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버림을 받고 있다. 대통령의 권위는 더 이상 물러날 자리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탄핵발의에 대한 여론은 이러한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탄핵에는 반대하나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바닥이라는 현실이다. 나라는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이다. 선거법 위반이라는 수준의 사유를 가지고 탄핵국면으로 몰고 가는 것도 문제이고, 이러한 상황까지 유연한 정치력을 보이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민심의 질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치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과 혐오이다. 탄핵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 점이다.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로서는. 아무 것도 제대로 풀어나갈 수 없다.
***탄핵보다 더 큰 문제, 정치에 대한 총체적 불신과 혐오**
대통령과 정치권이 모두 착각하고 있는 것은, 서로가 이번에야말로 강수로 나가지 않으면 밀린다는 생각을 먹고 있는 점이다. 총선을 염두에 둔 정략에 따른 계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치졸한 기 싸움에서 누가 승자가 되는 것처럼 보이든간에, 양자 모두 상처투성이로 남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에 대한 엄중한 국민적 문책이 뒤따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엄격히 말해서 이미 탄핵감이다. 그는 이라크 침략 전쟁에 대한 동조파병 결정으로 일체의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이 나라 헌법정신의 근간을 위배했다. 침략전쟁에 적극 동조하고 나선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법 수호자의 자격을 상실하고 만 것이니만치, 이 문제를 가지고 탄핵논란이 일어난다면 이는 정당한 사유를 가질 수 있다.
나라의 자주적 입지를 당당하게 지켜내지 못하는 대통령으로서는 이 나라의 장래가 암울하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 식민지배 정책의 하수인에 불과한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독립국의 대통령이지 식민지 관리자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이미 탄핵감**
비극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대를 통해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민족적 자주/평화 역량의 발전은 별로 없다고 봐도 될 만한 상황이다. 그와 같은 이유에서라면 그가 교체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들 하등 이상하지 않다.
그는 대선의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일체의 민족적 차원의 약속과 전망을 대통령이 된 이후의 시야가 달라졌다는 이유를 들어 거의 모두 폐기하고 말았다. 이런 식이라면 대통령으로서 이리 저리 하겠다고 했던 것은, 그렇다면 다 선거용 발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으로 결말이 나는 것이다.
최근 <한겨레 21>의 대통령 인터뷰는 그런 점에서 가령, 이라크 전쟁의 본질적 성격과 관련한 질문을 노 대통령에게 전혀 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점에서 기회주의적이거나 또는 기만적이다. 현실론을 앞세운 대통령의 파병론에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진보언론의 태도로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권력과의 건강한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른바 야당의 연합작전에 의한 탄핵논의는 가당치 않다. 법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이에 대한 비판에 오만한 태도를 보인 대통령이 그 일차적 책임의 소재인 것은 분명하다.
***탄핵 반대 여론이 노무현 대통령 옹호 여론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탄핵은 이런 데 써먹는 보도(寶刀)가 아니다. 헌정질서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 제기될 경우에 한해서이다. 야당이 헌정질서의 안정을 정히 원한다면 대통령의 선거개입 문제를 놓고 국가적 토론과 여론의 정리를 통해 풀 일이다. 그걸 하지 못하는 정치적 무능력이 도달한 지점이 다름 아닌 탄핵이다.
그렇다면, 탄핵에 반대하거나 주저하는 국민 여론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행태에 대하여 찬표를 던지는 것일까? 열린우리당의 주장처럼 국민이 대통령 편일까? 그 또한 가당치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한, 스스로 만든 늪에 한없이 빠지고 말 것이며 어리석은 오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 궐위의 대안 부재 상황을 걱정하는 민심을 볼모로 여기고 버티려 든다면, 대통령 노무현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조만간 정치적 기아(棄兒)가 될 것이다. 그를 교체할 대안이 절대적으로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간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 왔던 정치행태는 기존의 지지자들 대다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와 충격, 그리고 분노를 가져왔었다. 통합적 지도력이 아니라 분열적 정략에 치우쳤고, 민족적 자세를 갖기보다는 굴종적 식민주의의 모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진중한 권위보다는 경박한 처신으로 그 개인만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존엄한 헌법기관의 국가적 위신을 수없이 손상시켜왔다.
이에 더하여 대선의 과정에서 분명 정치적 동지였던 이들에게 지극히 인간적 모멸감을 줄 정도로 수준 이하의 발언들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대통령의 모습은 그를 아무리 방어해주려 해도 방어하기 어려운 지경으로까지 사태를 몰아왔다. 탄핵은 동조할 수 없으나, 적어도 민주당의 탄핵발상에 깔린 노여운 심정만큼은 이해가 가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로써 우리가 확실하게 깨닫는 바는, 오늘날 우리 정치의 핵심적 과제들이 자유주의를 표방하건 보수주의를 표방하건 기존의 정치세력만으로 돌파하기에는 역부족이자 그 한계가 뻔하다는 사실이다.
***진보정치의 충격적 등장이 아니고서는...**
참으로 <충격적인 진보정치의 등장>이 아니고서는 이와 같은 구태와 정략적 소용돌이를 헤쳐 나간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의 의회진출이 진정으로 소망스럽고 절박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실로 민주노동당의 비약적 승리는 이 나라 정치의 진로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물론 아직 검증되지 못했다는 우려도 있겠으나, 그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검은 돈의 문제는 당연히 없다. 또한, 민족적으로나 민중적 견지에서나 인류적 차원에서나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세력의 입지는 이 나라의 미래에 참으로 소중한 자산일 뿐만이 아니라 정치의 지평을 진정 이 나라 백성들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대중들을 위한 것으로 단호하게 변화시켜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처신에 대한 진지하고도 겸손한 반성이 있을 일이다. 그의 철학 없는 정국 운영과 가벼운 처신, 정략적 사고에 변화가 없는 한, 국민들은 계속 피곤하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여야 정치권은 국정의 핵심적 과제에 대한 충정어린 헌신은 제쳐두고 벌이는 정파적 정쟁의 수준에 불과한 이전투구를 국민들이 어떻게 보고 있을지 돌아볼 일이다. 미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식민지 체제의 근본적 극복의지는 어디에도 없는, 자기들만의 권력투쟁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비론 내지는 어느 한쪽의 책임만 묻는 것으로써 문제 해결은 지극히 난망이다. 정치의 진정한 목적에 대한 통렬한 각성이 없는 세력이 주도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사태는 또 다른 모순과 분란의 연속이 될 것이다.
***보수정치 50년 충분하고도 남았다**
진보정치의 충격적 등장, 그것이 오늘의 정치를 완전히 <판갈이>하고 역사의 무서운 심판을 뇌리에 새기면서 새로운 활로를 뚫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다.
보수정치 50년이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와 깨끗이 단절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절호의 기회가 왔다. 민중들이 염증을 내는 것은 보수정치이지, 진보정치가 아니다.
탄핵정국이 어떻게 전개되든, 그 정국의 혼란을 성심을 다해 책임지고 갈 헌신적인 진보세력의 정치적 주도권이 형성되는 것이 그래서 이토록 절실하다.
정국의 중심을 바꾸는 일, 그것이 이제 할 일이다. 진보정치의 정당성은 바야흐로 더 이상 질문의 대상이 아니다. 다른 누가 아닌, 우리 손에 달렸다. “진보정치의 승리”, 역사의 희망은 이로써 그 실체를 확연히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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