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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CVID를 고집하는 이유는?

김연호의 '워싱턴 탐구' <4> 아이티사태에 비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지난 2월 카리브해의 조그만 섬나라 아이티에서 발생한 유혈 반란사태가 미국 정가에 파란을 몰고 왔다. 미국은 자신의 뒷마당에서 벌어진 이 사태에 대해 초기에는 군사개입을 거부하면서도 반란군의 정통성을 문제삼는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다 급기야 반란군이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 프랭스 입성을 앞두게 되자 미국은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사임서를 받아내고 그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망명시켰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품은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미 하원의 흑인의원단에게 자신이 미국관리들에게 강제 납치됐다고 알려왔다.

미 하원에서는 즉각 외교위원회 청문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전원 민주당 소속인 이 흑인의원단 회원들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요지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전세계에 확산하겠다는 부시 행정부가 어떻게 헌법에 의해 선출된 외국 대통령을 강제로 사임하도록 만들 수 있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가 아이티의 쿠데타를 사실상 주도한 셈이라는 것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여기에 더해 의회 차원의 진상조사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존 케리 상원의원도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반란군을 진압하고 하이티의 민주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개입을 즉각 감행했을 것이라면서, 부시 행정부의 결정은 중남미 국가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실수였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측은 아리스티드 대통령이야말로 독재정치를 일삼은 지도자였다면서, 그의 축출은 아이티에 민주주의를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비록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긴 하지만, 인권탄압과 야당탄압 그리고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마약거래에까지 개입하면서 개인축재에 혈안이 되었던 오점 투성이의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재선에 성공했던 2000년 대통령선거가 부정선거로 드러나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제재를 받아왔지만, 그후에도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특히 반란군이 한때 아리스티드를 추종하던 세력이고,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평화적인 시민운동 세력들도 아리스티드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면서 미국의 중재안을 거부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리스티드를 대통령 자리에 그대로 놔서는 아이티의 유혈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보수파들은 특히 지난 94년 클린턴 행정부가 하이티에 2만명의 미군을 보내 군사쿠데타로 쫓겨난 아리스티드를 다시 대통령 자리에 앉히고, 3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경제지원을 해줬지만 아이티의 민주주의와 경제 모두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부시 행정부가 즉각적인 군사개입을 피하고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물러난 다음에야 해병대를 보낸 것은 그동안 미국이 보여준 근시안적인 해결책을 지양하고 아이티 국민들 스스로가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도록 돕는다는 장기적인 해결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부시 행정부가 과연 아이티의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장기적인 종합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다시말해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축출을 지지한다는 암시를 계속 내보내면서도 그 이후를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아이티 사태 발발 직후 아리스티드 대통령과 반대세력 양측이 타협해 먼저 질서를 회복한 다음에야 비로서 평화유지군을 보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기에 아이티의 통치방식에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양측의 정치적 타결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국무부 대변인의 말도 있었다.

비판론자들은 그러나 아리스티드 대통령 퇴진 이후에 분명 그의 추종세력과 반란군간에 유혈충돌 사태가 예상되었지만 부시 행정부가 이를 막을 만큼 충분한 병력을 보내지도 않았고, 이 때문에 다른 국가들도 미국의 리더십만 바라면서 눈치만 보느라 적극적인 병력파견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아이티의 경제파탄을 수습할 경제지원 방안도 제대로 제시된 것이 없고, 오로지 플로리다에 오는 아이티 난민을 강제송환하는 일에만 부시 행정부가 골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주장들을 종합해 볼 때 부시 행정부의 입장은 한마디로 아이티 사태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미 과부하가 걸려 있는 병력운용 시스템에 아무리 적은 규모일지라도 새로운 짐을 안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대선을 앞둔 마당에 자칫 아이티에서 전사자라도 생기면 이미 이라크 문제로 수세에 몰려 있는 부시 대통령에게는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파월과 럼스펠드 장관이 아리스티드 대통령 사임 이후 아이티에 파견된 해병 2천명의 주둔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외교문제가 전례없이 대선의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논쟁에 휘말릴 빌미를 제공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외교정책에 관한 한 해외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위기에 끼지도 말고, 기존의 위기는 수면 아래로 밀어넣는 것이 최선의 대선전략일 것이다.

최근 들어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11월 대통령선거 이후까지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현상유지에만 신경 쓸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이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소위 대북유화정책을 거부해온 부시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이를 번복하는 듯한 인상을 보여 공화당 진영내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민주당 진영에게는 새로운 공격의 빌미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대표가 지난 2차 6자회담에서 주문처럼 외웠다는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북한의 핵폐기’는 북핵 위기를 수면 아래로 밀어넣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방법으로 보인다. 일단 북핵 6자회담은 이 CVID의 개념정의 문제라는 실타래에 얽혀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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