 친여성적인 법안 통과도 불확실하다. 다만 50%로 가는 첫 걸음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도 "여성정치인이 많이 들어온다고 지역주의가 얼마나 나아질까라는 부분은 생각해봐야 한다"고 평가를 유보했다. 또 "정치인이 연줄이나 귀속성을 따지는데 이것을 완화시켜서 능력과 업적을 평가받는 것으로 가야 하는 것엔 동의하지만, 여성이 한국 정치판에 들어와서 정치가 얼마나 바뀌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 "여성 리더십, 위기 돌파 역할", 우리 "상징적 아이콘에 불과"**
이번 총선때 표출된 '여성의 리더십'에 대해선 각 당의 평가가 엇갈렸다. 17대 총선에서 '박근혜 효과'를 톡톡히 봤던 한나라당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반면, 열린우리당은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추미애 선대위원장을 앞세웠던 민주당은 정치적으로는 부정적인 평가를 했지만, '여성' 정치의 입장에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전여옥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위기상황이었기 때문에 여성인 박근혜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될 수 있었다"고 위기상황에서의 여성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러나 박영선 대변인은 "여성 정치인이 당 대표나 선대위원장, 대변인이라는 상징적인 아이콘(icdon)의 형태로 돼 있었다"며 "실질적인 부분은 검증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당직에 여성들이 이례적으로 배치가 돼, 앞에 나서게 됐지만 여성정치의 시대가 왔다고 보기엔 이르다"며 "여성이라는 역할론에 있어서 감성적인 호소를 한 경우가 많다"고 박근혜 대표와 추미애 위원장의 선거기간 중의 '눈물'을 겨냥해 비판했다.
손 당선자는 "당 대표, 선대위원장, 대변인에 여성이 앞장서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부패비리의 원죄가 큰 남성정치인이 여성의 등 뒤로 잠시 면피하는 것 같은 모습이 컸다"며 "상대적으로 깨끗한 이미지를 앞장세우는 게 선거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선거용 얼굴마담'으로서의 여성 정치인을 내세우는 정치 행태를 비판했다. 그러나 손 당선자는 "선거기간 중에는 여성주의적인 리더십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며 "선거에 순기능을 했다고 생각한다"라고 긍정적인 측면도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