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0일은 전두환 군사정권 때 제정된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은 3백65일 집에 갇혀 노동, 교육, 문화, 정보접근 등 모든 영역에서 배제되지만 이날 하루만은 온갖 정치인과 기업가의 방문 속에 볼거리, 먹거리를 제공받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장애인은 그러나 더 이상 집에 갇혀 동정과 시혜를 기다리는 대상으로 살 수 없다. 우리는 이제부터 장애인들이 대상화되는 행사를 거부하고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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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0일을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로 제정할 때까지 노숙농성"**
26일은 "26만원으로 도저히 살 수 없다.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라"고 농성하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고 최옥란 열사의 2주기였다. 고인은 뇌성마비 1급 장애여성으로 장애인 차별철폐를 위해 싸우다가 운명을 달리했다.
이 날을 시작으로 '장애인 이동권 연대' 등 장애인 인권단체들이 중심이 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기획단(이하 기획단, 위원장 박경석)'은 최옥란 역사의 운구행렬이 경찰에 의해 강제로 멈춰야 했던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오는 4월20일까지의 노숙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이들은 "기만적이고 장애인을 우롱하는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로 선포하라"며 "장애인의 이동·노동·문화·수급권,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등의 정책요구안이 실현될 때까지 노숙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20~30년 집구석에서 밥만 먹고 살아봤나"**
박경석 위원장은 "이 땅에서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중증장애인들이 20, 30년 집구석에서 개처럼 밥만 먹고 살아가야만 했던 세월들을, 이동할 대중 교통 수단이 없어서 배우지도 못하고 사람을 만날 수조차 없었던 고통과 소외를 한번이라도 경험해보았냐"며 "이 모든 절망을 개인의 장애 탓으로 돌리고 시혜와 동정을 구걸토록 만드는 이 사회의 야만적인 작태를 한번이라도 반성해 보았냐"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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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애인이 겪고 있는 이 절망과 고통이 수구보수 정치놀음에 치장된 탄핵정국보다 하찮은 무게냐"며 "재정을 핑계대지만 부패정치를 유지하기 위해 긁어모았던 열성과 돈만 있어도 장애인의 절망을 해결할 수 있다. 재정의 상황논리가 아닌, 바로 지금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경찰, "불법 집회 좌시않겠다" 강제해산**
이날 기획단과 경찰의 마찰은 하루종일 계속됐다. 이날 기획단은 집회신고를 한 오후 2시부터는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선포 결의대회'를, 집회가 금지되는 일몰 이후인 6시부터는 '최옥란 열사 추모제 및 장애인 차별철폐촉구 문화제'를 열기로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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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단이 오후 행사 준비를 위해 오전 11시께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 무대를 설치하자 종로경찰서 측은 "무대는 신고되지 않은 물품이고 통행에 방해된다"며 무대 철거를 요구했고 기획단측은 "지금까지 집회에서 수없이 무대를 설치해 왔는데 왜 오늘만 문제 삼느냐"고 반발했다.
1시간 가량 계속된 경찰 3백여명과 집회 참가자 70여명의 팽팽한 대치 끝에 오후 1시께 종로구청 철거반이 무대를 부숴 강제철거했고, 오후 5시20분경에는 노숙농성을 위해 준비한 매트리스, 소파, 침대 등도 철거해 압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참가자 사이에 격한 몸싸움이 발생, 4명이 종로서로 연행되고 장애인의 전동 휠체어가 파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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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 양영희 소장은 "세종문화회관 앞은 장애인 요구안을 논의키 위한 청와대 면담 요청의 상징적인 장소이자 최옥란 열사의 운구 행렬이 경찰에 막혔던 곳"이라며 "집회 장소가 정부중앙청사 근처라서 경찰이 강경하게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가 촛불을 들면 해산하지 않을 것인가"**
경찰은 오후 7시경 기획단 측에 "여러분은 현재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며 경고한 후, 오후 7시45분경 5개 중대 경찰력과 여경을 투입, 집회참가자들의 사방을 에워싸고 장애인과 활동보조인 등 70여명을 구로서, 성북서, 서대문서 등으로 연행한 뒤 오후 9시10분께에는 박경석 의장을 포함한 장애인이동권 연대 지도부 6명을 추가 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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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장은 해산 직전 "참으로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가 촛불을 들지 않아서 강제해산 당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눈치를 잘 봐야 한다고 교육받는 장애인들이 이렇게 밖으로 '투쟁'하러 나오기 정말 힘들다. 장애인 1명은 비장애인 1천명이 나온 효과와 맞먹는다. 사람 수로 기죽지 않고 4월20일까지 매일 이곳으로 농성하러 나올 것이다. 우리의 마음만은 절대 못 뺏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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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 선포 결의문' 전문이다.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이제 이 땅에 살아가는 450만 장애인에게는 24년 전 전두환 군사정권이 시혜적이고 전시적으로 제정한 '장애인의 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날을 2002년부터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라 선포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1년 365일 장애인을 야만적으로 차별하는 사회구조적 모순은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1년에 단 하루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들을 체육관에 동원하여 떡을 주고 공연을 보여주는 행사만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거나 숨겨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부는 더 이상 장애인을 기만하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는 오늘 3월 26일 장애해방운동가 최옥란 열사 2주기 날을 맞이하여, 사회에서 장애인이 어떻게 철저히 소외받아 왔고 차별받아 왔는가를 온몸으로 말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세종문화회관에서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의 면담을 요청하고 우리의 정책요구안이 즉각 실현될 때까지 노숙농성투쟁을 결의한다.
지금까지 중증장애인들이 20년, 30년 집구석에서 개처럼 밥만 먹고 살아가야만 했던 세월들을 한 번 생각해 보았는가. 중증장애인들은 일상생활을 보조할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오로지 생활의 모든 것이 가족의 부담으로 존재했던 세월들을 한 번 느껴보았는가. 이동할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서 배우지도 못하고, 사람을 만날 수조차 없었던 고통과 소외를 한 번 이라도 경험해 보았는가.
이 모든 것은 장애인을 절망케 하였다. 그 모든 절망을 개인의 장애 탓으로 돌리고 그대들의 시혜와 동정을 구걸하도록 만드는 이 사회의 이중성과 야만적인 작태를 한 번 이라도 진지하게 반성해 보았는가. 과연 장애인이 겪고 있는 이 절망과 고통이 그대들의 수구보수 정치놀음에 교묘히 치장된 탄핵정국보다 하찮은 무게였던가.
이제는 더 이상 자본의 사회에서 민중을 착취하는 탐욕의 질서와 그 질서 유지의 충실한 수호자인 정부에 대하여 우리는 그들 스스로 변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말로는 '차별철폐'를 떠벌렸지만, 민중을 분리시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차별을 유지하고 활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과 정부는 자신의 도덕성을 유지하기 위한 시혜적 범위 안에서 장애인 복지라는 떡고물로 장애인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 땅 천박한 자본의 사회에서 차별받는 자들의 권리를 향한 연대 투쟁을 통해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그대들의 기만적인 태도를 통해 배웠다. 우리의 주장은 장애인의 차별철폐 뿐만 아니라 모든 이 땅에서 소외받고 억눌린 모든 자들이 차별에 저항하는 전선이 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세월을 참아왔다. 재정을 핑계로 더 이상 우리의 정책요구안의 조속한 실행을 미루지 말라. 그대들의 부패정치를 유지하기 위해 긁어모았던 열성과 돈만 있어도 장애인의 절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재정의 상황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이후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그것은 장애인의 기본적인 권리의 보장은 이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보편적인 권리로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참여정부에 성실하게 촉구한다. 고건 대통령권한대행은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공동기획단과의 면담을 통해 정책요구안을 수용하고, 즉각 실행할 것을 약속하라. 우리는 그 때까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을 결의하며 노숙농성투쟁을 진행할 것이다.
2004. 3. 26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공동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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