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석패율제 논란이 있었다. 광역단위로 2~3명에 대해 10% 이상의 득표를 한 후보에게는 비례명부에 대한 '중복 등록'을 허용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진보정당이 강하게 반대했다. 논리는 "중진 구제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정당의 논거는 허위이거나 과장된 측면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1. 석패율제 - 진보정당의 '논거'는 동의하지 않지만 내가 반대하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나는 석패율제 반대 입장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 이유의 핵심은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우리나라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 방향은 민의왜곡을 시정하는 '표의 대표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유권자의 민의를 반영하는 것은 헌정적 중요성을 갖는다. 그런데 소선거구제하에서는 주권자의 가장 중요한 권리인 민의가 제대로 반영될 수 없다. 왜냐면 당선자가 아닌 후보를 찍은 표는 모두 '사표(死票)'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소선거구제 중심의 현행 선거제도와 석패율제 도입은 '논리 내적 모순'에 빠지기 된다. 소선거구제에서의 석패율제 도입은 '제도적 정합성'이 크게 훼손되고, 더 나아가 지역적 대표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2. 석패율제 도입은 '표의 대표성'과 '지역적 대표성'을 훼손한다.
예컨대, 석패율제를 도입하게 되면 호남에서 3~4위를 하는 한나라당 후보가 '비례명부'로 당선될 수 있다. 호남의 경우 민주당후보, 통합진보당 후보, 그리고 민주당 출신의 무소속 후보가 1~3위를 하고, 한나라당 후보가 4위를 하는 상황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될 경우, 소선거구제의 기본 원리와 근본적으로 상충된다. 현재 한국은 299석 중 245석(82%)를 소선거구제로 선출한다. 이것은 (선거구단위) '지역대표성'을 선출의 기본원리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역단위 유권자들에 의한 정치적 선택에도 불구하고, 4위를 한 출마자가 '비례의원'을 통해 당선되고, 실제 의원 활동은 '지역'에서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지역유권자들에 대한 '제도적 우롱'에 해당한다. 사실은 석패율제가 지역주의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유권자입장에서 투표를 회피하는 알리바이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석패율제의 도입을 옹호하던 분들은 독일 기민당의 콜 총리 등의 예시를 들며, 독일도 '중복등록'을 허용하고 있음을 논거로 제시했다. 그런데 독일은 한국과 경우가 다르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독일은 '정당명부'가 의석배분의 '기본' 요인이다. 독일의 경우, 정당의석 배분은 기본적으로 정당의 득표율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렇기에 독일에서 지역대표성은 '보완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 중복등록이 제도적 정합성과 유권자 대표성 모두를 훼손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제도적 정합성을 훼손하고, 지역단위 유권자 선택을 '우롱'하는 효과를 갖게 될 수도 있다.
3. 진보정당이 석패율제를 반대하는 '숨은'(?) 의도
그런데 진보정당이 석패율제 도입을 반대했던 진짜 숨은 의도는 다른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비례대표제 확대의 '사회적 동력'의 한 축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정태적' 분석에서는 석패율제의 도입과 비례대표제 확대는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런데 '동태적' 분석에서는 명백히 양립되는 측면이 있다. 본래도 강력한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를 선택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 비례대표제의 확대는 쉽지 않다. 그것은 더욱 강력한 사회적 압력이 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양당제하에서의 양대 정당은 소선거구제의 수혜 세력이기 때문에, 비례대표제 확대에 적극적일 유인이 떨어진다.
비례대표제 확대의 잠재적 동력과 명분들은 지역주의 극복, 표의 등가성 회복, 여성의 정치진출 확대,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정치적 진입, 노동자-농민 등의 직능 대표성 반영 등이다. 그런데 석패율제의 도입으로 인해 호남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이 활동하는 '지역교차적' 정치인이 출현하게 되면, 비례대표제의 '동태적' 동력은 그만큼 훼손될 것이다. 아마도 이 지점이 진보정당이 석패율제를 반대한 숨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한다.
4. 유럽 선진국들의 높은 여성 정치인 비율 - 핵심 비결은 '비례대표제'
유럽은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높다. 당연하다. 그것은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웨덴의 경우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이 40%가 넘고, 지방의원의 경우는 50% 내외이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하에서는 제도적-정치현실적 제도 정합성에서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로, 스웨덴은 국회의원을 100%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선출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제18대 국회의원 기준으로 비례대표의 비율 자체가 전체 의석의 18%(54석)밖에 안된다. 이런 조건에서 여성계가 비례대표 확대라는 '정공법'을 회피하고, 전체 의석의 82%를 차지하는 지역구에서 어떻게 하면 여성의 진입비율을 높일까 고민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고민의 연장에서 2004년에는 '여성 전용 선거구'라는 다소 황당한 아이디어까지 나올 정도였는데, 여성전용 선거구제는 남성출마자의 피선거권을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위헌 논란의 소지 등으로 인해 결국 중도 포기하게 된다. 당시에 진보정당은 여성전용 선거구제를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그것은 논리적 정합성에 대한 훼손의 이유도 있었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석패율제 반대의 이유처럼 '동태적 동력'이 훼손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강력한 반대 이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2004년 총선에서 '최초로' 도입 실시되었다.
5. 소선거구제하에서 여성 의무 공천의 관철, 그 명백한 한계
앞서 밝혔듯이 현재 비례대표제 의석 비율은 고작 54석(18%)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비례대표제는 여/남 순번으로 지퍼식 홀짝제를 법제화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은 당적을 초월하여 '항상' 절반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계산법에 의하면, 만일 한국에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을 15%(약45석으)로 만들고 싶다면, 비례대표 의석을 전체 90석(비율로 30%) 이상으로 확대하면 된다. 만일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한국에서 실시된다면 여성의원 비율은 50%의 비율로 단번에 육박하게 될 것이다.
현행 민주당의 여성 의무공천 15%를 둘러싼 논란은 15% 여성 의무공천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37명의 여성출마자가 선출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당내 경선에서 여성출마자 숫자가 딱 37명인 것에서 유래한다. 이에 따르면 여성출마자가 출마하는 지역의 경우, 내부 경선은 사실상 없게 되는 것이다.
정청래 전 의원의 '이대동문회 명단' 공개에 대해서는, 그 방법론이 과하다는 비판 여론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현행 방식에 의하면, 예컨대 부산의 문재인-문성근-김정길의 지역구에 여성후보자가 출마하는 순간, 소위 '문성길' 트리오 역시도 정청래 전 의원처럼 '경선도 못하고' 낙오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6. '성별 갈등'의 증폭 가능성에 대한 우려
한국사회 여성의 상대적 지위가 남성에 비해 열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의 공직자 비율은 증대되어야 한다. 특히나 진보-개혁 진영에서는 이에 대해 상당히 두터운 합의기반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대의가 '소선거구제'라는 방식과 맞물려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현재 민주당의 15% 의무공천 논란은, 37명이 필요한 상황에서 내부 출마자가 37명이라는 것에 유래한다. 지난 4년간 절치부심했을 남성 정치인 입장에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즉, 소선거구제하에서 15% 여성 의무공천의 관철은 필연적으로 그 방법론이 매우 거칠고, 불완전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그 의도와 다르게 '성별 갈등'을 사회적으로 증폭시킬 개연성이 높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여성정치인의 비율을 높이는 더욱 지혜롭고, 더욱 강력한 방법론은 바로 비례대표제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한국적 현실에서 비례대표제의 확대는, 그 자체로 '여성친화적인' 제도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7. 우리 모두를 위한 '정공법' – 비례대표의 획기적 확대
비례대표제의 확대를 주장하는 진보정당은 그간 비겁한 측면이 있었다. 그것은 현행 245석의 지역구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에, 국회의원 '총 정원수'의 확대 필요성을 제기해야 했는데 이를 회피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복지국가의 실현은 '증세'를 수반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필생의 과업이었던 '지역주의' 극복과 '정치개혁'을 위해서 2003년 12월 17일 당시 박관용 국회의장에게 직접 '서한'을 전달하여 ▲소선거구제 유지 땐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지역구 정수의 50% 수준으로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 ▲권역별 비례대표 확대시 지역구 축소보다 의원정수 확대 등의 내용을 담아 국회에 정치개혁을 호소한 적이 있다. (프레시안-2003년 12월 17일 盧, "의원숫자 340명으로 늘리자)
그런데 아쉽게도 당시 진보개혁 언론들마저도 이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민세금' 더 들어가는 의원을 늘리려 한다는 것이 비판의 논지였다. 그런데 한국의 국회의원 정수를 인구비례로 볼 때, 다른 나라에 비해 취약한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장집 교수 등이 강조하듯이 한국사회의 중요한 개혁과제중 하나는 '제왕적 행정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동의한다면, 입법부의 대표성 및 권한은 지금보다 훨씬 강화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비롯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제 의원 정수를 늘려서라도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넓은 공감대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를 12월 대선의 핵심 공약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8.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리운' 이유
참여정부 평가에 대한 견해 차이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합의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서라면, '당파적' 이익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2003년 12월 17일 제안과 2004년 취임2주년 기념 국회연설이 그런 사례였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OECD 수준으로 확대되길 바란다면, '정공법'은 OECD 수준에 걸맞게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후자를 회피하는 전자의 추구는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각종 부작용과 한계가 너무 명백하다.
어쩌면 최근의 논란들은 비례대표제 확대에 소극적이었던 민주당의 전ㆍ현직 남성 정치인들과 정치개혁과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거시적 고민보다는 여성의원'만' 늘리려는 여성계 일부의 조급한 판단이 한데 뒤엉켜 작동하는 '슬픈 희극'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개혁 의지를 계승하여, 비례대표 확대라는 정공법으로 논의가 모아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이 소모적인 성별 갈등을 넘어, 우리 모두를 위한 '정공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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