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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주당, 한미FTA 폐기? 사기치지 말라"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18>'오렌지' 남경필 "민주당은 친노와 486이 있을 뿐"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쇄신파 4선 의원인 남경필 의원을 만나고 왔다. 새누리당, 쇄신파, 4선 의원. 이 세 가지 조합이 그로 참 많은 고민을 하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여전히 큰 불씨로 남겨져 있는 한미 FTA 비준 과정에 대해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어땠나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참담했다. 하지만 실제로 한미 FTA 처리 과정에서 여야에서 겉으로 드러난 차이는 거의 없었다. 물리적 충돌을 해서라도 한미 FTA를 막거나 보류했어야 한다면 한미FTA를 19대 국회에서 비준했어야 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였다고 본다. 내가 한미FTA 처리를 맡은 외통위원장이 되고 나서부터 정부에 줄곧 주장해서 이번에 통과된 통상절차법이 있다. 과거에는 통상절차법이 완전히 없었다. 정부는 정보를 공개할 필요도 없었고, 국회에 보고할 의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통상절차법이라는 법을 통해 통상 절차를 의회와 국민들에게 보고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 놓았다. 한미FTA 때는 이것이 없어서 못했다."

"이제 나 같은 정치인들은 흘러가고 새로운 세대들이 들어온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었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라면 과거의 구조들을 그대로 이어가지 말고 그 구조들을 깨려는 노력을 해서 조금씩이라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단면으로 보기에는 그거밖에 못 하느냐고 비판받을 수 있다. 실제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큰 흐름으로 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다. 얼음은 빙점에 이르는 어느 순간에 순식간에 얼거나 녹아버린다. 그러려면 -10에서부터 -8, -7, -6 여전히 얼음인 상태로 있다. 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조금씩 변화가 생기다가 0도가 되는 시점에 얼음이 녹아버리듯이 정치에서도 그 시점이 올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2012년에 얼음이 녹을지 2017년에 녹을지는 아직은 결정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온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아직 얼음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불을 때야 하는 거다. 나는 지금 불을 때고 있다"

"정치·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새누리당을 바꾸는 것이다. 이번에 동료 의원들이 나간다고 할 때 이렇게 호소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초선 의원부터 시작해서 새누리당 개혁을 위해 일하면서 선배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지만 어찌 되었건 지금은 최고 의원 반열에 원희룡, 정두언, 남경필 같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 조금만 더 하면 된다는 거다. 지금까지는 변방에서 소리 지르는 역할만 했지만 조금만 더하면 우리도 할 수 있을 때가 오는 것이다. 나는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빨강도 파랑도 아닌 오렌지라고 이야기한 그가 너무나도 강고해 보이는 빙벽을 어떻게 녹여갈 것인가. 과연 그가 말하는 빙점은 올 것인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를 얼음을 녹이다 빙벽에 갇혀버린 화석으로 기억하지 않기를. 왼쪽과 오른쪽 모두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으로 흔들릴지언정 빙벽을 녹이고자 하는 내면의 심지가 결코 꺼지지 않기를 돌아오는 내내 바라고 또 바랬다.

▲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한미FTA 비준 관련해서 "물리력이 충돌하는 가운데 진행할 생각은 없지만, 끝까지 해도 안 되고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 처리하게 되면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한미FTA 비준안을 물리적으로 강행처리 할 시에는 오는 총선에서 불출마하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여야 간 대화와 타협 없이 강행처리 되었다. 그렇게 불출마하겠다는 배수진까지 친 이유는 무엇인가?

재작년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다른 법안들까지 한꺼번에 처리하는데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좀 바꾸자고 생각했다. 국민들이 뽑아준 국회의원으로서 자기 소신이나 철학을 가지고 판단하고 표결하고 하면 되지 집단적인 충돌에 의해 한쪽은 밀어붙이고 한쪽은 드러눕는 것은 국회의원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쇠사슬로 묶고 또 그것을 풀고 하는 것들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불출마를 걸었던 것이다. 그때 당시 한미FTA를 눈앞에 두고 있었고 내가 외통위원장이었기 때문에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것이 굉장히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도 앞으로 대한민국 국회에서 최소한 국회의원들끼리 몸싸움은 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불출마 선언까지 하게 되었다.

평소 새누리당 쇄신파인 남경필 의원이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강행처리는 되지 않을 거란 기대를 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기대만큼 사람들의 분노와 좌절도 큰 것 같다. 하지만 남경필 의원 본인의 좌절 또한 클 것 같다. 어떤가?

참담했다. 하지만 실제로 한미FTA 처리 과정에서 여야에서 겉으로 드러난 차이는 거의 없었다. 민주당 쪽에서는 대통령의 말한 ISD 재협상을 믿지 못하겠으니, 미국에서 사인(서명) 받아오라고 요구를 했고 새누리당 쪽에서는 사인을 갖다 줘도 결국 또 뒤집을 거 아니냐며 신뢰하지 않았다. 결국 종이 한 장 차이의 신뢰 문제였다. 그것을 보면서 '결국은 이렇게 밖에 갈 수 없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사전에 약속했던 것은 처리 과정에서 의원들 간의 물리적 충돌이 있으면 법안을 처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는데,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야당 측에서 작전을 짠 것 같다. 결국, 강행처리로 갔지만 몸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참고 노력하는 중에 몸싸움은 더 이상 못하겠다는 의원들이 다수 생겼다. 강행처리가 되던 그날 민주당 의원들도 밑에서 소리 지르는 정도에 그쳤다.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을 터트리며 난장판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과거의 한미FTA 강행처리 과정이나 미디어법 처리, 예산안 처리 때 보였던 의원들 간의 몸싸움이나 쇠사슬에 인간 띠를 묶고 하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은 합의를 위한 그간의 과정의 노력들이 중요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가 비판을 받는 것이 사람들이 결과를 놓고만 이야기하지 그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진 않는 것 같다. 한미FTA 처리 과정을 보면 그 속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토론이 이루어졌다. 하루에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5일 동안 한 2000분가량 토론을 했었다. 얼마든지 상임위에서 방을 옮겨 그냥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을 안 하고 계속 기다리다가 결국 이런 결과를 보여줬다. 해외 토픽감은 아니었지만,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은 완전히 개인적인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예산안 처리만 해도 그렇다. 결국, 단독처리였지만 과정을 보면 그것은 합의 단독처리였다.

18대 우리 국회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국회에서 과반이 조금 더 넘는 수를 가지고 밀어붙이는 것도 아니고 소수가 물리적으로 막는 것도 아니다. 약 절대 과반이라고 할 수 3/5 정도가 어떤 한 사안에 공유를 하면, 나머지 2/5와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토론과 회의로 들어가는 제도를 도입해서 더 이상 대한민국 국회에서 몸싸움, 최루탄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리적 충돌이 없었던 측면에서는 긍정적일지 모르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았어야 했던 것 아니냐며 결과적으로 한미FTA 비준을 통과시켜 준 민주당에 대한 질책이 많았다. 외통위원장으로써 이런 국민들의 답답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프레시안(최형락)
물리적 충돌을 해서라도 한미 FTA를 막거나 보류했어야 한다면 한미 FTA를 19대 국회에서 비준했어야 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였다고 본다. 그렇다면 앞으로가 중요하다. 내가 한미FTA 처리를 맡은 외통위원장이 되고 나서부터 정부에 줄곧 주장해서 이번에 통과된 통상절차법이 있다. 이 통상절차법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조약체결권을 침해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법 자체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와 FTA를 맺을 때 통상의 모든 과정을 의회로부터 통제받도록 하는 제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미FTA 때는 이것이 없어서 못했다.

나는 정치라는 것을 긴 흐름에 의해 정의하고 싶다. 어떤 순간의 단면을 끊어서 보는 것은 기자들과 언론의 시각이다. 언론은 사건이 터지면 중간을 딱 잘라서 결을 읽어 내는 것이 필요하고 또 국민들도 그것을 원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단편적인 사실을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과연 이번에 한미FTA 처리 과정에서 보여줬던 흐름이 역사적으로 퇴행의 과정이었나, 아니면 아쉽기는 하지만 역사가 조금씩 나아지는 과정이었나. 과거에는 통상절차법이 완전히 없었다. 정부는 정보를 공개할 필요도 없었고 국회에 보고할 의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통상절차법이라는 법을 통해 통상 절차를 의회와 국민들에게 보고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역사가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이제 나 같은 정치인들은 흘러가고 새로운 세대들이 들어온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었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라면 과거의 구조들을 그대로 이어가지 말고 그 구조들을 깨려는 노력을 해서 조금씩이라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단면으로 보기에는 그거밖에 못 하느냐고 비판받을 수 있다. 실제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큰 흐름으로 보고 싶다는 것이다.

무엇이 되고 싶나. 나는 체제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다. 얼음은 빙점에 이르는 어느 순간에 순식간에 얼거나 녹아버린다. 그러려면 -10에서부터 -8, -7, -6 여전히 얼음인 상태로 있다. 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조금씩 변화가 생기다가 0도가 되는 시점에 얼음이 녹아버리듯이 정치에서도 그 시점이 올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2012년에 얼음이 녹을지 2017년에 녹을지는 아직은 결정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온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아직 얼음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불을 때야 하는 거다. 나는 지금 불을 때고 있다.

순간순간 비판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때그때의 칭찬과 비판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물론 아주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서 받는 비판이라면 그것은 정치를 그만 두어야 한다. 지금껏 권력분산을 위해 일하면서 극심한 갈등과 시련이 많았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권력을 국회의원들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점점 더 나누기 위해 일했다. 그 무서운 이회창 대표가 있을 당시에도 당권과 대권 분리를 주장했었다. 야단도 엄청 맞았다.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의 막강한 권한을 국민들에게 돌려주자고 끊임없이 요구해 왔는데 숱한 비판을 거치고 드디어 10년 만에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가 도입되어가는 것이다. 이렇듯 단편으로 보면 부족하고 비판받을 수 있지만 긴 흐름의 역사로 보면 대한민국 정치도 의회의 역사도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경필도 처음에 비해 조금 조금씩 발전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이고 실제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미FTA에 대한 국민적 저항 및 골이 깊다.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한미FTA는 재협상하자고 얘기했다. 하지만 폐기할 거냐 하는 문제는 다른 문제이다. 솔직히 한미FTA 폐기를 바라는 국민이 그렇게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FTA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라기보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수정·보완하자라는 의견이 다수라고 생각한다. 만약 한미FTA를 폐기한다면 한중FTA, 기존의 한일FTA는 어떻게 할 거냐. 노무현 대통령 이전에 이미 우리가 WTO 체제에 가입하고 세계의 자유무역체제로 뛰어들었다.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도 아니고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을 거치면서 국민적인 합의를 통해서 온 길이다. 한미FTA를 폐기하자는 국민적 합의가 있으면 한미FTA를 폐기해야 함이 옳다. 그런데 과연 그런 합의가 있었나? 세계 무역보다는 우리 내수로 국가 경제를 지탱하자고 국민적 합의가 되면 그렇게 하는 거다. 그런데 그런 국민적 합의가 아직까지 없다.

정당의 입장이 우습다. 지금 민주당이 한미FTA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과연 집권당이 되거나 다수당이 되더라도 한미FTA 폐기를 주장할 수 있나? 솔직히 사기 치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 처리 과정에서의 문제, 미국이라는 독특한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한미FTA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니까 폐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성이 없는 사기이다. 새누리당도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한미FTA를 무조건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가 나오면 새롭게 구성되는 국회에서 해결해 가야 한다.

책임 있는 정당과 정치인들은 역사의 흐름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보이는 국민들의 여론에 따라 그 흐름에 편승해서 가서는 안 된다. 단면을 잘라 보는 것은 진정한 정치인이 아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올해 총선에 나오나?

나온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100% 말끔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했던 약속을 어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19대 국회에서는 몸싸움이 없는 국회, 의원들의 자기 소신에 의해 표결하는 국회와 정당체제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새누리당 당 대표 폐기하자는 것이다. 당권과 대권의 분리로부터 시작해서 의회로의 권한 이양,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자는 것, 그다음에 원내중심정당으로 가서 당 대표 폐기하고 대통령의 영향이 없이 국회의원들이 자기 자유에 의해 판단하고 결정하게 하는 것, 당정협의회를 없애는 주장들을 일관되게 해오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이 19대 국회에서 꽃 피우리라고 본다.

이번에 정두언 의원 등과 함께 당 쇄신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완전 국민경선제 등은 매우 혁신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정치활동을 위해 굳이 당원이 되어야 할 필요를 없게 만드는, 결과적으로 정당의 존립근거를 약화시킬 수 있는 안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17대 국회에서 이 논쟁이 굉장히 컸다. 대한민국의 정당 체제를 유럽식 계급정당으로 갈 것인가 미국식 원내정당으로 갈 것이냐는 논쟁이었다. 이 논쟁 끝에 여야가 미국식 원내정당으로 가자고 합의를 해서 그 당시 지구당을 폐지했다. 그리고 비대한 중앙당을 100명으로 제한했다. 또한, 정책중심의 정당을 위해 국고보조금의 30%를 연구소에 지원하자고 합의했다. 그래서 미국식 원내중심정당으로 가다 보니 중간쯤 어정쩡해졌다. 지구당을 폐지했지만, 현실적으로 지구당의 역할을 없앨 수 없어 당원협의회라는 이름으로 계속 운영하고 있다. 중앙당 의원을 100명 이하로 줄인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100명으로 못 줄이고 그 인원들을 국회로 다시 파견 보냈다. 여의도 연구소의 지원금도 직원들 인건비로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정당들이 다 사기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나. 약속했던 데로 끝까지 가자는 거다.

당원들은 문제는 어떻게 되느냐.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당원중심정당이 아니라 지지자 중심정당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새누리당을 좋아하기 때문에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거지, 새누리당의 당원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미국에는 민주당원, 공화당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당비 내면서 활동하는 당원들이 아니라, 그냥 지지자들이다. 그렇다면 당에서 지지자 정당으로 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그렇게 가는 것인데 진성 당원들에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당원들한테 대통령 후보를 경선할 수 있는 일정한 지분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 대선 후보 최종 두 명(TOP 2)을 뽑는 데까지는 당원들이 결정하게 하고, 마지막 한 명(TOP 1)은 국민들이 뽑도록 하자는 거다. 그렇게 하면 당원들의 정체성에 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정치에 입문한 뒤, 줄곧 새누리당의 소신파, 개혁파, 쇄신파로 목소리를 내어왔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새누리당이 여기까지 오는데 소신파들은 무엇을 했나'는 비판도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소신파 의원으로 어떻게 생각하나?

ⓒ프레시안(최형락)
죄송스럽다. 새누리당 일원으로 책임이 크다. 사실 집권 초반기에 이상득 부의장 문제, 정권 핵심 부분의 비리문제, 최근 터져 나온 CNK 문제, 그리고 4대강, 미디어 법 밀어붙이기 등의 문제들은 경고를 했던 문제들이었다. 당·청관계가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다. 조금 더 힘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힘이 미약해 목소리밖엔 낼 수 없었던 것이 죄송스럽다.

소신파들이 위기 시에만 나타난다는 비판도 있고, 그만큼 새누리당 내부적으로 변화에 대한 저항이 크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안쓰러움에 기반한 우려도 있다. 하지만 초선의원의 경우에는 당내 벽을 넘기 어렵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만 의원 같은 벌써 4선 의원이 아닌가? 중간에 탈당하고픈 유혹을 느낀 적은 없었나. 계속 비판의 목소리를 외치긴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당을 보며 가장 크게 절망을 느꼈던 적은 언제인가?

'탈당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김성식 의원, 정태근 의원이 나갈 때도 나는 설득하는 입장이었고, 그 이후에 정두언 의원이 탈당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나는 탈당하느니 차라리 불출마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안에서 하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새누리당은 4선이나 한 정당이고, 그렇게 때문에 나는 초선의원들이랑은 다르다. 당으로부터 받은 것이 많이 있다. 그리고 정치·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새누리당을 바꾸는 것이다. 이번에 동료 의원들이 나간다고 할 때 이렇게 호소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초선 의원부터 시작해서 새누리당 개혁을 위해 일하면서 선배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지만 어찌 되었건 지금은 최고 의원 반열에 원희룡, 정두언, 남경필 같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 조금만 더 하면 된다는 거다. 지금까지는 변방에서 소리 지르는 역할만 했지만, 조금만 더하면 우리도 할 수 있을 때가 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꿈꿨던 것들을 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정말 힘들었다. 특히 FTA 처리를 거치면서 '(외통위)위원장으로서 대화와 타협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한도는 여기까지구나'를 느꼈다. 외통위에서 한미FTA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 보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 김선동 의원이 안에 들어가서 외통위를 잠가버리는 순간, 이 문제는 대통령, 원내대표, 당 대표의 권한이 존재하는 본회의로 가버린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내가 원내대표였다면, 당대표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누구나 자기 권한을 가지고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자리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 권한과 책임을 이뤄내야 한다. 거기서 못하면 그때는 은퇴해야 하는 거다.

새누리당의 그 많은 당 대표들 중에 대권반열의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박근혜 비대위원장밖에 없다. 왜일까. 다른 대표들은 그럴 수 있는 권한이 없었을까. 차이가 뭘까. 이것은 자기가 평상시에 했던 이야기들을 당 대표가 되고 나서 실제로 했다는데 차이가 있다. 당에 들어와서 실제로 조직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박근혜 위원장이 새누리당을 탈당한 적이 있다. 박근혜 위원장이 탈당할 때 "새누리당은 이회창 총재의 일인 제왕적인 체제이다. 정치개혁의 흐름은 권력 분산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체제 속에서 더 이상 못하겠다"라며 나갔다. 그런 그가 다시 복당했다. 우리가 주장해서 당권과 대권이 분리된 다음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제는 새누리당도 권력분산의 길, 개혁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들어온 거다. 사람들이 아무리 박근혜 위원장을 답답하다고 할지라도 단 한 가지 시비 걸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한 마디로 '공천 가지고 장난 안 칠 것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다. 그가 대표로 들어와서 당대표와 공천권을 분리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요만큼도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일이 없었다. 자기가 했던 약속들을 지켜가면서 당을 바꾼 것이다. 이것이 리더의 힘이고 그런 사람들은 지도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당 대표가 돼서 그 자리에 매몰되어 기존에 있던 구습들을 바꾸지 못하게 되면 안 되는 것이다. 변화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거기에 매몰되면 끝나는 거다.

ⓒ프레시안(최형락)

힘들었을 때와 보람되었을 때를 꼽는다면?

'독수리 오형제'라고 불리었던 김부겸, 김영춘 의원들이 탈당했을 때 제일 안타까웠다. 그때 생각이 나서 이번에 김성식, 정태근 나가는 것을 그렇게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인사동에서 술을 진탕 마셨다. 거리에서 말리고, 껴안고 울면서 새누리당 안에서 갖는 갑갑함을 토로했다. 의총에서 뭔가 이야기할 때가 있다. 국가보안법을 예를 들면, '폐지는 말도 안 되고 앞에 나가서 수정합시다'라고 얘기하면 서 있는 상태에서 '야, 이 새끼야. 나가, 저 새끼 빨갱이 아니야' 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면서 이지매(집단 따돌림)를 놓는다. 그것을 못 참는 거다. 나는 워낙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성격이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안 좋은 일 있으면 좋은 일 있으려고 그러는 거라며 생각해서 사람들이 놀랄 때가 많다. 그런데 영춘이 형이랑, 부겸이 형 같은 경우는 달랐다. 그런 것들을 참지 못해서 탈당을 했던 것이다.

그때는 나와 생각이 요만큼이라도 다르면 그건 다 색깔이었다. 나는 워낙 타고난 게 새누리당 베이스니까 도저히 빨갱이 소리를 못 갖다 붙이니까, 오렌지색을 갖다 붙였다.(웃음) 빨갱이하고 파랭이 둘밖에 없었는데 이상한 색이 나타났거든(웃음). 동료 의원들이 탈당을 하고, 여전히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새누리당 안에 남아 있을 때 너무너무 힘들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요즘을 보면 많이 깨졌다. 새누리당 의원 중에 의총에 나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단 한 명도 샤우팅 하는(소리 지르는) 사람이 없다. 다 듣고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을 인정하기 시작한 새누리당에 있어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요즘에 정말로 변화의 조짐이 있다. 단면으로 잘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10에서 시작한 것을 보면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우리가 할 만큼하고, 후배들한테 물려줘야지 하는 생각이 있다. 요즘 초선 의원들이 들어오면 쇄신파, 개혁파라고 해서 부족하지만, 둥지가 차려져 있다. 우리 때에는 우리가 새로 집을 지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새누리당 안에 친이, 친박이 있듯이 쇄신파가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 새누리당의 변화와 개혁을 이야기하는 그룹이 있다는 거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없다. 친노와 486이 있을 뿐이지.

다수가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올바르고 일관성 있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소수가 결국은 다수가 된다. 다수가 되고 나서 정신 못 차리면 다른 소수가 치고 올라와 그 다수를 치게 된다. 다 왔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집 나간 김성식은 바깥에서 정치해라. 다시 만나자.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함께 토론해 견해를 좁혀 나가는 것이 정치 아닐까요? 내 생각과 다르면 두려워하고 불편해해서는 혁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의원이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대로 일관된 생각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권력분산을 위해 일해 왔다. 다른 하나는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일해 왔다. 민주주의란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나 혼자 결론을 내는 것보다 두 명이 토론을 해서 나온 결론이 정의와 선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본다.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것이 세 명, 네 명, 다섯 명 그리고 n으로 늘어나, 그 n이 모여서 결정하는 것이 정의에 가깝고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다수결을 통해 대의민주주의가 가능한 원리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나의 틀림을 인정하고 나와 타인과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그 차이를 좁혀가는 것이 정치이고 민주주의인 것이다. 우리사회는 이것이 부족하다. 나하고 의견이 다르면 다른 게 아니라 틀리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틀린 것은 없다. 나는 민주 노동당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르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통합진보당) 심상정 의원을 좋아한다. 그와 원내 수석대표를 해봤는데 굉장히 유연한 사람이더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경청할 만한 의견이라면 조정을 해서 합의를 보자고 하더라. 이것이 바로 정치다.

ⓒ프레시안(최형락)

정치인 남경필이 아니라, 인간 남경필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막냇동생 딸 돌잔치가 있던 날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굉장히 우애가 깊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의 사업체를 상속하는 과정에서도 우리 형제는 의를 상하지 않고, 둘째 동생에게 통째로 주었다. 솔직히 내가 장남이긴 하지만 사업할 사람이 아니고, 막냇동생 또한 그랬다. 그런데 둘째 동생은 아버지를 많이 닮이 사업체를 꾸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막내 동생이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할 때였다. 결혼하기 전에 흔히 건강검진을 받게 되는데, 간에서 암 7cm짜리가 발견된 것이다. 6개월 전에 검사할 때만 해도 없었는데 6개월 만에 간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심각해진 것이다. 동생은 본인이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여자 친구와도 헤어져 몇 년 동안 수술과 치료에 전념했다. 여러 번의 재발과 함께 결국 간 이식 수술을 했다. 그때 우리는 정말로 막냇동생이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수술이 성공해서 정상인처럼 회복하고, 헤어졌던 여자 친구와도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재수 씨 되는 사람이 막냇동생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 둘이 함께 유학한 LA에서 아이를 낳고 거기에서 돌잔치를 했는데, 우리가 다 같이 가서 축하해 주었다. 그때 정말로 기뻤다. 죽을 줄 알았던 막냇동생이 살아났고, 사랑하는 여인과 가정을 이루고 아이까지 있게 되었다. 정말 신의 축복이었다.

결국 행복은 가족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아픈 곳이 치유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이 제대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여러 가지 복지문제에 관련된 구조를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모든 것의 시작은 행복한 가정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해보니까 이것도 나를 죽이는 것이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가정과 커뮤니티, 나아가 국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간 남경필이 가장 뜨겁게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다면?

막냇동생이 결혼하던 날과 그 동생의 딸 돌잔치를 하던 날이다. 특히 결혼식 때 많이 울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직후라 어려운 중에 어떻게 결혼식을 할 수 있을까 많이 염려했었다. 그때 나는 가족이란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구나 생각했다.

인터뷰 코너가 자유인 인터뷰다. 남경필에게 자유란?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남이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표현을 스스럼없이 해내고 다름에 대해 스스럼없이 토론할 수 있는 것이 자유다.

ⓒ프레시안(최형락)

마지막으로 동시대의 청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만간 비대위에 공약을 제시할 거다. 그중에 하나가 사병들 월급에 관한 것이다. 현재 한 달에 10만 원을 주는 것을 50만 원으로 올리자는 얘기다.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2012년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의 청춘들을 7days 24 hours(주 7일, 24시간 내내) 근무를 시키면서 한 달에 10만 원씩 준다는 것은 완전히 노동 착취이다. 과거부터 그래 왔기 때문에 지금도 똑같이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최소한 50만원으로 올려주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일 년에 1조 8000억 원 정도 더 든다. 나는 우리 정부가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달에 50만 원으로 이것을 20개월만 모으면 1000만 원이 된다. 이 돈을 사병 개인이 흥청망청 쓰지 못하도록 적금식으로 관리를 해주었다가 제대할 때 돌려주면, 이것을 통해 등록금이든, 창업자금이든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복무를 하는 중에도 제대 이후의 삶을 계획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한도전이다. 또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20대 때 할 수 있는 실패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도전하라. 그러면 지금 남경필이 약속하는 것은 성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상하고 실패한 것에 대해서는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제도와 길을 마련해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도전하라. 삼성에 취직하지 말고 미래의 삼성을 만들어라. 나는 서포터즈(후원자)를 하겠다.

(인터뷰 및 정리: 정치경영연구소 김경미, 손어진 연구원)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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