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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확고한’ 주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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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확고한’ 주체가 필요하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36> 17대 총선에 붙여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중엽까지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1세기 동안 고려에서는 ‘개혁정치’가 주기적으로 시행되었다. 25대 충렬왕(1274-1308)에서 31대 공민왕(1351-1374)에 이르기까지 새 임금이 즉위하기만 하면 정석처럼 개혁정치가 나왔다. 한 임금의 재위기간 중에도 정치상황의 중대한 변화가 있으면 개혁정치를 거듭 내놓기도 했다.

개혁의 표적은 언제나 특권층의 경제력 독점이었다. 고려 후기 대지주들의 토지는 “산천을 경계로 한다”고 할 만큼 대규모로 집중되어 가고 있었는데, 권력층의 대지주들은 온갖 수단으로 조세와 부역을 회피하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대다수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한편으로는 국가재정이 쪼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10년이 머다하고 개혁을 거듭하는데도 공민왕 때까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로 문제는 계속되었다. 개혁의 주체가 바로 개혁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 때문이었다.

고려정치사 연구자 이익주 박사는 악순환의 원인을 ‘측근정치’에서 찾는다. 원나라는 1259년 고려의 항복을 받은 뒤, 고려의 영토와 인민을 직접 지배하지 않고 고려 왕을 통해 간접 지배하는 방침을 세웠다. 1269년 원종이 원나라의 힘을 빌어 임연(林衍)의 난을 진압한 이래 고려 왕은 원나라에 의지해 신민에게 군림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 고립된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왕과 특수한 관계를 가지는 측근세력의 육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토지소유제도와 조세제도의 개혁 필요성은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었다. 왕이 새로 즉위해 측근세력을 키울 필요가 있을 때 개혁은 ‘물갈이’의 핑계가 되었다. 측근세력의 핵심은 왕이 즉위 전 원나라 조정에 숙위할 때 시종하다가 왕을 따라 돌아온 신진관료들로, 국내에 정치-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개혁의 칼날로 기존의 기득권세력을 약화시키면서 새 측근세력에게 사급전(賜給田)을 주어 힘을 키워주고, 일단 새 측근세력이 자리잡은 뒤에는 개혁의 필요성이 잊혀졌다. 신악(新惡)이 구악(舊惡)을 대신하는 일과성 개혁이었다.

1360년대 신돈(辛旽)을 앞세운 공민왕의 전민추정(田民推定) 정책은 백년간 본질을 외면하고 정략에만 이용해 온 제도개혁을 비로소 본격적인 단계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모순이 때늦은 개혁 시도 앞에 엄청난 반향을 터뜨렸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왕조가 빚어져 나오게 된다.

공민왕에 이르러, 그것도 즉위한 지 15년이 지나서야 이 개혁이 본격적 단계에서 추진되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궁극적으로 원나라의 쇠퇴에서 큰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공민왕 이전의 고려 왕들에게 안보의 열쇠는 원나라와의 관계에 있었다. 왕의 반대세력에게도 원나라 조정에 왕을 모함하는 것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보다 효과적인 공격방법이었다. 예를 들어 충숙왕(1313-1330) 때 유청신(柳淸臣), 오잠(吳潛) 등이 고려의 나라를 없애고 행성(行省)을 만들어 원나라의 지방행정체계에 편입시켜 달라고 주청했으나 원나라 조정에서 기각한 일이 있었다. 이 입성(立省)책동에 반대한 원나라 관리들은 고려 조정에서 국가의 은인으로 숭앙받았다.

국가의 안보를 원나라에 맡겨놓은 상황에서 국내의 사회경제적 모순은 국왕에게나 관료들에게나 늘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따라서 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개혁은 염두에 없고, 운영기준만을 놓고 일과성 개혁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그런데 공민왕대에 이르러 사정이 달라졌다. 원나라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국내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일차적인 정치과제로 떠오르게 되고, 공민왕 재위초년을 통해 기존의 측근세력 구조가 해소되면서 1365년부터 ‘판갈이’ 수준의 본격적 개혁에 착수하게 된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정치도 반 세기 동안 미국과의 관계에 안보를 맡겨놓은 상황에서 국가 내부의 변화 요구를 수렴하는 데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근대화’와 ‘민주화’라는 화두가 오랫동안 정치담론을 지배해 왔거니와, 이 화두들은 외부에서 주어진 표현으로, 내부의 실질적 제반 요구를 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마치 몽고지배기 ‘충’자 돌림 고려왕들의 개혁정치처럼, 신악으로 구악을 대신하는 도토리 키재기에 그쳤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미국의 입장에 완전히 얽매인 위치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내부의 필요를 앞세운 정책이라는 점에서 신돈의 개혁에 버금가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그러나 의회가 오랜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로 있고 대통령의 권력도 불투명한 부패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있어 개혁의 주체가 확립되지 못했다는 것이 그 한계였다.

국회의 쇄신을 우리는 눈앞에 두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17대 국회가 민의 대변을 위한 완벽한 구조를 가지리라고 기대하기에는 제약 요인이 많다. 열린우리당의 지지는 그 당에 대한 신뢰보다 구악에 대한 반발심리에 근거를 많이 두고 있고, 그에 대한 반발로 일부 지역에서 지역주의가 되살아나는 조짐이 있다. 그러나 이번의 변화가 대한민국 국회가 진정한 대한민국 국회로 자리잡는, 건국 이래 가장 뜻깊은 변화, 최소한 그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어느 당이 몇 명의 당선자를 내느냐보다 각 당 내에서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새 국회에 자리잡느냐가 더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새 국회에 바람직한 사람들인가? 우리 국회가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진정한 요구를 충분히 반영해 오지 못했다는, 국회 노릇을 제대로 못해 왔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역사는 굴러가게 되어 있다. 공민왕의 때늦은 개혁도 결국은 결실을 보았다. 그러나 고려 왕조를 살려내지는 못했다. 너무 늦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의회제도가 그런 운명에 처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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