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제57회 칸영화제에 대거 진출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맞고 있다. 현재까지 출품이 확정된 작품은 경쟁부문에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등 2편이, 비경쟁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Uncertain Regard)'에는 김의석 감독의 <청풍명월>이 올랐다. 2002년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의 신작 <하류인생> 역시 경쟁부문 진출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지고 있으나 최종 확정은 다음달 초쯤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영화의 이번 칸 진출이 유독 눈길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은 해외 영화계, 특히 예술영화에 대한 전통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유럽권에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작가적 경향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3~4년간 한국영화가 세계시장에서 새롭게 부각돼 왔지만 유럽 평단들의 시선은 여전히 신상옥, 김수용, 임권택 등 제1세대 감독과 박광수, 장선우 등 제2세대 감독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칸영화제는 한국의 '제3세대 감독'들이 유럽 영화계 내에서의 공식적인 발판을 마련한다는 면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3세대 감독들로서는 흔히들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허진호, 김지운 등 40대 감독들이 거론돼 왔으며 4세대급으로는 봉준호, 장준환, 류승완 등 30대 감독들이 포진해 있어 이들 3,4세대 감독들을 일컬어 충무로에서는 일명 '뉴 코리안 시네마 운동'의 기수들로 분류해 왔다.
유럽 칸영화제를 통해 한국의 3,4세대 영화작가들이 부상하게 되는 것은 마치 90년대에 중국 제5세대 감독들이 이를 통해 대거 해외무대에 진출함으로써 중국영화의 위상을 급격하게 올려 놓은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당시 유럽영화계는 첸 카이거와 장 이모우 등 북경대학 출신의 5세대급 감독들의 영화를 집중 소개함으로써 중국영화의 세계화를 이루어 내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 바 있다. 60년대의 누벨바그 운동 이후 다분히 침체기를 거듭해 온 유럽 영화계는 이후 세계 영화계를 구원할 영화작가들은 아시아권에서 발굴될 것이며 특히 중국 영화계가 그 진원지가 될 것으로 예상해 왔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이후 그 같은 시각이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권 영화계 전체에서 새로운 영화적 조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카이에 뒤 시네마, 사이트 앤 사운드 등을 중심으로 한 일부 평론가들, 칸과 베를린, 베니스 등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제 관계자들에게서 세계 예술영화계를 주도할 나라로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점치기 시작했으며 현재 한국영화가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의 제3,4세대 감독들의 특징은 모두가 '전후세대'라는 점. 따라서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돼 있지 않으며 분단문제, 민족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7,80년대의 군사독재 체제를 경험하면서 영화예술이 추구하는 인간 본성의 문제에 대해 다양하고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도화된 산업화 시대의 영향과 혜택으로 인해 MTV 스타일의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영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2,30대 젊은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심층적인 주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때론 유머러스하며 때론 폭력적이고 때론 공상과학적인 측면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칸영화제에서 탄탄한 교두보를 마련함으로써 한국영화는 산업적으로도 크게 확장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2년간 한국영화의 해외 수출은 100% 가까운 신장세를 거듭하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세대 작가의 작품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관광부나 영화진흥위원회 등 정부단체들이 그동안 칸영화제 등 유럽영화권에 최근 작품들을 진출시키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해 왔던 것도 이들 작가주의 영화들을 통해 상업영화들의 판매 역량이 전면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상수, 박찬욱 감독의 이번 영화들이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 이어 또 다른 성과를 얻어낼 것인 가의 여부는 오히려 지엽적인 문제로 보인다. 수상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려운 실정이기도 하다.
다만, 홍상수 감독의 경우 그동안 칸영화제가 비경쟁 부문 초청 등을 통해 꾸준히 공을 들여 왔으며 회고전의 형식을 통해 일반관객들에게도 수차례 소개된 바 있는데다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 자국 감독의 작품성향과 비슷하다는 측면에서 이미 매니아급 관객층이 형성돼 있기까지 하다는 점이 그를 유력한 수상후보로 점쳐지게 한다. 그 한편으로 박찬욱 감독 역시 이번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이, 작품성향이 서로 비슷한 감독으로 꼽히는 미국의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점에서 유력한 수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외신들은 올 칸의 경쟁부문에서 코미디가 단연 우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코엔 형제감독의 <레이디 킬러스>, 스티븐 홉킨스 감독의 <피터 셀레스의 삶과 죽음> 등이 주목을 끌고 있다. 올 칸영화제의 개막작은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나쁜 교육>, 페막작은 어윈 윙클러 감독의 <드 러블리>가 선정됐다.
***필자 연락처: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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