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인사동 느티나무 까페에서 열린 '영화인들의 민주노동당 지지선언' 기자회견장에는 수십명의 취재진들이 몰려 영화인들의 정치선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실감케 했다. 프레시안은 오랜 기간의 사전요청 끝에 오마이뉴스와 함께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시간을 빌릴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인 대표로 노회찬 사무총장으로부터 홍보대사 수여장을 받을 때 플래시를 너무 받았는지 약간 피곤한 기색으로 연신 '물'을 찾았고, 봉준호 감독은 "그동안 당원으로 한 게 없어 부끄럽다"며 수줍게 인터뷰를 이어갔다.
***박찬욱, "영화인들에겐 파병문제가 결정적이었다"**
문 : 지난 대선 때는 문성근, 명계남씨의 노사모 활동 외에 이와 같은 영화인들의 집단적 민주노동당 지지선언 등은 없었다. 그 때와 다른, 영화판의 분위기가 있나.
박찬욱(이하 박) : 시간여유를 가지고 동참인원을 더 모았다면 2백26명의 5배는 넘었을 것이다. 대중과 직접 만나는 사람은 아무래도 공개를 꺼리겠지만... 그 정도로 영화인 중에 민주노동당 지지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나라를 막아야 했던 대선 때와 이번 총선은 다르다. 게다가 그동안 이 정권에 실망한 사람이 많다. 영화인들은 특히, 파병문제에 실망이 많았다. 결정적이었다.
봉준호(이하 봉) : 2002년 대선 전부터 영화인들의 민주노동당 지지는 있었고 이것이 갑작스러운 영화계 트렌드는 아니다. 대선 당시 워낙 박빙의 승부인데다가 정몽준 효과가 커서 민주노동당이 많이 손해를 봤다.
문 :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감독으로서 정치선언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박 : 배우가 아니라서 훨씬 낫다. 생각해보면 부담스러울 것도 없다. 관객들은 민노당원이 연출한 영화를 보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하지도 않고, 투자자도 '민노당원이 만든 영화는 투자할 수 없다'고 말하지도 않는다.(웃음)
오히려 민주노동당원이라는 것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예단할까봐 걱정이었다. 예를 들어, 언젠가 인혁당 사건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저사람은 선입견을 가졌을거야'라는 선입견을 가질까봐 우려가 들긴 한다.
봉 : 동감한다. 영화 속에 정치사회적 메시지가 나갈 수 있다. 캐릭터나 상황에 대해서 생생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그런식으로 가라앉거나 식상해지지 않을까 그게 좀 걱정된다. 그래도 관객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냐를 따지지 않고 영화를 '하나의 텍스트 자체'로 받아들이는 편이라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봉준호, "영화현장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이쪽으로 일치될 수밖에"**
문 :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영화인의 예술철학을 말한다면.
박 : 기질적으로 봐서 한마디로 휴머니즘이다. 그래서 공약 그런 것보다 민주노동당의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태도에 끌린다.
봉 : 소위 연출부터 스텝까지 영화현장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돈이나 권력을 쫓는 캐릭터가 아니다. 저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친구한테 쌀도 얻어먹기도 하고 극빈자 생활 했었지만 그래서 영화일을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영화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서가 민주노동당에 일치될 수 밖에 없다.
박 : 우리끼리 농담으로 이 돈 받으면서 매일 밤새고 뭐하는 짓이냐... 이런 정열이라면 돈벌이를 해도 떼돈을 벌고 고시를 해도 벌써 패스했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소수자와 약자를 위하는 마인드다.
***봉준호, "한국현대사, 변화의 스피드가 있을 뿐, 방향 잃은 적은 한번도 없다"**
문 : 탄핵안 통과 후, 아직은 열린우리당을 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정리하고 있나.
봉 : 한국현대사는 변화의 스피드가 있었을 뿐 변화의 방향을 잃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탄핵정국은 가속도를 밟은 것으로 오히려 잘된 일이다. 쟤들은 이제 제대로 '아웃'이다. 끝이다 이제.
현재 보수 자처 세력들은 제대로 된 철학을 지닌 정책으로서의 보수가 아닌 그저 기득권 세력일 뿐이다. 이는 보수에 대한 모욕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같이 지내야 한는 고통을 줬다. 그 지겨운 5,6공세력이 이제는 퇴장하는 것같아 기쁘다.
***박찬욱, "'좀 더 센 놈들을 국회에 넣어놔야겠구나' 하는 거다"**
박 : 탄핵 후 국민들은 수구정치세력에 완전한 환멸을 느꼈고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약간의 개혁을 가지고는 안된다는 그 동안의 깨달음을 생각해보면 좀 더 멀리 나가는 쪽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저런 애들하고 붙을래면 나약한 애들 가지고는 안 되겠다. 좀 더 센 놈들을 넣어놔야겠구나'하는 거다. 무늬만 개혁인 세력에게 많은 실망을 맛봤기 때문에 알맹이까지 개혁이고 진보인 세력을 밀어준다는 생각이다.
문 :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 '내 삶과 무슨 연관이 있나'고 회의적인 이들도 있다.
박 : 세상이 하루 아침에 바뀌나. 그럼에도 우리 현대사는 조금씩 발전하는 궤적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대통령만 해도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까지 마치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국민대중이 어떤 방향을 분명하게 지향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대중문화종사자들의 진보정당 지지선언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다만 진보정당 지지는 그 가속도를 높이자는 얘기다. 암적인 국회의원들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항암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봉준호, "원내진출시, 정책적 선명성 지키고 현실정치 테크닉 발휘하길"**
문 : 민주노동당에게 당원 개인으로서 그리고 영화인으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봉 : 원내 진출을 해도 여전히 소수세력이고 많은 기득권세력들의 협공으로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부유세같은 정책의 선명성을 잘 지켜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때로는 현실정치 속에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정치세력들과의 적절한 제휴와 대립 등을 적절히 구사하는 정치적 테크닉 또한 잘 보여줬으면 좋겠다.
영화에 관해서는 스크린 쿼터 존속을 비롯, 독립영화, 예술영화, 다큐등 다양한 문화영역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함께 서민들의 접근도가 커질 수 있는 기반 역시 마련됐으면 한다.
그러나 꼭 영화판 자체에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태극기 휘날리며'가 좌경용공이라는 등 국회 안에서 말도 안되는 엉뚱한 언쟁이 벌어질 때 이를 제지하고 제대로 균형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민주노동당, 이주노동자와 공교육문제에 신경 좀 '많이' 써야"**
박 : 인권영화 '여섯 개의 시선'을 찍으면서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주노동자들의 강제추방을 막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봉 : 제대로 된 평준화가 됐으면 좋겠다. 애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요즘 교육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광란의 사교육에 동참할 수도, 방치할 수도 없다. 지금 공교육은 완전히 붕괴됐다. 민주노동당의 평준화 정책 컨셉은 들어 익히 알고 있다. 새로운 대안을 시급히 제시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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