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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정치와 함께 요동치는 17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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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정치와 함께 요동치는 17대 총선

<시론> 남재희의 총선관전법

오래전에 미국의 문명비평가인 폴 굿맨이 정치에는 음모정치, 운동정치, 정당정치의 세 가닥이 있다고 쓴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음모정치란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5.16, 5.18 같은 것이고 정당정치란 글자 뜻 그대로인데, 아마 운동정치란 용어가 좀 생소할 것이다. 운동정치(movement politics)란 말하자면 NGO운동을 비롯하여 학생ㆍ시민ㆍ민중운동 등 전반을 포함하는 이야기이다. 4.19는 그 극치라 할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낙선운동이나 당선운동, 또는 한나라당에서 홍위병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국민참여 0415> 같은 것이 모두 운동정치라고 할 수 있는데, 노대통령이 '시민혁명'운운의 표현을 내놓고 쓴 바 있는 것처럼 노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은 총선거에서 <정당정치+운동정치>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당정치+오래된 보수지원우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노대통령에게 말을 아끼라고 권고한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으나 요즘은 국회에 아주 적은 정당기반밖에 없는 대통령이 말로나마 보완해야 할 것이 아니냐, 또한 그것은 운동정치에의 메시지가 아니냐고 관점을 바꾸었다. 예를 들어 이문열씨 같은 사람은 "디지털과 결합한 포퓰리즘에 의해 소수정권이 집권했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비판은 각각일 수 있고 정치의 역학은 그렇다는 이야기다. 가치판단의 차원과는 별개의 것이다.

현 시국을 안정기로 보느냐, 전환기로 보느냐에 따라 판단이 갈릴 것이다. 안정기로 본다면 총선거에 정당정치로만 임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치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하며 표면상 혼란을 이루기도 하는 일대전환기라고 느낀다면 <정당정치+운동정치>방식을 택하고 오히려 운동정치 쪽에 무게를 두는 것이 전략상 득이 될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각 당의 판단과 사정에 따른 것이며 그것을 불가하다고 할 일은 아니다.

이번 총선거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낙선ㆍ당선운동이고 그 기준을 놓고 공정성 시비가 붙었을 뿐 아니라 방법을 둘러싸고 합법ㆍ위법의 논쟁이 있는데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판단해야지 일반론으로 통틀어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후보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운동은 당연한 게 아니냐고 말하겠다. 합법여부에 관하여는, 현행 법제가 현역에만 유리하게 되어있는 등 많은 불합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니, 공분(公憤)해서 못 참겠다면 나중에 처벌을 감수한다는 각오를 하고서, 절차적인 위법을 운동하는 사람들로서는 각오해야 할 줄 안다. 세계적인 운동정치의 양상도 그렇다.

이번 총선거에서 볼 점은 많다. 우선 정당별로 보면 ① 한나라당이 슘페터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과도 같은 환골탈태를 하여 낡은 이미지를 불식하고 대안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겠는가 ②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노정권의 격돌이란 회오리의 틈바구니에서 제3자적 위치이기에 유권자의 관심권 밖으로 혹시라도 밀려나 더욱 소수당이 되는 게 아닌가 ③ 열린우리당('우리당'이란 약칭은 너무 잔재주같다)이 과반수까지는 안 가더라도 노정권이 그런대로 명분상의 안정을 얻을 만큼 의석을 차지할 것인가 ④ 자유민주연합이 충청도에서 그럭저럭 체면유지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이다.

그런 정당별 관찰보다는 정치명제별 관찰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총선거는 누가 뭐라고 해도 노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란 의미를 갖게 된다. 미국을 보아도 중간선거란 대통령에 대한 평가로 간주되는 것이다. 마침 노대통령이 신임투표 운운의 제안을 던져둔 상태이니만큼 더더구나 그렇다. 그렇다고 의석 과반수를 얻어야 신임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신임이라는 간단한 초보산술은 아니다. 의석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 국민이 보기에 그런대로 명분을 확보했다는 판단이 서는 그런 정도면 될 줄 안다.

둘째로 지역구도가 어느 정도 깨지고 그 대신 정책구도로 옮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노 대통령이 DJ의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으니만큼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 어느 정도 의석을 얻을 것이다. 또 노대통령이 부산ㆍ경남 출신이고 그곳에 힘을 쏟았으니만큼 그 쪽에서도 상당한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지역구도는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정책구도가 될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그렇게 보기보다 친노 대 반노 구도로 보는 것이 보다 실제에 가까운 관찰일 것이다. 그것도 정책구도의 측면은 있지만 말이다.

셋째 물갈이와 판갈이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부패에 대한 한국판 <깨끗한 손>과 같은 검찰의 척결노력과 직결된 것이다. 틀림없이 정치정화가 진전될 것이다.

점쟁이 흉내를 낼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치부패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하기에 선거사상 최고의 낙선율을 기록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다만 아무리 정치를 불신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사람을 선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모두를 불신하면 모처럼의 정치개혁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경우에 따라 부패정치인이 득을 보고 미소 지을 것이다.

물갈이와 대비되는 판갈이는 특히 민주노동당 측에서 관심을 갖고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경상도의 노동벨트에서의 지역구 의원, 정당투표를 통한 비례대표 의원을 합쳐 15석을 얻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 그것은 얼마간 허장성세이겠지만, 여하간 그렇게 되면 한국정치의 지형은 크게 바뀌게 되는 것이어서 판갈이까지는 안 되더라도 좀 과장하여 판갈이 운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운동단체들이 당선운동에 열중하면, 사표를 내지 않겠다는 유권자의 심리 탓에 민주노동당만 손해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운동단체들이 물갈이보다는 판갈이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부탁인데 그러기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그밖에 일부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니 그 일부를 나누는 분권형 개헌을 말하기도 하고 또 내각책임제 개헌을 제기하여 이번 총선거의 쟁점으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는 당내에서도 강력한 반론이 있어 당내합의가 의문이다. 그리고 정치부패란 뜨거운 쟁점의 김빼기 작전 같다는 인상도 주고 있어 논의의 광장에 주요의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 문제는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어 여기서 자세히 이야기 할 계제가 아니지만, 결론만 말한다면 대통령의 권한을 분권하는 쪽이 아니라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논의를 전개해야 올바른 방향이 될 줄 안다. 미국의 경우를 참고로 할 만하다.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면 정치질서가 방만해지고,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이면 긴장관계가 유지되어 방만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을 관찰해보면 민심이 요동치고 있음을 느낀다. 지진 때처럼 지각이 크게 흔들리는 것 같다. 가을에 김장을 위한 푸른 배추의 차떼기도 아니고 푸른 만원권의 차떼기로 상징되는 정치부패에, 청와대주변의 전시회를 방불케 하는 부패행진에, 정치에 대해서 다만 아연해 하는 국민이다. 옛날에 TV 연속극에서 공주부자가 "민나 도로보 데스(전부 도둑놈입니다)"라고 연발하여 유행어가 된 적이 있는데, 정말 "민나 도로보 데스"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또한 정치감각의 세대간 차이가 현저하다는 것을 느낀다. 세대적인 대변동인 것이다. 우선 6.25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아주 소수가 되었다. 동서냉전이 사라지고 햇볕정책의 영향으로 전쟁위협을 거의 느끼지 않게 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세대가 압도적 다수가 되었다. 영화를 말하면 <공동경비구역 JSA>를 감격적으로 말하는 젊은이들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이 언론에서 공방전의 토픽이 되고 꼬리를 물고 있는데 거기에 깊이 개입할 생각은 없지만 관련하여 한 가지만 말해두고 싶다. 처음 신문에서 그 발언을 읽고 꼭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판단을 할 수도 있겠구나 했다. 다만 한 가지 "반미친북세력이 커져가는 ……" 대목에 '앗차'했다. 클린턴 때는 안 그랬다. 주로 부시의 강압적 일방주의 정책 때문에 반미세력이 급증한 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선진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다. 우리의 경우 특히 그 반미는 평화를 바라는 물결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런 반미현상인데 사이비 자칭 원로도 많은 세상에 몇 안 되는 우리의 진짜 원로인 추기경이 실수로 "반미친북"이라고 둘을 동일시하는 표현을 해버린 것이다. 물론 반미 안에 극히 일부의 친북은 있다고 본다. 지금 친북을 한다는 것은 정신 나간 사람이지만 말이다. 고령인 추기경의 감각과 젊은 세대들의 감각이 맞지 않은 것이다.

보즈워스 전 주한 미 대사는 <포린 어페어스>의 글에서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는 북한을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는 자선(慈善)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썼는데, 안보에 위협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그 젊은 세대의 생각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그들의 감각을 이해하는 데 참고로 할 만하다고 본다.

추기경의 발언을 둘러싼 이야기가 세대간 감각차이를 살펴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총선거 이해의 단서이기도 하다.) 더구나 세계에서도 최상위권에 들어간 인터넷 보급률의 영향도 있고 하여 40대 이하의 세대들은 지금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의 영향으로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경박해진다는 부정적 면도 있을 것이다.) 그 역동적 상황을 인식하여 노대통령은 '시민혁명' 운운했는데, 거기까지 갈지는 아직 잘 판단이 안 간다. 이번 총선거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중차대하고 심각한 총선거에 관전 운운하면 경솔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으나 그러는 것이 관전의 재미일 수도 있겠다.

***이 글은 전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대한민국 헌정회가 발행하는 <헌정> 3월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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