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트라이어드(triad·3개 1조)'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트라이어드다. 노동문제는 역시 통합진보당에서 먼저 제기했다. 노동운동 출신인 심상정 공동대표가 노동법원 설치 등 5개 항목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런 국민적 지향에는 으레 기득권층의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포퓰리즘, 좌파 운동이 그들의 입에 올리는 상투적 용어.
대기업(재벌)을 중심으로 하고 거대 언론 매체, 용역 학자군들, 강남 부자들 등등, 비대해진 수구기득권층의 공세를 극복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보수는 '이념의 보수'가 아니라 '이익의 보수'라는 지적을 요즘 신문에서 읽었다. 과연 그런 것 같다.
다 함께 모두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룩한다는 이념에는 보수도 원칙적으로 이의가 없다.(복지는 보수 측에서 먼저 시작했다는 것이 통설이며, 그 예로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정책을 든다.) 그런데 이익 수호라는 좁은 안목이 저항을 낳는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연합 |
참, MB노믹스 기획자라는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이 최근 신문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인용하고 싶다.
"1년 사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걸 느낀다. 지난해 복지 얘기하면(정부 내부에서) 좌클릭,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올해는 내 얘기가 잘 먹힌다."
내 주변에서도 그랬다. 멀쩡한 사람들이 복지란 말만 들리면 마치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를 하듯이 포퓰리즘, 좌파 운운을 연발했었다.
복지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제 여야 모두를 망라하여 대세는 확실히 잡혔지만, 구체적인 예산계획, 재원확보를 위한 세금 증수(증세만이 아니다. 그동안의 감·면세 문제도 있다) 등을 다뤄야 한다.
더 크고 중요한 문제로는 남북 간 긴장의 완화가 여기에 관련되는 것이다. 남북 간의 긴장 완화는 그 자체로도 우리의 당면 과제이지만, 복지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별도의 논의를 필요로 한다. 우선 한마디 해두고 싶은 것은, 조용환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의 국회 인준을, 새누리당으로 새롭게 탄생했다는 정당이 부결시켜 버린 것이 밝은 전망을 내다보기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민주화는 여야 간 모두 표면상은 대세가 된 듯하나, 해빙기에 박빙(薄氷) 위를 걷는 듯 전혀 낙관할 수가 없다. 대기업(재벌)들은 빵가게 등은 철수하겠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보기에 국회의원이란 떼거지들이 대개가 선거자금, 정치자금(부패자금) 등으로 포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에 '재벌의 X맨' 운운하며 구체적으로 거명되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야 모두에 재벌의 대리인들이 있다는 것은 짐작이 가는 일이고, 세계 공통의 한심스러운 현상이다. 어느 기사에 보니 미국의 경우 공화당은 석유재벌들을, 민주당은 월 스트리트를 주로 대변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헌법 119조 2항'의 입안자로 경제민주화운동의 아이콘처럼 된 김종인 씨(새누리당 비대위원)의 말이 새삼 중요한 의미를 갖고 다가온다. 그는 <한겨레21> 인터뷰(2월 27일 자)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그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는 과거에 다 나온 것이다. 효력이 있었나. 제도를 만들었으면 관철을 해야지, 공정거래법을 만들어도 제대로 집행을 안 했다. 문제는 최고 지도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 다음 대통령이 중요하다."
우리의 권력 구조는 대통령 중심제다. 그리고 역사적 전통이나 정치문화는 그 대통령직을 거의 제왕적 위치에 올려놓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가 없다. 정당이 중요하고, 국회의원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정책결정은 대개 그들이 한다. 그러나 마지막 결단은 대통령에 달렸다.
"정치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넋두리를 했었다. 이 시장과 정치의 경합, 재벌과 정치의 한판 승부에서 대통령이 누구이며, 어떤 역사적 사명을 느끼고, 또한 각오를 하고 있느냐는 배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연임을 위해 신경을 쓸 필요도 없는 단임제이니까 역사적 사명에 투철할 만도 할 것이다.
여하간 그런저런 사정으로 경제민주화의 실현은 아직 전혀 낙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번 국회의원 후보 공천이, 국회의원 선거가,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대통령 선거가 끝나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주의를 해둘 점이 있다. 경제민주화가 반재벌이나 재벌 타도로 오해되어서는 안 되겠다. 효과적인 경제운용을 위해서도 상생(相生)의 교통규칙을 잘 만들어 지키자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노동권의 형평 문제가 등장했다.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순서이다. 경제민주화와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통합진보당이 내놓은 5대 노동공약은 ① 2017년까지 노조 조직률 20%, 단체협상 적용률 50%로 확대 ② 비정규직 비율을 OECD 평균 수준인 25% 가량으로 축소 ③ 최저임금을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까지 보장 ④ 현재 연 2200여 시간에 가까운 노동시간을 연 1800시간으로 단축 ⑤ 노동법원 설치 등으로 되어 있고 구체적인 법 개정 등도 포함되어 있다.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측에서도 노동 정책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 종합적인 정책 발표는 되지 않고 있어 좀 더 기다려보아야 할 것 같다.
노동 세력의 정당 지지도 그동안 바뀌었다. 민주노총은 계속 통합진보당 쪽이지만, 한나라당과 정책 연합을 했던 한국노총은 그 제휴를 깨고, 민주통합당과 정책 연합 파트너를 바꾸어 새누리당은 노동 지지 세력 문제에 있어서 얼마간 곤혹스럽게 되었다. 규모는 작지만 제3노총을 지향하는 노조 세력이나 한국노총의 이탈 세력을 흡수하려는 것은 아닌지.
MB는 처음부터 '기업 프렌들리'를 내걸었는데 그것은 점차 노동 언프렌들리(unfriendly)임이 분명하게 되어갔다. 가장 눈에 띄는 케이스가 정부 산하인 노동연구원마저 원장을 장기간 공석으로 놓아둔 채 연구비를 차단하여 고사 작전으로 나아가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 가지로 합리화란 이름 아래, 노조 활동을 옥죄어 왔다.
본래 그럴 우려는 있었다. 출신 기업인 현대그룹이 지난날 어떤 곳이었던가. 제임스 리라는 전문적 노조 파괴자의 이름이 떠오른다. 노조를 인정 않으려는 무노조정책을 따르면서 일어났다 하면, 국내에서건 해외에서건 폭동이 아니었던가. 그리 오래 전의 역사가 아니다. 물론 지금은 시대 변화에 따라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다.
법령을 개정할 일도 많을 것이다. 앞으로 각 당의 주장을 종합하여 법령 개정을 위한 구체적 논의가 있어야 할 줄 안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법이나 제도의 문제에 앞선 정부 각 기관의 행태에 관해서이다. 법제 문제는 다음으로 미루고, 좀 색다른 시각에서의 이야기다.
가령 노동부('고용노동부'라고 혼란스럽게 이름이 바뀌었다)와 그 산하기구가 어떻게 법령을 해석하고 집행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법령들의 해석은 경우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어 그 때문에 노동자들이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대법원까지 가게도 되는 오랜 기간의 소송으로 수난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주 최근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란 대법원의 판결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친노동적이냐, 중립적이냐, 또는 반노동적이냐'하는 그 태도가 일상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매우 중요하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노동억압적 정권의 시대에는 경찰국장 출신들이 노동청장으로 계속 직행하기도 하였으며, 군 출신들이 노동부 장관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노동 문제는 원만히 조정해나갈 문제가 아니라, 치안 차원에서 엄히 다스릴 문제였기 때문이다.
노동부 문제만이 아니다. 노동문제에는 경찰·검찰 등이 직접 깊숙이 개입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친기업·반노동의 행태를 보인다. 물론 대규모 노사분규는 치안적 차원에서도 문제가 되니 치안유지란 점에서 노동 측을 견제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에 막강한 대검찰청의 대검 검사가 노조를 때려잡기 위해(말 그대로 때려잡기 위해서다) 함정을 파놓고 파업을 선동하였으며 제멋에 겨운 나머지 그 사실을 신나게 자랑하다가 옷을 벗은 유명한 사건이 있었지 않는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법원의 태도도 크게 문제가 된다. 노동법원 설치가 제기되는 까닭도 있다. 절차의 번잡함 때문도 있지만, 그들이 '친노동적이었느냐, 중립적이었느냐, 또는 반노동자적이었느냐'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한 것인데, 그 태도 여하도 정권의 태도 여하, 그에 영향 받은 사회 여론에 따라 흔들린다는 점은 말할 수 있겠다.
정부의 태도, 특히 대통령의 태도가 중요하다. 예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노조 지도자들을 자주 만나고 해외 여정에 재계뿐만 아니라 노조 지도자들도 동반하여 나간 일이 있었다. 그때는 재계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이 노조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대통령은 그만큼 핵심적 중요성을 가졌다. 어느 원로 정치학자는 "청와대에 출입하는 인사들과 그 빈도를 정확히 파악한다면 한국 정치를 점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이치이다.
지금 노사정 3자 위원회가 있기는 있으나,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코포라티즘(corporatism)' 방식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잘 기능할 수 있을지는 얼마간의 의문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초기 IMF 금융위기 때는 대통령이 열성을 보여 큰 역할을 했다. 노사정 간에 대타협을 한 것이다. (나중에 대량해고를 결과하였을 뿐이라고 민주노총이 후회막급이었지만 말이다) 지금은 사실상 휴면 상태이다시피 한 노사정위도 대통령이 힘을 실어 준다면 얼마간의 기여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미국의 대공황 때 프랭클린·D·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New Deal)정책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 뉴딜 정책에도 노동 정책이 큰 몫을 했다. 노동에 너그럽게 대하여 노조 조직이 대폭 늘어나고 그 결과 분배 문제에 큰 향상이 있었다. 흔히 '와그너 법(Wagner Act·1935년)'이라고 알려진 National Labor Relations Act도 그중 하나다.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향상시켜 노사관계에 새로운 역사의 장(章)을 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동에 애정을 가진 훌륭한 노동행정가 '프랜시스 퍼킨스(Frances Perkins)'가 미국에서 여성으로는 첫 장관이 되고, 노동부를 맡아 루즈벨트 4선 임기 내내 재임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노동권의 향상과 형평', 이 트라이어드라 할 모두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복지가 주로 재분배(再分配)의 문제라면(물론 기업복지 등 직접 분배도 있지만) 노동권의 향상과 형평은 직접 분배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 분배 문제는 재분배의 문제보다 중요하다. 훨씬 중요하다. 미국에서 노동권이 향상되었던 뉴딜 이후에는 노동자에의 분배 구조가 향상되었고, 노동 억압적이었던 레이건 대통령 이후에는 분배 구조가 악화되었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우리도 복지국가, 경제민주화에 계속하여 관심을 갖고 열성을 기울이는 한편, 노동권의 향상과 형평을 위해서도 이제 활발한 논의를 하고, 에네르기(energy)를 집결시킬 때가 아닌지. 그런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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