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한명숙 대표와 민주통합당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적자들이 박 위원장의 비판처럼 입장을 표변한 이유도 명확하지 않고 이 같은 입장변화에 대한 대국민사과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민주통합당의 폐기입장이 이명박 정부가 체결한 한미FTA안의 폐기론인지, 다시 말해 자신들의 표현대로라면 "이익의 균형을 맞춘"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안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진보진영이 주장해왔듯이 노무현안을 포함해 한미FTA 자체를 폐기하자는 것인지 애매하기만 하다. 즉 한 대표와 민주통합당이 이명박 안은 틀렸지만 노무현 안은 아직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이와 관련, 민주통합당이 두 가지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이익균형론이다. 이용섭 정책위의장이 "이익의 균형이 깨졌다고 생각되면 재협상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문재인 상임고문 역시 "협상이란 1%만 달라져도 이익균형이 무너지므로 이명박 정부가 추가양보로 이뤄진 협상을 받아들일 순 없다"고 지적한 것이 그 예이다.
두 번째는 상황변화론이다. 즉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재인 상임고문은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타결 이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과연 금융분야를 비롯한 개방이 국익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게 됐다"고 해명하고 있고 김진표 원내대표 역시 "2007년 FTA와 2010년 FTA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이 두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기 해서는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했던 당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직접 글을 통해 한미 FTA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며 이를 반대하는 나를 비롯한 진보학자들을 "교조적 진보"라고 비판하며 이들은 개방을 할 때마다 나라가 무너진다고 걱정했으나 외채망국론이 잘 보여주듯이 현실은 이같은 예언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론대로 현실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론을 버리라"고 충고하는가 하면 책임 없는 주장이나 하는 "학자들은 좋겠다"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나는 "노 대통령에게 드리는 공개편지- '진보진영'은 틀렸는가?"([한겨레] 2007년 2월 26일자)라는 반론을 제기한 바 있다. 다소 길지만 이중 핵심적인 부분을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안녕하십니까? 얼마나 국정에 바쁘십니까? 바쁘신 가운데에도 쓰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중략) 대통령께서는 (한미 FTA를 추진하는) 자신을 비판하고 있는 진보진영을 "교조적 진보"라고 역비판하면서 자신을 "유연한 진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면서 진보진영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물론 진보가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 그동안 추진해온 여러 정책을 볼 때 유연한지는 몰라도 '진보'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는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중요한 논쟁이 필요한 주제입니다. (중략) 그러나 복잡한 이 논쟁보다는 현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인정한 양극화와 관련해, 론스타 같은 해외투기자본과 재벌개혁에도 불구하고 더욱 비대해진 재벌, 그리고 강남아줌마들의 지갑만 불리고 다수는 민생고에 신음하는 양극화가 유연한 진보라면 저는 기꺼이 교조적 진보로 남아있겠습니다. 아니 그같은 양극화가 진보라면 차라리 제가 진보이기를 포기하겠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진보진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개방문제를 주로 논의하셨습니다. 진보진영은 개방을 할 때마다 나라가 무너진다고 걱정했으나 현실은 이같은 예언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는 비판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외채망국론을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맹목적인 개방 반대론은 잘못된 것이고 외채망국론은 조야한 이론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외채로 망하지 않았다고 외채망국론이 무조건 틀린 이론이었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중략)외채망국론이 외채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갖게 해 외채 망국을 예방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학문, 특히 비판적 학문의 역할이 그런 것이지, "이론대로 현실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론을 버리라"거나 "학자들은 좋겠다"고 비아냥거릴 문제는 아닙니다. (중략) 사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노대통령의 생각과 정반대로 진보진영이 외채망국론을 너무 일찍 포기해 재앙을 불러 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전쟁이후 최고의 국난이라는 1997년 외채위기가 그것입니다. 물론 진보진영은 김영삼정부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 세계화라는,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무모한 개방정책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외환위기 당시에 자기비판을 했듯이 구체적으로 외채위기를 경고해주지 못함으로써 비판적 학문의 역할인 조기 경보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개방 과정에서 급속한 구조조정과 97년 외환위기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에 몰린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는 "정책으로 교정할 문제"라는 낙관론을 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97년 외환위기를 외형적으로는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통령께서 생각하시듯이 "모든 개방을 성공으로 기록하면서 발전을 계속"해 온 것은 결코 아닙니다. (중략)개방의 결과는, 군사독재 아래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만든 알짜기업들을 헐값에 다 외국투기자본에 팔아넘긴 것 입니다. 게다가 대통령께서도 인정하신 사회적 양극화도 구조화되어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공이고 발전을 계속하는 것"이라면 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심각한 구조적 문제들이 대통령께서 김대중 정부로부터 물려받아, 그리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더욱 가속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지 않고 몇몇 보완적 정책으로 교정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인지, 회의적입니다. 사실, 정책으로 교정할 문제라면 한번 멋진 정책으로 교정을 해 보여주시지, 왜 다수 서민들이 양극화 속에 신음하도록 내버려두고 계시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한-미 FTA의 졸속추진과 같은 무비판적인 개방에 대한 진보진영의 우려는 타당합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대통령께서도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세계화의 챔피언인 미국의 벤 베닝키 연방준비이사회 의장이 최근 세계화와 이에 따른 양극화로 미국경제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고 나서는 등 세계화론자들 사이에서도 세계화에 대한 자성이 일고 있습니다.
이처럼 나를 비롯한 진보학자들은 한미FTA와 무분별한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이를 무시하고 한미FTA를 강행했다. 그것도 이에 저항하는 농민을 두 명씩이나 시위진압과정에서 패서 죽이면서 말이다.
따라서 이제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위에서 소개한 민주통합당의 두 가지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상황변화론이다. 이 같은 주장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 협정만이 아니라 소위 이익의 균형을 맞췄다는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협정도 잘못된 것이 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금융위기로 미국식 모델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한미FTA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도 문재인 상임고문이 인정한 금융개방들을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
이와 관련,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한미FTA를 다시 해야 한다는 민주통합당의 주장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라는 점이다. 2008년 가을에 금융위기가 터져 나왔으니 불과 1년 뒤에 터져 나올 세계적 위기도 모르면서, 진보학계의 지속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최고의 경제학자들과 최고 경제전문가들이 모여 한미 FTA와 같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경제정책을 만들면서 개방이 가져올 경고를 "교조적 진보"라느니 "학자들은 좋겠다"라느니 하고 조롱이나 하면서 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밀어붙였으니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한 마디로,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질 능력이 없는 무능의 극치였던 셈이다.
두 번째, 이익균형론이다. 이익균형론의 경우 상황변화론과 달리 이익균형을 맞춘 노무현의 한미FTA 협정은 옳은 것이었고 2008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라도 이명박 모델을 버리고 노무현 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노무현의 한미FTA 협정은 과연 이익의 균형이 맞는 안이었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 안이 이명박 안보다는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노무현 정부의 안에 반대하며 '있는 1'대 '수탈당하는 99'의 구조 속에서 개방의 이익을 누릴 1이 아니라 99의 입장에서 이익의 균형이 맞는 안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와 그 적자인 민주통합당은 설득력 있는 답을 하는데 아직까지도 실패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투자자-국가 소송제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협정에 들어있던 것으로 진보진영이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조항이다. 그러나 이를 제도선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밀어붙였다. 그런데 최근 민주통합당은 이에 대해 결사반대하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투자자 -국가소송제가 애당초 어떻게 이익의 균형을 맞춘 협정이었던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민주통합당의 주장이 무엇인지도 애매하다. 재협상인가, 아니면 한미FTA의 근본적인 폐기인가? "지금 국가지도자다운 모습은 한미 FTA를 재검토하고 재협상의 방법을 찾는 것"이라는 신경민 대변인의 주장이나 민주통합당이 오바마에게 보낸 서한에서 재협상리스트로 투자자-국가소송제, 역진방지조항 폐지, 개선공단 원산지 인정 등 10개 항목 제시한 점 등을 보면 재협상론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말로는 폐기론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혼란스럽다. 아니면 민주통합당의 목표는 "재협상을 통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좋은 FTA를 만들자는 것"이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이 재협상의 길을 봉쇄하고 있어 그대로 시행하는 것보다 폐기하는 것이 낫다"는 김진표 원내대표의 주장이 민주통합당의 당론인가?
결론적으로, 단순한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협정 폐기를 넘어서 과연 노무현의 한미FTA 협정은 과연 이익의 균형이 맞는 안이었느냐는 것으로부터 위에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재논의가 이번 기회에 민주통합당내에서 나아가 민주개혁진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이에 관한 과거의 오류에 대해 한명숙 당대표, 문재인 상임고문 등 당의 핵심관계자들과 당차원의 근본적인 재평가와 자성, 그리고 대국민사과가 이루어져야 한다.
일찍이 이에 대해 가장 철저한 자기비판과 사과를 한 바 있는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얼마 전 서울 강남을 출마를 선언하며 "저의 한미 FTA 참회록은 개인차원의 참회록일 뿐이며, 수권가능성이 있는 정당이 당 강령의 방향을 위해 과거의 길이 틀린 길이었다면 분명히 털고 가야 한다"며 "민주통합당이 미래를 얘기하고 한미FTA 폐지의지에 힘과 무게가 실리려면 열리우리당 시절 한미FTA를 추진한 것에 대해 참회록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평가와 자성에 기초해 재협상인가, 폐기인가가 논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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