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21일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을 방문했다. 17대 국회에서 정부 정책의 협조를 당부하는 이 자리에서 이 부총리는 각 당의 상반된 요구 사항과 쓴 소리를 듣느라 진땀을 뺐다.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문제를 최우선으로 요구한 반면, 한나라당은 '과감한 기업 규제 완화'를 주문해 경제정책에 대한 양 당의 확연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민주노동당 "정부 약속 이행하라"에 이헌재 "논의중인 사안일뿐"**
정부 각료들 가운데 총선후 두번째로 민주노동당을 방문한 이헌재 부총리는 권영길 대표와 단병호 당선자 등과 예상외로 화기애애하게 2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진보정당과 경제주무부처 장관과의 첫 대면답게 비정규직 문제 등 경제현안을 두고는 뼈있는 말들이 오갔다.
화두는 단연 올해 노동계의 최대현안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이었다.
이 부총리를 대면한 단병호 당선자는 "선거기간 즈음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10만명 정규직화 계획을 발표했다"며 지난 3월 노동부가 공공 부문 비정규직 관계장관회의에서 보고한 내용을 상기시키며 "민간부문이 따라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각별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이 부총리가 "10만명 정규직 전환은 논의중인 사안일 뿐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미온적 태도를 보이자, 단 당선자는 "선거기간에 그렇게 얘기하면 국민들은 그게 결정사항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와서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며 꼬집어 말하는 등 가벼운 설전이 오갔다.
분위기를 수습할 요량으로 이번엔 이 부총리가 "이제 원내진출도 했으니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참여해 논의하자"고 제의하자, 권영길 대표는 "지금까지 노사정위는 기업정책을 합리화하는 들러리 역할을 해 왔으니 노사정위의 성격 정립이 우선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노조와 정부간 신뢰가 먼저 쌓여야 한다"고 가세해 잠시 분위기가 굳어지기도 했다.
이 부총리가 돌아간 뒤 단 당선자는 "이 부총리가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면서도 "아마 적어도 노동문제에 관해서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공조가 잘되지 않겠나"며 정부여권의 노동정책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권 대표 역시 "열린우리당, 노대통령, 총리도 그렇고 성장지상주의로 분배를 통한 성장을 주장하는 민노당과 많이 다르다"며 "그 간격을 앞으로 어떻게 할까 고민"이라고 밝혔다.
***한나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 그동안 말뿐"**
이에 앞서 이 경제 부총리는 한나라당 천막 당사를 방문, 박근혜 대표를 예방했다. 더운 날씨만큼이나 이 부총리와 박 대표는 이날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놓고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한나라당은 이헌재 경제부총리에게 강도 높은 기업 규제완화, 투자 촉진 방안 등을 요구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지난 1년간 정부의 경제 실정을 언급하며 이 부총리를 강도 높게 몰아붙였고, 이에 이 부총리는 때로는 해명하고 때로는 반박하며 정부 정책에 대한 한나라당의 협조를 주문했다.
박 대표는 "지난 1년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말만 했지, 매년 30만개씩 늘어나는 일자리가 작년 한 해동안 3만개가 줄고 국내기업도 외국으로 나가고 있는 등 투자도 줄고 있다"며 "1년 동안 기업하는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만한 정책이 없었다"고 지난 1년의 참여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했다.
이 부총리는 이에 대해 "애는 많이 쓰는데, 전부터 내려온 신용불량자 문제나 가계부채 문제 등이 불거져 애쓰는 부분은 감춰지고 문제점만 크게 부각됐다"며 해명한 뒤 "구조적인 전환이 이뤄지는 과도기적 과정에서 방향을 잡기 어려운 점, 경기가 전반적인 활기를 찾기 어려운 점, 시장 불확실성 문제 등이 있었고, 정부 정책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해결해 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 부총리는 신용불량자 대책에 대해서는 "당장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일단 악화를 막고 이제 풀어가는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대책에 대해서도 그는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 동안엔 몇 가지 보완정책밖에 할 수가 없다"며 "일부에선 미봉책이라고 비판하지만 우선 공공부문 중심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정상적인 일자리가 생기면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盧경제관, 이헌재 "원칙, 확고하다"에 박근혜 "1년 동안 한 것을 봐라"**
이 부총리의 이같은 설명이 끝난 뒤에 박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관이 '반(反)기업적'인지에 대한 이 부총리의 확답을 요구했다.
박 대표는 "정부가 여러 노력을 했음에도 대기업이고 중소기업이고 간에 정부의 기업관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지 않다.'반(反)기업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며 "정부가 믿음을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기업 중심, 시장 중심이라는 경제 분야의 노 대통령의 철학과 원칙은 분명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반기업정서, 불확실성 등에 대해 대통령부터 모든 정치인이 행동으로 보여야 하고, 반기업정서를 불식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런 부분을 정부가 손을 안대고 있다"고 비판을 이어 나갔다. 박 대표도 "유세를 갔을 때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을 때가 '경제를 살리기 위한 핵심은 노대통령의 기업관과 경제관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는 말을 할 때였다"고 가세했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가 "문제가 안되는 것을 문제가 된다고 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박 대표는 "1년 동안 한 것을 갖고 말한 것"이라고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부총리는 이어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일시에 터져 나와 그렇게 된 부분도 있다"고 해명했지만, 이강두 의장은 "경제 정책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달라"고, 박 대표는 "규제 혁파를 더 과감히 할 생각이 없냐"고 이 부총리를 몰아 붙였다.
이 부총리는 "1백 개의 규제 중에 99개를 없애도 1개가 걸려서 안돌아 가는 경우도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위해 권한을 줬는데 거기서 걸리는 부분도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한 뒤 "인허가 신청을 했을 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인가되던지 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박 대표는 "환경 등의 문제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혁파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이강두 의장은 "정부에만 맡겨서는 안되고 국회에서 규제개혁특별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야 된다"고 강도 높은 규제 완화 정책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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